순연純然한 자연이 오염된 인간에게 던지는 화두話頭 - 김규련의 ＜거룩한 본능＞ 조명

[손진숙]

순연純然한 자연이 오염된 인간에게 던지는 화두話頭

-김규련의 <거룩한 본능> 조명

거룩한 본능

김규련金奎鍊(1920-2009)수필집 ⟪높고 낮은 목소리⟫ ⟪흔적⟫ ⟪귀로의 사색⟫ 등

  동해안 백암白巖 온천에서 구슬령珠嶺을 넘어 내륙으로 들어서면, 산수가 빼어난 고원지대가 펼쳐진다. 여기가 고추, 담배로 이름난 영양英陽 수비면首比面이다.

  대구에서 오자면 차편으로 근 다섯 시간을 달려야 한다. 이 고을 어귀에는 갑작스레 높고 가파른 재가 있다. 이 재에 오르면 바로 고을수樹가 있고 민가가 모여 있다. 이 재를 한티재라 한다. 이 한티재를 분수령으로 마을 쪽에 떨어지는 빗물은 왕피천王避川을 이뤄 성류굴聖留窟 앞을 지나 동해에 이른다. 재 밖으로 빗나간 빗물은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흐른다.

  왕피천으로 흐르는 석간수를 따라 인적이 드문 산골짜기를 한나절쯤 걸어가면, 화전민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다. 마을이라고는 하나 여기저기 산비탈에 농가가 몇 채씩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자연 촌락이다. 이 근방에는 천혜天惠의 절경이 많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알 까닭이 없다. 어쩌면 이들 자신이 그 절경을 이루는 웅장한 산이며 기암절벽이며 수림이며 산새며 바람 소리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자연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기 때문일까.

  어쩌다 나그네가 이 고을을 찾게 되면, 그 우람한 태백산맥의 산세며 깊은 계곡, 울창한 숲이며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을 보고 우선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발길을 돌려 그냥 되돌아간다면, 그는 무궁한 산정山情의 애무를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없으리라.

  이들의 주된 생업은 고추와 담배 농사이다. 철 따라 산채며 약초를 캐고 송이버섯을 따 들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의 큰 부업이다. 그러나 어쩐지 바보가 아니면 달관한 사람만이 살 수 있는 첩첩산중의 이 수하水下 마을.

  어느 해 봄. 이 마을에 뜻밖에 황새 한 쌍이 날아 들어왔다. 서식처도 아닌 이 산골에, 꿩이나 산비둘기가 아니면 부엉이나 매 같은 산새들만 보아 온 이 마을 사람들 눈에는 황새가 신기했다. 희고 큰 날개를 여유 있게 훨훨 흔들며 노송老松 위를 짝을 지어 유유히 날아다니는 품이 정말 대견스러웠다. 기나긴 늦은 봄 오후. 뻐꾸기 울음소리가 빗물처럼 쏟아질 때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숨을 돌린다. 이럴 때 이들의 화제는 개울가에 먹이를 찾아 서성거리고 있는 황새에 쏠린다. 붉은 주둥이와 긴 목, 새하얀 털로 덮인 날개 밑으로 쭉 뻗어 내린 검붉은 두 다리, 황새의 자태는 과연 군자의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황새가 길조라고 믿고, 그들은 무엇인가 막연한 기대에 부풀곤 했다.

  그러나 변이 생겼다. 낙엽이 질 무렵 어느 날 아침, 이 마을을 지나가던 밀렵꾼이 황새를 보고 총을 쏜 것이다. 놀란 마을 사람들은 아침을 먹다 말고 황새 둥지가 있는 노송 숲으로 뛰어나왔다. 밀렵꾼은 도망가고 황새 한 마리가 선지피를 흘리며 마른 억새풀 위에 쓰러져 있다. 그리고 살아남은 짝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없다. 그 밀렵꾼에게는 황새가 박제 표본감이나 아니면 돈으로 보였을까. 마을 사람들의 분노와 원성은 여간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황새가 죽지는 않았다. 한 쪽 날개가 못 쓰게 될 만큼 다쳤던 것이다.

  어질고 소박한 마을 사람들은 그 황새를 안고 와서 온갖 정성을 다해 치료를 했다. 그리고 날개 상처가 아물고 힘을 되찾을 때까지 그 황새를 물방앗간 옆 뜰 소나무 밑에 갖다 두고 보호하기로 했다. 이들은 그날로 둥우리를 만들고 모이 그릇도 마련했다. 그러나 황새는 쓰러져 움직이질 못했다.

  그날 밤, 구장집 사랑에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밤이 이슥하도록 황새를 살려 볼 궁리를 했다. 그리고 밀렵꾼을 저주하다가, 드디어 인간의 잔악한 일면을 저마다 나름대로 뉘우쳐 보기도 했다.

  밤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지창紙窓에 갈잎이 날려와 부딪힌다. 그런데 귀에 설은 애달픈 새의 울음소리.

  탁탁탁 타르르 탁탁.

  가슴을 깎는 처절한 이 울음소리를 듣고 모두들 말없이 뜨락으로 나왔다. 가을밤 하늘에 찬찬한 별들. 그 별빛에 흰 깃을 번쩍이며 황새 한 마리가 물레방아 주위를 이리저리 애타게 날고 있는 것이 아닌가. 총소리에 놀라 도망갔던 황새가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황새는 이제 인간이 두려워서, 쓰러져 누워 있는 자기 짝에게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가슴이 뭉클해진 마을 사람들은 자리를 피해 주려고 묵묵히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황새는 연신 목에 피가 맺히도록 울어댄다. 탁탁탁 타르르 탁탁. 그날 밤늦도록 화전민 후예들의 지붕 밑에 호롱불이 꺼지지 않았다.

  이튿날 날이 밝자, 이들은 그 부상당한 황새를 그들의 둥지가 있던 노송 밑에 갖다 뒀다. 가련한 황새가 사람의 눈을 피하여 서로 어울리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러던 며칠 뒤, 무서리가 몹시 내린 어느 날 아침, 기이하고 처참한 변이 또 생겼다. 이들이 그렇게도 알뜰히 보살펴 온 그 한 쌍의 황새가 서로 목을 감고 싸늘하게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소문을 듣고 달려 나온 마을 사람들은 이 슬픈 광경을 보자 갑자기 숙연해졌다. 그리고 저마다 무엇을 느꼈음인지 착잡한 심정으로 한참 말이 없었다. 황새도 영물일까, 산골의 날씨는 무섭게 추워지려는데 짝을 버리고 혼자 남쪽으로 갈 수 없었던 애절한 황새의 정, 조류鳥類에 따라서는 암수의 애정이 별스런 놈도 있지만 그것이 모두 그들의 본능이라 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들의 하찮은 본능이 오늘따라 인간의 종교보다 더 거룩하고 예술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 ⟪거룩한 본능(1979)⟫수록

  본능이란 생물이 선천적으로 부여 받은 능력이다. 그리고 ‘거룩하다’는 말은 성스럽고 위대하다는 뜻으로 성자聖者에게나 붙일 수 있는 말이다. 학습도, 수련도 전혀 없는 상태의 저급한 본능이 무진한 고난을 극복하고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붙여 쓰는 ‘거룩한’의 수식을 받다니? 이를 십분 양보하여 모순 형용矛盾形容이라 친다 하더라도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거룩한 본능>은 제목부터가 충격적이다. 이런 충격적인 제목을 대하고 그냥 지나치는 독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동해안 백암온천에서 구슬령珠嶺을 넘어 내륙으로 들어서면, 산수가 빼어난 고원 지대가 펼쳐진다. 여기가 고추, 담배로 이름난 영양英陽 수비면首比面이다.

  대구에서 오자면 차편으로 근 다섯 시간을 달려야 한다. 이 고을 어귀에는 갑작스레 높고 가파른 재가 있다. 이 재에 오르면 바로 고을수樹가 있고 민가가 모여 있다. 이 재를 한티재라 한다. 이 한티재를 분수령으로 마을 쪽에 떨어지는 빗물은 왕피천王避川을 이뤄 성류굴聖留窟 앞을 지나 동해에 이른다. 재 밖으로 빗나간 빗물은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흐른다.

  하늘에서 내린 빗물이 한티재를 분수령으로 동해로도 남해로도 흐르는 데는 인공이 전혀 없다. 물을 관리하기 위한 토목공사가 전혀 없는 자연 그대로의 고을. 민가 몇이 모여 있는 산촌을 배경으로 제시하고 있다.  

  왕피천으로 흐르는 석간수를 따라 인적이 드문 산골짜기를 한나절쯤 걸어가면, 화전민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다. 마을이라고는 하나 여기저기 산비탈에 농가가 몇 채씩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자연 촌락이다. 이 근방에는 천혜天惠의 절경이 많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알 까닭이 없다. 어쩌면 이들 자신이 그 절경을 이루는 웅장한 산이며 기암절벽이며 수림이며 산새며 바람 소리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자연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기 때문일까.

  어쩌다 나그네가 이 고을을 찾게 되면, 그 우람한 태백산맥의 산세며 깊은 계곡, 울창한 숲이며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을 보고 우선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발길을 돌려 그냥 되돌아간다면, 그는 무궁한 산정山情의 애무를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없으리라.

  배경인 산촌의 자연 환경과 그 속에서 사는 화전민의 후예들. 화자가 천혜의 절경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사는 화전민의 후예들을 부각시킨 것은 이 수필의 주제를 암시한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발길을 드냥  되돌아간다면, 그는 무궁한 산정山情의 애무를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없으리라.' 하여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들의 주된 생업은 고추와 담배 농사이다. 철 따라 산채며 약초를 캐고 송이버섯을 따 들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의 큰 부업이다. 그러나 어쩐지 바보가 아니면 달관한 사람만이 살 수 있는 첩첩산중의 이 수하水下 마을.

  첩첩산중 수하마을에 사는 화전민 후예들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비탈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철 따라 산이 주는 먹을거리를 채취하여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농사를 경영하거나 약초를 재배하여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농사를 경여하거나 약초를 재배하여 윤택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바보스럽거나 달관한 사람들일 수 있다.

  하느님이 자기 형상 곧 하느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느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느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장 27〜28절)

  하느님의 속뜻이야 어떠했든 하느님은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에게 바다, 공중, 땅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다스리게 했다. 이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사람 이외 모든 것은 정복의 대상이라는 인간 중심의 자의적恣意的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 결과 사람도 바다와 공중과 땅에 사는 모든 생물들과 같이 하느님의 피조물인 이상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잊고 산다.

  올가미와 창과 작살을 이용하여 사람 이외의 생물을 잡는다.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산을 뭉개어 집을 짓고 바다를 메워 공장을 짓는다.

  그런데  수하마을에 사는 화전민의 후예들은 자연에 기대어 산다.

  어느 해 봄, 이 마을에 뜻밖의 황새 한 쌍이 날아 들어왔다. 서식처가 아닌 이 산골에, 꿩이나 산비둘기가 아니면 부엉이나 매 같은 산새들만 보아 온 이 마을 사람들 눈에는 그 황새가 신기했다. 희고 큰 날개를 여유 있게 훨훨 흔들며 노송老松의 위를 짝을 지어 유유히 날아다니는 품이 정말 대견스러웠다. 기나긴 늦은 봄 오후, 뻐꾸기 울음소리가 빗물처럼 쏟아질 때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숨을 돌린다. 이럴 때 이들의 화제는 개울가에 먹이를 찾아 서성거리고 있는 황새에 쏠린다. 붉은 주둥이와 긴 목, 새하얀 털로 덮인 날개 밑에 쭉 뻗어 내린 검붉은 두 다리, 황새의 자태는 과연 군자의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황새가 길조라고 믿고 그들은 모두 무엇인가 막연한 기대에 부풀곤 했다.

  화전민의 후예들이 사는 산골마을에 뜻하지 않게 황새 한 쌍이 날아든다. 황새의 등장은 자연과 인간의 보다 구체적 관계를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서사적 기술記述로 바뀔 수밖에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기대를 품은 것이 꼭 황새가 길조라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전제한 ‘뻐꾸기 울음소리가 빗물처럼 쏟아질 때’로 보아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오히려 기왕에 이웃하던 산새와는 다른 우아한 자태를 한 친구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기쁨과 설렘이 앞섰을 것이다.

  그러나 변이 생겼다. 낙엽이 질 무렵 어느 날 아침, 이 마을을 지나가던 밀렵꾼이 황새를 보고 총을 쏜 것이다. 놀란 마을 사람들은 아침을 먹다 말고 황새 둥지가 있는 노송 숲으로 뛰어나왔다. 밀렵꾼은 도망가고, 황새 한 마리가 선지피를 흘리며 마른 억새풀 위에 쓰러져 있다. 그리고 살아남은 짝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없다. 그 밀렵꾼에게는 황새가 박제 표본감이나 아니면 돈으로 보였을까. 마을 사람들의 분노와 원성은 여간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황새가 죽지는 않았다. 한 쪽 날개가 못 쓰게 될 만큼 다쳤던 것이다.

  여기서 밀렵꾼은 문명에 길들여진 인간 중심주의자의 표본이다. 그런 밀렵꾼의 눈에 황새는 정복해 마땅한 존재로 보일 수밖에 없다. 총을 쏘는 것은 당연하다. 창세기 1장 27절에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한 것은 모든 생물과 더불어 살되 부모가 자녀를 돌보듯 하라는 것이지 필요에 따라 무자비하게 살육하라는 뜻일 수는 없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에게 황새는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이다. 동일한 사람이면서도 밀렵꾼이 쏜 총에 맞고 쓰러져 선지피를 흘리고 있는 황새의 편인 것이다. 그래서 밀렵꾼을 쫓아낼 수 있었다.밀렵꾼이 사람이 만든 살상 무기로 자연을 살해하는 자라면 마을 사람들은 그에 맞서는 자연의 일부이다. 이는 오염된 인간과 순연한 자연과의 갈들이다. 정성을 다해 황새를 치료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질고 소박한 마을 사람들은 그 황새를 안고 와서 온갖 정성을 다해 치료를 했다. 그리고 날개 상처가 아물고 힘을 되찾을 때까지 그 황새를 물방앗간 옆 뜰 소나무 밑에 갖다 두고 보호하기로 했다. 이들은 그날로 둥우리도 만들고 모이 그릇도 마련했다. 그러나 황새는 쓰러져 움직이질 못했다.

  그날 밤, 구장 집 사랑에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밤이 이슥하도록 황새를 살려 볼 궁리를 했다. 그리고 밀렵꾼을 저주하다가, 드디어 인간의 잔악한 일면을 저마다 나름대로 뉘우쳐보기도했다.

  마을 사람들이 황새를 돌보는 것은 당연하다. 황새를 살리려 밤이 이슥하도록 궁리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런데 '드디어 인간의 잔악한 일면을 저마다 나름대로 뉘우쳐보기도 했다.'는 데에 와서는 자기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잔악한 일면이 있다는 것을 자인한다. 덫이나 올가미를 놓아 노루나 토끼를 잡았던 일을 기억했을 것이다. 이는 인간의 잔악이란 마을 사람들이 저주하는 밀렵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보다 욕심나는 것을 탐하는 인간의 속성 탓이라는 자아성찰이기도 하다.

  밤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지창에 갈잎이 날려 와 부딪힌다. 그런데 귀에 선애달픈 새의 울음소리.

  탁탁탁 타르르 탁.

  가슴을 깎는 처절한 이 울음소리를 듣고 모두들 말없이 뜨락으로 나왔다. 가을밤 하늘에 찬란한 별들. 그 별빛에 흰 깃을 번쩍이며 황새 한 마리가 물레방아 주위를 이리저리 애타게 날고 있는 것이 아닌가. 총소리에 놀라 도망갔던 황새가 돌아온 것이다.

  늦가을 밤, 총소리에 놀라 도망갔던 황새가 총에 맞아 쓰러진 자기의 짝을 찾아 돌아왔다. 한 번 짝이 되면 평생을 유지한다는 황새는 총에 맞아 쓰러진 자기의 짝을 버려두고 혼자 도생圖生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인위적인 도덕률道德律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본능에 의한 것이다. ‘밤하늘에 찬란한 별들. 그 별빛에 흰 깃을 번쩍이며 등의 묘사는 '가슴을 깎는 듯한 처절한 울음소리'에 심도를 더하면서 윤기를 더해주는 윤기를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황새는 이제 인간이 두려워서, 쓰러져 누워 있는 자기 짝에게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가슴이 뭉클해진 마을 사람들은 자리를 피해 주려고 묵묵히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황새는 연신 목에 피가 맺히도록 울어댄다. 탁탁탁 타르르 탁탁. 그날 밤늦도록 화전민 후예들의 지붕 밑에 호롱불이 꺼지지 않았다.

  이튿날 날이 밝자, 이들은 그 부상당한 황새를 그들의 둥우리가 있던 노송 밑에 갖다 뒀다. 가련한 황새가 사람의 눈을 피하여 서로 어울리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사람이 두려워 부상당한 짝에게 접근하지 못하면서 피가 맺히게 울어대는 황새. 화전민 후예들의 지붕 밑에 호롱불이 꺼지지 않은 것은 두려움을 이기고 짝을 찾아온 황새의 애타는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속성을 3단계로 나누고 그 가장 낮은 단계를 심미적 단계로 규정했다. 그 예의 하나로 전설적인 바람둥이 돈 주앙을 들었다. 그런데 총상으로 인해 아름다움은커녕 운신하기도 어려운 자기의 짝을 찾아와 피가 맺히도록 울어대는 황새. 이는  심미적 단계를 넘어선 윤리적 동일성의 실천이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자연의 일부로 살아간다는 사실마저 모른 채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이 밤 깊도록 잠을 자지 못하고, 이튿날 아침 부상당한 황새를 그들의 둥우리가 있는 노송 밑에 갖다 놓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던 며칠 뒤, 무서리가 몹시 내린 어느 날 아침, 기이하고 처참한 변이 또 생겼다. 이들이 그렇게도 알뜰히 보살펴 온 그 한 쌍의 황새가 서로 목을 감고 싸늘하게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소문을 듣고 달려 나온 마을 사람들은 이 슬픈 광경을 보자 갑자기 숙연해졌다. 그리고 저마다 무엇을 느꼈음인지 착잡한 심정으로 한참 말이 없었다.

  서사적 구성의 절정에 이르고 있다. 총성에 놀라 도망갔다 돌아온 황새와 부상당한 황새, 그 한 쌍이 서로 목을 감고 죽어 있는 충격적인 장면은 심미적 속성을 지닌 인간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아주 강렬하다.

  토인비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신앙을 지니고 산다. 그런데 그 신앙에는 저금한 것과 고급한 것이 있다. 저금한 신앙의 대표적인 것을 과학에 대한 믿음이라 규정하고, 이것이 인류를 멸망의 길로 이끌 것이라 예언한다. 고급한 신앙의 대표적인 것은 자연에 대한 믿음으로 이것이 인류를 멸망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래서 과학의 힘으로 만든 총에 맞아 부상당한 황새를 이웃으로 생각하며 돌보는 화전민 후예들에게 '한 쌍의 황새가 서로 목을 감고 싸늘하게 죽어 있는' 모습은 과학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가는 현대에 의미심장한 경종일 수밖에 없다.

  황새도 영물일까, 산골의 날씨는 무섭게 추워지려는데 짝을 버리고 혼자 남쪽으로 갈 수 없었던 애절한 황새의 정,

  조류에 따라서는 암수의 애정이 별스러운 놈도 있지만 그것이 모두 그들의 본능이라 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들의 하찮은 본능이 오늘따라 인간의 종교보다 더 거룩하고 예술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은무엇일까.

  <거룩한 본능>의 주제를 제시하여 형식적인 완결을 꾀한 결미이다. 그런데 묘사와 서사를 견지하던 글이 설명으로 돌변하는 통에 수필의 문학성을 떨어뜨린다. 그러한 점에서 이 결미 부분은 사족蛇足 에 불과하다.

  다만 마지막 문장에 의문문을 구사함으로써 순연한 자연이 오염된 인간에게 던지는 화두임을 강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