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룬디
위치: 아프리카 중부 내륙
인구: 12,795,864명 (2023년 추계)
수도: 부줌부라
면적: 27,830.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부룬디 공화국 (Republic of Burundi)
기후: 열대우림성기후
민족 구성: 후투족(85%), 투치족(14%)
언어: 키룬디어,프랑스어
정부/의회형태: 과도정권 / 단원제
종교: 천주교(62%), 그리스도교(5%), 이슬람교
화폐: 부룬디프랑 (BIF)
대륙: 아프리카
국가번호: 257
GDP: USD 3,805,000,000
인구밀도: 414명/㎢
전압: 220~230V / 50Hz
도메인: .bi
부룬디와 한국과의 관계
▶ 외교
▶ 경제·통상·주요 협정
▶ 문화교류·교민 현황
요약
아프리카 중동부의 적도 이남에 있는 내륙국. 수도는 부줌부라이며 화폐는 부룬디프랑이다. 국민은 대부분 후투족이며 소수의 투치족이다. 기업과 사기업이 공존하며 주로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경제체제의 개발도상국이다. 국민총생산(GNP) 성장률이 인구증가율보다 높지만 1인당 GNP는 세계 최하이다.
수도는 부줌부라이다. 북쪽은 르완다, 동쪽과 남쪽은 탄자니아, 남서쪽은 탕가니카 호, 서쪽은 콩고 민주공화국과 접해 있다. 남북으로 345km, 동서로 265km에 지나지 않는 작은 나라이다. 1㎢당 174명이 살고 있어,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의 하나이다.
자연환경
높은 고원에 자리잡은 부룬디의 서부지역은 나일 강과 콩고 강(자이르 강)의 분수령에 걸쳐 있다. 최고 2,760m에 달하는 분수령은 남북으로 달리고 있으며, 동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이 나라의 넓은 고원지방을 형성하고, 동쪽 국경에서 고도가 약 1,500∼1,950m 정도로 떨어진다. 나일 강 유역분지의 최남단 연장인 루부부 강 유역분지가 이 고원에 포함된다.
서쪽으로는 루지지 강이 동아프리카 지구대에 속하는 지구를 따라 86km를 흘러, 부룬디 서부 국경의 북쪽 1/3을 형성하며 북쪽의 키부 호(해발 1,400m에 위치)와 남쪽의 탕가니카 호(해발 760m에 위치)를 잇는다.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단층애는 루지지 강이 만든 좁다란 평원으로부터 급격히 솟아 나일 강과 콩고 강 분수령의 산마루를 이룬다. 북쪽의 홍해로부터 남쪽의 모잠비크까지 동아프리카 전체를 종단하는 이 지구대는 지질학적으로 아직도 상당한 활동을 하고 있어, 부룬디는 간헐적인 진동과 지진을 겪는다.
기후는 열대성이나 높은 고도 때문에 기온이 다소 낮은 편이다. 연평균기온은 부줌부라에서는 23℃, 고원지대에서는 약 21℃, 보다 서늘한 산지의 사면에서는 약 16℃를 기록한다. 연평균강우량은 산악지대와 고원지역에서는 1,400㎜를 훨씬 넘는다. 루지지 강 하곡이나 탕가니카 호 주변은 연평균강우량이 1,000㎜에 못 미치며 기온은 평균보다 높다.
부룬디에서 가장 삼림이 울창한 지역은 산지의 사면이다. 보다 높은 고원에서는 사바나 수목지가 경관을 지배하며, 고도가 낮아지는 동쪽으로 갈수록 나무가 없는 사바나 초원이 우세해진다. 국토의 약 절반이 가경지이며 나머지 1/3은 목초지로 이용된다. 야생동물은 코끼리·하마·악어·물소·사마귀멧돼지·비비·영양 등 종류가 다양하다. 부룬디 남동부에 위치한 금속광물 매장지에는 전세계 니켈 매장량의 3%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밖에도 소량의 구리·코발트·바나듐이 매장되어 있다. 북동부 르완다와의 국경지대에는 상업성이 있는 매장량의 주석과 텅스텐이 묻혀 있다. 또한 루지지 강 하곡과 탕가니카 호 북동부의 호저(湖底)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
국민
부룬디의 인구는 대체로 후투족과 투치족, 소수인 트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대개 농사를 짓고 있다. 나일 하곡 혹은 에티오피아에서 온 투치족은 동아프리카의 갈라족과 관련이 있는 종족으로 가축사육을 주업으로 한다. 이 나라 최초의 주민인 트와피그미족은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한데, 이들은 콩고 분지에서 들어온 것으로 생각된다. 출생률과 사망률은 세계표준에 비해 상당히 높으며,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아프리카 내에서 2번째로 높다.
언어
전체 인구의 약 4/5에 달하는 후투족은 반투어 계통의 룬디어를 쓰며, 원래 서아프리카의 차드-니제르 지역에서 이곳으로 온 것으로 전해지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키룬디어·프랑스어가 공용어이지만 이웃 나라와의 접경지역에서는 스와힐리어도 사용되고 있으며, 일부 학교에서는 영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국민의 대부분이 룬디어(키룬디어)를 사용한다. 내전을 종식한 이후 마련한 2004년의 헌법(2005년 국민투표로 확정) 5조에 "국민어는 키룬디(Kirundi)어다. 공용어는 키룬디와 국회에서 지정한 모든 다른 언어다. 법률의 텍스트는 룬디어 원본을 가져야 한다." 고 하여 국민어의 위상을 헌법조문에 내세웠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고유어인 룬디어가 공식적 상황에서는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못하는 현상황을 반증한다고 할 것이다. '국회에서 지정한 언어'는 프랑스어를 지칭하는 것이다. 프랑스어는 법적으로 명시한 공용어는 아니지만 사실상 공용어 노릇을 하고 있다. 이 나라는 국제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이다. 미국은 전략적으로 르완다의 사례를 본받아 부룬디와 콩고민주공화국을 영어사용국으로 만들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문화
부룬디의 문화는 문자화된 것이 아니라 구전으로 내려왔다. 상당한 규모의 구전문학은 이야기·전설·우화·시·노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악은 '이낭가'라고 하는 일종의 하프와 '딩기디'라는 단현금, 링거폰의 일종인 '이킴베'와 같은 전통악기로 연주되고 있다. 부룬디의 민속무용, 특히 투치족의 민속무용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역사
이 지역의 원주민은 오늘날 부룬디 전체 인구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한 트와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일찍부터 사냥과 도기제작을 업으로 삼은 소인족이다. 부룬디 최대의 종족은 후투족인데, 그들의 부룬디 이주는 수백 년이 걸렸으며 아마 11세기에 이르러서야 완료되었을 것이다.
그후 약 300∼400년 뒤에 투치족이 등장했으며 그들은 전체 인구의 15%를 넘은 적이 없으면서도 교묘한 가축 및 토지계약을 통해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후투족을 지배하는 데 성공했다. 정치제도는 왕(mwami)과 제후(ganwa) 중심으로 발전되었는데, 제후는 중세 유럽의 봉건영주와 같은 역할을 했으며 후투족과 트와족은 열등 계급이 되었다.
1675∼1705년 은타레 루샤치 왕은 자신의 지배권을 중앙의 은코마 지역으로부터 인접한 부투치·킬리미로·부옌지 지역으로 확장했다. 루샤치 다음에 즉위한 루감바 은타레 2세(1795경∼1852)는 정복사업에 더욱 열을 올려 지금의 르완다 남부와 탄자니아 서부 일대를 차지하기도 했다. 왕국의 체제는 지방분권화되었고, 그 결과 지방의 제후들은 반자치권을 행사했으며 왕위계승권을 둘러싼 싸움도 빈번히 발생했다.
이런 현상들은 19세기말에 더욱 심각해져, 1900년에 이르러서는 은타레 루감바의 후계자 므웨지 키사보가 왕국의 절반밖에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교(로마 가톨릭) 선교사업은 1879년에 시작되었다. 1885년 베를린 회의는 부룬디를 독일의 영향권에 두었으나, 실제로 독일인이 부룬디에 처음 이주해온 것은 1906년이었다. 1916년에 벨기에가 부룬디에 대한 통치권을 얻었고, 1923년 국제연맹은 부룬디와 르완다에 대한 통치권을 벨기에에 위임했다.
당시에는 부룬디와 르완다를 합쳐 루안다-우룬디(Ruanda-Urundi)라 불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위임통치가 국제연합의 신탁통치로 바뀌었고, 식민지시대의 제반 여건은 종족간의 적대관계를 심화시켰으며, 독립이 가까워졌을 때는 종족간의 적대행위가 부룬디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1962년 투치족이 지배하는 왕국 형태로 독립을 쟁취한 부룬디는 1965년에 후투족의 반란이 있었다. 이 반란은 잔인하게 진압되었고 1년 후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정부 및 군부에서는 후투족에 대한 숙청작업이 더 한층 강화되었다. 1970∼71년에는 일부의 투치족도 숙청되었으며 그후 내란이 발생, 25만 명에 달하는 후투족이 사망하고 10만 명이 집을 잃은 난민이 되었다. 1976년에 또다른 쿠데타가 발생해 최고혁명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부룬디는 1당제 국가가 되었다. 1977년 쿠데타 세력들은 장 바티스트 바가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이와 함께 새 정권은 기틀을 잡게 되었다. 1981년에 부룬디의 새 헌법이 공포되었다.
종교
주로 그리스도교(특히 로마 가톨릭)와 토착종교를 믿는다. 이 나라의 종교는 기독교가 67%, 현지 고유의 종교가 23%, 이슬람교가 10%이다.
부룬디와 한국과의 관계
외교
부룬디는 한국과 1991년 10월에 뉴욕에서 국교를 수립했으며, 한국은 주 르완다 대사관, 부룬디는 주 중국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1992년 2월에 외무장관이 방한한 이후 한국과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2005년 5월에 공직부장관, 2011년 11월에 제2부통령의 부산 세계개발원조 총회 참석차 방한했다. 한국은 장차관급 고위인사의 방문은 없었고, 2013년 6월에 주 르완다 황순택 대사가 신임장 제정차 방문했다. 2021년 6월 채진원 대사가 신임장 제정차 방문했다.
한편 부룬디는 북한과 1967년 3월에 국교를 수립했으며, 북한은 1994년에 주 부룬디 대사관을 철수하고 주 우간다 대사관이 부룬디의 외교 업무를 겸임하도록 하고 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부룬디는 한국과 미수교 상태인 1987년에 26만 8,300달러 상당의 공산품을 수입했으며, 1만 달러 상당의 귀금속을 수출했다. 양국의 무역 규모는 점차 커져, 2020년 기준 부룬디의 대한국 수입액은 3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주요 수입품은 면역물품, 시약 등이다. 한국은 정부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차원에서 1987년부터 2013년까지 부룬디에 169만 달러를 무상 원조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2020년 기준 부룬디에는 19명의 재외동포가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부룬디 수도인 부줌부라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는 2018년 12월 기준 92명의 부룬디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