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강소성[장쑤성] 회안[淮安:화이안] 지역에는 600년전 명나라 시대 무명의 승려가 홀로 쌓아 올려 만들었다고 알려진 6m 높이의 돌탑이 있는데, 매년 춘절 기간 동안 제사를 지내고 마을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한다.
돌들을 층층히 각지게 쌓아 만들어 올린 돌탑은 '멸망을 경고하는 돌탑'이라고도 불린다.
서기 1370년 명나라 건국자 주원장의 4번째 아들이자 지방의 번왕이었던 11세의 주체는 연왕(燕王)에 봉해져 지금의 북경 일대의 제후가 되었으나 바로 이 때 북쪽으로 간 것은 아니었고, 진짜로 북경 지역으로 간 것은 1380년, 21세 때였다. 이 때 이후로 그 지역의 정치와 군사를 총괄했다. 당시로써는 명나라의 최북방 지역으로 주원장의 북진으로 인해 북방으로 물러간 몽골족의 침입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를 막아냈다. 그런 만큼 무골로 성장했고 성품도 대단히 호방하고 목표의식이 뚜렷했다. 이런 능력 때문에 주원장은 그를 내심 후계자로 염두에 두기도 했으나 장자 우선 원칙에 따라 장남 막내아님 주표를 황태자로 삼았고, 주표가 일찍 죽자 그 아들인 주윤문(훗날의 건문제)을 황태손으로 삼았다.
서기 1398년 주원장이 죽고 주윤문이 건문제로 즉위했는데, 건문제와 그 측근들은 숙부 주체를 비롯한 다른 숙부들이 막강한 군권을 지니고 있는 것을 황제권을 유린할 수 있는 것으로 우려하여 다섯 번왕을 없애는 등 각지의 번왕들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펼치자 주체는 조카이자 황제였던 건문제(建文帝)에 반발하여 서기 1399년 반란을 일으킨다. 주체는 조카와 그 측근들이 자신을 노리는 것을 알아채고 북경에서 거병, 건문제와 내전을 벌였다. 비록 주체의 전력은 건문제에 비해 훨씬 열세였으나 주체 본인의 기량과 건문제의 우유부단함이 결정적으로 작용해 승기를 잡은 정난군은 파죽지세로 수도 남경까지 몰아쳤고 건문제는 궁에 불을 지른 후 행방불명. 결국 남경은 함락되었고 주체는 황제에 등극했다.
3년간의 치열한 전쟁 끝에 서기 1402년 7월 남경(南京)을 함락시키면서 주체는 3대 영락제(永樂帝)인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남경에 침입한 영락제의 군사들은 3일동안 궁궐 안 수천명의 신하들을 모두 죽였는데 끝까지 건문제에 충성하며 그와 함께 영락제 제거에 앞장섰던 제태와 황자징은 사지를 찢어 죽인다.
그러나 정작 영락제가 제거하고자 했던 건문제는 궁안에 없었다. 남경 함락당시 화재로 타 죽었거나 양자강에 투신했다는 말이 있었지만 건문제의 시체는 끝내 찾지 못했다고 알려진다. 남경이 함락되고 건문제가 사라진 뒤부터 중국 각지에서 가뭄이 들기 시작했는데 특히 절강성과 강소성 지방에는 몇 년째 기록적인 기근이 이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백성들은 연락제의 잔학한 학살로 땅의 기운이 다했다고 여겼다고 한다.
서기 1408년 젊은 승려가 강소성 회안의 한 마을을 지나던 중 뜨거운 날씨와 기근으로 굶어죽어가는 백성들과 피폐해진 마을의 처참한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는 그곳에서 만난 한 가난한 부부의 정성에 감복해 피폐해진 마을의 회복을 빌기 위해 마을에 머물며 밤낮으로 돌을 나르고 돌탑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돌탑을 쌓은 승려는 돌탑이 완성되자 돌탑 밑에 큰 구멍을 만든 후 마을 사람들로부터 얻은 한 그릇의 밀가루를 사람 모양으로 빚어 작은 나무 상자와 함께 그 구멍에 넣고 묻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늘에 기도를 올린 후 그날 오후 부터 하늘에서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이 비는 한 달 넘게 이어져 마을의 호수와 우물의 물을 가득히 채웠다. 땅과 나무들은 물기를 가득 머금어 원래 기운을 회복했다. 그리고 그 후부터 마을에는 매년 풍년이 들었다고 전해진다.
승려는 마을을 떠나기전 당부의 말을 남겼다.
"천하를 다스리던 영웅도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찬란한 역사의 민족도 쇠락하기 마련입니다. 하늘에는 눈이 있으니 부귀영화만을 추구하며 악행을 저지르면 벌이 있을 것이고 약자들을 위해 베풀면 큰 복이 있을 것입니다. 이 미천한 승려 따위가 하늘의 기운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이 돌탑은 마을의 생기 누설을 방지하고 외부의 악기(惡氣)를 막아줄 것이니 이 돌탑을 소중히 여기며 잘 보존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돌탑은 반드시 무너지는 때가 있을 것이니 돌탑의 머리가 무너질 때 명나라는 망하게 될 것이며 허리 부분이 무너지면 일본의 기가 강해져 대륙을 침략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에는 중국과 조선이 힘든 역사를 겪게 될 것이며 일본에게 전국토가 유린당하는 수모를 겪게 될 것입니다."
서기 1644년 1월 이 돌탑에 벼락이 내리쳐 돌탑의 윗부분이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해 4월 이자성이 이끄는 농민 반란군이 북경으로 들이닥쳤으며 이를 피해 달아나던 명나라 황제 숭정제가 궁궐 뒤편의 매산[煤山:메이산] 별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명나라는 멸망한다.
서기 1937년 강소성 지방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돌탑의 허리 부분에 금이 가며 상단부 전체가 무너져 내렸는데 그해 7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며 중일전쟁이 발생한다.
서기 1972년 중국 학자들은 중국의 역사서와 강소성 지방에 전해지는 고문헌들을 통해 이 기록 속의 승려가 속세를 떠나 세상을 유랑하던 건문제 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이 탑의 정확한 조사와 복원을 위해 북경대 장광밍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회안(淮安) 지방을 찾아 대대적인 발굴을 실시했는데 조사팀은 발굴 도중 돌탑의 주춧돌 밑에 묻혀 있던 팔각형 모양의 작은 나무 상자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조사팀이 그 나무 상자를 열어보자 그 속에는 매우 오래되어 보이는 낡은 고문서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 문서에는 다음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이 탑의 수명은 620년(서기 2030년)을 넘지 못할 것이니 때가 되면 이 탑은 완전히 무너져 땅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때에는 세상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니 동과 서가 서로 부딪히고 남과 북이 부딪힐 것이다. 대륙에서는 위대한 용이 깨어나고 해동에서는 용맹한 호랑이가 깨어난다.
또 일본에는 새로운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하여 군사 국가로 거듭나게 될 것인데 그들은 동서남북에 큰 영향을 미치며 영토를 넓힐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이웃의 민족들을 노예 대하듯 할 것이며 자신들의 모습을 스스로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업적은 오래가지 못 할 것이니 그들이 하나된 조선민족과 싸울 때 일본의 영토 대부분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그리고 조선 민족의 군대가 일본 땅에 닿을 때 일본은 항복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 때에는 하늘을 뚫는 화산이 폭발하고 땅을 뒤집는 거대한 지진이 일어날 것인데 이로 인해 일본 땅의 절반은 바닷속으로 침몰하게 될 것이며 절반은 조선민족에게 완전히 내어주게 될 것이다. 이때에 조선민족의 영토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인데 남쪽으로는 일본의 영토를 얻게 될 것이며 북쪽으로는 얼어붙은 광활한 동토(凍土)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본 땅의 민족이 완전히 붕괴될 때 그들은 조선반도와 동북방의 영토로 유입될 것인데 특히 조선반도에는 일본의 뛰어난 인물들이 유입되어 나라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강인한 조선의 민족은 조선반도를 중심으로 그들과 함께 평화의 세상을 열 것인데 그곳에는 새롭고 위대한 도시가 탄생하게 될 것이며 이 도시는 '영원한 도시'라 불리게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조선에 세워진 이 '영원한 도시'로 가기 위해 줄을 설 것이며 조선은 화려한 축제의 나라가 될 것이니 최후에는 그들이 축배의 잔을 받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