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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귀농귀촌정착사례
작성자 : 이 성 재
귀향하여 영농을 해가며 전원생활을 해온 지도 벌써 6년이 지났다. 처음 귀향했을 때는 가능하면 서울에 올라갈 구실을 찾아서 많으면 1주일에 2~3번도 다녀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다. 서울에 올라가면 빨리 내려오고 싶다. 시골에 있으면 이곳저곳 손길을 주어야 할 곳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거나 무더워도 할 일들이 많아서 쉼 없이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도 하루에 옷 3~4벌은 갈아입는다. 이렇게 영농에 몰두하며 살아왔는데, 그 동안의 귀농활동을 한번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귀농결심은 빠를수록 좋다
나의 귀농결심은 30년 전으로 뒤돌아 간다. 1978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많은 고심 끝에 귀농을 결심했다. 농업고등학교와 농과대학을 졸업한 나로서는 당연히 1차산업분야로 사회진출을 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하고 자신을 합리화시키면서 2,3차산업분야로 진출을 하게 되었다. 2,3차산업분야에서 충실히 일하다가, 퇴진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되면 기꺼이 1차산업분야에 귀속하여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겠노라 결심을 했었다. 언제쯤 일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것이 내 자신과 약속했던 확고한 귀농결심이었다.
대학졸업 후 H그룹 K회사에 입사하여 만 20년을 재직하고 IMF의 여파로 1998년 3월에 퇴사하게 되었다. 마침 B여자대학에서 시간강사 출강요청이 있었기에 1년간 시간강사로 출강하다가 시화공단의 S중소기업에서 입사요청이 있어 영업/생산/관리를 총괄하기로 하고 다시 기업에 입사하기도 했다.
H그룹 K회사를 퇴사한 이후 약 4년간은 확실한 귀농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도시생활에 대한 미련이 남아 기웃기웃 머뭇머뭇 많이도 망설인 세월이었다. 그러나 S중소기업을 퇴사할 때는 이미 귀향하기로 확고한 결단을 내린 상태였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도 연로하셔서 이제는 정말 귀향하여 제2의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24년간의 사회생활과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2002년 8월 1일에 귀향하게 되었다. 인생의 후반기를 자연과 함께 하면서 자유분방하게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자연인으로 살기로 한 것이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삶의 안식처 Greenhills를 만들기로 하여 농장이름을 Greenhills로 정하고 3,000여 평의 땅을 가꾸어 나가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할 귀농이었는데 4년을 머뭇거리지 말고 귀향했더라면 그 만큼 더 정착이 빨랐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귀농은 미리 구상하고 차근차근 준비함이 좋다
H그룹 K회사에 재직 중에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의 초가집을 부수고 1992년도에 새로 농가주택을 짓게 되었다. 후일에 내가 귀향하면 살아갈 전원주택을 짓는 것이었으므로 그때부터 귀농준비는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새집을 짓고 나서 주변에 정원수가 없어 해마다 조금씩 어린 묘목을 사다가 심기 시작했다. 언제 귀향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귀향할 때는 나무들이 자라서 비싼 정원수를 구입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올해까지 16년 동안 심겨진 나무는 60여 수종에 500여 그루는 족히 될 것이다.
2002년 8월에 귀향할 때는 특별한 준비 없이 귀향했다. 부모님이 영농하시던 농지가 있었고, 생활하시는 전원주택이 있어서 바로 귀농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귀농결심과 준비는 빠를수록 좋을 것 같다. 준비 없이 귀농하면 해결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닥치게 되어 좌충우돌 복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바로 귀농을 하지 않더라도 후일에 꼭 귀농할 생각이라면 미리 구상하고 계획을 세워 귀농/귀촌지역을 정하고 그 곳의 농지와 주택을 확보해 두고 차근차근 준비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농지는 값이 상승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미리 확보해두는 것이 유리할 것 같다. 나중으로 미루었다가 농지 값이 올라있다면 필요한 면적을 확보하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무들은 자라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므로 미리 심어두고 틈틈이 손질을 하여 두면 귀농/귀촌하여 전원조성을 할 때에는 비용을 절약하며 손쉽게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잘 선택하여 심어야 한다. 낙엽활엽수를 심었다가 낙엽을 주체할 길이 없어서 지금은 상록수로 교체하는 번거로움을 겪고 있다.
귀농하여 정착해가는 과정도 계획이 세워지면 좋다
(1) 2002년도는 승계 받은 반쪽영농
귀향시기가 8월이라서 고추재배가 한창이었다. 고추를 따서 태양초를 만든다고 창의력을 발휘하여 2단 건조대를 설계하고 파이프를 조립하여 만들었다. 바닥의 풀을 깎아내고 건조대를 세운 다음 그 위에 고추를 널었는데 어찌나 비가 오래 오던지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다. 고추를 잘라보니 속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는데 고추산지인 00군 농업기술센터에 문의했더니 식용불가 판정을 내려줬고, 태양초고추를 생산하려면 육질이 얇은 품종을 선택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식용불가판정에 말리던 고추를 모두 퇴비장에 버렸던 아픈 기억이 있다. 경험이 없어서 바닥의 풀만 제거하였지,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차단하지 못했던 것도 실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벼농사는 경험이 없는 터라 남들이 하는 대로 쫓아서 추수하고, 마대에 담아 도로변에 벼 건조망을 깔고 8마지기 벼를 햇볕과 바람으로 건조시켰다. 다행히 비가 오질 않아 잘 말려서 정미소로 옮겨 쌓아두고 자급자족하며 필요시마다 도정하여 판매하였다. 2002년도는 파종 및 재배관리를 못해보고 추수만 해보는 반쪽짜리 영농을 했다.
(2) 2003년도는 기본습득을 위한 연습영농
2003년 새해 농사가 시작되었다. 2003년은 농사경험이 없으니 종전까지 부모님께서 하셨던 자급자족 형태의 연습영농을 하기로 했다. 이모부님께서 누룽지향기가 있어 밥맛이 좋다고 하시며 향미벼 종자 40kg을 주셨다. 종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8마지기 농사에 모두 향미벼를 심어버렸다. 비료는 남들이 시용하는 량만큼 주었고, 농약은 초기살충제 및 중기제초제를 주는 정도였다. 농기계가 없어서 다른 농약을 줄려면 이웃에게 아쉬운 부탁을 해야 하는데 번거로워서 전혀 살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해에 전국적으로 혹명나방 피해가 극심하였다. 1화기는 방제시기를 놓쳤고, 수일을 기다렸다가 벼 포기를 몇 군데 헤쳐 보았다. 그때마다 나비가 5~6마리 날았다. 논 전체면적을 생각하니 엄청난 숫자였고 현저한 수량감소가 예상되어, 즉시 이웃에 도움을 요청하여 방제에 나섰다. 방제시기가 절묘했는지 3화기는 방제할 필요가 없었다. 이웃들은 4~5회까지 방제를 하느라 분주했지만 나는 1회로서 방제를 완료했다. 귀농 초년생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방제에서 다행히 적중을 시킨 것이다.
향미벼를 탈곡하여 지난해처럼 햇볕과 바람에 건조시켜 정미소에 보관했다. 도정을 하여 밥을 지으니 구수한 누룽지향기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능성 쌀이라 했다. 특이하여 일반 쌀과 차별화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가진 쌀이라 생각하고, 주변의 인맥을 활용하여 입소문에 의한 직거래 판매에 나서기로 했다. 쌀 가격을 얼마로 할까 고민하다가 여주/이천 쌀 수준으로 결정하고 판매를 했는데, 좀 비싼 편이지만 반응이 예상외로 무척 좋았다. 내년에는 논을 임대해서라도 더 많이 생산하고, 계약재배를 해서 적극적으로 판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고추농사도 역병과 탄저병 때문에 자급할 수 있는 정도 밖에 수확을 못했고 다른 작물도 변변치 않은 수확을 했다. 영농을 하기는 하는데 벼농사 외에는 도무지 희망이 없었다. 추수를 끝내고 2004년도 영농계획을 세우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농산물가격 조사를 해보았다. 제일 비싼 농산물이 마와 더덕으로 20kg에 각각 200,000원에 경매되고 있었다. 기왕이면 소득이 높은 작물을 재배할 생각으로 관심을 갖기로 하고 새해에는 조금씩 재배해보면서 재배기술을 익히고 싶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영농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서울 AT센터에서 열리는 친환경농산물전시회 참관에 나섰다. 참관 중에 이상한 농산물을 발견했다. 둥근마와 야콘이었는데, 마에 대해서는 다년생 장마는 보아왔지만 감자 같이 둥근 1년생 마는 처음 보게 되었다. 둥근마를 연구용 종자로 쓰려고 1kg을 구입했고, 야콘은 모양새와 맛을 보니 어릴 때 캐먹던 돼지감자와 흡사해서 돼지감자를 이름만 야콘이라고 붙였다 단정하고 구매하지 않았다.
(3) 2004년도는 작목 판단을 위한 전개영농
2004년은 자급자족 형태에서 벗어나 고소득이 작목이 무엇인지 확인을 위하여 전개영농을 하기로 하고, 작부체계를 설계한 다음 겨울철 영농교육부터 열심히 받기로 하였다. 벼에 대한 영농교육을 받던 중에 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미질분석을 해준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다음날 2003년산 벼를 봉투에 담아 가지고 농업기술센터에 분석을 의뢰했고, 며칠 후 분석결과 통보를 받게 되었다. 결과를 음미할 줄 몰라서 통보서를 가지고 농업기술센터를 방문했더니만 첫마디가 ‘농사 잘못 지으셨네요’였다. 당시 단백질함량이 9.6%가 나왔는데 고품질 쌀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단백질함량이 높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더니, 예전에 식량이 부족하여 못살 때는 그럴 수 있었는데 요즘처럼 잘 살아서 단백질을 과다 섭취하는 시대에는 단백질함량이 낮을수록 고품질 쌀이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질소비료를 과용한 결과이니 질소시비량을 줄이라는 조언을 받았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구나 생각하며,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거나 역행하면 사망이라는 생각에 조언을 받아들여 고품질농산물을 생산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벼농사는 지난해 향미쌀에 대한 반응이 너무 좋아서 욕심을 부리기로 했다. 논 6마지기를 임대하기로 했고, 이웃에 향미벼 종자를 나눠주고 가을에 쌀 1가마당 시중가격에 10,000원을 더 주고 사들이기로 하고 계약재배에 들어갔다. 내가 짓는 벼농사는 14마지기가 되고, 계약재배 10마지기를 합쳐 모두 24마지기 벼농사가 되는 셈이다. 소비자와 직거래를 함에 있어 고품질 쌀이 아니면 경쟁력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계약재배 요구사항으로 질소비료를 과용하지 말 것과 초기 농약만 사용할 것, 그리고 자연건조를 해 줄 것 등 내가 농사짓는 방법으로 재배 및 건조를 요청하였다.
내 농사 14마지기는 질소비료를 과용하지 말라는 군 농업기술센터의 조언을 명심하고 밑거름으로 도우미비료 마지기당 2포, 중거름은 생략, 이삭거름은 N-K비료 마지기당 1/2포를 시용했다. 벼농사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여 서둘러 미질분석을 하였더니 단백질함량 6.2%, 정상미율 93.0%, 식미점수 76점으로 결과가 나타나 고품질 쌀농사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고, 자신 있게 판매할 수 있었다. 내 쌀을 판매하는 도중에 계약재배농가가 자기 쌀을 먼저 판매해달라고 하여 쌀을 사들여 23가구에 판매를 했다.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먼저 쌀과 쌀알의 크기와 색깔이 다르고 향기가 적으며 밥맛이 다르다는 불만이었다. 계약재배 쌀을 판매한 것인데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즉시 출고를 중지하고 23가구에 전화를 걸어서 쌀이 잘못 출고되어 모두 리콜을 한다며 택배비 판매자부담으로 반송하시라 하고 내 벼를 급히 도정하여 다시 출고하였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반품되는 쌀은 감량이 되어 손해를 보았고 택배비는 2번을 더 치르는 손해를 보았다. 그 보다 더 큰 손해는 고객과의 신뢰관계가 깨어져 거래가 끊어진 것이다. 계약재배로 가마당 10,000원씩을 더 받는 마당에 요구사항은 철저히 지켜줬어야 하는 것이 양심이다. 계약재배에서 깨달은 점은 농산물의 품질을 같게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과 한 번 잘못되면 고객을 잃어버리고 사후수습이 몇 배나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계약재배는 완전히 포기했고, 필요하다면 농지를 임차하여 내 스스로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했다.
감자재배를 하여 홍수출하를 피해 수확 후 약 50일을 저장하였다가 가락시장 경매에 넘겼는데 20kg 박스당 평균 18,000원에 낙찰되었다. 비싼 값에 낙찰되었기에 다음해는 대량재배를 하기로 했다. 고추농사는 자급용으로 매 해 300주 정도 심었는데 농약을 꼭 사용해야 하고, 일손이 많이 들어가는 작물이었다. 둥근마는 종자를 확보하기 위하여 1kg을 처음으로 재배해 보았는데, 수확해 보니 겨우 2kg밖에 안 되었다. 호박고구마를 재배하여 직거래를 했는데 건강식품이라는 인식이 많아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서리태 콩도 재배를 해보았는데 50평 정도에서 80kg을 생산하는 다수확을 하였기에 앞으로 재배를 확대해 보고 싶었다.
고향집 울타리가 음나무로 되어 있어서 음나무순을 상품화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리하여 수원에 있는 임업시험장을 방문하여 재배에 관하여 문의를 했고, 봄철에 순을 채취하여 반응을 알고자 서울의 00백화점에 샘플을 진열해보았는데 담당임원부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상품화시키는 것은 포기하였다.
위와 같이 2004년도는 이것저것 마구 전개해보면서 어떤 작목이 유리한지를 판단하는 계기로 삼았다.
(4) 2005년도부터는 본격영농
2005년도 이후부터는 작목을 압축해서 본격영농을 하여 소득을 높이기로 하고 영농계획에 들어갔다. 재배작목으로 향미벼, 감자, 고구마, 고추를 선택하고 집중하여 소득을 높이기로 하였다. 어설프지만 최대한 세부작업과정을 찾아내어 영농계획을 세워보았다.
벼농사는 간척지답 10마지기를 임차하여 모두 18마지기 농사를 짓기로 하였다. 경작면적이 증가하여 수확량이 많다보니 건조시키는 것도 문제로 대두되어 송풍식 간이창고 2개를 짓기로 하였으며, 정미소에서 도정하다 보니 운반도 힘들고 도정수수료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익관리 측면에서 가정용 소형정미기를 구입하여 직접 도정하기로 했다. 송풍기 2대와 정미기가 설치됨으로 가정용전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에 농사용 전력을 신청하기로 했다.
기존 향미벼와 농업기술센터로부터 받은 향남벼 종자 5kg을 구분 재배하여 미질을 비교하고, 육답과 간척지답의 미질도 비교해 보기로 하고 농사를 시작했다. 전년도처럼 고품질 쌀을 생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다른 사람들은 품질보다는 수량이 중요하기 때문에 비료를 과용하지만, 나는 품질이 중요하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고 벼가 노랗게 되도록 비료를 줄여 주었다. 그렇게 해도 수확량이 크게 감소하지는 않으며 병충해가 발생되지 않아 농약살포에 들어가는 비용과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었다.
간이식 벼창고를 설계하여 자재를 구입하고 조립을 하여 창고 2동을 지었다. 송풍기 2대를 구입하여 설치했으며 농사용 전력도 설치 완료했다. 탈곡하여 창고에 넣고 송풍기로 벼를 건조하는데 어찌나 편리하고 좋았는지 모른다. 햇볕에 벼를 말리자면 한두 차례 비를 맞게 되고 수시로 벼를 저어주어야 했는데, 그럴 필요 없이 전기 스위치만 올리고 내리면 되니 여간 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주문이 오는 대로 가정용정미기로 도정하여 바로 보내니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어 좋고, 고객의 요구대로 분도수를 조절하니 고객만족도를 더욱 높일 수 있어 좋았다.
기존 재배해 오던 향미벼는 호남농업연구소의 향남벼와 같은 미질이었다. 벼를 건조한 다음 농업기술센터에 미질검사를 의뢰했는데 육답은 단백질함량이 5.5% 정상미율은 95.7%로 나타났고, 간척지답은 5.5%와 91.1%로 나타났다. 간척지답은 거리가 멀어 물관리에 소홀했던 탓으로 정상미율이 낮은 것 같다. 단백질함량이 낮을수록 고품질 쌀이라 해서 시비량을 더 줄였더니만 단백질함량 많이 낮아졌다. 고품질 쌀로 자신 있게 판매할 수는 있지만 수확량을 생각하면 적정시비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지난해 감자가격이 좋아서 2005년도에는 약 900평정도 감자를 심었다. 떼돈을 벌어보겠다고 욕심을 내어 많이 재배했고 전량을 50일 정도 저장했다가 출하하기로 했다. 안성에 있는 과수원에서 박스 300개를 빌려다가 감자를 수확하여 비어있는 벼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검정색 포장으로 감싸서 투광을 막고 가끔씩 송풍기를 돌려 습기를 제거해 주었다. 전국적으로 감자재배가 많아서 인지 가격이 지난해보다 많이 하락했고 홍수출하가 끝났어도 가격이 오르지를 않았다. 감자는 썩어가고 싹이 나와 상품가치는 떨어지고 더 이상 저장할 수 없어 출하하기로 하고 포장작업을 하여 가락시장으로 보냈다. 20kg 박스 당 평균가격은 4,000원 정도로 나왔는데 수지계산을 해보니 60만원정도 손해를 보았다. 떼돈을 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보고 말았는데, 돈이 나를 피해 다니는 기분이었다. 감자재배에 실패하면서 얻은 교훈은 전년도 가격이 좋았던 작목은 다음해는 폭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내 스스로 가격을 결정할 수 없는 농산물은 재배하지 않기로 다짐을 하였다.
호박고구마는 600평 정도를 심었다. 기능성 쌀을 판매하다 보니 기능성 농산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간 보호기능을 가진 신자미(보라색고구마) 종자를 목포시험장으로부터 구하여 100여평 재배를 해보았다. 호박고구마는 많이 알려져 판매가 쉬운 편인데 보라색고구마는 알려져 있지도 않고, 쪄서 먹어보니 한약냄새가 나서 조금은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품종이었다. 홍보를 하면서 판매를 하다가 100kg 정도가 남았는데 떡집에서 색깔 있는 떡을 만들겠다고 수소문하여 찾아와 모두 구입해갔다. 아직은 보라색고구마 재배시기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재배를 중단하기로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호박고구마 색깔이 우리 고구마와는 달라서 종자갱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추는 숫자를 늘려 1,000주를 재배했다. 재배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농촌진흥청 사이버영농교육에 수강신청을 하고 지식을 실전에 활용하고자 했다. 연작을 하고 고추 두둑이 낮아서 인지 역병과 탄저병 피해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주문은 있는데 고추생산량이 적어 고객을 놓치는 상황이 되었다. 다음해는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멋진 고추농사를 지어보고 싶었다.
지대한 관심작목인 둥근마는 종자확보를 위해 지난해 생산된 2kg을 모두 심었는데 34kg이 생산되었다. 성공적이었다. 혼자서 다음해 34kg을 재배하는 것은 판로가 없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면에는 특화된 작목이 없어서 감자 대체작목으로 특화시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추수를 마치고 둥근마 재배권유를 위해 몇 가구를 방문하여 설명을 해보았는데 새로운 작목에 대하여 그다지 관심이 높지 않았다.
(5) 2006년도의 품종갱신과 본격영농
2006년도 영농계획을 세우면서 우선 품종갱신을 하기로 했다. 벼는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입수한 기능성을 가진 향남벼로 교체하기로 하였고, 고추는 수퍼마니따 품종으로, 고구마는 기능성을 가진 신황미로 교체키로 하였다. 지난해 소득도 없으면서 무척 고생한 감자는 둥근마로 교체했다. 똑 같은 한 상자 20kg을 들어 올리더라도 10,000원짜리 감자보다는 240,000원짜리 둥근마가 신바람도 나고 훨씬 가볍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밖에 참깨와 들깨도 교체하기로 하였다. 주작목은 향남벼, 고추, 고구마, 둥근마로 결정했다. 신규작목으로 기능성을 가진 백진주벼 1kg을 채종을 위해서 재배하기로 하였다.
벼농사는 농지임차를 못하여 14마지기 영농을 했으며, 고품질 쌀을 만들기 위해 질소시비량을 줄였기 때문에 향남벼의 단백질함량이 6.0% 정상미율은 94.9%로 나타났다. 백진주벼는 내년도 사용할 종자를 남기고 나머지는 홍보 및 시장조사용으로 나누어 주었는데 반응은 좋은 편이었다. 벼농사에서 미질분석을 해가며 농사를 지었더니 농업기술센터에서 추천하여 충남방송과 인터뷰하는 기회도 있었다. 매스컴을 타보기는 처음이다.
고추농사는 해마다 실패를 반복하면서 기술을 익혔는데, 멋진 고추농사를 기대하며 심혈을 기울였다. 먼저 연작피해를 없애기 위해 위치를 바꾸고, 정식 후에 복토를 하지 않았다. 묘가 어릴 때에 역병약을 관주해 주고, 농약은 안전사용기준을 철저히 지켜 방제에 나섰다. 수확은 2주 간격으로 하되 고춧대에서 고추 끝부분이 약간 마른 것만 따서 햇볕에 건조시켰다. 방앗간에 고추를 빻으러 갔는데 방앗간 주인이 색깔과 매운맛 그리고 고유한 향이 제대로 살아있는 특등고추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 있게 비싼 값에 판매를 마칠 수 있었는데, 그해도 몇 가정에는 고추가 없어서 못 팔았다. 역시 농산물은 고품질이라야만 가격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고구마는 목포시험장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니 주황미와 신황미가 호박고구마로 되어 있었다. 종자갱신을 위해 신황미 60kg을 구입하기로 했는데, 택배운송은 동해를 받을 염려가 있으니 직접 목포시험장으로 와서 가져가라고 했다. 목포시험장까지 가서 구입하여 재배를 했는데 판매를 잘 했다. 신황미는 생식용으로 비타민A가 많아 항암기능을 갖는 기능성 고구마인데 저장성이 약한 단점이 있었다.
둥근마는 200kg 정도 수확하여 50kg은 종자로 남겨두고 100kg은 판매 나머지는 홍보용으로 활용을 했다. 고가의 농산물이지만 건강식품이라서 돈 있고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은 망설이지 않고 구입해갔다. 성분이 워낙 좋아서 앞으로 마 시장은 장마에서 둥근마로 이동해 갈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아 모르기 때문에 이용을 못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6) 2007년도의 영농실패와 가공판매 시도
2007년도 영농계획을 세우면서 작목은 향남벼와 백진주벼, 고추, 고구마, 둥근마, 서리태로 결정했다. 지난해보다 백진주벼와 서리태 품목을 추가하였고, 신규작목으로 야콘을 약간 재배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생산한 농산물을 가공하여 판매하는 시도를 하기로 했다.
설 명절을 맞으면서 가공판매를 시도했다. 2006년도 생산한 벼를 가지고 떡국떡을 만들어 판매하기로 하고 안내장을 내보냈다. 구수한 향기가 있는 떡국떡이 설 명절에 인기가 있을 것 같아 벼를 소진시킬 겸하여 시도한 것으로서, 쌀 120kg을 떡방앗간에 의뢰하여 떡국떡을 제조하여 판매하였는데 농산물 가공에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벼농사 규모는 농지임차를 하여 향남벼 16마지기와 백진주벼 7마지기 모두 23마지기를 짓게 되었다. 특별히 간척지답 10마지기는 농업기술센터의 기술지도로 가축분뇨를 살포하였다. 그래서 밑거름으로 친환경비료 12포, 중거름은 생략, 이삭거름은 N-K비료 3포를 시용하여 모두 15포를 가지고 10마지기 농사를 마쳤다. 오랜 기간 비가 내려 일조량 부족으로 수확량이 감소했다고들 하는데, 내 농사는 감소하지 않았고 벼알도 아주 충실했다. 미질분석 결과는 단백질함량이 6.7% 정상미율은 94.3%로 나타났다. 이삭이 팬 후 늦게까지 물을 대어 두었는데 그것이 수량과 미질에서 주효한 역할을 한 것 같다. 백진주벼는 멥쌀과 찹쌀의 중간성질을 가지고 있어 밥을 지으면 부드러운 질감을 주는 기능성 쌀이다. 처음으로 상품화재배를 했는데 판매를 못할까봐 은근히 걱정을 했다. 당뇨가 있어 현미를 찾는 분들에게 권장을 했는데 모두 좋아하는 느낌이었다.
고추농사는 더 잘 지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전년보다 많은 1,600주를 심었다. 병충해 방제를 잘 해오다가 긴 장마에 한 번 방제시기를 놓쳤는데 그로 인하여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탄저병이 시작되었고 방제를 해도 치료가 되질 않았다. 계속 방제를 해보았으나 더욱 더 번져나가 밭 전체가 감염되어 버렸다.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많은 고추를 매달아놓고 반 정도 수확하는 것으로 고추농사를 끝냈는데 결국은 중도에 실패한 것이다. 계속 비가 내리는 바람에 태양초도 만들기가 어려워 고춧대에 달아놓고 3~4주 만에 수확하며 간신히 만들어냈다. 참으로 고추농사는 쉽지가 않다. 철저히 방제를 해줘야 하고 일손이 아주 많이 들어가는 농사다.
고구마 농사는 조기판매를 목적으로 3월 1일에 신황미 종자를 파종했다. 무상으로 공급된 퇴비가 있어 흙과 골고루 섞은 후 파종을 했는데 한 달이 경과했어도 싹이 나오질 않았다. 파헤쳐보니 모두 썩어가고 있었다. 퇴비포대를 찾아서 읽어보았다. 미발효퇴비라서 육묘상에는 사용하지 말라는 주의표시가 되어 있었다. 한 순간의 부주의로 1차육묘는 실패하고 품종불명의 호박고구마 종자를 구입하여 2차육묘에 들어가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포대에 기록된 글들은 매번 읽어보는 것이 좋겠지만, 모두 읽지 못하면 주의사항만이라도 꼭 읽고서 사용해야 할 일이다.
둥근마 농사는 100평에 퇴비 2,000kg과 복합비료 5포를 밑거름으로 사용했다. 다비작물이라는 점 때문에 욕심을 부렸는데 오히려 생육이 위축되었는지 초세가 왕성하지 못하더니만 200kg 밖에 수확을 못했다. 350kg 정도 예상했는데 욕심이 과하여 실패했다는 생각이다. 모든 일들이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이 생각났다. 항상 적정시비량은 준수해야 할 일이다.
서리태 농사도 실패를 했다. 밭이 부족하여 논의 일부를 밭으로 만들어 서리태를 파종했는데, 조류피해를 방지하려고 ‘새총’처리를 하여 파종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밭에 가면 비둘기가 30마리 이상 날아가는데 밭이 텅비어버렸다. 한 곳으로 이식을 해보니 600평정도 되는 밭이 200평도 안 되는 듯 했다. 나머지 400여 평에는 들깨를 정식했으나 논이었던 터라 배수가 몹시 불량하여 생육이 되질 않았다. 조류피해 대책과 배수문제가 선결과제로 대두 되었다.
야콘을 약 30평정도 재배를 해보았다. 당뇨병에 좋은 기능성농산물이라서 당뇨환자가 많아 시장성이 있겠다 싶어 시험재배를 한 것이다. 수확을 하면서 느낀 점은 작업이 힘들고 상품화 할 수 없는 버려지는 뿌리가 너무 많다는 점과 버려지는 뿌리를 즙으로 가공하여 상품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가공시설을 갖춰야 하는 작물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야콘재배는 포기하기로 했다.
(7) 2008년도 영농실천 (첨부사진 참조)
2008년도 영농계획을 세우면서 작목은 향남벼 고추 고구마 둥근마 서리태 조경수가꾸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작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리태는 청자콩3호로 교체하여 재배키로 하였다. 신규작목으로 조경수 가꾸기를 추가하였고, 아피오스라는 웰빙작물을 약간 재배해 보기로 했으며, 농산물을 가공하여 판매하는 시도는 계속하기로 하였다.
2007년도 생산한 벼를 가지고 떡국떡을 만들어 판매하기로 하고 설 명절에 맞추어 안내장을 또 내보냈다. 쌀 180kg을 떡방앗간에 의뢰하여 떡국떡을 제조하여 판매하였는데 지난해보다 약 50% 증가했다. 서리태와 흑미를 가공한 검은 선식은 23kg을 판매했다. 올해 새로 시도한 것이 절편이었다. 떡국떡은 동절기에만 가공할 수 있는데, 절편은 언제든지 가공이 가능하다. 쌀 320kg을 절편으로 만들어 판매했는데 예상 밖의 호응을 얻었다. 농산물의 가공판매가 전망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금년도 농사는 현재까지 모든 작목이 잘 되어가고 있다. 벼농사는 농지임차를 못해 백진주벼는 재배를 못했다. 고추는 지난해 탄저병 때문에 피해가 커서 정식거리를 45cm로 했다. 통기성을 좋게 하여 비가 내린 후 빗물이 빨리 건조되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아직까지 탄저병은 오질 않았다. 서리태는 파종을 5월 26일에 하면서 조류피해 문제를 해결하였다. 살충제 지오릭스 10배액에 버무려 음건하였다가 파종을 했는데 전혀 피해가 없었다. 약제처리 후 10여일이 지난 콩도 파종해 보았으나 그 콩은 조류피해가 심했다. 약제처리 후 늦어도 2~3일내에는 파종을 함이 좋을 듯하다. 2회 순지르기를 하였는데 단작의 경우는 충분한 영양생장기간을 주기 위하여 5월 15일경에 파종함이 옳을 것 같다. 아피오스는 1kg에 40,000원이나 하는 고가의 덩굴성작물인데 현재 예쁜 꽃이 피어 있어 관상용으로 즐기면서 관찰 중이다.
지금까지 매해 생산된 농산물은 잘 판매가 되었다. 2003년도에 향미쌀을 인맥을 통해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계속 농산물 판촉활동을 하였더니 내 농산물을 구매해간 가정이 6년 동안에 대략 450가구에 이르렀다. 판촉활동은 농작물재배를 하면서 7월경에 재배농산물의 품목과 재배상의 차별화되는 점 그리고 수확 및 판매시기를 알려주는 정도의 안내문을 보내고, 수확 시점에 가서는 작목별 판매시기와 가격을 확정하여 안내문을 보내 필요시 주문할 수 있도록 했다. 향미쌀의 경우는 입소문에 의해 새로운 가정이 구매를 할 경우는 어느 가정이 소개를 했는지를 확인하여 소개한 가정이 재구입할 경우 택배비를 감액해 주었고, 샘플이 필요하다면 500g 정도의 샘플을 만들어 보내주기도 하였다. 기본적으로 고품질 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소비자가 확대되어간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고품질 쌀이 아니라면 소비자들이 이웃에게 자신 있게 홍보 및 추천을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농산물 직거래는 고품질과 적정가격만이 살아남는 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역사회 적응 및 참여 노력
우리 면지역에는 특화된 작목이 없다. 귀농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것이 기왕에 하는 농사에 소득이 높으면서 작업이 편리한 작목을 찾아 특화시키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향남벼 백진주벼 둥근마 신황미 야콘 아피오스 등 기능성 작목을 도입해 보는 것이 그 일환이다. 내가 먼저 시행착오를 범하면서라도 재배기술을 익혀서 보급하여 특화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우선 향남벼 백진주벼 둥근마를 가지고 몇몇 사람들을 접촉해 보았으나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조직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져 작목반을 구성하려고 노력 중에 있다.
2005년도 3월에 농협이사 선거에 출마를 하였다. 오랜 객지생활로 잘 알려지지 않아서 인지 선거결과는 26표를 얻어 낙선하고 말았다. 당선이 되면 조합과 조합원간의 신뢰회복과 미래지향적인 방안을 제시해가려고 했는데 꿈이 되어버렸다. 2007년도 3월에 마을회의에서 농협 대의원 3명을 선출하는데 나를 뽑아주었다. 2008월 1월에 농협감사 선거에 출마하였다. 대의원 59명중에 37표를 얻어 당선되어 현재 활동 중이다. 임원회가 있을 때마다 참석하고 있는데, 요즘은 회의를 하면 서로 생각이 달라 가끔은 부딪치고 공격을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 생각의 바탕은 조합원이기 때문에 잘못 될 일이 없다고 본다. 공격을 받더라도 조합원 입장에서 얼마든지 반격에 나설 수 있는 여지는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
영농을 하면서 안전한 고품질 농산물의 생산은 기본이고, 기능성작목과 품종에 관심을 가지고 시험재배를 하며 고소득 작목을 찾아 재배기술을 확보하고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땀 흘리며 수고한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농사의 즐거움이기에 열심히 농사에 매달리고자 한다. 나무들을 가꾸고 재배치하여 편안한 삶의 안식처 Greenhills를 조성하고, 내 농산물의 소비자인 고객에게 농산물 외에 휴식공간과 체험학습의 장으로 Greenhills를 제공하고 싶다. 2007년도에 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촌관광기초과정 교육을 받았는데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를 고민하기 위한 수강이었다. 더불어 살아가며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삶의 여유를 찾고 싶은 것이다. 대외활동으로서는 농협의 운영에 늘 관심을 갖고 조합원들의 권익보호에 노력하고자 한다. 국가경제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면서도 소외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농민들이 자기들이 출자한 지역농협에서마저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농민조합원들이 웃으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영농할 수 있도록 대안들을 제시하고 싶다.
출처 : blog.daum.net/rer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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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감솨.........*^^*
유익한 글 감사해요.
좋은정보네요 감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