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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장 헤롯 아그립바 I세의 대핍박과 천사에 의한 베드로의 탈옥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제 8-12장까지 이어지는 일련기사의 종결 부분이다. 이 일련기사는 초대 교회의 선교 사역이 유대인들의 성역(聖域)인 예루살렘을 벗어나 일단 유대와 사마리아 등 팔레스틴 전역에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 나아가 빌립의 에디오피아 내시 전도, 안디옥 교회의 설립 등이 이루어지고 특히 후에 이방 선교의 기수(旗手)로 사역하여 가히 이방인의 사도라 칭해졌던 바울의 회심(回心) 사건등이 발생하여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초대 교회의 선교 사역이 당시의 세계라 할 수 있는 전로마 제국에까지 확장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는 과정도 보여 준다.
이런 문맥 하의 본장은 이제 유대교와의 차별성이 더욱 뚜렷해짐은 물론 팔레스틴 전역에 확산되어 공고히 뿌리를 내린 초대 교회 시대 기독교(基督敎)의 본산인 예루살렘 교회(Jerusalem Church)를 로마 식민 정부의 대리 통치자였던 헤롯 가문의 후손인 헤롯 아그립바 1세(Herod Agrippa I, B.C. 10-A.D. 44)가 유대주의자들과의 정치적 이해에 얽혀 크게 탄압한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헤롯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동적 개입과 초대 교회 성도들의 굳건한 믿음으로 탄압자인 헤롯은 급사(急死)한 반면 초대 교회는 더 흥왕해 감을 보도한다.
본장의 내용을 세분하자면 크게 삼등분할 수 있다. 전반부 1-5절은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초대 교회의 발원지인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대탄압에 나서서 야고보 사도(James the Apostle)를 처형하고 베드로 사도를 투옥시키는 등의 위급한 재난이 발생하였음을 보도한다. 중반부 6-19절은 아직은 당장 순교하기 보다는 대사도로서 초대 교회 건립이라는 비상한 구속사적 소명(召命)에 더 헌신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며 특히 아직도 유약한 초대 교회의 싹을 보존해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적적으로 개입하셔서 천사를 보냄으로 베드로가 탈옥한 사건을 보도한다. 끝으로 후반부 20-25절은 예루살렘 교회를 탄압하고 심지어 무지한 추종자들로부터 신으로까지 추앙되며 교만하던 헤롯은 급사한 반면 탄압받던 초대 교회는 더욱 굳건히 흥왕(興旺)하여 갔던 대조적 사건을 보도한다. 특히 마지막 25절이 이제 전날 안디옥 교회의 구제 헌금을 가지고 상경해 있던 바울 일행이 안디옥으로 귀환한 사건을 보도한 것은 다음 장부터 전개될 바울의 이방인 선교 사역의 개시와 연결시키기 위해서였다. 또한 초대 교회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핍박을 견딘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처럼 능동적으로 이방인 선교에 나서기까지 하였다는 사실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매우 역동적 사건을 보도한 본장 세부 내용의 의의는 강해주석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여기서는 다만 그 전반적인 구속사적 의의를 생각할 때 우리는 다음 두 가지를 숙고하게 된다. 첫째, 교회(敎會)는 곧 오고 오는 세대의 만민 중에서 하나님이 택하신 성도의 지상 공동체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영원한 천국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온전히 실현되는 세상 끝날까지 즉 구속사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의 주권으로 필히 보존된다는 사실이다(마 28:20; 요 14:16).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한번 택하신 개인 성도를 끝까지 견인(堅忍)시켜 주신다는 교리와 끝까지 교회를 보존(保存)시켜 주신다는 교리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평안을 주는 감사한 교리이다. 둘째, 교회는 그 어떤 세상의 도전에 대해서도 인내할 뿐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사랑과 복음으로 이기는 억누를 수 없는 생명력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교회가 믿는 복음이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역시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을 믿는 사실에서 기인한 것이다(요 3:16; 11:25). 실제적으로도 로마 식민지 치하의 일개 무지하고 비천한 무리가 십자가에 처형당한 나사렛 예수를 믿는 기독교(Christianity)가 수백년을 두고 자행된 대박해를 이기고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현대에 이르러 세계 만민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역사, 정치, 사회학 등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다. 이는 오직 이런 인본주의적 접근이 아니라 성령의 사역과 복음의 생명력이란 신본주의적 관점에서만, 즉 구속사의 입장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역사의 실재(實在)인 것이다.
외울 말씀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행 12:11)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천사의 베드로 구출
6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애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사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거하니라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죽음
20 ○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 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바울과 바나바의 귀환
25 ○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본문 & 자료노트
역사배경-12:1-4 초대 교회 박해사
본장 연구자료 참조
역사배경-12:1,20-23 신약 시대의 역사적 배경
본서 14권 신약 총론
신학용어-12:2, 순교
행 7장 자료노트 참조
도표-12:3,4 성경에서 옥에 갇혔던 자들의 실례
1. 요셉(창 39:20-23)
2. 요셉의 형제들(창 42:17)
3. 시므온(창 42:19,24)
4. 삼손(삿 16:21)
5. 미가야 선지자(왕상 22:26,27)
6. 북왕국 왕 호세아(왕하 17:4)
7. 남왕국 왕 여호야긴(왕하 24:12)
8. 남왕국 왕 시드기야(왕하 25:6,7)
9. 하나니 선견자(대하 16:10)
10. 예레미야(렘 32:2,8,12; 37:15)
11. 세례인 요한(마 14:3-5)
12. 사도들(행 5:18,19)
13. 베드로(행 12:3,4)
14. 바울과 실라(행 16:23,24)
15. 바울(행 23:35; 고후 11:23)
16. 요한(계 1:9)
보감-12:24 초대 교회 시대 복음 확산의 주요 외적 요인들
1. 복음 전파자들을 통해 나타난 표적과 기사(2:43)
2. 성도들의 선한 행실 및 삶의 모범(2:44-47)
3. 핍박과 환난 중에도 담대한 복음 전파자들의 열심(4:13-21)
4. 유대인들에 의한 핍박과 순교(7:54-60; 8:1)
5. 교회의 연합된 뜨거운 기도(12:5)
6. 악한 자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12:20-23)
7. 복음이 전파될 때마다 나타난 강력한 성령의 역사(13:4-12)
원어연구-12:25, 부조의 일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디아코니아'( )이다. 이는 '시중들다', '심부름을 가다'라는 뜻의 동사 '디아코'( )에서 유래한 명사로 추측된다. 그 문자적인 뜻은 종들이 식탁에서, 혹은 어떤 천한 일을 할 때 드는 '시중'(눅 17:8), '심부름'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 용어는 다른 사람들에게 기독교적 사랑의 봉사를 하는 사람들의 직분, 혹은 직무를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전 16:15). 특히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 자선을 베푸는 일(행 6:1; 고후 9:13), 원조 물자나 헌금을 보내는 일(행 11:29) 등을 가리 킨다.
한편 이와 동일한 어근에서 유래한 '디아코노스'( )는 공식적인 명칭으로서 '집사'(빌 1:1; 딤전 3:8,7)를 가리킨다. 즉 초대 교회에서는 특별히 가난한 자들을 돌보며, 또 그런 사람들을 위해 교회가 비축해 놓은 헌금을 관리하는 '집사'를 따로 직분자로 세웠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이러한 집사의 일을 바나바와 바울이 했다. 즉 그들은 안디옥 교회가 모은 헌금을 흉년 때문에 고생하는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는 사역을 했던 것이다(행 11:27-30). 이로 볼 때 이 당시에는 집사의 직분 제도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이처럼 어느 한 교회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다른 교회가 원조하는 상부상조 정신은 오늘날 지나치게 개교회주의로 흐르고 있는 한국 교회에 절실히 요청되는 바라 하겠다.
도표-12:1-4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훼방한 헤롯가의 3대 악인
1. 헤롯 대왕((Horod the Great)
1) 아기 예수를 죽이려 함(마 2:1-8)
2) 베들레헴 유아 학살 사건 주도(마 2:16)
2. 헤롯 안디바((Horod Antipas)
1) 세례 요한을 죽임(마 14:3-12)
2) 예수를 심문하며 조롱함(눅 23:8-12)
3. 헤롯 아그립바 1세((Horod Agrippa)
1) 사도 야고보를 죽임(행 12:1,2)
2) 사도 베드로를 투옥 시킴(행 12:3,4)
도표-12:5-19 본서의 주요 이적들
'이적'(miracle)이란 이적을 행하는 자의 신적 권위를 보여 주는 것임과 동시에 그의 전하는 바 진리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방편이 된다. 본서에 기록된 많은 이적들도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들의 신적 권위와 그 전하는 바 그리스도의 복음이 참된 진리임을 중거해 준다.
1. 베드로:
1)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고침(3:1-10)
2) 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고침(5:15,16)
2. 스데반:
1)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함(6:8)
3. 빌립 집사:
1) 귀신들린 자와 중풍병자들을 고침(8:6,7)
4. 베드로:
1) 중풍병자 애니아를 고침(9:32-35)
2) 죽은 도르가를 다시 살림(9:36-42)
5. 천사:
1) 옥에 갇힌 베드로를 구출함(12:3-19)
6. 바울:
1) 바보에서 박수 엘루마를 소경되게 함(13:6-11)
2)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침(14:8-10)
3) 루스드라에서 귀신들린 여종을 고침(16:14-18)
7. 하나님:
1) 바울과 실라가 갇혀 있던 빌립보 감옥문을 여심(16:23-34)
8. 바울:
1) 에베소에서 병든 자를 고치고 마귀를 쫓음(19:11,12)
2) 드르아에서 죽은 청년 유두고를 다시 살림(20:9-12)
3) 멜리데섬에서 독사에게 물렸으나 해없음(28:1-6)
4) 멜리데 섬에서 보블리오 부친의 열병과 이질을 고침(28:8)
보감-12:5 교회가 함께 기도해야 하라 12대 제목
1.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마 5:16)
2. 성도 간의 연합과 일치(요 17:22,23)
3. 복음의 땅끝까지의 확산(행 1:8)
4. 선교사와 그 교회의 성장(행 11:22)
5. 환난을 당한 성도의 회복(행 12:5)
6.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분별(롬 12:2)
7. 연약한 성도의 신앙 성숙(롬 15:1)
8. 사단의 시험에서의 승리(엡 6:11,13)
9. 교회 본연의 사명 수행(빌 2:30)
10. 국가와 정부의 위정자들(딤전 2:1,2)
11. 주의 말씀을 전하는 종들(히 13:17)
12. 그리스도의 재림 대비(벧전 4:7)
12:1-19 헤롯의 교회 탄압
안디옥 교회가 크게 부흥되고 있을 무렵 예루살렘 교회는 또다시 박해에 직면하게 된다. 즉 헤롯이 교회의 주요 지도자들을 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까지 있었던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박해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종교적 박해였던(행 4:1-4; 5:17,18; 7:54-60) 반면, 이번 헤롯의 교회 탄압은 국가 권력에 의한 정치적 박해로 더욱 노골적이고 가혹하여 예루살렘 교회는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여기서 헤롯은 예수의 탄생 때 유아 학살 명령을 내렸던 헤롯 대왕(마 2:16)의 손자로 헤롯 아그립바 1세(A.D. 39-44년)를 가리키는데, 그는 아마도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하석 어떻게든 기독교를 없이하려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환심을 사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목적으로 교회를 탄압하고 교회 지도자들을 해하려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여튼 12사도 중 하나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인 헤롯(1,2절)은 유대인들이 그 일을 보고 기뻐하자 이번에는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였던 베드로마저 죽이고자 옥에 가두었다(3,4절). 그런데 베드로는 일전에 옥에 갇혔지만 주의 사자에 의해 구출된 적이 있었다. 따라서 저들은 이번에는 보다 삼엄한 경비를 서게 함으로 철저히 감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를 죽임으로써 교회를 와해시키려던 헤롯의 계획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베드로가 옥에서 탈출함으로써 실패로 끝나고 만다(5-10절). 그리고 교회는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더욱 단결하여 일치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막으려는 악한 자들의 그 어떠한 시도도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과 주님께서 그의 피로 값을 주고 사신 교회를 친히 성령을 퉁해 보호하시고 지키시므로 어느 누구도 교회를 와해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한편 이러한 본문을 통해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박해에 대한 교회의 반옹이다. 즉 교회는 박해에 직면하였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간절히 기도했다. 물론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에 직면해서만 기도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평상시에도 늘 기도하기에 힘썼었다(행 2:42). 그러나 그들은 이제 박해에 직면하여 모두가 더욱 일치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베드로의 안전과 출옥을 위해 기도했지만 막상 베드로가 주의 사자에 의해 탈출하여 무사히 귀환하였을 때에는 오히려 이를 의심하였다(13-16절). 그들은 실제로 베드로가 살아서 돌아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은 것 같다. 이는 당시 그들이 얼마나 낙심중에 처해 있었는가와 헤롯의 교회 탄압이 매우 철저하고 단호하였음을 보여 주는 실례이다. 하지만 그들의 일치된 기도는 결국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께서 직접 주의 천사를 보내 감옥에 있던 베드로를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했고 헤롯의 악한 음모를 무위(無爲)로 돌아가게 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연약한 믿음을 보시지 않고 일치된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 까닭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시 기도하기를 쉬지 않되(살전 5:17) 어려운 일에 직면 할수록 일치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12:1 그 때에. -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한 예루살렘 핍박이 있은 뒤(행 6:8-8:3) 잠시 교회는 전열을 재정비하며 성장과 평안을 얻었다(행 9:31). 그것은 스데반의 순교로부터 시작된 핍박이 절정을 이루는 듯했으나 핍박의 주도자 중 한 사람인 사울의 회심으로(행 9:1-18) 교회에 대한 핍박이 잠시 주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종교 지도자가 아닌 정치가에 의해 다시 한번 예루살렘에 핍박의 소용돌이가 몰아쳤으니 이 핍박은 헤롯에 의해 행해졌다. 따라서 본문의 '그 때'는 헤롯의 통치 기간 중 어느 때이다. 그런데 유대 역사는 헤롯이 A.D. 44년에 죽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헤롯은 본장에 나오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 행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했다(23절). 그러므로 '그 때'는 A.D. 44년경일 것이다.
헤롯왕. - 본절의 헤롯(Herod) 왕은 헤롯 아그립바 1세를 가리킨다. 신약 성경에는 여러 명의 헤롯 왕이 등장한다. 참고 삼아 이들에 관해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예수의 탄생 때 베들레헴의 두 살 이하 어린아기를 학살케 한(마 2:16-18) 헤롯 대왕(B.C. 374). 왕비가 열 명이었고 그 사이에서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왕위 쟁탈전에 휘말렸다. ② 헤롯 대왕의 네 번째 아내의 소생인 헤롯 아켈라오(Archelaus, B.C.4-A.D.6). 그는 헤롯 대왕 사후(死後) 유대와 사마리아, 이두매 지역의 분봉왕이 되었다(마 2:22). ③ 헤롯 안디바(Antipas, B.C.4-A.D.39). 그는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이었다(눅 3:1). 아켈라오의 친동생인 그는 자신의 질녀인 헤로디아를 취하였으며, 세례 요한을 목베어 죽였다(마 14:3-12). ④ 헤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Agrippa I, A.D. 39-44), 헤롯 대왕에 의해 살해된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의 아들이며, 헤로디아의 친오빠이다. 본절의 헤롯 왕이 바로 이 자이다. 그는 어릴 때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그 로마에서 긴 세월을 보냈다. 티베리우스(Tiberius) 황제에 의해서는 한때 투옥당하기도 했으나(Josephus), 칼리굴라(Caligula)의 숙부인 클라우디우스(Claudius)가 황제에 오를 수 있도록 공헌하여 그 대가로 유대 지역의 통치권을 거머쥐게 되었다(A.D. 41년). 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친유대주의 정책을 폄과 동시에 교회를 핍박했으며 철저한 헬레니스트적 행동을 하다가도 유대에서는 유대적 행동을 취하는 기회주의자였다.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인 헤롯 아그립바 2세(A.D. 48-70). 그는 아그립바 1세의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고 헤롯 빌립 2세가 통치하던 지역의 분봉왕이 되었다가 후에 유대 전지역의 왕이 된다. 그는 가이사랴에서 바울의 재판에도 참석했다(행 25:13; 26:32). 그에 대해서는 행 25:13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한편 헤롯 왕가에 관한 이밖의 보다 자세한 사항에 대하여 본서 14권 신약 총론, '신약 시대의 역사적 배경' 을 참조하라.
손을 들어. - 헤롯이 손을 들었다는 것은 헤롯이 직접 자기 손으로 기독교인을 죽이려 했다는 것이 아니라 헤롯 자신이 명령을 내려 기독교인 박해를 직접 지휘했다는 뜻이다. 즉 문학적으로 이는 일종의 은유법적 표현이다. 이에 대하여 공동 번역이 '박해에 대한 손을 뻗쳐'라고 번역한 것은 적절한 번역이라고 여겨진다.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 헤롯은 유대인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유대인이 싫어하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였다. 그는 그것을 행하되 기독교 공동체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기 위해서이거나 아니면 시범을 보이기 위하여 몇 사람, 즉 기독교 지도자들 몇을 제거하려 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사도 야고보는 순교당하고 베드로는 투옥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25절) 다행히도 하나님의 권념하심 덕분에 베드로는 구출되고 도리어 헤롯이 뜻밖의 죽음을 맞이하였다(6-10,23절). 때문에 교회는 다시금 평안을 얻고 사도들은 더욱 복음 전파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행 13장).
12:2 요한의 형제 야고보. -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 10:3)나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갈 1:19)와는 다른 야고보이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과 더불어 예수님의 3대 제자 중 한 사람으로 그의 아버지는 세베대였으며(막 1:20; 눅 5:11) 요한과는 형제였다. 성격이 불 같아 '보아너게'라는 별명을 얻었으며(막 3:17), 한때는 개인적 영광을 추구하기도 하였다(막 10:35). 야고보에 대해서는 막 10장 연구자료를 보다 참조하라. 한편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 야고보는 형제 요한과 함께 순교하였다고 하나(Loisy, Eisler), 사실 여부가 분명치 않다. 다만 야고보가 헤롯의 핍박으로 인해 사도들 중 첫 번째로 순교의 잔을 마신 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12: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gesture)의 일환으로 헤롯이 기독교인들의 우두머리 중 하나인 야고보를 처형한 술수는 예상대로 성공하여 유대인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인간적으로는 비교적 선량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권력을 얻고, 그것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그도 권모 술수를 마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무죄한 사람들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을 확고히 하기 위한 도구로 희생시키는 악행을 범하였다. 한편 본문의 '기뻐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아레스토스'( )인데 이는 '기분좋게 만족하다'는 의미이다. 즉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배척하고 대적했던 예수를 가리켜 도리어 생명의 주(Lord)로 증거하는 기독교인의 지도자 중 하나가 처형당하자 크게 만족한 것이다. 이처럼 헤롯은 기독교인을 박해함으로 유대인들을 만족시켰다. 그러나 그의 그같은 행위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거스리는 죄악된 행위였으니 끝까지 형통할 수 없었다(7-23절).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 사도 야고보를 죽이자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헤롯은 더욱 고무되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루살렘 교회의 우두머리인 베드로마저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다. 즉 헤롯은 기독교도들의 우두머리 중 하나인 베드로를 처치한다면 보다 확실하게 유대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으리라고 계산하고 베드로를 잡아 죽이려 하는 것이다.
때는 무교절이라. - 헤롯이 베드로를 잡으려 한 시기는 유대인들의 최대 절기 중 하나인 무교절일이었다. 무교절이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유대 종교력으로 니산월 14일부터 7일간 지키던 절기이다. 신 서론 특별자료, '히브리인의 절기' 참조. 그런데 베드로는 적어도 이 무교절이 시작하는 14일 저녁 해질 무렵 이전에 잡혔던 것 같다(4절).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명절에는 가급적 사람을 잡아들이는 일을 삼가했기 때문이다(마26:5). 한편 예수께서 유대인의 손에 의해 잡히시던 날 밤도 무교절 절기가 시작되기 전인 13일경이었다(마 26:17).
12:4 옥에 가두어. - 베드로는 이미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두 번 투옥당한 경력이 있다(행 4:3;5:18). 그런데 이번에는 헤롯 왕에 의해 세 번째 투옥되고 있다. 이러한 베드로를 볼 때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들은 이야기를 상기하게 된다. 그것은 곧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8)는 수난 예고이다.
군사 넷씩인 네 패. - 헤롯은 베드로를 잡아다 옥에 가두고 군졸들에게 지키게 하였는데 누가는 그 군졸들의 경비 조직을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즉 베드로를 지키는 경비 조직은 4조로 구성되어 있었고 한 조는 각 4명으로 되어 있었다. 이처럼 조가 4개인 것으로 보아 하루 24시간을 4분하여 6시간씩 지켰거나(Lenski), 저녁 해 질 무렵부터 그 다음 날 아침까지의 12시간을 3시간씩 나누어 지켰던 것 같다(Marshall). 그리고 한 조는 4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그 네 명 중 두 명은 베드로와 같이 쇠사슬에 매여져 양 곁에서 수비하였으며(6절) 나머지 두 명은 옥문 밖에서 1차, 2차의 파수를 섰던 것으로 추정된다(10절). 그런데 이처럼 헤롯이 베드로를 투옥시켜 놓고 삼엄한 경비를 서게 한 것은 그만큼 베드로에 대한 비중을 높게 두었다는 반증이다. 즉 헤롯은 베드로만 처치할 수 있다면 보다 확고히 유대인의 지지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또 반대로 베드로가 그만큼 예루살렘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였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유월절 후에. - 유월절은 오순절, 장막절과 함께 유대 삼대 절기의 하나이다(출 23:14-17; 신 16:16). 그런데 넓은 의미에서 유월절은 무교절에 포함된다. 그래서 종종 무교절과 유월절이란 말은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대하 30장 자료노트 '유교절과 무교점' 참조. 따라서 본절의 '유월절 후' 역시 혹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유월절 식사를 하는 니산월 14일 후가 아니라(Lenski, Ephraem) 무교절이 끝나는 니산원 21 일이 지난 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Alford, Bruce).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 죄수를 백성 앞에 끌어 내는 것은 공개 재판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유대 백성들에게 판결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요 18:31). 따라서 헤롯이 이처럼 베드로를 공개된 자리에서 재판하려는 것은 유대 백성에게 무엇을 묻기 위함이 아니라 다만 그들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술수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계산의 일환이라고 여겨진다.
12:5 교회는.…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 여기서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는 물론 온 유대의 교회, 그리고 베드로의 투옥 소식을 들은 모든 기독교 공동체를 지칭하는 것이다. 교회는 이처럼 베드로를 위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즉 그들은 사랑과 믿음 안에서 일치단결하여 옥에 갇혀 고생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베드로의 안전과 출옥을 위해 기도하였던 것이다. 이는 교회가 환난을 당한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자신들에게 닥친 고난과 핍박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사랑과 믿음으로 똘똘뭉쳐 행동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무튼 당시 핵심적인 지도자였던 베드로를 잃는다는 것은 교회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었으니 성도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더욱이 이미 영향력 있는 중요한 지도자 중 하나인 사도 야고보를 잃은 교회(2절)는 베드로마저 잃어서도 안된다는 위기 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는 자신들의 지도자를 위해서, 그리고 교회의 장래를 위해서 철저하게 하나님께 매달렸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교회의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께서 직접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구출케 하시는 응답으로 나타났다(7-11절). 이는 실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여 위기를 극복해 낸 모범적인 장면이다. 성도들의 기도는 이처럼 참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게 하는 최대의 무기가 된다. 그런즉 우리는 기도 없이는 그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결단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마 7:7,8; 막 9:29; 롬 12:12; 엡 6:19; 빌 4:6; 골 4:2; 딤전 2:1; 약 5:13; 벧전 3:7; 4:7).
12: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 헤롯은 유월절이 끝나는 다음 날 베드로를 유대인들 앞으로 끌어내려고 하였다(4절). 유월절이 끝나는 다음 날은 무교절이 끝나는 유대 종교력 니산월 21일의 다음날인 22일로 추정된다. 4절 주석 참조. 따라서 본문에서 지적되고 있는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은 21일 밤으로 여겨진다. 그러니까 헤롯은 22일에 베드로를 처형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며, 교회는 무교절 동안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하였던 것 같다(5절). 그리고 그 기도가 응답되어 헤롯의 손이 닿기 전인 집행인 전날 밤, 즉 21일 밤에 주의 사자가 감옥에 출현한 것 같다(7절).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 본절은 도저히 도망갈 수 없는 철통같은 감시망을 묘사해 주고 있다. 누가가 이러한 묘사를 하고 있는 이유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탈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읽는 사람에게 암시해 주려는 의도에서이다. 4절에 의하면 당시 파수병은 4조가 있었으며 각 조는 4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4인조의 파수병 중 두 사람은 본문의 묘사대로 베드로 바로 옆에서 베드로와 함께 쇠사슬에 매여 있었다. 왜냐하면 본문은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쇠사슬'에 매여 있었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그 두 쇠사슬이란 두 군사에게 각각 양쪽 손이나 발이 매여 있음을 나타내주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훗날 로마에 투옥되었던 사도 바울은 한 군사에 의해 지켜졌으나(행 28:16), 베드로는 중 죄인으로 취급되어 이처럼 두 군사에 의해 지킴을 당했다. 이는 아마도 당시 교회에서 차지하던 베드로의 중요성 때문이기도 하며, 또한 두 번째 투옥 사건 때 베드로가 탈출했던 전력이 있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행 5:19).
누워 자는데. - 베드로가누워서 잤다는 것은 베드로에게 전혀 탈출할 의사가 없었음을 암시해 준다. 즉 경비는 삼엄했고, 베드로 자신은 도망갈 의사가 없었다는 저자의 상황 암시가 깔려 있다.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 4인조의 파수병 중 두 사람은 죄수와 함께 매여 있었고 두 사람은 옥 밖에서 지켰다. 그리고 옥 밖을 지키는 두 병사는 이중으로 옥을 지켰다. 10절 주석 참조. 이처럼 베드로는 이중의 파수병에 의해 지켜졌으며 바로양 옆에는 같이 쇠사슬로 묶고 있는 병사 둘에 의해 다시 감시 당하고 있었다. 이는 완벽한 감시망 속에 베드로가 갇혀 있었음을 잘 보여 주는 것이다.
12:7 홀연히 주의 사자가. - 주의 사자가 '홀연히' 나타났다는 것은 갑작스럽고도 조용하게 나타났다는 것으로 초자연적인 현상을 의미한다. 주님은 살기 등등하여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에게도 홀연히 비추는 빛속에서 나타나셨다(행 9:3). 이처럼 홀연히 나타나는 것은 신비스러운 하나님의 능력이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심을 나타내 주는 일례이다. 한편 '주의 사자'는 '천사'를 말하는 것으로 고넬료에게 나타날 때는 '하나님의 사자' (행 10:3)와 '천사'(행 10:4)로, 베드로의 두 번째 투옥 때와 빌립에게 나타날 때는 본문처럼 '주의 사자'(행 5:19; 8:26)로 묘사되었다. 이에 관해서는 행 5:19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 이러한 초자연적인 광채는 강한 바람이나 구름, 불 등과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나타내 주던 가시적 현상이다(출 3:2; 19:9,16). 이에 관해서는 눅 2:9 주석을 참조하라.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 아마도 베드로는 투옥된 와중에서도 편안하게 깊이 잠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즉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뢰해 온 베드로는 이 때에도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평안히 잠들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베드로를 주의 사자는 옆구리를 쳐서 깨웠다. 여기서 '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파탓소' 인데 이는 '강하게 치다', '때려 눕히다' 또는 '죽이다'는 뜻이다. 이는 주의 사자가 깊이 잠들어 있는 베드로를 세게 쳤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급히 일어나라 하니...벗어지더라. - 천사의 초자연적 역사에 의해 베드로의 손발에 채워져 있던 쇠사슬이 순식간에 벗어지고 말았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이는 그 어떤 인간의 완벽한 억압 도구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낱 실보다도 못한 것에 불과할 뿐임을 증거해 준다. 그런즉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손길에 빠지는 것이지 인간의 박해가 아닌 것이다.
12:8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겉옷을 입고. - 이로 보아 베드로는 겉옷을 벗고, 옷을 여미던 띠를 풀고, 신을 벗은 상태에서 잠을 잤음을 알 수 있다. 즉 베드로는 평상시처럼 편안한 차림으로 잠자리에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에게 주의 사자는 신속하게 나갈 채비를 차리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을 지시해 주고 있다. 즉 잠에서 막 깨어나 어리둥절해 있을 베드로에게 허둥대지 않도록 그러면서도 재빨리 할 수 있도록 상세히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유대인들의 일상적 겉옷은 일종의 가운(gown)과 같은 것으로 띠로서 허리를 동여 매어야 활동하기에 편하였다. 그리고 신은 발바닥에 밑창을 댄 후 끈으로 발등과 발목에 묶는 일종의 샌들(sandal)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를 착용하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12:9 참인줄 알지 못하고. - 베드로는 깊은 잠에 들어 있다가 주의 사자가 깨우는 바람에 깨어나 아직도 현실과 꿈의 세계에서 오락가락 하였다. 비록 일전에도 주의 천사에 의해 구출된 경험이 있었으나(행 5:19) 이번에는 너무도 경비가 삼엄하였고, 갑작스럽게 의외의 일이 눈앞에 펼쳐져 베드로는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현실이 아니라 환상이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베드로가 탈출을 기대조차 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역사가 홀연히 일어났음(7절)을 보여 주는 것이다.
12:10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 4인조 파수병(4절)중 둘은 베드로의 양 옆에 있었고(6절) 둘은 이처럼 각각 옥문 앞과 옥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즉 파수병들은 이중으로 베드로가 갇혀 있는 옥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의 사자의 인도를 받는 베드로는 이들의 감시를 태연히 뚫으며 감시망을 통과할 수 있었다.
성으로 통한 쇠문. - 파수병들의 감시망을 벗어나자 큰 쇠문 앞에 도달하였다. 이 문은 예루살렘 성내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육중하고 견고한 문이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열려졌다. 그리고 그 철문을 통과하여 한 거리를 지난 뒤, 즉 옥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이제는 안전하게 도망할 수 있는 거리에 도착하자 주의 사자인 천사가 떠나갔다. 말하자면 베드로는 헤롯의 손에서 벗어나 안전 지대에 이르렀으며 주의 사자는 그 즉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마치 환상적인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이 장면은 역사 속에 실제로 일어났던 하나님의 능력의 기사(奇事)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복음 전파 사역을 위해 필요한 당신의 일꾼을 대적의 손아귀에서 안전하게 구출해 내신 것이다. 이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돌보시되 그 어떠한 악조건이나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 돌보아 주심을 깨닫게 된다.
12:11 정신이 나서. - 성내 거리에서 찬 밤바람을 맞자 베드로는 옥에서 빠져나와 예루살렘 한 거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껏 일어난 일이 환상 중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실제로 천사를 통해 자기를 구출해 주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박해하는 당사자인 헤롯과 유대인들의 세력에서부터 구해내 주신 목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도 깨달았을 것이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복음의 대적자들에게서 구해내 주신 까닭이 더욱 복음 전파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12:12 마가라 하는 요한의…집에 가니. - 옥에서 구출된 베드로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이처럼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마리아'보다는 '마가라 하는 요한'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에 대한 특별한 기록은 없으나 '마가라 하는 요한'에 대한 기록은 많고 또 주목할 만한 인물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생질로(골 4:10), 바울과 바나바의 제 1차 전도 여행 때 보조자로 동행하였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온 자이다(행 13:13). 그리고 이것을 이유로 2차 전도 여행 때 그의 동행 문제로 인해 바나바와 바울이 충돌하여 갈라서게 되었다(행 15:36-39). 그러나 그는 신실한 주의 제자가 되어 후에 로마에서 베드로의 동역자로 활동하였으며(벧전 5:13), 마가복음을 저작하였다. 그리고 애굽에서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세운 뒤 거기서 감독으로 일하다가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Eusebius). 또한 전설에 의하면 그는 예수의 70인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눅 10:1). 한편 그가 마가(Mark)와 요한(John)이라는 두 이름으로 불리운 것은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고, 요한은 유대식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요한으로도(행 13:5; 15:37), 마가로도 모두 불리웠다(행 15:39; 딤후 4:11; 몬 24절). 그의 집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는데 그 유명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장소(행 1:13; 2:1-4)가 바로 이곳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바로 이곳에서 자주 모였으며, 베드로 또한 그러한 연유에서 이곳을 가장 먼저 들른 것으로 여겨진다.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 이미 사도 야고보를 잃은 교회(2절)는 가장 중심적인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베드로마저 잃을 위기에 직면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5절). 즉 그들은 밤중도 아랑곳하지 않고(6절) 모여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서 저자인 누가는 이처럼 베드로의 출옥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기사였지만 그 이면에는 성도의 기도가 뒷받침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12:13 로데라 하는 계집 아이. - '로데'(Rhoda)라는 이름은 당시 하녀들에게 붙여진 흔한 이름으로 그 뜻은 '장미'이다. 또한 '계집 아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파이디스케'로 '어린 여자아이' 또는'처녀', '하녀'라는 여러 의미들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밤중에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영접하러 나간 것으로 볼 때 본문에 언급되는 계집 아이는 그 집에서 일하는 여종인 것 예수께서 재판 받으실 때에 베드로에게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고 따져 묻던 여종이 원어상 본문의 계집 아이와 동일한 용어이다(요 18:17). 아무튼주의 천사에 의해 옥을 빠져 나온 베드로는 평소 자주 교인들이 모이던 마가의 집에 누군가가 모여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한밤 중에 그 집을 찾아가 대문을 두들겼을 것이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듣고 마가의 집 하녀가 찾아 온 손님을 마중하러 나온 것이다.
12:14 베드로의 음성인줄 알고. - 마가의 집의 하녀는 사도 베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이처럼 음성만으로 그를 알아 보았다. 이는 평소에 자주 베드로가 그 집을 찾았고 그 집에서 회합을 가졌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주는 증거이다. 즉 음성만으로 상대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은 평소에 상당한 접촉과 친밀성이 있었음을 암시해준다.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 로데라는 하녀는 한밤 중의 방문객이 교회가 그토록 염려하며 위해 기도하고 있는(5,12절) 베드로일 것이라고는 미처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뜻밖에도 베드로의 목소리임을 알고는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베드로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도 잊어버린 채 집 안에서 기도하고 있던 주인과 성도들(12절)에게 베드로가 살아 돌아왔음을 알려 주기 위해 달려 들어 갔다. 비록 그녀는 하녀라는 낮은 신분이었지만 아마도 기독교 공동체의 사랑의 분위기 속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주인인 마가와 마가의 어머니와 함께 자신들의 지도자인 베드로를 위해 합심하여 기도했으리라고 추정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보이는 그녀의 태도가 베드로의 살아 돌아온 것에 대하여 너무나도 기뻐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12:15 네가 미쳤다. - 마가의 집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녀에게 미쳤다고 한 것은 정말로 그녀가 미쳤다고 본 것이 아니라 네 말대로 베드로가 왔을리 없다는 강한 부정의 표현이다. 비록 그들은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으나(5절) 설마 그날 밤에 베드로가 갑작스럽게 나타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베드로가 왔다고 하는 하녀의 전언(傳言)을 부정한 것은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 아니라그 만큼 하나님의 역사가 은밀하게, 그러면서도 예기치 않은 때에 일어났기 때문임을 시사해 준다.
힘써. - 직접 베드로의 음성을 들은 하녀가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의 강한 부정의 말에 자신의 말이 사실이라고 열심히 설득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말이다. 애초에 문을 열어 베드로와 함께 들어왔으면 하지 않아도 됐을 수고를 하고 있는 하녀의 애처로운 모습이 한편으로는 재미있게 묘사되고 있는 장면이다.
그의 천사. - 유대인들은 각 사람에게는 그를 지켜주는 수호 천사가 있다고 생각했다(창 48:15,16; 시 34:7; 단 3:28; 6:22; 마 18:10; 행 27:23,24; 히 1:14). 그리고 그 수호천사는 자신이 보호하는 그 사람의 모양과 음성까지 동일하게 취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가의 집에 있던 사람들은 하녀의 설명에 네 말이 사실이면 그건 베드로가 아니라 그의 천사일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들은 순간적으로나마 베드로의 수호 천사가 베드로의 순교 사실을 고지(告知)하기 위하여 자신들에게 나타난 것으로 생각했을런지도 모른다(Lenski).
12:16 베드로가 문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 마가의 집 대문을 두드리던 베드로는 (13절) 아무도 나와 문을 열어주지 않자 계속하여 문을 두드렸다. 아마도 베드로는 자신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역사하심을 빨리 전하고 싶었을 것이며, 또한 걱정과 불안 속에 있을 성도들에게 자신의 무사함을 보여 안심시키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한편으로는 헤롯이 자신의 탈옥 사실을 뒤늦게 알고 온 도시를 뒤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차게 계속해서 문을 두드린 것이다.
저희가 문을 열어. -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하녀의 말이 사실인가 하여 이번에는 자신들이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놀라는지라. - 그리고 문 밖에 정말로 베드로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는 저들이 베드로의 신변 안전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였으면서도 베드로가 손끝 하나 다치지 않고 온전히 살아서 돌아올 수 있으리라고는 미처 기대하지 못한 연고이다. 당시 얼마나 헤롯이 단호하고 철저하게 교회 지도자들을 탄압하고 죽이려 했는가를 엿볼 수 있다.
12:17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 베드로의 출현에 놀란 성도들은 놀람과 기쁨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란했던 것 같다. 이에 베드로는 그들을 진정시켰다. 이로 보아 베드로는 자신의 탈옥 사실이 알려져 다시 잡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행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가 사람들에게 조용히 자신이 탈출하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고 난 뒤 황급히 어디론가 피신한 사실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야고보. - 이 야고보가 12사도 중 한 사람인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 10:3; 행 1:13)라는 견해가 있으나(Calvin, Bengel), 대개의 학자들은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로 보고 있다(Meyer, Alford, Lenski, Knowling). 그 이유는 베드로가 잠시 은거해 있는 동안 자신과 마찬가지로 능히 교회를 돌볼 수 있는 지도자를 지적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에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에 관한 행적은 거의 없으나 당시 주의 형제 야고보는 예루살렘 총회의 의장직을 맡고 있었고(행 15:13),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있었던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행 21:18). 따라서 베드로가 언급한 야고보는 주의 형제 야고보로 보여진다. 이 주의 형제 야고보에 대해서는 약 1장 연구자료를 참조하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 베드로는 마가의 집에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무사함을 알리고는 어디론가 떠나갔는데 그 행선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때문에 그 행선지로 가이사랴, 안디옥, 로마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카톨릭 학자들이 강력히 주장하는 로마행은 다른 성경 기록들과 모순되기 때문에 신빙성이 희박하다. 왜냐하면 제롬(Jerome)과 같은 카톨릭 학자들의 주장대로 이때 베드로가 로마로 가서 거기서 교회를 일으켰다면,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무렵(A.D. 57년경) 베드로는 로마에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베드로의 이름이 로마서에 언급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은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겠다고 했는데(롬 15:20) 만약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다면 로마에 있는 신자들을 위해 쓴 로마서도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후의 기록에서 보듯 베드로는 예루살렘 총회에도 참석했고(행 15:7),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도 예루살렘에 있었다(갈 2:9). 다음으로 베드로가 도망한 후 헤롯이 가이사랴로 갔으므로(19절) 베드로는 가이사랴에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는 안디옥과 같은 안전한 장소에 잠시 피신해 있다가 헤롯이 죽은 뒤(23절, A.D. 44년)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왔을 것이다.
12:18 날이 새매. - 이는 베드로의 탈옥 사건이(6-17절) 한밤중에 일어났으며 그 밤이 다 지나가기까지 헤롯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즉 분명히 파수병들은 날이 샐 때까지 베드로의 탈옥 사실을 몰랐을리가 없다. 왜냐하면 주의 사자가 나타났을 때(7절) 베드로를 지키던 파수병들이 잠들었다 해도 4개의 조로 구성되어 3시간씩 교대했을 것이므로(4절 주석 참조) 다음 번의 조가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사들은 베드로의 탈옥 사실을 알고 아연실색하고만 있었을 뿐 날이 샐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알지 못하여 소동하니. - 파수병들과 그의 상관인 책임자들조차 도대체 어떻게 그 철통같은 수비망을 뚫고 베드로가 탈출할 수 있었는지 알지 못하여 감옥 주변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문의 이 날은 바로 헤롯이 베드로를 군중 앞에 끌어내려고 계획한 날이었으므로(6절) 죄수가 없어진 것은 중대한 과오였고, 그 책임이 너무 컸기에 난리가 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고를 받은 헤롯도 자신의 정치적 계획(1절, 3절 주석 참조)에 차질이 생긴 탓에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군대를 닦달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군대는 더욱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12:19 찾아도 보지 못하매. - 베드로를 지키던 자들은 일의 자초 지종을 알지 못했다(8절). 더군다나 베드로는 이미 밤중에 예루살렘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사라진(17절) 뒤이니 예루살렘 일대에서 베드로를 찾는 것은 헛수고에 지나지 않았다. 더욱이 하나님의 천사에 의해 탈옥한(7-10절) 베드로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았을 터이니 그를 체포하기란 더욱 만무한 일일 것이다.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 베드로를 결국 찾아내지 못한 헤롯은 파수꾼들을 심문한 후 죄수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물어 사형을 언도했다. 당시 로마법은 중대한 죄수를 파수병이 지키지 못하면 그 파수병을 대신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바울이 도망한 것으로 여겼을 때 자결하려 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행 16:27). 아무튼 자신에게 있어 정치적으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 베드로 처형의 기회를 놓친 헤롯은 대노하였다.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 본절의 가이사랴는 백부장 고넬료가 있던 곳이다(행 10:1). 이 가이사랴에 대해서는 행 8:40의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헤롯 아그립바 1세가 가이사랴로 내려간 이유에 대해서는 21절 주석을 참조하라.
12:20-24 헤롯의 죽음과 교회의 흥왕
앞단락(1-19절)에서는 교회에 대한 헤롯의 잔인한 박해 장면을 살펴보았다. 이어 본문은 교회를 박해한 헤롯의 죽음을 통해 성령의 역사와 복음의 능력을 거부하고 교회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한 지를 보여 주고 있다. 헤롯이 죽게 된 원인을 본문은 그의 교만 때문으로 묘사하고 있다. 헤롯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다윗 이래 오랜 무역 상대국이었던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아마도 무역 마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두로와 시돈 사람은 그들의 식량 대부분을 유대에서 수입해야 했기 때문에 헤롯의 마음을 돌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헤롯의 마음을 돌리고자 했는데, 백성을 동원하여 헤롯의 연설을 신의 소리라고 아첨하는 데로까지 치달았다(21,22절). 헤롯은 유대인의 왕으로서 마땅히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는 교만함에 빠지고 말았으며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23절). 한편 이러한 헤롯의 죽음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볼 때는 그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왜냐하면 헤롯의 직접적인 죽음의 원인은 분명 신과 같이 되려는 그의 교만함에 있었지만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는 박해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궁극적으로 교회의 승리라는 등식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헤롯의 죽음 이후 더욱 부흥 성장하게 된다(24절).
이러한 본문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① 교만은 멸망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잠 16:18).
② 악인과 의인에 대한 심판이 궁극적으로는 종말에 있을 일이지만(마 25:31-46; 계 20장) 하나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는 대로 즉각적으로 보응하시기도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항상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도록 힘써야 한다.
③ 세상의 박해가 거세게 교회를 위협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더욱 교회를 강한 팔로 붙드시고 보호하시므로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박해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낙담해서는 안되며 그러할수록 더욱 담대한 믿음으로 복음 전파에 진력해야 한다.
12:20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 두로와 시돈은 베니게 지역의 주요 항구 도시이다(삼하 5:11; 왕상 5:9). 왕상 9강 자료노트, '베니게 제일의 항구 도시 두로' 참조. 그런데 왜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게 노했는지 알 수 없다. 베드로의 일로 심기가 불편해서 심술을 부린 것일 수도 있고, 두로와 시돈과의 무역상의 마찰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Meyer, Lumby). 그리하여 경제적 제재를 가하기 위해 식량 금수(禁輪) 조치를 취한 것 같다. 본래 두로와 시돈은 솔로몬 시대 이래(왕상 5:9; 스 3:7) 유대에서 식량을 수입해 갔다. 따라서 헤롯이 금수 조치를 취하자 베니게 사람들은 난감하여 헤롯과의 화해를 맺으려 갖은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블라스도. - 전형적인 로마인의 이름이다. 헤롯은 친로마파로서 로마인을 자신의 침실을 주관하는 신하로 삼은 것같다. 그런데 이 침실을 주관하는 신하는 내시일 가능성이 많다. 내시들 중에는 당시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가 많았다(행 8:27). 그래서 두로와 지돈 사람들은 헤롯의 침실을 관리하던 신하인 블라스도와 친해져 그의 힘을 빌려 헤롯과 화해하고자 한 것이다.
12:21 날을 택하여. -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이 날은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행 18:2)가 영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것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경기일의 둘째 날이자 황제의 생일인 8월 1일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헤롯이 가이사랴로 내려간 이유는 그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서 일 수도 있다. 19절 주석 참조. 그리고 헤롯은 이 날을 택하여 두로 및 시돈과의 화해의 날로 삼았을 것이다(Haenchen). 많은 학자들은 요세푸스의 기록에 근거해 이 학설을 지지한다(Lenski, Bruce, Mashall).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에 의하면 이때 헤롯은 은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반원형 경기장의 귀빈석에 앉았는데 그의 옷이 햇빛에 반사되어 군중들이 그를 바라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백성을 효유한대. - 헤롯은 그 보좌에 앉아 백성들에게 연설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효유하다'라는 말은 '알아듣게 타이르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헤롯이 두로와 시돈의 사절단 및 그들이 동원한 무리들에게 앞으로 유대와 두로 및 시돈 사이의 우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을 권면했음을 나타낸다.
12:22 이것은 신의 소리요. - 베자 사본(D)에는 본절 초두에 '저희가 화목하였을 때'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다. 이는 베드로의 탈출 사건으로 소원(疏遠)해진 유대 백성과 헤롯의 관계가 다시 정상화되었다는 의미이거나 아니면 식량 금수 조치로 인해 소원해진 두로와 시돈 사람들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20절 주석 참조. 아무튼 헤롯은 찬란한 왕복을 입고 친근한 어투로 백성들에게 연설하며(21절 주석 참조), 아첨꾼들은 헤롯의 소리가 '신의 소리'라고 극한 아침을 하였다(Josephus). 당시 이방 세계, 특히 헬라 문명권의 세계에서는 왕이나 영웅을 신격화해서 부르는 관습이 있었는데(행 14:11; 28:6), 유대 백성들의 입에서도 그러한 이교적 언사가 헤롯에게 행해졌다. 물론 만일 이 행사가 '헨첸'(Haenchen)의 주장대로 두로와 시돈의 사절들과의 화해 조약 체결 행사였다면(21절 주석 참조) 이러한 말을 한 자들이 두로와 시돈의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날이 로마 황제의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일이었다면(21절 주석 참조) 설령 이 날에 두로와 시돈의 사절뿐 아니라 유대 백성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또 본문이 몇몇 아첨꾼들만이 아니라 '백성들이' 그러한 말을 했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대 백성들도 함께 그러한 불경스러운 언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유대 백성들은 불경하다는 죄명으로 예수(마 26:65)와 스데반(행 6:11)을 죽이고도 지금 자신들 스스로가 불경죄를 저지르는 극악한 모순에 빠져있는 것이다. 즉 근본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되이 여겼을 때엔 신성 모독죄를 범했다고 정죄한 유대인들이 이번에는 도리어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헤롯을 신의 위치에까지 격상시키므로 십계명 중 1,2계명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출 20:1-6).
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 이것은 헤롯이 피조물을 신격화하는 불경죄를 거절하거나 꾸짖지 아니하고 이방인처럼 그것을 오히려 받아들이고 교만하게 마치 진짜 자신이 신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는 의미이다. 이는 고넬료가 베드로를 맞이하여 엎드려 절했을 때 베드로가 그를 일으켜 세우면서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행 10:26)고 말한 것이나, 루스드라 사람들이 이적을 행한 바울과 바나바를 신이라 칭하였을 때 저들을 만류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린 것(행 14:8-18)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주의 사자가 곧 치니. - 베드로를 구출해내기 위해 나타나신 것과 같은 '주의 사자', 곧 천사가 베드로를 친 것처럼 헤롯을 쳤다. 즉 여기서 '치다'는 말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쳤다는 것과 동일한 '파탓소'( )가 사용되고 있다. 7절 주석 참조. 따라서 동일한 '천사'에 의해 동일하게 치는' 행동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는 불경한 헤롯에게는 심판의 대행자로 나타나 죽이기 위해 쳤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일하는 베드로에게는 수호자로 나타나 살리시기 위해 쳤던 것이다.
충이 먹어죽으니라. - 본절만 가지고서는 헤롯의 병명(病名)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헤롯이 복통으로 죽었다고 하며, 외경 마카비서에 의하면 배에서 벌레가 나고 그로 인해 악취가 날 정도로 몸이 썩어들어가다가 죽었다고 한다(마카비2서 9:9). 아무튼 이같은 헤롯의 죽음 사건은 시사해주는 바가 많다. 그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 사역을 훼방하고 대적하는 악한 세력을 결단코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라는 점이다(계 18장). 즉 교회를 핍박하고 사도 야고보를 서슴지 않고 죽인 헤롯이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것은 이를 증거해 주는 일례이다. 또 다른 하나는 악인과 의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궁극적으로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있을 것이나(마 25:31-46; 계 20장) 하나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는 대로 즉각적인 보응을 내리기도 하신다는 점이다. 그런즉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롬 12:1,2).
12: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 이러한 표현은 본서에 세 번 나타나고 있다(행 6:7; 19:20). 여기서는 헤롯의 죽음이 있은 후 교회가 다시 안정을 찾고 복음이 더욱더 널리 전파되어감을 나타내주는 표현이다. 이처럼 아무리 혹독한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기독교가 흥왕하는 것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요 섭리이다.
12:25 바나바와 사울의 안디옥 귀환
전단락(20-24절)에서는 교회를 박해하던 헤롯의 죽음으로 교회가 더욱 부흥하게 된 사실을 살펴보았다. 이제 본문은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귀환한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본문은 행 11:30에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본문은 행 13장 이후에 나타나는 안디옥 교회의 이방 선교에 대한 도입부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특별히 본문에 나타나는 '마가 요한'은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 여행에 잠시 동반했던 인물(행 13:5)로, 이는 본문이 행 13장 이후에 언급되는 이방 선교의 도입부에 해당함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 하겠다. 아울러 예루살렘 교회가 이후 바울 및 바나바의 전도 여행의 수종자가 된 마가 요한을 바울 및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에 보냈다는 것은 바울과 바나바의 이방 선교를 예루살렘 교회가 공식 인정했음을 암시해 주는 것으로 사실상 본격적인 이방 선교에 대한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문은 베드로를 중심한 예루살렘 및 유대 전도 사역에서 바울을 중심한 이방 전도 사역으로 본서의 기록 내용이 전환되는 역할을 한다.
12:25 부조의 일을 마치고…돌아오니라. - 헤롯의 박해와 죽음이 언급되다가(1-24절) 본절에선 다시금 행 11:30에 연결되는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부조(扶助)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즉 본서 저자인 누가는 앞에서 이방 선교에 대한 정당성과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그와 관련된 기사를 언급하다가(행 9:32-11:30) 안디옥 교회에 이르러 사도 바울을 재등장시켰다(행 11:25). 그 사이에 행 11:30까지 이방 선교의 주역으로 일하던 베드로가 박해로 인해 쉬게 되었음을 언급한 후 이제 다시 바나바와 바울이 주역으로 떠오르는 이방 선교에 관하여 기술하기 위해 본절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바울과 바나바는 기근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유대의 성도들에게 온 교회의 부조 헌금을 전해주는 대표로 선출되었었다(행 11:27-30). 그리하여 그 임무를 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간 두 사람은 일을 마치고 이제 안디옥 교회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안디옥 교회에서 두 사람은 본격적인 이방 선교를 위한 준비를 갖추게 된 것이다(행 13:1-3).
연구자료
초대 교회 박해사
초대 교회의 역사는 박해 속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은 실로 박해로 점철된 역사라 할 수 있다. A.D. 30년 오순절 성령 강림을 기점으로 예수의 12제자들을 중심 으로 예 루살렘 에서 태동되어 설립된 초대 교회는 설립되자마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즉각적인 박해를 받았으며 마침내 스데반(Stephen)이 죄초의 순교를 계기로 유대(Judaism)의 대대적인 박해가 본격 개시된 후애는 성도들의 대부분이 당시 교회의 본산지였던 여루살램을 터나지 않으면 안되었다(행 8:1).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팔레스틴 전지역과 이방 세계에도 전파되어 결실을 몇기 시작한 A.D. 60년경부터 기독교는 로마 제국(Roman Empire)의 박해까지 받게 되었고 이러한 로마 저국의 박해는 A.D. 64년 네로의 대박해를 기점으로 븐격화되어 A.D.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저의 밀라노 칙령에 의해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國敎)로 공인되기까지 간헐적으로 계속되었다.
따라서 초대 교회 역사를 이헤하기 위해서는 초대 교회의 박해사에 대한 이해가 펼수적인 바 이를 개략혜 보기로 한다.
1. 박해의 유형과 전개에 대한 기본 이해
모든 역사 현상이 다 그러하듯이 초대 교회의 박해 양상도 단순한 기줄으로 구분해 낼 수는 없지만 크게 나누자면 초기 즉 초대 교회가 태동하여 일단 전 로마 계국에 퍼지기까지의 A.D. 30-60까지의 유대교(Judaism)의 종교적 박해와 그 이후의 A.D. 60-313년까지의 로마 제국(Roman Empire)의 정치적 박해로 구분된다.
먼저 유대교의 종교적(宗敎的)박해의 근본 원인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전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실과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유대교는 비륵 비록 선민 이스라앨의 후손인 유대인들의 종교였으나 태초 아담의 때부터 계승된 순수한 정통신앙이 아니었다. 즉 그들은 B.C. 5세기 무렵부터 배타적인 민족주의(民族主義)와 인본주의(人本主義)적 편견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시인 순수한 구약 전채가 아니라 구약의 일부 내용만을 취하여 이를 왜곡 해석하고 거기에 유대인 자신들의 전승(tradition)까지 가미하여 여러 가지 그룻된 교리를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대교의 분파어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하나럼이 주시려는 구훤(救援)은 유대인 자신들만을 중심으로한 이 지상애서의 정치적 숭리와 평화이며 이 런 구원을 얻는 길은 율법을 지켜서 스스로 의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 메시야가 와서 이루어 줄 것으로 고대한다. 이런 잘못된 교리를 갖고 있었기 메문에 그들은 여수껴서 참 매시야(Messiah)로서 구약의 성취로 오사 구속 사역을 성취하고 새로이 신약을 주셨음에도 주님이 그들의 착각과 달리 세계 만민 중에 럭한 모든 자들을 오직 믿음을 통하여서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의 새 천국에 인도하심으로 구훤을 주시겠다고 선포하시자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메시야 예수를 죽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예수 제자들이 다시금 예수의 부활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선포하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다시금 '그리스도의 도'를 전파하는 무리들을 무조건 유대교(Judaism)를 문란케 하는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정치 종교적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박해를 가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사실은 기독교가 구약 전체를 온전히 계승한 신약을 믿음으로 결국 정통성을 가졌음에도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구약 특히 모세 율법을 모독하고 나아가 하나럼까지 모독하는 종교로 매도하고 폅박혔던 것이다.
이러한 유대교의 종교적 박해는 처음에는 여루살렘과 팔래스틴 지역에서만 있었으나 사도 바울에 의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로마 재국 전체로 전파되면서 유대교의 박해도 디아스포라(Diaspora) 곧 해외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있는 로마 재국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특히 유대교인들은 기독교(Christianity)에 대한 로마 재국 차원의 정치적 박해가 본격적으로 개시된 기독교인들을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반국가적인 무리들로 고발하여 로마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하는 간접적인, 그러나 더욱 잔인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박해를 가했다.
한편 기독교에 대한 로마 제국(Roman Empire)의 정치적(政治的) 박해는 비교적 복잡한 양상으로 그리고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피식민지얘 대한 종교 관용정 책을 펴던 로마 제국은 처음에는 기독교를 유대교의 일파로 보아 박해하지 않짜으나 점차 기독교가 유대교와는 다르며, 특정한 어느 한 국가나 민족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아니하면서도 강력한 공동체 의식과 지도력을 가지고 로마 제국이 통치권 독립 차원에서 시도한 황제 숭배(Emperor-Worship)를 거부하는 반국가적인 단체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박해를 가하기 시작했다. 국가 지상주의(國家至上主義)를 부르짖는 로마 저국의 입장얘서 볼 메 똥재 숭배를 거부하고 타종교를 부정하는 세계의 잡다한 민족들로 구성된 소규모의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민심을 어지럽게 하고 제국의 안정을 께뜨리는 불량한 단체로 보일 수밖애 없었다. 이에 로마 제국은 국가의 모든 재난의 원인을 그리스도인의 탓으로 돌려 핍박하였고, 심지어는 역으로 정치적 불순분자들을 기독교도로 몰아서 죽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특정한 민족 또는 계충을 정치적으로 박해할 때 닥칠 수도 있을 정치적 혼란을 피할 수 있었다. 결국 초대 기독교는 로마 재국의 정치적 회생물이 된 것이다.
2. 박해의 실례들
① 유대교의 박해
초대 교회는 일단 예루살렐애서 A.D. 30년에 태동한 이레 스데반의 순교 때 예루살렘 성도들이 팔레스틴과 인근 각처로 흩어지게 된 것(행 8:1)을 계기로 하여 대략 A.D. 37-46년 사이에 일단 팔레스틴 전역에 뿌리를 내리고 그후 바울이 A.D. 47-57년 사이에 전 3회에 걸럭 이방 선교여행을 행한 것을 계기로 전로마 져국에 퍼지는 대략 3단계의 발전 과정을 거쳤다. 이런 발전 과정 중얘서 초대 교회가 최초로 직면해야 혔던 박해는 유대교의 박해였다. 물론 A.D. 60년 이후에도 유대교(Judaism)의 박해가 있기는 하였지만 그메는 어차피 초대 교회에 대한 박해가 전로마 겐국 차원으로 비화된 상태였고 A.D. 70년의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으로 유대교는 특별히 초대 교회 박체에 힘을 쓸 여력도 없었다. 따라서 초대 교회 초기의 박해는 거의 대부분 유대교의 박해였었고 유대교의 박해는 초대 교회 초기에 집중되었었다.
한편 초대 교회에 대한 유대교의 박해는 예루살렘과 팔레스틴 지역은 물론이고 유대인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곳이면 로마 제국 어디서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에 관한 정보는 초대 교회의 교부들의 글들에서 조금 발견될 뿐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며 우리가 아는 것은 전적으로 사도행전을 통해서이다. 이에 사도행전애 나타난 기독교에 대한 유대교의 박해 사건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박해의 양상(박해 연도, 박해지)
1. 베드로와 요한이 체포되었다가 공회원들의 경고를 받고 풀려남(3:1-4:22)
(AD. 30년, 예루살렘)
2. 사도들이 다 함께 산헤드린 공회원들에 의해 체포되었다가 가말리엘의 변호로 풀려남(5:17-42)(AD. 30년, 예루살렘)
3. 스데반이 산헤드린 공회원들과 유대교도들의 돌에 맞아 순교함(7:54-60)(AD. 30년, 예루살렘)
4. 스데반의 순교를 계기로 대대적인 그리스도인 숙청 작업이 개시되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땅으로 흩어짐(8:1,2)(AD. 30년, 예루살렘)
5.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체포를 위해 유대 산헤드린 공회에 의해 파견됨(9:1,2)(AD. 34년, 팔레스틴 지역)
6. 회심한 사울이 다메섹에서 핍박을 받아 고향 다소로 도피함(9:23-25)(AD. 34년, 팔레스틴 지역)
7.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예루살렘 초대 교회 박해시 사도 야고보가 순교함(12:1,2)(AD. 44년, 예루살렘)
8.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예루살램 초대 교회 박해시 베드로가 체포되었다가 천사에 의해 구출됨(12:3-19)(AD. 44년, 예루살렘)
9.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교도들에게 돌로 맞아 죽기 진전에 이름(14:19-20)(AD. 47-49년, 헬라지역)
10. 바울이 아가야애서 유대교도들의 고발로 총독 갈리오 앞에 끌려가 심문을 받음(18:12-17)(AD. 49-52년, 고린도)
11. 바울이 헬라 지역의 유대교도들의 살해 음모를 피해 마게도냐로 감(20:3)(AD. 53-57, 헬라 지역)
12. 유대교도들의 고소로 체포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호송됨(21:27-25:15)(AD. 58-62년, 예루살렘)
② 로마 제국의 10대 박해
A.D. 60년 이후 초대 교회가 이제 팔레스틴 지역을 벗어나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장되어 그 정치적 비중이 커감에 따라 로마 제국(Roman Empire)이 몇몇 정치 종교적 이유로 초대 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초대 교회에 대한 로마 제국의 박해는 주로 A.D. 63-313년 사이에서 발생하였다. 그러나 이 기간의 모든 로마 황제들이 다 기독교를 박해한 것은 아니며 때로 기독교에 대해 호의적이거나 아니면 황제 자신의 신중한 성품 때문에 박해를 하지 않은 황제들도 여럿이 있었다.
한편 기독교(Christianity)에 대한 로마 제국의 박해는 크게 3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 1기는 로마 황제 일개인의 이해 관계 차원에서 박해가 가해진 시기이다(A.D. 63-96년), 그리고 제 2기는 각 지역의 상황에 따라 국부적(局部的)으로 박해가 가해지던 시기이다(A.D. 98-236년). 마지막 세 번째는 로마 제국 전역에 걸쳐 대대적인 박해가 가해지던 패이다(A.D.249-251년).
이에 기독교에 대해 크게 박해한 대표적인 로마 제국의 10대 박해 사건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로마 황제의 박해 연도 박해의 양상(박해의 원인)
1. 네로(64년):
1) 로마시와 근교 지역에서 시행됨(로마시 대화재의 혐의를 받음)
2) 네로의 궁전을 밝히기 위한 소위 인간 횃불로서 그리스도인들의 화형을 당함(상동)
2. 도미티안(90-96년): 로마와 소아시아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시행됨(황제 숭배 거부 및 반국가 단체로 규정됨)
3. 트라얀(98-117년):
1) 혐의가 드러났을 경우에만 처벌함(황제 숭배 거부 및 사회 혼란죄)
2) 박해가 점차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대되어감(상동)
4. 하드리안(117-138년):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는 자는 누구나 처벌함(황제 숭배 거부 및 그리스도인에 대한 증오)
5. 아우렐리우스(161-180년): 스토아주의자인 황제는 기독교를 사상적으로 배격함(질병, 흉년을 가져온 자들로 규정됨)
6. 세베루스(202-211년):
1) 기독교로 개종을 금지함(그리스도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
2) 황제의 포학 무도함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처형됨(상동)
7. 막시미누스(235-236년): 기독교 성직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긷꾜에 우호적인 전임 황제 지지자들 및 지진 사고를 가져온 자들로 규정됨)
8. 데키우스(249-251년):
1) 그리스도인들을 황제 숭배의 제물이 되게 하고 기독교 신앙 포기 강요(국력 쇠퇴를 가져온 자들로 규정됨)
2) 제국 전역에서 실시함(상동)
9. 발레리아누스(257-260년): 재산 몰수 및 공민권 박탈(질병, 흉년을 가져온 자들로 규정됨)
10. 갈레리우스(303-311년): 교회 파괴, 성경을 불태움, 로마신들에 대한 숭배 강요(모든 국가 재난의 원인자들로 규정됨)
3. 대박해를 이겨낸 초대 교회의 교훈
세계의 대부분의 이방 종교들은 이를 창시한 집단의 정치 문화적 번영과 비호 속에서 급속히 성장하였다가 그런 제반 여건들이 사라지고 박해를 받을 때면 곧 쇠퇴해 버 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는 한마디로 그 이방 종교가 역사와 인생에 대한 참 진리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대로 기독교(Christianity)는 태동 초기부터 유대교와 로마 제국의 숱한 정치적, 종교적 박해에 직면해야만 하였다. 심지어 물론 기독교 신앙은 근본적으로 태초 아담의 때로부터 있어온 구약 정통 신앙까지 계승한 신 ․구약 모두를 믿는 신앙이지만 이 당시의 관점에서는 직접적으로는 예수에게서 기인하였는바 결국 기독교는 유대정치 종교지도자들의 획책에 의하여 로마 정부로부터 정치범으로 몰려 처형당한 바로 그 분(마 27장)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로 믿는 참 신앙 매문에 박해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놀랍게도 가루 서말 속에 든 누룩처럼(마 13:3) 급속히 로마 제국 전체로 확산되었고, A.D.313년에는 로마 제국의 국교(國敎)가 되어 결국 로마 제국을 정복하였다. 그리고 현재에는 세계 만방에 전해져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실로 불신자들에게도 로마 식민지 치하의 유대땅에서 비천한 계충의 소수의 무리가 나사렛 출신의 젊은 정치범을 믿던 기독교가 전제국 차원의 그토륵 처절하던 박해를 이겨내고 오늘날 세계 최대의 신앙이 된 것은 역사의 경이로 인정된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이는 결국 기독교 신앙이 생명력을 가진 산 신앙임을 입중해 준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기독교가 믿는바 역사상 실제 이 땅에 사셨던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십자가 구속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사죄된 구원(救援)을 주시는 구주이심을 믿는 복음이 산 진리임을 입중하는 한 중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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