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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장 일곱 인의 재앙 중 첫째 인에서 여섯째 인까지의 재앙들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넓게는 현 우주와 역사의 결정적 종말이 최종 도래하기 직전의 말세에 있을 상당 기간의 범우주적 대환난(大患難)에 대한 묵시들, 즉 상호 점진적으로 강도를 더해가면서 연속되는 관계에 있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 등 일련의 삼대 7중 재앙의 묵시를 보도하는 제 4-18장까지의 일련기사의 연속 부분이다.
또한 좁게는 5:1-8:5에 이어지는 3대 7중 재앙 중에서도 첫 7중 재앙인 일곱 인(印)의 재앙에 대한 일련의 묵시 기록의 연속 부분이다.
이런 문맥하의 본장은 첫째 인의 재앙에서 여섯째 인의 재앙까지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각 인의 재앙을 기준으로 그 세부 문단을 자연스럽게 구분할 수 있다. 또한 각 문단은 각 문단별로 개별적 의의를 갖고 있기 보다는 모두가 함께, 상호 강도를 더해가는 점진적 연속 관계에 있는 소위 삼대 7중 재앙을 구성하고 일부로서의 전반적 의의가 더욱 크다. 따라서 세부 문단 구분과 각 문단별 의의는 해당 강해 주석을 참조하기로 하고, 본 개관에서는 일곱 인의 재앙이 여타 일곱 나팔 및 일곱 대접 재앙과 함께 갖고 있는 전반적인 구속사적 의의만 개략하면 다음과 같다.
세상 끝날이 최종적으로 도래하기 직전의 소위 말세에 상당 기간의 범우주적 대환난이 있을 것임을 보여 주는 일련의 묵시 전반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고찰할 때 이들은 결국 성도에게 죄로 오염되어 필연적으로 종말을 맞을 현 우주와 역사의 종말과 심판 과정에는 실로 각 인생이 혼자 힘으로는 감당키 어려울 정도의 대환난이 있을 것이라는 엄정한 사실을 미리 제시함으로써 성도로 하여금 그 대환난 자체에 대해서는 물론 대환난 전 후의 전구속사적 지평에 대하여 확고한 종말론적 인식과 각성을 가질 것을 경고 내지 촉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겠다.
이런 말씀 앞에서 일차적으로 우리 성도 각자는 세상 끝날 직전의 대환난의 도래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여 평소 경건한 삶을 사는 동시에 신앙의 능력과 용기를 연단하는데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결단하게 된다. 또한 그러한 대환난이 실제 닥칠 때 대환난의 겉모습만 보고 절망하지 말고 그 대환난의 이면 곧 이는 단순한 파멸과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현 역사를 종결시키시고 나아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도래시키기 위한 과정에 불과함을 확신하고. 성도에게 감당할 힘 이상의 시험을 허락지 않으시며 또 시험 당할 때 힘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추호의 흔들림 없이 끝까지 인내하여야 할 것을 각오하게 된다(고전 10:13; 히 3:14).
한편 궁극적으로는 이처럼 말세의 대환난과 나아가서는 죄로 오염된 현 역사의 최종적 종말을 분명히 선포하고 있는 성경 말씀 앞에서 우리는 태초 첫 사람 아담(Adam)의 선악과 범죄 이후부터 겉잡을 수 얼이 증폭되어온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필연성과 공의성을, 그리고 그 절대성을 새삼 생생하게 각성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처한 오늘날의 세상이 그토록 엄청난 모순과 질고에 휩싸인 원인도 인간의 범죄에 있으며, 그 결과는 대중말의 심판임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태초에서 종말에 이르는 도도한 구속사의 도정에서 각자 처한 삶의 자리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이 세상 속에서 그리고 이 세상 속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본향은 오직 새로이 도래하고 있는 신천 신지(New Heaven and Earth)의 천국임을 늘 기억하여 친국을 지향하는 역동적 삶을 살 것을 거듭 결단하게 된다.
첫째에서 넷째 인까지의 재앙들
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 소리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3 ○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4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5 ○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7 ○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다섯째 인가 순교자의 호소
9 ○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여섯째 인의 재앙
12 ○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본문 & 자료노트
신학용어-6:9-11, 순교
행 7장 자료노트 참조
신학용어- 6:17, 주의 날
눅 17장 자료노트 참조
도표-6:1-17 계시록의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
본장 연구자료 참조
도표-6:1-17 일곱인 재앙과 공관 복음의 재앙 예언 비교
계시록과 공관복음
1. 흰말의 세계적인 정복(6:2):
난리와 난리 소문(마 24:6; 막 13:7; 눅 21:9)
2. 붉은 말의 전쟁과 내란(6:4):
세계 대전(마 24:7; 막 13:8; 눅 21:10)
3. 검은 말의 흉년과 기근(6:5,6):
흉년, 기근 (마 24:7; 막 13:8; 눅 21:11)
4. 청황색 말의 전쟁, 기근, 역병, 짐승으로 인한 죽음(6:8):
기근, 온역(마 24:7; 막 13:8; 눅 21:11).
5. 성도들이 고난과 순교자의 탄원(6:9-11):
적그리스도에 의한 성도들의 고난(마 24:9; 막 13:13; 누구 21:12)
6. 지진과 하늘의 징조(6:16):
하늘의 징조(마 24:29; 막 13:24,25; 눅 21:25,26)
7. 일곱 나팔의 재앙(8:1,2): -
도표-6:1,3,5,7 하늘 보좌 앞 네 생물에 대한 묘사
계 4장 자료노트 참조
도표-6:16 본서에 소개된 어린 양
1. 죽임 당한 어린 양(5:6)
2. 일곱뿔과 일곱 눈 가진 어린 양(5:6)
3. 찬양 받으실 어린 양(5:9,12,13)
4. 진노하시는 어린 양(6:16)
5. 구원을 주는 어린 양(7:10)
6. 구속의 피를 흘리신 어린 양(7:14)
7. 성도를 정결케 하시는 어린 양(7:14)
8. 목자되신 어린 양(7:17)
9. 생명책을 가지신 어린 양(13:8)
10. 시온산에 서 있는 어린 양(14:1)
11.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인 어린 양(17:14)
12. 신부를 맞이하는 어린 양(19:7,9)
13. 성전되신 어린 양(21:22)
14.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22:1)
15. 종들외 섬김을 받는 어린 양(22:3)
보감-5:10 환난 중의 성도의 기도
본문은 일곱 인의 재앙이 진행되는 중 다섯 번째 인 재앙시 의로운 성도들이 자신들에게 임한 극심한 핍박으로 인하여 하나님깨 신원을 구하는 기도를 드린 사실을 기 록하고 있다. 이처럼 성경에는 극심한 환난 중에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로 주께 매달리는 의로운 성도들의 모습이 많이 등장하는 바 이를 모아봄으로써 환난 중에 가져야 할 올바른 신앙 자세를 깨닫고자 한다.
1.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해 주시기를 기도함(욥 13,23,24)
2. 환난 중에서도 눈동자같이 지켜주시기를 기도함(시 17:8,9)
3. 환난을 이겨낼 힘을 주시기를 기도함(시 46:1)
4. 자신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를 기도함(시 51:1-7)
5. 하나님의 인자함으로 위로해 주시기를 기도함(119:75,76)
6. 핍박하는 자를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행 7:59,60)
7.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케 됨을 감사하며 기도함(벧전 4:12,13)
8. 믿음으로 인해 받는 고난을 신원하여 주시기를 기도함(계 6:10)
9. 환난 중에도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함(계 7:17)
10. 주의 재림시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되기를 기도함(딤후 4:7,8)
원어연구-6:10, 신원하여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크디케오'( )이다. 이 단어는 '밖으로'의 뜻인 '에크'( )와 '의', '공의', '정당한 벌'이라는 뜻의 '디케'( )의 합성어인 '에크디코스'( )에서 유래한 말이다.
여기서 '에크디코스'는 공의로 상대방을 징벌하는 '복수자', '형벌을 과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에서 파생한 동사 '에크디케오'의 기본 의미는 '공의와 심판을 실행하다'이다. 여기서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한 자를 위해 벌을 내려 원수를 갚아줌으로써 '권리를 옹호해 준다'(눅 18:5), '변호하다'(눅 18:3)란 뜻이 됐다.
이 단어의 성경적 용례를 보면,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롬 12:19; 고후 7:11), 치리자 중의 범죄자에 대한 처벌(벧전 2:14)을 가리켜 사용되었다 죽은 박해자들의 범죄에 대해 징벌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단지 박해자들에 대한 개인적 원한으로 인한 보복이 아니라 그들의 악행에 대한 정당한 심판을 통하여 공의로 징벌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에서 우리 성도들은 비록 악인들에 의해 핍박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이 선악간에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기쁨으로 그 고난을 인내할 수 있는 것이다.
보감-6:1-17 말세에 성도가 기도해야 할 것 10가지
마 24장 자료노트 참조
신학용어-6:17, 주의 날
눅 17장 자료노트 참조
6:1-8 첫째 인에서 넷째 인까지의 재앙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으로 최종 도래할 현 우주와 역사의 대중말 직전에 이 새상에 있을 소위 말세의 대환난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는 본서의 본론 재 2부인 4:1-18:24가 시작되는 제 4장에서 심판의 주관자시요 원인자이신 성부 하나님의 보좌 주변의 경광(景光)을 묘사하고, 제 5장에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의 권한을 부여받아 심판을 집행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합당한 자격과 능력을 언급함으로써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의 준비가 완료된 것을 보여준 저자는 이제 본장에서부터는 심판의 권한을 완전히 취하신 예수 그리스도깨서 실제로 일곱 개의 인으로 봉인된 책 안에 기록된 내용들을 집행하시는 것에 대해 본격적으로 묘사한다.
하나님의 영으로 그리스도께서 최후 대종말 직전에 이 세상에 내리시는 재앙은 전체 일곱 인 재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곱 인 재앙 중 일곱 번째 인 재앙 안에는 다시 일곱 나물 재앙이 들어 있고. 또 일곱 나를 재앙 중 일곱 번째 나팔 재앙 안에는 또다시 일곱 대접 재앙이 들어 있다. 따라서 최후 대중말 직전에 있을 재앙은 세 개의 주된 재앙 시리즈로 구성되었고 또 이들은 상호 점충적 관계로 연속된 것이다. 그리하여 종말의 연속된 대재앙들온 '삼대 칠중 재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그 일련의 연속적인 심판의 재앙들에 대한 설명은 본문에서부터 18:24에 이르기까지 본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삼대 칠중 재앙'에 대해서는 본장 연구자료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참조하라.
본단락은 그처럼 본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곱 인, 나팔, 대접 재앙, 곧 '삼대 칠중 재앙' 중 첫 번째 칠중 재앙인인 재앙이 설명되고 있는 6:1-8:5 안에서 일곱 인의 처음 네 인 재앙을 설명하는 부분으로, 그 개념은 슥 6:1-6을 배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① 흰 말(1,2절), ② 붉은 말(3,4절), ③ 검은 말(5,6절), ④ 청황색 말(7,8절)의 네 말과 그 탄 자들은 모두 말세에 하나님의 심판을 이루는 도구들로서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세상을 심판할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네 말을 탄 자가 땅의 사분의 일만 해하는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심판한다는 것은 아직 전면적인 심판이 행해지지 않고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제한적인 심판이 행해진다는 것을 또한 암시해 준다.
한편 일곱 인 재앙과 일곱 나팔 재앙이 일곱 대접 재앙과는 다르게 심판이 전면적이지 않고 제한적이라는 점에 있어서 이 재앙들의 기간이 비교적 온건한 재앙의 기간으로 여겨지고 있는 7년 대환난기의 전반부인 전 삼년 반(11:2)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물론 여러 가지 날이 면에서 볼때 7년 대환난과 일곱 인 ․ 나팔 ․ 대접 재앙은 같은 기간을 지칭하는 상이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재앙의 기간들은 단 9:27의 '한 이레'에 관한 예언과도 연결된 것으로 블 수 있다. 결국 7년 대환난의 묵시와 소위 '삼대 7중 재앙'의 묵시들은 실상 동일한 기간에 일어날 재앙들을 각각 다른 측면에서 묘사한 것이다. 즉 전자는 대환난의 원흉인 사탄의 이면적 사역을 중심으로 대환난의 기본 전개 구조와 단계별 특징을 개괄적으로 혁면적으로 모사한 반면, 후자는 환난의 전개 양상을 보다 세부적으로 입체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세부 사항들에 있어서 양자가 어떤 방식으로 연관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수 없으며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난제들이 제기된다.
한편 본서에는 묵시와 관련된 여러 가지 난제들이 있다. 이러한 난제들을 접하게 될 때 우리는 정확히 해석되지 아니하는 상이한 문제들을 억지로 해석하여 끼워 맞추려다가 오류에 빠지는 우를 범치 말고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였다가 하나님께서 온전한 해석을 주시는 때까지 기다리는 겸손한 자세를 견지해야 하겠다. 본서에 나오는 모든 예언의 기간과 상황들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말세와 종말에 일어날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의 난해한 묵시로 주어졌으며, 또 궁극적으로는 질서 정연한 심판의 사건들이지만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되어지고 있어 하나의 심판이 다양한 관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계시록의 해석상의 난점을 충분히 감안하여 조심스럽게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들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본서에서 얻어야 할 것은 장래에 어떤 일이 정확히 어느 때에 일어날 것인가를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본서를 통해 취해야 할 것은 본서가 말하는 심판의 징조들이 보일 때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처럼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깨어 속히 오실 주님을 기쁨과 인내 속에서 기다리되 본서가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복된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승리를 보고 용기를 가지는 것이다.
6: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 소리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일곱 인 중에 하나를 때시는 그때에. -'내가 보매'는 저자 요한이 하나님의 계시를 환상을 통해 보았다는 뜻과 함께 이제 환상의 내용이 다시금 다른 것으로 전환된다는 의미를 동시에 나타내 주고 있다(Lenski). 계 5:1 주석 참조. 한편 '어린 양'으로 묘사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계 5:6의 주석을 참조하라. 다음으로 여기서 '일곱 인'은 하나님의 계시가 적혀 있는 두루마리 책에 봉해진 인을 지칭한다(5:1). 그리고 어린 양이 그 인을 떼신다는 사실은 바야흐로 어린 양이 인봉된 책 속에 기록된 묵시의 내용을 집행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온 천하 우주 중에 하나님의 계시의 책을 펴고 그 인을 뗄 자가 없었으되(53) 오직 하나님의 어린 양만이 그 일에 합당한 이였으며(5:5), 이제 그가 묵시의 내용을 집행하시기 시작하는 것이다. 계 5:2 주석 참조. 이와 관련 본장부터 18장까지는 최후 대종말의 때에 임할 대환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대환난은 다시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삼중의 재앙으로 구별되고 각 재앙은 상호 점층적 관계로 연속되어 있다. 즉 제7인의 재앙은 일곱 나팔 재앙으로 발전하고 제7 나팔재앙은 일곱 대접 재앙으로 발전한다. 본서에 나타난 이러한 삼중 재앙과 관련해서는 본장 연구자료에서 다루었으니 그곳을 참조하라. 한편 본서에 나타나는 일곱 인(印)의 재앙은 소위 공관복음서의 소계시록이라 불리는 부분(마 24:1-35; 막 13:1-37; 눅 21:5-23)과 그 순서나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본장 자료노트를 참조하라.
네 생물 중에 하나. - '네 생물'은 4:6,7에 나오는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같은 생명체를 말한다. 본문은 그 중 하나라고 하였는데 그 하나가 정확히 어느 동물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다. 단지 네 생물이 처음 네 인을 뗄 때마다 순서대로 언급되고 있으므로(1,3,5,7절) 여기서는 첫 번째 생물인 사자 같은 생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우뢰소리같이 말하되. - 우뢰 소리는 온 천하를 쩌렁쩌렁 울리는 위엄 있는 소리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엄숙한 소리를 의미한다.
오라. - 알렉산드리아 사본(A) 등과 영역본 중 RSV에는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단순히 '오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시내 사본(R) 등과 흠정역(KJV)에는 '와서 보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는 결국 이 소리가 누구를 부르는 소리인지에 대한 견해 차이를 야기시켰다. 즉 본문을 '와서 보라'로 보는 쪽은 이것을 저자 요한을 부르는 소리라고 보며(Plummer), '오라'로 보는 쪽은 이것을 그리스도를 부르는 소리(Alford, Swete), 또는 말 탄 자를 부르는 소리로 본다(Weiss, Charles). 이 가운데 그리스도를 부른다는 견해는 피조물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염원한다는 견지에서(5:13) 주장된 것이긴 하나 우뢰 소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즉 우뢰 소리는 하늘의 명령을 나타내는 소리로 그리스도를 부르는 소리로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저자 요한을 부른다는 견해는 계시록이 요한이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것이라는 견지에서 주장된 것이다(1:10,11).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본문의 문맥과 잘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네 생물 중 하나가 '오라'는 말을 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나타난 것은 말 탄 자이지 요한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은 그때마다 단지 되어진 일을 보았을 뿐이기 때문이다(2,5,8절). 그러므로 위의 세 견해 중 가장 타당한 견해는 말 탄 자를 부르는 소리라는 견해이다(Ladd).
6: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흰 말. - '흰 색'은 본서에서 종종 승리와 관련하여 사용된 상징 용어이다(11절; 2:17; 3:4,5,18; 19:11). 그리고 '말'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볼 때 대개 '힘'이나 '세력' 따위를 상징하였다(신 17:16; 시 33:17; 호 1:7). 따라서 본절의 흰 말은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된 말 탄자는 승리자와 정복자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 탄자. - 탄 자가 승리자요 정복자라고 해서 그를 그리스도라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는 전 심판의 중심 인물이며 지금 인을 떼고 있기 때문이다(1절). 그리고 또한 첫째 인부터 넷째 인을 떼기까지 말이 나오는데 둘째, 셋째, 넷째 말이 흉악한 재앙을 가져다 주는 말이기 때문에(3-8절) 첫째 말 또한 그러한 동일 개념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Bruce, Swete). 그러나 '흰색'은 본서에서 대개 선한 것을 상징하기 때문에 본절의 흰 말 탄 자를 일방적으로 악한 세력의 존재라고 보기에도 무리다. 그러므로 본문의 흰 말을 탄 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난해한 문제이다. 아마도 이러한 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본절의 흰 말을 탄 자를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소식이지만 불신자들에게는 심판의 소식인 복음 전파자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Greijdanus, Ladd). 그러나 이러한 견해도 완전한 해석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복음에 대한 언급은 10장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10:1-11,13; 14:6). 결국 본문은 어떻게 이해해도 풀리지 않는 난점들을 끊임없이 제공해줄 뿐 우리는 본문에서 명쾌한 답을 아직은 얻어낼 수 없는 입장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본문의 '흰 말 탄자'가 하나님의 섭리의 일부로 이 땅에 등장하여 끊임없는 정복 전쟁을 시도하므로 이 땅의 평화를 깨뜨린 한 특이한 정복자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본서는 매우 심오하고도 난해한 상징들로 미래에 관한 일들을 계시한 책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난해하고 심오한 상징들을 너무 구체적으로 무리하게 해석하려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오직 겸손한 자세로 주가 주시는 말씀을 이해해야 하며, 또 정확지 않은 것은 정확지 않다고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바른 해석이다.
활을 가졌고. - 성경에서 '활'은 상대를 무찌르는 능력을 상징한다(슥 9:13; 합 3: 8,9). 따라서 흰 말을 탄 자가 활을 가진 것은 대적들을 물리치기 위함으로 볼 수 있다.
면류관을 받고…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 여기서 면류관은 승리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 사실은 면류관을 받은 자가 이기고 또 이기려 했다는 본절 자체의 표현에 의해 명백히 지지 받는다. 한편 이처럼 흰 말 탄 자를 누구도 당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께서 친히 보내신 심판의 수행자이기 때문이다.
6: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4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붉은 다른 말. - 일곱 인 중에 둘째 인을 뗄 때에 붉은 말이 나왔다. '붉다'는 것은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붉은 말'은 전쟁을 의미한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 전쟁을 사도 요한 당시의 시대와 연관시켜 로마 군대가 일으키는 전쟁(Holtzmann, Moffatt)으로 보거나 또는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간의 최후의 싸움(Bede, Grotius)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본장에서부터 제 8장까지에서 언급되고 있는 일곱 인(제 6,7장), 일곱 나팔(제 8-14장), 일곱 대접(15-18장) 재앙의 때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한 때에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종료될 소위 말세의 '7년 대환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할 때, 이 전쟁은 그러한 소위 말세의 7년 대환난기의 초기에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쟁을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여튼 전쟁이 대종말의 한 유력한 징조인 것은 소위 소계시록이라 불리는 마 24장에 나타난 예수의 말씀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허락을 받아. - 하나님의 주권은 그분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의 모든 영역에 미친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서로 싸우며 죽이는 전쟁이 표면적으로 볼 때에는 인간들의 이해 관계에 얽힌 적대 행위로만 보이나 실상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함이 없이는 발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께선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일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마 11:29). 한마디로 본문은 하나님의 주권은 그가 지으신 모든 영역에 절대적으로 미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여기서 '땅'은 어느 제한된 한 지역이 아니라 세계 도처를 뜻한다. 즉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심판의 집행자는 먼저 세계 도처에서 분쟁을 일으킨다. 이러한 본절은 세상 끝에는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마 24:6,7)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큰 칼. - '큰 칼'은 대량 살륙을 의미한다. 전쟁은 언제나 다수의 희생자를 상정하며 무자비한 학살이 용인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전쟁은 무수한 생명을 살륙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큰 칼'은 앞의 '붉은 말'과 함께 유대 묵시 문학에서도 친숙한 표현으로서 거기서도 역시 전쟁을 상징한다(위경 에녹1서 56:7; 에스라서 5:9:6: 24).
6: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검은 말. - 성경에서 '검은 색'은 종종 슬픔과 애곡과 황폐를 상징했다(사 50:3; 렘 4:28; 애 5:10, Bengel, Vincent). 그와 마찬가지로 검은 말이 나오는 셋째 인의 재앙 역시 황폐와 기근을 상징한다.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 이 저울은 양식의 무게를 달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큰 흉년과 기근이 닥쳤을 때 곡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곡식을 배급 주기 위해 그 무게를 다는 광경을 연상시켜 준다(겔 4:9-11).
6:6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보리 석 되로다. - 로마의 화폐 단위였던 한 데나리온(Denarius)은 특별한 기술이 없는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화폐 가치였다(마 20:2). 본서 14권 성경 총론, '성경 도량형 환산표' 참조. 따라서 하루종일 일한 품삯을 가지고 겨우 밀 한 되나 보리 석 되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은 엄청난 기근임을 시사해 준다(Walvoord). 혹자는 본문에 나오는 밀과 보리의 값은 신약 시대 당시 팔레스틴 지방의 평균 물가의 12배나 되는 가격으로 이것은 기근으로 인해 발생할 엄청난 인플레를 암시해 주고 있다고도 한다(Beckwith, Ladd). 참으로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군에 의해 포위당해 외부로부터 식량과 여타 생필품이 공급되지 못한 구 소련의 레닌그라드에서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겨우 한끼의 빵을 살 수 있는 가치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말세의 대환난기에는 그와 같은 일이 이 세계에 보편적인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 감람유(olive oil)와 포도주는 웬만한 가뭄에도 견뎌내는 식물이다. 그래서 심각한 가뭄이 발생하여 밀과 보리 같은 주된 양식이 떨어졌을 때에는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가 생산되는 지역의 사람들은 그것들을 대신 주식으로 삼기도 하였다(Beckwith).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본장에 언급된 셋째 재앙은 최후의 한계 상황에 달한 기근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비록 저울질을 하지만 저울에 달아 먹을 곡식이 아직은 있었고, 또한 이처럼 부족한 곡식에 대한 대용물을 하나님께서 남겨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가 언제까지나 지속되지는 않는다. 이 재앙들은 보다 더 고통스러운 재앙들의 서막이기 때문이다.
6:7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청황색 말. - '청황색'(클로로스)은 전통적으로 공포와 죽은 시체의 색으로 인식되었다. 그리스에서는 이 색이 특히 공포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Homer). 본절에서도 이같은 색을 띤 말은 공포와 질병으로 인한 사망을 상징한다.
그 탄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 여기서의 사망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에 의한 영원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의 육체적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음부'(陰府)는 죽은 악인의 영혼이 가서 최후의 심판 때까지 머무는 중간기 처소를 가리킨다. 그랜드 종합 교리, '종말론' 참조. 따라서 사망 뒤에 음부가 뒤따른다는 것은 공포와 질병의 심판에 의해 이 세상 사람들이 육체적 죽임을 당하고 나서 영벌의 심판을 기다리는 저주 아래 놓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땅 사분 일. - '땅'은 인간들이 사는 온 세상을 지칭하며, 4분의 1은 면적에 있어서의 4분의 1(Henges-tenberg)이라기보다 땅 위에 전면적인 환난이 일어나되 그 정도에 있어서의 4분의 1을 뜻한다(Ellicott). 따라서 본절은 온 세상에 환난이 있되 아직은 제한적인 것임을 보여 준다.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 - 겔 14:21에 열거된 네 가지 재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한 이들 재앙은 예수께서 예언하신 '지진과 기근과 온역'과도 유사하다(눅 21:10). 왜냐하면 '사망'은 헬라어로 '다나토스'( )로서 '온역'이란 뜻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전쟁과 기근, 그리고 온역과 질병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편 '검'은 분명히 전쟁을 의미하며 '흉년'은 글자 그대로 기근을 뜻한다. 그러나 '땅의 짐승'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추측컨대 초대 교회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이해하자면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아니면 상징적인 의미로서 예수 재림시까지 온 세상에 횡행하는 적그리스도(요일 2:18)를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으나 확실히 단정할 수는 없다.
6:9-11 다섯째 인과 순교자들의 호소
본문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으로 최종 도래할 현 우주와 역사의 대종말 직전에 이 세상에 있을 소위 말세의 대환난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는 본서의 본론 제 2부인 4:1-18:24 안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삼대 칠중 재앙' 중첫 번째 재앙인 일곱 인 재앙의 다섯 번째 인 재앙이 설명되고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앞단락에서 일곱 인 재앙 중 처음 네 인에 대해서 설명하였으며, 그 네 인은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말 탄 자들에 관한 환상이라는 것을 밝혀 주었다. 그러나 본문에서 드러나고 있는 다섯 번째 인은 앞의 네 인과 그 성격이 약간 다르다.
즉 본단락의 내용을 형성하고 있는 다섯 번째 인은 세상에 내려지는 재앙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무죄하게 죽임 당한 순교자들이(9절) 하나님께 그들이 흘린 무죄한 피에대해 공의(公義)의 보응(報應)을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데(10절), 하나님께서는 때가 차면 그에 대해 보응해 주시겠다고 예고하는 내용(11절)을 담고 있다. 말하자면 본문은 앞의 네 인의 경우와 같이 실재적인 재앙의 내용이 나타나고 있지 않고 있으며 그러한 이유 때문에 다섯 번째 인 재앙은 첫 번째 인부터 네번째 인까지의 재앙과는 다른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본단락의 내용이 실재적인 재앙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고 해서 본단락이 하나님의 재앙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본문은 명백하게 무죄한 피를 흘린 악인들에 대한 징벌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 징벌이 때가 찰 때까지 유보될 뿐이다. 오히려 무죄한 피를 흘린 죄에 대한 징벌이 실행되는 때에는 앞의 네 인의 재앙보다 더 무서운 징벌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다섯 번째 인은 분명히 재앙에 관한 기사(記事)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본문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있다.
① 하나님의 심판에는 정해진 때가 있으므로 성도는 조급해 하지 말고 인내하며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벧후 3:8-10).
②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고난 받고 핍박 받으며,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것에 대해 보응해 주시므로(마 5:11,12) 성도는 의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를 위해 열심히 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마 6:33; 고후 5:8-10).
6: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말씀과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 - 다섯 째 인을 뗄 때 등장하는 이는 말을 탄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 말씀을 증거하다가 순교당한 자들의 영혼들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이 순교할 것을 예언하셨거니와(마 24:9; 막 13:9-13; 눅 21:12) 그처럼 순교당한 자들이 하늘에서 하나의 무리로 있어 하나님께 속히 무죄한 자신들의 피를 흘리게 한 죄에 대한 심판이 있게 하기를 간청한다. 한편 이 순교자들의 무리는 좁은 의미에서 초대 교회 당시 로마 제국의 박해로 인해 순교 당한 자들의 영혼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넓게는 구약 시대 이래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전하다가 순교 당한 선지자 및 하나님을 신앙한 탓에 악인들의 핍박을 받아 죽임 당한 모든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제단 아래 있어. - 이 표현은 분명하게 희생 제물이 번제단 앞에서 희생되어 그 피가 번세단 밑에 뿌리시도록 규정되어 있는(레 4:7) 구약 시대의 희생제사 개념을배경으로 하고 있다(Ladd). 즉 본문은 순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증거하다가 악인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을 하나님의 제단 앞에서 희생된 것으로 간주하여(딤후 4:6) 이와 같이 제단 아래 바쳐진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6: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 - '대주재'(大)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스포테스'(Beonirns)는 '소유권'을 나타내는 용어로 본래 '노예의 주인들'(딤전 6:1; 벧전 2:18)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 낱말이 종종 만유의 창조자요 소유자이신 '하나님'(눅 2:29; 행 4:24)과 '예수 그리스도'(벧후 2:1; 유 1:4)에게 적용되고 있다. 여기서는 절대 권능을 지니신 하나님을 지칭한다(Johnsen). 한편 대주재를 수식하는 말인 '거룩하고 참되신'에 대해서는 계 3:7의 주석에서 상세히 다루었으니 그곳을 참조하라.
땅에 거하는 자들. - 본서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가리켜 종종 '땅에 거하는 자들'로 표현하고 있다(3:10; 11:10; 13:12; 14:6; 17:8). 여기서도 '땅에 거하는 자들'은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자들', 곧 사단의 자녀들로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순교자들을 무고하게 죽인 자들을 지칭한다. 우리 피를 신원하여. '신원하다'는 뜻의 헬라어 '에크디케오'( )는 성경에서 형벌이나 보복의 개념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한 악인들에게 보웅의 심판을 해달라고 하나님께 탄원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한편 순교자들이 스데반의 경우처럼(행 7:60) 그리스도의 사랑에 입각해서 자신들을 죽인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있기를 기도하지 않고 복수를 요청한 것은 이 순교자들이 사랑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궁극적인 견지에서 하나님께 탄원한 것이다. 실상 스데반의 경우도 악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한 것이지 결코 악인들이 당할 하나님의 궁극적 심판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더욱이 원수 갚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순교자들은 이 사상에 기초하여 이와 같이 하나님께 그 보응을 탄원하고 있는 것이다(롬 12:19). 이와 유사한 경우로 우리는 창 4장에서 가인의 손에 무고하게 살해 당한 아벨의 핏소리가 하나님께 호소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있다(창 4:10). 그때 하나님께서는 무죄한 피를 흘린 자는 반드시 그 죄에 대한 보응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시기 위해 즉각적으로 가인을 저주하셨다(창 4:11,12).
6: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흰 두루마기. - 성경에서 '흰 옷'은 '정결'과 '의로움' 또는 '승리'를 상징한다(3:4). 따라서 순교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흰 두루마기를 받았다는 것은 그들이 승리와 영생을 하나님으로부터 보장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잠시 동안 쉬되. - 여기서 '잠시'라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 개념에 의거한 것이지 인간의 입장에서 짧은 시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벧후 3:8). 다음으로 여기서 잠시 '쉬라'는 말은 하나님의 궁극적 인공의의 심판이 반드시 있을 것을 믿고 마음 편히 있으라는 뜻인 동시에(Alford, Plummer) 호소하기를 잠시쉬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Augustine, Bengel).
동무 종들과 형제들. - 이들은 본문의 탄원이 있을 때부터 마지막 순교자가 나오기까지의 사이에 순교할 모든 순교자들을 지칭한다. 한편 본절에서 동무 종과 형제가동일한 사람들을 지칭한다는 견해(Alford)가 있는 반면, 동무 종은 순교자 중 사도들과 같은 전도자들을, 형제들은 평신도들을 지칭한다는 견해(Plummer)가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은 전도자들을 가리켜 대개 하나님의 종으로 지칭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롬 1:1; 갈 1:10; 약 1:1; 벧후 1:1; 유 1:1) 후자의 견해가 보다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수가 차기까지. - '차다'에 해당하는 동사 '플레로오'( )는 '가득차다'라는 뜻 외에 '마치다', '다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본문은 '정해진 순교자의 수가 다 차기까지'란 말로 볼 수도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소명을 다하기까지'란 말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혹자도 이것을 '그 소명을 다하기까지'로 해석하기도 한다(Cooley). 그러나 본절은 문맥상 '죽임을 받는' 순교자의 수에 대해 언급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한글 개역 성경대로 본문은 정해진 순교자의 숫자가 다 차기까지란 의미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물론 성도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가 해야할 이 땅에서의 직무를 다해야 하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지만, 본문은 그러한 내용보다는 숫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므로 '그 수가 차기까지'로보는 것이 타당하다.
6:12-17 여섯째 인의 재앙
최종적인 대종말 직전에 이 세상에 내려질 재앙의 내용이 안팎으로 기록되어 있는 책에 봉(封)해져 있던 일곱 개의인(印) 재앙 중에서(5:1) 처음 네 인 재앙은 네 말과 그말을 탄 자들에 대한 환상이었고(6:1-8), 그 다음 다섯 번째의 인 재앙은 무죄하게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백성들의피에 대한 보응(報應)이 잠시 유보된다는 것에 관한 내용이었다(6:9-11). 그리고 이어서 본단락에서는 여섯 번째의인 재앙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는데, 이 여섯 번째 인에 의한 재앙은 처음 네 인의 재앙과는 달리 그 규모나 강도(强度), 범위에 있어서 상당히 강력하고 대대적이다. 즉 처음 네 인의 재앙은 지구의 사분의 일에만 영향력을 미치는 동시에 간접적 수단에 의해 재앙의 고통이 가해졌으나, 여섯 번째 인에 의한 재앙은 전체적이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매우 강력한 재앙의 영향력이 천체(天體)에까지 미치며 직접적인 수단에 의해 극심한 재앙의 고통이 가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여섯째 인 재앙으로 인해 천체와 지구에 일어날 대변동에 대해 본문이 보여 주는 바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천체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은 땅에 떨어지며하늘이 떠나가고(마 24:29: 벧후 3:10), 지구에서는 지진이 나고 산과 섬이 옮기워(12-14절), 이 세상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대혼란과 공포가 있게 된다. 때문에 심판을 당하는 이 세상의 모든 부류의 사람들은 그 고통을 피하고자 은폐될 만한 곳으로 숨으나(15절) 그 고통에서 피할 수 없어 차라리 산과 바위들에게 자신들 위에 떨어져 죽게해 달라고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16절). 하지만 그것은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적이어서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7:3) 이외에는 아무도 그 심판으로부터 도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17절).
최종적인 대종말 직전에 있을 하나님의 재앙은 분명히 그 재앙이 진행될수록 그 규모가 커지고, 강도가 세지며, 범위가 확대되어 보다 강력하고 전면적으로 행해진다. 그래서 재앙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점점 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극심한 환난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 본문은 그러한 재앙의 점진적 강화(進的强化)를 분명히 보여 줌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강조해 주는 동시에, 앞으로있을 일곱 나팔, 대접 재앙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심판인가를 암시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심판이 임하지 않은 평온한 때를 살아가는 지금 이 때에 빌라델비아 교회의 교인들처럼 믿음을 굳게 지키고 끝까지 인내할 뿐만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많은 열매를 맺어, 우리 시대에 닥칠지도 모를 시험의 때를 면하도록(3:8,10) 미리미리 준비하는 현명하고 부지런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6: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큰 지진이 나며. - '지진'은 성경에서 대체적으로 하나님의 징벌이나 징계 또는 심판을 경고하는 것 등으로 언급되어져 왔다(겔 38:19; 욜 2:10; 암 8:8; 학 2:6; 마 24:7). 땅에서 수확을 얻고, 땅을 기반으로 사는 인간에게 있어서 그 땅이 갈라지고 움직이며, 인간을 집어 삼킨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지진은 인간에게 땅은 의지할 것이 못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럼으로써 하늘에 대한 소망을 가지도록 가르치는 효과적인 하나님의 경고 수단이 된다. 본절에서도 이것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멀지 않았음을 경고해 주는 경고물로 언급되고 있다(막 13:8). 한편 일부 학자들은 본절 이하 14절까지에 언급된 우주의 대격변 현상을 상징적으로 이해하여 세계 도처의 권력 체제가 전복되고 변동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는데(Clarke, Grotius) 개연성(蓋然性)만 가질 뿐 단정할 수 없다.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 하나님의 최후 심판 날이 다가오면 그 전에 우주적 대이변 현상이 있게 될 것이라는 내용은 신구약 성경에서 자주 예고된 바이다(사 13:10; 50:3; 렘 4:23; 겔 32:7,8; 욜 2:31; 3:15; 암 8:9,10; 미 3:6; 마 24:29; 막 13:24; 눅 21:25). 그리고 이 예언의 말씀들과 같이 종말의 때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거대한 이상 현상이 있게 될 것이다. 본문은 그러한 현상을 해와달의 변화로 묘사해 주고 있다. 한편 '총담'은 검은색의 모포를 가리킨다. 공동번역은 이것을 '검은 머리털로 짠 천'으로 번역하고 있다.
6: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의 별들이… 땅에 떨어지며. - 본절은 하나의 비유인데, 천체의 별들이 떨어지는 것을 마치 큰 바람에 무화과나무의 설익은 과실들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한편 어떤 학자들은 '별'이 일반적으로 통치자나 위대한 인물을 상징한다는 견지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을 이 세상의 위대한 지도자나 아니면 교회의 지도자가 축출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단 8:10. Stem). 그 타당성은 희박하지만 13절의 주석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본절의 내용이 정치 체제의 붕괴와 대변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면 위의 견해에도 일리는 있다. 하여튼 본문에서 분명한 사실은 본문을 문자적으로 보든 상징적으로 보든, 본서 저자는 소위 말세의 대환난기에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큰 환난 속에 처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6: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 본절은 사 34:4에 언급된 내용과 유사하다. '종이 축'은 두루마리로 된 책을 말하는데, 이 두루마리 책은 둘둘 말리워져 보관되는 것으로, 만일 읽다가 부주의로 찢어져 둘로 나누이면 종이가 말려져 있던 탄력으로 갑작스럽게 양쪽으로 오그라지게 된다.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다'는 것은 이와 같은 현상을 설명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빗대어 천체의 변동을 언급한 것은 장차 우주에 상상할 수 없는 대혼란이 일어날 것을 예고한 것이다.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 렘 4:24의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면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와 나 1:5의 '그로 인하여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란 구절을 연상시켜 주는 구절이다. 산은 일반적으로 영구히 움직이지 않는, 항상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는 자연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지고 있는 대상이다. 그러한 산도 소위 말세의 대환난기에는 아이들의 장난감처럼 옮겨지며, 바다의 섬들도 옮기워 없어진다는 것은 인간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재난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본절의 내용을 상징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주가 큰 혼란 속에 빠지는데 지구 위의 산 정도가 움직이고 없어지는 것은 전능자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아주 하찮은 일에 불과할 것이며 설령 본절의 내용이 상징적인 것이라 해도 엄청난 재난을 예고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한편 우리 모든 성도가 알아야 할 것은 이처럼 우주적 대격변 현상이 있더라도 그 후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게 된다는 것이다(벧후 3:10-13; 계 21:1). 그리고 그때 성도들은 그곳에서 즐거이 하나님과 동거하게 될 것이므로(21장)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6: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본절에는 일곱 부류의 사람들이 열거되고 있다. 7은 완전수이므로(계 1:4 주석 참조) 이처럼 일곱 부류의 사람들을 열거한 것은 땅에 사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다 포함됨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즉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받을 대상에는 신분적으로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무론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이 다 포함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본문은 인간을 일곱 부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왕으로부터 종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언급된 것 또한 이것이 모든 사람을 지칭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한편 이 왕으로부터 종에 이르기까지란 오늘날의 식으로 말하면 국가 최고 지도자로부터 가장 빈곤한 계층에 이르기까지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왕족들.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기스타네스'(Heyaraves)는 '높은 사람들', 또는 '고귀한 사람들'로도 번역할 수 있는 단어로,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장군들. - 이에해당하는 헬라어 '킬리아르코이'( )는 본래 천부장을 지칭하는 말이다(막 6:21). 여기서는 군대에서 높은 계급을 가진 자를 뜻한는데 오늘날로 말하면 고위 장교들이라 할 수 있다.
부자들과 강한 자들. - '임금과 왕족과 장군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지배층이라면, '부자와 강한 자들'은 재력과 힘을 가진 지배층이다.
종. - 이제까지 열거된 자들과는 상반된 계층으로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는 하층 계급에 속한 자이다. 이들은 세상에서 고생하고 천대받는 불쌍한 사람들이긴 하나 이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없다. 즉 그 심령 가운데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세상에서의 지위, 신분에 상관 없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두려워 떨 수밖에 없으며 지옥 형벌을 면할 수가 없다.
자주자. - 특정한 지배 계급도 아니고 그렇다고 종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예속되어 있지도 않은 일반 서민들을 지칭한다.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 사 2:19에도 본절과 같은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12-14절에 언급되어 있는 것과 같은 우주적 대격변 현상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의 때가 이르렀음을 나타내 주는 전조(前兆)이다. 그러므로 죄인들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은밀한 곳에 자신의 몸을 숨기려 든다. 그러나 성경은 '내가 주의 신을 떠나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 139:7,8)라고 일러주고 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그 어느 곳에서도 숨을 수 없는 것이다.
6: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우리를 가리우라. - 유사한 내용이 호 10:8; 눅 23:30 에도 나오니 참조하라.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심판의 권능을 보고 무서워서 굴과 산의 바위 틈에 숨었으나(15절) 도저히 자신들을 숨기울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손길에 빠지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며 산과 바위에게 자신들을 죽여 줄 것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은 산과 바위에 깔려 죽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것보다 한결 나은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편 이러한 본문을 통해 우리는 비록 죄인은 용서하시되 죄는 도무지 용납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만큼 무서운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Walvoord). 그러므로 우리는 때가 늦기 전에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극렬한 진노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오직 그리스도라는 안전한 피난처로 피하여야 할 것이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 - '보좌에 앉으신 아'는 하나님을 지칭한다. 계 4:2 주석 참조. 그 하나님의 얼굴은 인간이 죄인의 신분으로서는 감히 볼 수 없는 것으로 죄인인 인간이 얼굴을 보면 그는 살 수 없게 된다(출 33:20). 한편 여기서 하나님의 얼굴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얼굴을 가지고 계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이다. 하나님은 육적 존재가 아니라 영적 존재이시므로 형체가 없으시다(약 1:17). 따라서 하나님의 낯은 하나님을 의인화시켜서 표현한 것이다.
어린 양의 진노. - 여기서 '어린 양'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계 5:6주석 참조. 그런데 양은 대개 온유를 나타내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어린 양이 진노했다는 본절의 표현은 매우 역설적이다. 그러나 본서가 말하는 어린 양은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심판의 권세를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신(요 5:22) 사자와 같은 분이기 때문에(5's) 결코 상치되는 묘사가 아니다. 즉 어린 양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때(17절)에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의 권세를 받은 심판의 집행자이시기 때문에 종말에 그가 악인들에 대하여 진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 - '큰 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헤 헤메라 헤 메갈레'( )로 '날'과 '큰' 앞에 각각 관사가 있어 '큰'이란 말이 매우 강조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역사상 지금까지 있어 왔던 일반적인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최후 심판날을 가리킨다. 특별히 구약 성경에서는 이날이 '여호와의 날'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날은 여호와께서 맹렬히 진노하시는 최후의 날로 묘사되어 있다(사 13:6,9; 겔 13:5; 욘 2:11; 습 1:14).
누가 능히 서리요. - 나 1:6의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와 말 3:2의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란 구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본문은 하나님 앞에 설 자가 그 누구도 없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 인간은 죄를 사함받지 못한 상태로는 아무도 거룩하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써 의롭다 칭함받고서야 그의 앞에 설 수 있다(엡 3:12).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자신의 육신만을 위하여 살 것이 아니라 영 혼까지도 돌아보아 예수를 주로 영접하며 그리하여 하나님과 화목함으로 죄와 사망의 자리에서 건짐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롬 5:10,11; 8:10,11).
연구자료
계시록의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
계시록은 이제 결정적으로 현우주와 역사가 종결되고 마침내 신천 신지가 개시되는 대종말이 최종 도래하기 직전의 말세(末世)에 상당 기간에 걸쳐 범 우주적으로 대환난이 있을 사실을 상호 점진적 강도를 더해가며 연속하는 관계에 있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묵시로 보여준다.
이들은 각각 7중으로 된 재앙을 한 단위로 하는 삼대 7중 재앙(三大七重災殃)인 동시에 각 재앙은 서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각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이 곧 다음 일곱 재앙 전체를 내포하게 되어 결국 전체가 하나의 재앙이기도 한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한편 '7'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 기간과 관련된 숫자로서 점진적 사역의 완성 및 종결과 그로 인한 안식 또는 점진적 사역으로 완성된 전체를 상징하는 숫자이며, '3'은 삼위 일체 하나님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따라서 이 일련의 삼대 7중 재앙은 7단계로 세상을 완전하게 창조하신 삼위 하나님이 7단계로 죄로 오염된 세상을 완전하게 종결시키실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이는 결국 창조도 심판도 모두 다 하나님의 섭리임을 보여 주고 있다(롬 11:36).
끝으로 말세에 일기 시작하여 점차 강도를 더해가다가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 직전의 현세상 문명의 대 파국에까지 이를 이 삼대 7중 재앙의 묵시들과 소위 '7년 대환난'의 묵시들은 전자가 세부적으로 후자가 개괄적으로 또는 전자가 재앙 자체의 전개 과정 에 치중하는 반면 후자는 대환난의 원흉인 사탄의 사역에 치중하는 그 양상의 차이는 있지만 양자가 동일한 말세의 대환난에 대한 묵시 들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이 둘은 서로가 다른 측면에서 말세의 대환난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1. 일곱 인 재앙
1) 흰말, 큰 전쟁에서의 승리와 끝없는 정복(6:1,2)
2) 붉은 말, 전쟁과 반란, 살인으로 평화가 붕괴됨(6:3,4)
3) 검은 말, 극심한 기근, 인플레로 인한 경제 파탄(6:5,6)
4) 청황색 말, 전쟁과 기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6:7,8)
5) 순교자의 영혼들이 하나님께 호소함(6:9-11)
6) 지진과 천체의 대혼란으로 악한 자들이 두려워함(6:12-17)
7) 2. 일곱 나팔의 재앙
1)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내려 땅과 식물의 1/3이 불탐(8:1-2,7)
2) 불붙는 큰 산이 바다에 던져져 바다 생물과 배의 1/3이 소멸됨(8:8,9)
3) 쑥이란 이름의 큰 별로 인하여 강과 물샘의 1/3이 쓰게 됨(8:10,11)
4) 전체 밤낮의 1/3이 어두워짐(8:12,13)
5) 황충이 다섯 달 동안 불신자들을 괴롭게 함(9:1-11)
6) 네 천사와 2억의 마병대가 사람의 1/3을 죽임(9:13-21)
7) 3. 일곱 대접의 재앙
1) 짐승의 표를 받은 자와 우상 숭배자들에게 독한 헌데가 생김
(11:15-19; 16:2)
2) 바다가 피같이 되어 그 속의 모든 생물이 죽음(16:3)
3) 강과 샘이 피로 변해 불신자들이 그 피를 마심(16:4-7)
4) 태양이 뜨거워져 불신자들을 태움(16:8,9)
5) 불신자들이 어두움과 질병으로 큰 고통을 당함(16:10,11)
6) 귀신의 영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그의 세력들을 모음(16:12-16)
7) 번개, 지진, 우박으로 큰 성 바벨론이 멸망함(16: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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