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생각 / 노마드 / 20240219
최근에 운동을 크로스핏에서 헬스로 갈아탔다. 오랫동안 크로스핏을 해왔는데 한번 다친 어깨에 계속 무리가 가서 운동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두 달 정도 게으름 피우며 운동을 안 하다가 새해를 맞아 헬스PT를 받기로 했다. 마침 집에서 3분 거리에 있고 비용도 저렴한 곳을 발견했다. 헬스는 기구를 이용해서 특정 부위의 근육만 자극하기에 좋은 운동이다. 크로스핏보다 운동 강도가 낮아 해봄직했고, 큰 퍼포먼스 없이 근육 하나에만 집중해서 하는 운동이라 새로웠다. 하지만 혼자서 기구를 사용하기란 아직 익숙치 않다. PT가 없는 날에도 혼자 복습도 해보겠단 다짐을 하곤 했지만 별로 성공한 적은 없다. 며칠 전엔 무슨 바람이 들어서인지 혼자 운동하는 대신 오랜만에 바깥에 나가 달리기나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만에 달리는 거였더라? 한때 꾸준히 달리기를 하려고 <러너스 다이어리>라는 책까지 사두었다. 마지막 기록을 찾아보니 지금으로부터 5개월 전이다. 오랜만에 달리는 거니 속도를 내기보다 천천히, 오래 달리는 것에 집중해야겠다. 생각보다 달리기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달렸던 5개월 전에는 2킬로미터만 달려도 숨이 차고 어깨도 아팠다고 적혀있는데, 이날은 숨이 차긴 해도 5킬로미터까지 꾸준히 달릴 수 있었다. 물론 아주 느릿느릿이었지만 말이다.
요즘은 달리기보다 하루에 한 번 일부러 시간 내어 걷기를 자주 한다. 걸을 때도 그렇지만 달릴 때도 종종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달리다가 내딴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좋은 글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 여러 작가들의 글쓰기 작법서를 읽어왔으니 그런 간접경험이 내 판단과 기준에 큰 작용을 하긴 했겠지만, 나름 나만의 생각이 정립된 것 같다, 이제는. 혹시나 이 생각이 달아나버릴까봐 달리는 속도를 조금 늦추고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장앱을 열었다. 기억력 꽝인 나는 그때그때 메모해두지 않으면 금세 까먹고 만다. 나는 메모장앱에 ‘쉬운 글, 궁금한 글, 울리는 글’이라고 적었다.
‘쉬운 글, 궁금한 글, 울리는 글’이라는 생각은 그때 내가 읽던 책 세 권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류시화가 쓴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는 쉽게 잘 읽히는 글이었다. 조지 손더스가 쓴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에 나오는 러시아 거장들이 쓴 단편소설들은 궁금하게 만들어서 흥미로운 글이었다. 은유가 쓴 <글쓰기의 최전선>은 문장 하나하나 울림이 커서 죄다 밑줄 긋고픈 글이었다.
류시화의 글은 마치 맛있게 차려진 한 끼 식사 같은 느낌이다. 한 편 한 편 읽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고 삶이 위로되고 앞으로의 일에 용기가 생긴다. 특히 지난 연말은 번아웃 같은 게 심하게 와서 마음이 고달팠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이 내게 큰 여운을 남겼다고 본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힘듦, 일에서 오는 고단함 들을 어루만져주었다. 그리고 글들이 읽기 수월했다. 글이 쉽다는 건 문장이 어렵지 않다는 뜻도 되지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하다는 뜻도 된다. 근데 이건 아마도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주관적인 관점일 것이다. 각자 처한 배경, 겪은 경험들에 따라 읽히는 부분이 다 다를 테니까. 누군가 쉽고 재밌게 읽었다는 책을 나는 억지로 읽다가 몇 장 넘기지도 못하고 덮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어떤 책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쉽고 명확하게 읽혔다는 건 그 당시 나의 상황과 경험이 작가의 글과 잘 맞아떨어진 것일 테다. 사람 관계에서도 유독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가 있다. 그건 그와 나의 생각, 환경,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 들이 잘 맞는 것이다. 그러니 쉽게 잘 읽히는 글은 내 입장과 작가의 입장이 똑 떨어지는, 어쩌면 시절인연 같은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라는 책은 조지 손더스라는 작가가 러시아 거장들의 단편소설을 가지고 와서 어떻게 단편소설을 읽으면 좋을지 수업을 하듯 쓰인 책이다. 평소 소설을 잘 읽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최근 읽은 소설들 중 몰입감이 상당히 높았다. 천일야화처럼 그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이야기.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조마조마해서 숨 죽이며 페이지를 넘기곤 했다. 때론 빨리 그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어 페이지를 읽는 속도가 나도 모르게 빨라지곤 했다. 그야말로 페이지터너. 톨스토이, 체호프, 고골 같은 작가들의 이야기 짓는 법에 놀라움을 느꼈다. 역시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 분야는 소설이 일인자인가 싶다. 물론 재미라고 해서 꼭 왁자하게 웃을 수 있는 재미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감동, 안타까움, 허무함 같은 다양한 인간 감정들에도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소설들이 내겐 그러한 재미를 주는 책이었다.
마지막으로, <글쓰기의 최전선>. 작가 은유의 글은 나를 감탄하게 한다. 비록 짧게 쓰인 문장 하나임에도 그 문장을 읽고 나면 그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잠시 머물러 그 의미를 곱씹어보게 된다. 문장 하나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그런 문장들이, 그의 책에 수두룩이다. 이건 지식하고는 또 다르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알게 해주는 글도 훌륭하지만, 글쓴이의 사유와 경험의 깊이가 느껴지는 글을 읽는 게 나는 더 좋다. 그것이 오히려 지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재밌거나 쉽게 읽히는 글은 굳이 밑줄을 긋지 않지만, 한 번 더 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래서 울림이 가득한 글에는 마구마구 밑줄을 긋고 필사하고 싶어진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 하나. 그렇다면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고, 어떤 글을 쓰고 싶은 걸까? 나는 지금 셋 다에 해당하는 글을 못 쓰고 있고, 셋 다 쓰고 싶은 마음만 굴뚝 같다! 그래도 진득하게 쓰다 보면 언젠가 셋 중에 한 가지 정도의 글은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있다. 한 오 년 쯤 걸리려나. 핫. 아무튼 꾸준히 써 보자. 그리고 종종 달리자. 달리면서 또 좋은 생각을 얻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