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배 시인이 만난 문인들(17)
운추당 이 숙 수필가
김 송 배(시인)
조경희 선생님이 예총회장으로 재임할 때 무시로 회장실을 출입하던 분이 운추당(雲秋堂) 이 숙(李淑) 수필가였다. 그는 조 선생님이 한국수필가협회를 관계할 때부터 그의 그림자였다. 나는 그를 자연스럽게 회장실에서나 수필가들 모임에서 친해질 수 있었다.
그의 본명은 이종숙(李鍾淑)이다. 그는 우리 젊은 문인들에게 큰누님이라는 존칭을 많이 듣는다. 그는 고희를 훨씬 넘긴 연세에도 항상 후배를 대할 때는 인자한 어머니나 큰누님처럼 사랑과 웃음을 선사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예총에서 내가 행사를 담당하면 그는 조 회장님과 동행하고 침실도 함께 사용했다. 이러한 친분은 그가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으로 재임하면서 시상식과 세미나를 비롯한 수필가협회 행사에 나를 불러서 사회를 맡기고 협조를 구했다.
그는 1936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경성여자사범학교와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사 및 문교부 편수관으로 근무하다가 교감으로 퇴임하기 까지 25년을 교육계에 몸담았다.
무한히 넓은 하늘! 마냥 푸르기만 한 하늘! 그것은 사랑과 양심의 거울입니다. 티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비단폭 같은 그 거울을 마음껏 바라본다는 것은 세속의 물욕으로 더러워진 나의 마음을 바로잡고 부끄럼 없는 삶을 다짐해 보는 좋은 기회이다.
--수필집 『내 영혼의 무게』‘머리말’ 중에서
그는 1990년 첫 수필집『유정』을 상재한 이후 두 번째 저서에서는 위와 같이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진실한 생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혼’과의 형이상적인 주제를 탐색하고 있다.
그의 수필세계는 1999년에 발간한 『아름다운 조건』이후 유한근 평론가가 말한 바와 같이 ‘애써 비틀어 표현하지 앟고 애써 지식을 보여주려 하지 않으며 하나의 주제를 전언허기 위해 애써 여러 사례를 현란하게 들지 않으면서도 깃털 한 개의 소박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고 평하고 있다.
또한 최원현 수필가도 어느 글에서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오늘이나 어제나 한결 같이 삶에 열정적인 이 숙 선생, 선생이 있는 곳엔 선생과 같은 삶의 열정이 있고 그래서 살아있음이 충만하게 느껴지곤 한다’하면서 그의 소박함과 평안함이 그의 인생행로처럼 삶의 충일을 맛보게 하고 있다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는 2004년에 간행된 조경희 회장님 자서전『언제나 새길을 밟고 힘차게』교정을 보면서 예총회장 항목과 정무장관 부분의 활약상을 나에게 검토해줄 것을 요청해 와서 흔쾌히 승낙하고 그와 수필가협회 사무실에서 밤새워 일한 적도 있었다.
그 다음해에 조회장이 위독해서 고대병원에 입원했다는 전화가 와서 슈퍼에 가서 영양죽류와 음료수를 한 바구니 사들고 문병을 갔다. 이미 조회장님의 병세는 악화되어서 문병객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회님은 영면했으나 그는 장례식장을 지키면서 자신의 가정일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수필가협회 사무국장으로서 조회장님을 보좌하고 개인적으로는 헌신적으로 보필하면서 그의 삶은 곧 조회장의 생애와 분리할 수 없는 분신과 같아서 우리 문단에서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중앙 문다 한국문협과 PEN클럽, 수필가협회 등에서 이사를 역임했으나 그의 활약은 인천 문화계에서도 인천 예총, 인천문화원, 인천문협, 인천여류문학인회, 인천 한국수필가협회 등 문학단체와 인천국제친선교류협회 등 많은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지역문화 발전과 진흥에 기여하고 있어서 오랜 생활의 근거지인 인천에서의 열정이 더욱 빛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본질과 아름다움을 문화(혹은 문학)와 접목하고 성실한 인생관의 실현을 위해서 지금도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학의 활성화가 바로 그에게는 생명력을 충전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수필집『아름다운 조건』‘머리말’에서 ‘내 삶에 있어 외곬으로 일에 열중하고 살았다는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은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문학에 대한 애착과 내 주변을 싸고 있는 문학적 분위기가 즐겁고 거기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라고 스스로의 의식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모습은 이러한 순수의 근원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문학정신이며 삶의 방식이다.
아름다운 것의 저 밑바닥에는 순수하다는 것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변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것에 대한 인간들의 무한한 욕망과 느낌은 어쩌면 그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작품「영원한 보석」중에서
그는 지금도 동심의 세계를 거닐고 있다. 아름다움과 순수함과 그 진실을 소녀처럼 노래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 기다림은 삶 그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이 있어 나의 삶이 뜻 깊은 것(작품「기다림」중에서)’이라는 그의 명징한 가치관이 말해주듯이 이러한 ‘기다림’의 지혜를 통해서 그의 문학적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
지난 달에 서울 문학의 집에서 ‘조경희 선생 추모의 밤’이 열렸다. 연례행사이지만, 많이 참석해서 생전의 덕담을 나누는 자리였다. 여기에서 운추당 노익장의 회고담은 너무 절절했으며 나와의 추억담도 곁들여서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는 고희를 넘긴 고령이지만, 아직도 사수회(수필가들의 스터디 모임-윤주홍, 박명순, 김광수 등) 모임에도 열성으로 참여하고 외국문학 기행과 국내 심포지엄에도 건강하게 참여하고 있다.
그에게 ‘건강하시냐’고 전화를 걸었다. ‘언제 인천에 한번 놀러와. 싱싱한 생선회가 기다리고 있어’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린다. 미국에서 김영중 수필가와 이승희 시인이 서울 오면 다시 모여서 그동안 못다한 정담을 나누는 자리를 인천에서 가져야 하겠다.
요즘 그에게 별명이 하나 생겼다. ‘예외 노인’이라고 부른다. 그의 작품 중에 ‘예외 노인’이 있는데 ‘매일 삶의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노인’이라는 말에서 붙여진 것이다. 그는 아직 노인이 아니고 거기에서는 ‘예외’이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학공간] 2009. 10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