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단평
‘그리움’의 관념과 외적 사물의 융합 김송배 / 한국시원시인회 상임고문
1. 일찍이 영국의 매슈 아놀드라는 시인은 시는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이고 다양하게 효과적으로 사물을 진술하는 방법이라는 명언으로 우리 현대 시인들에게 교훈적인 메시지를 들려준 바 있다. 우리 시인들은 외적(外的)으로 인지할 수 있는 이러한 사물에 대해서 많은 이미지를 창출하거나 의미성 짙은 주제를 투영하는 습성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선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물들이 지천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 그 사물이 간직한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이미지와 교감하려는 시인들의 욕구가 항 상 넘치고 있음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언제나 시인들은 그것들은 응시하면서 시간성에 따라서 변화하는 섭리를 관망하고 우리 인간들과의 상관성을 인생관의 의미로 해석하려는 정감적인 사유(思惟)가 발현하면서 작품을 창작하고자 하는 숭엄한 시정신이 미감(美感)으로 형상화하는 진실이 현현하고 있는 것이다. 권사라 시인은 오랜 시간을 시창작연수원에서 습작과 첨삭의 수련을 통해서 축적시킨 그의 결실이 이제 수확의 시간을 기다리는 상상에 젖어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시인들 누구나 통과의례처럼 겪게 되는 과정이지만 그가 계간 『시원』 잡지에서 신인상에 당선하여 등단한 이후에도 꾸준히 첨삭작업을 지속적으로 행하면서 앞으로 좋은 시를 쓰기 위한 열정과 노력에 분투(奮鬪)하고 있어서 그의 작품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사물과 관념에 대한 이미지의 융합이라든지 인간의 오관(五官)을 통한 오감(五感-視聽嗅美觸覺)의 생성에 따라서 다양한 상상력과 이미지가 촉발하는 경위와 발상법, 표현법 그리고 소재와 주제의 시적인 시정신(poetry)의 적시방법 등을 연마한 시인이다.
2. 권사라 시인은 지금까지 창작한 작품이 시집 한권의 분량이 되지만 시집을 발간하기 전에 우선 소시집으로 묶어서 거기에 간략한 단평(短評)을 동시에 표출함으로써 그간의 역량을 점검하는 효과를 나름대로 생각한다. 그는 작품 주제의 전반에서 교감하는 어조(語調-tone)는 대체로 공허이거나 안온한 정서에서도 ‘그리움’에 대한 사유가 그의 심저(心底)에 잠재해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노을질녘 가벼운 차림으로 공터를 걷는다 해가 바뀌고계절이 지나도 허허로이 남겨진 빈터 떠나는 아쉬움 서두를 것 없이 공허로 남은 천년 세월이 멈춰 멋 부릴 것도 분주함 고요한 때 작은 풀꽃도 없는 듯 앉아 따사로운 자리 주체할 수없는 그리움도 단절된 무색의 여유로움 평화가 부르는 쉼터에서 헛된 상념의 숨소리 흔들릴 무렵 평온한 하늘이 반복된 하루를 마감하며 어둠 자락을 펼친다. --「공한지」 전문
권사라 시인은 우선 ‘공한지’라는 시야에서 이미지나 시적인 교감의 대화가 가득 충만해 있다. 이곳에서 처음 느끼게 된 것은 공한지, 쉬고 있는 텅빈 땅 그 공간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심도(深度)있게 사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공터에서의 공허감이 어떤 허무의식을 유발하지만 그는 이 빈터가 ‘떠나는 아쉬움 서두를 것 없이 / 공허로 남은 천년 세월이 멈춰 / 멋 부릴 것도 분주함 고요한 때 / 작은 풀꽃도없는 듯 앉아 따사로운 자리’라는 지극히 안온하고 따사로운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고요하고 ‘무색의 여유로움’도 ‘주체할 수없는 그리움도 단절’로 형상화하는 그의 의식의 흐름은 결론적으로 공한지라는 사물에서 추출한 이미지는 바로 빈 공간에서의 쓸쓸함이 그리움으로 ‘노을질녘’과 ‘어둠 자락’이 겹쳐지면서 시적인 의미(주제)가 적절하게 투영되고 있다. 이와 같이 그가 흡인하는 그리움은 작품 곳곳에서 현현되고 있는데 ‘혈투로 딩굴며 흐르는 몸부림 / 졸 졸 맑은 시냇가에서 / 그리움 헹구는하늘의 미소가 열린다(「물소리」 중에서)’거나 ‘어깨 너머 잎 진 나무가 / 잊혀지지 않는 그리움 쌓여 향이 배인 / 떠나간 것들에 선을 긋는다 (「응시 . 2」 중에서)’, ‘눈빛 하나 가라앉힌 그리움에 매달려 / 아픈 사랑 씻어줄 어디에 / 너를 머물게 할까(「춘풍」 중에서)’ 그리고 ‘수년 세월이 데려간 뭉게구름 속 침묵은 / 새털같이 허공에 날리고 / 식지 않은 긴 그리움 / 주머니에 따뜻이 넣어 두고 싶다.(「옛 친구들」 중에서)’는 간절한 어조와 같이 그의 그리움의 정서는 불망(不忘)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3. 권사라 시인에게서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의식은 그리움의 기원의식에서 잔존하는 ‘기다림’의 개념이 시적 상황으로 설정하고 있음도 묵과할 없는 현상이다. 그는 ‘봄의 품이 그리워 활짝 필 때를 기다리느냐’고 정다운 친구들과의 상봉을 기다리는 정황도 있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절실한 이미지가 적시되고 있다.
가까이 볼 수 없어 먼 곳에침묵이 아프게 서성이다 은하수 꿈 그리던 널 찾으러 고향으로 돌아간다 여린 숨결 들으며 애타게 달려온 한 여름의 내 가슴 너는 보이는가지켜지지 않은 약속 입술이 조여 든다날 찾으러 세상 나오거든 너의 아픈 흔적 안부의 말바람에게 남겨다 오거센 바람 하늘 무너져 내릴 때 천둥 같은 몸부림으로그리움 쏟아내는 거친 메아리 님이여, 너를 부른다. --「상사화」 전문
이 상사화의 꽃말이나 전설은 잎과 꽃이 서로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이 바로 기다림으로 형상화하는 이미지를 정감으로 투영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그는 ‘날 찾으러 세상 나오거든 / 너의 아픈 흔적 안부의 말 / 바람에게 남겨다오’라는 어조로 기다림을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의 형상화를 가일층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 마지막 연에서 결론적으로 ‘거센 바람 하늘 무너져 내릴 때 / 천둥 같은 몸부림으로 / 그리움 쏟아내는 거친 메아리 / 님이여, 너를 부른다.’로 너무 애절하게 토로하고 있다. 그는 ‘침묵이 아프게 서성이다’와 ‘너의 아픈 흔적 안부의 말’, 그리고 ‘천둥 같은 몸부림’ 등등의 어조로 상사화에 대한 이미지가 잘 투영되어 있다. 이러한 기다림의 이미지는 작품 「폭염」 중에서 ‘허전함이 눈물로 얼굴 가득 채워질까 봐’나 「가시거리」에서도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이 / 나를 끌어 올린다’는 어조와 작품 「춘풍」 중에서도 ‘싱그런 설레임 꽃수레에 가득 실고 / 흔들거리며 달리는 바람의 속삭임이여 / 매서운 찬바람 잠재우고 / 마른 가슴 스쳐 지날 때 / 햇살 곱게 파고드는 내 품에 안으리.’라는 진한 허전함이 그리움의 상념으 남아 있는 자리에는 항상 후행(後行)하고 있어서 그리움과 기다림 그리고 허전함을 심중에 내포하고 있는 동일한 관념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4. 권사라 시인에게서는 다시 영혼에 대한 명상적인 대화와 교감을 시도하는 시적인 특성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일찍이 옛 시인들은 시는 위대하고 다감한 영혼의 음악이라고 하거나 시는 신(神)의 말이라고 했다. 이처럼 시인들은 영혼과의 다감한 교류를 염원하고 있다. 그는 ‘세상 욕심 씻어내고 / 영혼의 바다로 흘러가는 / 우주의오케스트라, 맑은 바다의 노래.(「물소리」 중에서)’거나 ‘어둠 내리면 석양을 안고 도는너는 / 내 영혼의 꽃자리.(「그림자」 중에서)’와 같이 영혼의 바다나 영혼의 꽃자리에서의 미래지향적인 인격적인 대화를 작품으로 승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한편 권사라 시인은 서정성을 시적인 원류에 확고하게 교두보를 설치해 놓고 그의 상상력과 정서의 정점을 우리 인간들의 고뇌나 염원들을 적절한 해법으로 조화를 탐구하고 있다.
커다랗게 맺혀진 그리움 기억 앞에 두고 쓰러질 것만 같은 마른 몸을 사무친 언어들로 해갈하는데 하늘거리는 짧은 사연 파란 잎에 숨겨온 비밀은 맨 몸 내어준 뒷모습, 아아 벽을 끌어안은 아흔 다섯 해의 굵은 힘줄 내 어머니, 어머니-. --「담쟁이」 중에서
어쩌면 애타게 불러보는 사모곡(思母曲)이다. 그는 ‘담쟁이’라는 사물에서 ‘사무친 언어들로 해갈’하는 ‘아흔 다섯 해의 굵은 힘줄 /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기억’이 절절한 사연을 재생하면서 그의 서정시는 절정에 닿는다. 그의 서정성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작품 「봄맞이」와 「춘풍」 「숲속의 언어」 「가을은 배려」 그리고 「일 년이 머무는 하루」 등등에서 자연 서정과 시간성이 융합해서 우리 인간들의 심성과 화해하는 시법을 구성하고 있어서 보편적인 작법(作法)에서 도약하려는 열정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는 ‘기척 없이 싸늘하게 서있던 / 알몸의 자작나무도 / 널부러진 낙엽의 옷들을 챙기며 / 차가운 숨을 내쉰다’거나 ‘낙엽이 떨어진다, 몸부림으로 춤으로 / 가을이 찾아온다, 내 몸도 뜯어낸다 / 떨어지고 뜯어내는 생의 수고 / 낙엽을 마주하는 이별이었나’는 등의 안온한 서정성을 분수처럼 분사(噴射)하고 있다.
낙엽 깔고 앉아 핀 꽃그림 위로 파란 노래가 살짝 청춘을 불러 떠나는 옛 추억들 갈무리로 가라앉힌 일 년이 저무는 하루에 떠밀려 낮아진 숨으로 겨울을 따라간다. --「일 년이 머무는 하루」 중에서
그는 시간성에서 사계절에 대한 다변적인 이미지의 변화와 교감하는 서정적인 자신(서정적 자아)을 합일시키는 시법은 우리 서정시에서 의미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펑범한 사유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과 나아가서는 사회와 비평적인 함축성도 포괄하는 것이 서정시의 진정한 위의(威儀)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와 같이 일 년이 머무는 시간에는 사계(四季)의 일상에서도 옛 추억을 반추하면서 ‘12월의 서랍을 정리’하고 있다. 봄의 풋풋함과 여름의 흔적들, 가을 낙엽 그리고 겨울의 찬바람 등이 그의 뇌리에서는 그가 시상(詩想)에서 원류로 삼는 모든 형상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그것이 ‘일 년이 머무는 하루’이다. 시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찾는 소재나 주제는 시적인 정서생활에서 탐구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자질구레하지만 초기 시창작은 주변에서 사소하게 생성하는 잡다한 사물이나 관념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시는 언어의 예술이다. 소재의 취택과 주제의 투영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묘사하거나 표현할 언어가 부족하다면 시창작에는 난점(難點)이 많아진다. 그래서 시인들은 언어의 조탁(彫琢)을 위해서 심혈(心血)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더욱 분발해서 좋은 작품 창ㄷ작하기를 기원한다. * [한국시원] 2021. 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