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친구되기
배정규, 김연수(2003) 잡초인생, 저서의 1장
“무지가 병보다 더 무섭다.”(강호덕, 당사자)
친구되기의 필요성
1. 어느 제자와의 대화 : ‘좋은 상담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파란마음센터. 내 자리에 앉아서 보면 밝은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고 창가에 예쁜 꽃들이 장식되어 있어 화사하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깔끔하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푸근하다. 제자인 김연수 소장이 운영하는 상담센터인데, 고맙게도 내게 방을 하나 내줬다. 또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센터공간을 쉼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줬다. 나는 그 공간을 센터라 하기도 하고, 쉼터라 하기도 한다. 그 곳에서 정신장애인 가족도 만나고, 당사자도 만나고, 제자도 만나고, 내 공부도 하고, 종종 시간을 보낸다.
하루는 제자가 밥 사겠다고 왔다. 상담실습 경험을 하고 싶단다. 간간이 하고는 있는데 실습기회가 더 필요하단다. 일주일에 한 번씩 파란마음쉼터에 나와 보라 했다. 어떤 사람이 오는지 묻는다. “이십여 명 있는데 매일 열 명쯤 오지. 주로 조현증이야. 조울증인 사람도 있고. 우울증이 심한 사람도 있고.”
조현증이란 ‘악기의 현을 조율하듯이, 뇌의 신경전달망을 조율하면 낫는 병이다.’는 뜻을 지닌 병명이다. 이전에는 정신분열증이라 했는데, 2011년도에 병명이 바뀌었다. 정신분열증이란 용어가 병의 특성과는 관계없이 애초에 잘못 작명된 용어고, 편견만 조장해왔기 때문이다. 조현증은 환청이나 망상, 또는 사고의 혼란이 주요 증상이다. 조울증은 몇 달 또는 몇 년 간격으로 기분이 붕 뜨는 조증기간과, 기분이 침울한 우울기간이 교대로 나타나는 병이다. 우울증은 많이들 경험한다. 일반인도 조현증, 조울증, 또는 우울증 증상을 며칠 정도 가볍게 보이는 경우는 흔하다. 그런데 몇 달 또는 몇 년간 수시로 증상이 지속되면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긴다. 이 경우를 ‘병’ 또는 ‘정신질환’이라 한다.
제자가 묻는다. “그 사람들이 와서 뭐합니까?” “오고 싶으면 오고, 싫으면 안 오고, 와서 그냥 놀지. 책보고 싶은 사람은 책 보고, 컴퓨터 하고. 자기들끼리 어울리고. 나하고 얘기하고. 평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누구나 오고 싶으면 오면 돼. 그게 쉼터야.” “쉼터 오는 사람들이 조현증이에요? 조현증이 낫습니까?” “당연히 낫지. 낫는다는 게 뭐냐 하면...” 하려다가 입을 닫고 “와서 그 친구들한테 물어봐.” 했다. “예...” 잠시 딴 얘기하다가 불쑥 묻는다. “위험하지 않습니까?” 씩 웃으며 “같이 지내보면 알게 되겠지.” 하니, 겸연쩍은 듯 “상담 공부한다면서 이런 질문하니 부끄럽네요. 대학원 공부 했어도 아는 게 없어요. 책 다시 봐야겠어요. 책 볼 때 건성으로 봐서...” 한다. “책에 쓰여 있긴 하지만... 제대로 된 책도 드물고, 책 봐도 몰라. 백날 책 봐야 소용없어. 그냥 나와 봐.” “제가 그 친구들한테 도움이 되겠습니까?” “자네가 그 친구들한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그 친구들이 자네한테 도움이 되지.” 무슨 말인지 의아해 한다.
2. 친구가 되기까지 : ‘친구가 되고서야 많은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언제부터 정신장애인들과 친구가 되었지?’ 생각해 본다.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하고 서울대병원 임상심리연수원 3년 수련과정에 들어갔다. 환자를 면담하고 여러 가지 심리검사를 해서 환자의 증상과 진단에 관한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주 업무였다. 흰 가운을 입고 처음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에 들어갔을 때 막연히 두렵고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3개월 정도는 병동에 들어갈 때마다 긴장되고 조심스러웠다. 혹시라도 어떤 환자가 나를 공격하지나 않을지 두려워했다.
서울대병원 수련을 마치고 89년에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가 되었다. 박사과정 입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수가 되었으니 참 운이 좋았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시에는 임상심리 전공자 수가 적었고 3년 수련을 제대로 마친 사람이 드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93년에 계명대 심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손명자 교수님 지도를 받았다. 교수님께서 ‘정신장애인 가족교육’을 하자 하셔서 시작하여, 교수님과 함께 10년간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가족교육을 했다.
가족교육을 하면서 정신장애인 가족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족들의 속사정을 많이 알게 됐다. 가족들로서는 당황스럽고 어찌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세세한 일들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물어볼 데도 없었다. 당시는 정신보건법도 없던 시절이라 정신보건센터나 사회복귀시설이 없었다. 환자들은 급하면 정신병원에 입원하지만 퇴원하면 갈 곳도 없고 따로 도움 받을 곳도 없었다. 가정방문을 다녔다.
집안에서는 멀쩡히 생활 잘하고 살림도 도맡아 하는데 대문 밖 나서기가 두려워 집 앞 슈퍼조차 못가는 사람, 직장도 없고 친구도 없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집안에서 지내며 심심해 죽으려는 사람, 밖에서의 생활은 그럭저럭 하는데 매일처럼 엄마와 싸워서 서로 힘들어 하는 사람, 엄마가 차려주는 음식은 독이 들었다고 안 먹고 빵만 먹고 사는 사람, 집에 찾아가면 방문도 열어주지 않고 대답도 않고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 만나면 계속 얼굴을 푹 숙이고 눈도 못 맞추고 불안해서 안절부절 하는 사람. 각양각색이었다.
가정방문을 가고, 동네 커피숍에서 만나고, 시내 커피숍에서 만나고, 학교 연구실로 찾아오게 하고. 이런 식으로 집 밖에 나서지 않으려는 청년을 차차 집 밖으로 끌어냈다. 처음에는 상담자 역할을 하려 했다. 만나는 시간도 한 시간 정도로 제한하려 했다. 만나면 같이 얘기 나누는 걸 위주로 하고 가급적 밥 같이 먹는 건 피했다. 연구실이나 커피숍에서 만나고, 만나서는 얘기만 나누거나 기껏해야 산책 정도 같이 했다. 전문가는 그래야 되는지 알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같이 식사 하는 정도는 괜찮아.’ 하는 수준이 됐다. 밥 먹을 때 나는 맥주 시켜 마시면서 “너는 맥주 마시면 안 돼. 약효 떨어져.” 하고 콜라나 사이다 시켜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치사했다. 그렇게 또 세월이 지났다.
지금은 아무 관계없다. 환자나 내담자라는 생각 없이 그냥 편하게 만난다. 정신질환, 정신장애 그런 건 아무 관계없다. ‘그게 뭐 대단한 건데?’ 생각한다. 그냥 친구 만나듯이 선후배 만나듯이 만난다. 편안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뿐이다. 얘기 듣다가 내 얘기도 하고. 간혹 취하도록 같이 술 마시기도 하고. “술 먹고 약효 떨어지면 약 두 봉지 먹으면 되지.” 하고 서로 웃는다. 집에 놀러 다니고, 가끔 우리 집에 재우기도 하고, 내가 그 집에서 자기도 하고, 같이 전시회 구경도 가고, 노래방도 가고, 영화도 보러 가고, 서점도 가고, 사우나도 가고, 찜질방도 가고, 탁구장도 가고, 여행도 같이 다니고, 그냥 서로 친하게 잘 알고 지내는 사이로 지낸다.
친구가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심리치료나 심리상담 책에는 상담실 외의 장소에서는 내담자를 만나지 말라고 되어 있다. 딱 정해진 시간만큼만 상담하라고 되어 있다. 내담자에게 상담자의 집 전화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지 말라고 되어 있다.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심리치료는 그래야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재활상담은 다르다. 사례관리는 더더욱 다르다. 가정방문을 가고,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만나고, 필요한 활동을 같이하고, 식구들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가족들과도 스스럼없이 만나고, 한 번 만나면 인연이겠거니 하고 죽는 날까지 서로 연락하고 지내면서 한 평생 울고 웃으며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그들과 친구가 되고서야 많은걸 알게 되었다. 책에는 없는 많은 얘기들이 있다. 나도 전문가지만, ‘전문가들은 참 묘한 재주를 가졌다.’는 생각을 해본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건 엄청나게 중요한 듯이 말하고, 정말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네.’, ‘쉽게 할 수 있는 말을 엄청나게 어렵게 하는 재주가 있네.’ 나만의 생각일까?
3. 친구되기가 꼭 필요한 사람 : 전문가, 가족, 그리고 당사자
모든 사람이 다 정신장애인과 친구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정신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왕이면 친구로 지내는 게 좋다. 정신보건분야의 전문가, 정신장애인 가족, 그리고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그들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주고, 격려해주고, 힘들 때 도와주고, 함께 성장하고, 동고동락하며 한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친구다.
1) 좋은 부모는 자녀의 친구다.
‘부모와 자녀가 친구가 되어야 한다.’ 무슨 말인가? 그 말은 서로 마음이 통하고 화목하게 지내야한다는 말이다.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부족, 대화단절, 잦은 언쟁으로 힘들어 하는 가정이 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각자의 마음이 닫혀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권위적이면 자녀는 괴롭다. 부모가 자신만 옳다하고 자녀의 의견을 무시하면 자녀는 괴롭다. 자식 앞에서 잘난 척하는 부모도 있다. ‘얼마나 잘난 척할 데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자녀 앞에서 똑똑한 척하는 부모도 있다. ‘평생을 열등감에 시달렸나보다. 그 한을 얼마나 풀고 싶었으면... 자식에게 그 한을 풀려 하나?’ 그래서 자녀로 하여금 열등감을 느끼게 하고, 자신의 한을 물려준다.
‘잘난 부모하고 살면 자식은 골병든다.’ 내가 즐겨하는 말이다. ‘헛 똑똑이’ 부모들이 참 많다. 아내와 많이 싸우며 지냈지만 아내에게 늘 감사해 하는 게 있다. 아들만 둘인데 애들한테 참 잘 했다. 애들을 참 예뻐했다. 항상 대견해하고 ‘자신보다 낫다.’고 좋아했다. 애들 점수가 올라가거나 어쩌다 상장을 받아오면 박수를 치며 좋아하고 기뻐했다. 칭찬한 게 아니다. 좋아하고 기뻐했다. 칭찬과 ‘기뻐하기’는 다르다. 잘난 부모는 칭찬을 한다. 못난 부모는 기뻐한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이렇게 좋은 점수 받아본 적 없어. 너는 어떻게 이렇게 공부를 잘 하니? 고마워. 나한테서 어떻게 이렇게 똑똑한 애가 나왔을까? 엄마를 기쁘게 해줘서 고마워.” 아내는 늘 그렇게 기뻐했다.
항상 1등만 하던 부모보다는 그저 그런 부모가 낫다. 같은 성적표를 들고 와도 어떤 부모는 표정이 굳어지고 떨떠름해 하는데, 어떤 부모는 화색이 돌고 박수를 치고 좋아하며 통닭을 시켜준다. 잘난 부모는 자식이 한심해 보이고 못난 부모는 자식이 대견해 보인다. 어리석고 못난 부모가 좋다. 잘난 부모는 자식을 친구로 대하지 않는다. 늘 훈계하고 야단치며 윗사람으로 군림한다. 자신의 의견만 말하고 자식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못난 부모는 자식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운다. 수시로 감탄하고 박수치고 좋아한다.
2) 좋은 전문가는 당사자의 친구다.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좋은 전문가는 당사자와 격의 없이 어울린다. 당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당사자와 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하려 한다. 단지 병이나 증상을 보는 게 아니라 당사자의 삶 전체를 보고 같이 고민하고 같이 기뻐한다. 어떤 마음의 상처를 지니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는지? 이런 것들을 물어본다. 당사자가 낫기를 바란다.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날이 발전하기를 바란다. 당사자가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뿌듯해하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전문가 자신도 성장해나간다.
권위적인 전문가는 나는 전문가, 너는 환자라는 태도를 취한다. 나는 아는 사람 너는 모르는 사람이라 가정한다. 돕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역할을 구분한다. 친구를 만날 때와는 달리 당사자 앞에서는 목에 기브스가 들어간다. 항상 ‘흰 가운’을 입는다. 옷이 더럽혀질 염려가 없는데 왜 ‘흰 가운’을 입지? 쉼터의 어떤 당사자가 “이발사도 흰 가운 입는데...”라고 해서 웃었다.
전문가는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착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는 다르다. 정신보건분야라는 공동체의 한 식구다. 한 마을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한 마을에 사는데 전문가는 점점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는데 당사자는 점점 가난해지고 결국 기초생활수급자가 된다. 누가 누구를 돕고 살았나? 애매하다. 서로가 행복하면 좋겠다. 한 세월 더불어 살고, 세월이 지나 뒤돌아 볼 때, 전문가는 흐뭇해 할 수 있으면 좋겠고, 당사자는 고마워할 수 있으면 좋겠다. 좋은 관계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서로를 발전시키는 관계다.
3) 당사자끼리 좋은 친구여야 한다.
당사자끼리도 마찬가지다. 좋은 관계는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별칭이 마르티노인 친구가 있다. 원래는 세례명인데 인터넷카페에서 자신의 별칭으로 쓰고 있다. 그 친구는 마당발이다. 정신장애인은 대체로는 주변에 친구가 거의 없이 외롭게 지낸다. 학창시절 친구는 다 떨어져 나가고, 무직으로 지낸 세월이 오래되다 보니 직장동료도 없다. 더욱이 투병생활 중에 이런저런 일로 가족과 자주 부딪히고 하다보면 가족과도 친하지 않고, 결국 고립무원이 된다.
하지만 가끔 예외도 있다. 이전의 친구나 동료와 오랜 세월 친하게 지내며 친구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당사자도 있다. 이전의 친구들은 떨어져 나갔어도 당사자 친구가 많은 사람도 있다. 마르티노는 이전에 알던 사람들과도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고, 가족들과의 사이도 좋다. 또한 많은 당사자 친구를 두고 있다. 당사자들의 비공식적 구심점이다. 어느 날 얘기 중에 “당사자들끼리는 친해지는 게 참 쉬워요. 나는 조현증인데 진단이 뭐예요? 서로 진단명만 터놓으면 그때부터 친구가 되요. 공통점이 생기고 말 안 해도 서로의 사정을 짐작하는 거죠.” 하고 웃는다.
슬픈 경우는 당사자가 다른 당사자들을 싫어하는 경우다.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은 당사자 친구를 쉽게 사귄다. 하지만 당사자이면서도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이 심한 사람도 있다. 이들은 다른 당사자를 경멸한다.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한다. 반면에 까다로워서 다른 당사자 친구를 못 사귀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되고. 음식투정 하는 것처럼 사람투정을 한다. 입맛이 까다로워서 쉽게 사람을 사귀지 못한다. 잘 지내던 사람과도 별 일 아닌 일로 다투고 분개하고 인간관계를 끊어 버린다.
주변에 친구가 없는 사람은 늘 딴 사람 흉을 보고 험담을 한다. 자기만 괜찮고 주변사람은 다 시원찮다 한다. 자기는 인복이 없다고 투덜댄다. 자기는 남들에게 엄청 잘하는데 남들이 몰라준다 한다. 자기가 해준 게 얼만데 고마운 줄 모른다 한다. 키워줬더니 배신했다고 분개한다. 반면에 주변에 친구가 많은 사람은 늘 주변사람 칭찬을 한다. 자신은 인복이 많다고 자랑하며 다닌다. 자기가 지금처럼 된 게 다 주변사람 덕이라고 고마워한다.
당사자끼리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병이 많이 나은 당사자는 주변에 당사자 친구가 많다. 아직까지 병이 심할 때는 다른 당사자를 무시하고 경멸한다. 당사자 친구는 없고 전문가만 만나려 한다. 자기보다 낫다 싶은 사람만 사귀려 한다. 당사자 친구가 몇이나 되나? 그 숫자만큼 병이 나은 거다.
친구되기의 걸림돌
1. 친구되기의 세 가지 걸림돌
1) 첫 번째 걸림돌 : 편견
당연한 얘기지만 친구되기의 첫 번째 걸림돌은 ‘편견’이다. 편견과 ‘무식’은 동의어다. 편견이 없어야 친구가 된다. 편견을 가지면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 편견을 가진 사람에게 정신장애인은 그냥 외계인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정신장애인은 보통사람과 다르다. 위험하다. 열등하다. 한심하다. 나약하다.’는 게 대표적인 편견이다. 편견은 인간관계를 단절시킨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게 한다. 타인을 부당하게 대하게 한다. 편견을 가진 부모는 자녀의 병을 악화시킨다. 편견을 가진 당사자는 자신의 병을 악화시킨다. 편견을 가진 전문가는 환자의 병을 악화시키면서 돈만 챙긴다. 편견을 가진 일반인은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서로가 불행한 일이다. 편견, 즉 무지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서로가 서로를 돕는 길이다.
2) 두 번째 걸림돌 :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말과 행동
감당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시시때때로 엉뚱한 말을 한다. 별 일 아닌 일로 심하게 화를 낸다. 아무 이유 없이 불안해한다. 수시로 몸 아프다하고 우울해 하고 무기력해 하고 꼼짝 않으려 한다. 뭘 좀 시키려면 핑계를 댄다. “저는 병이 있어요. 제가 병 있다는 걸 인정해 주셔야 해요.” 왜 인정해 달라 할까? 같이 청소하자 하면 자기는 정신장애인이란다. 행동이 경우에 맞지 않아 지적하면 자기는 정신장애가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한다. 애교 수준인 경우는 봐줄 수 있지만 뺀질거리는 수준일 때는 화가 버럭 난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이해가 안 되고 감당이 안 되는 당사자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려면 정신장애인의 경험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증상경험, 치료경험, 재활경험, 재기경험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일반인이 특히 힘들어 하는 것이 정신장애인의 증상행동이다. 감기, 배탈, 우울 등의 증상은 일반인도 쉽게 이해한다. 자신이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장애인의 증상은 일반인이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배탈이 나서 설사와 구토를 하고 수시로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행동’은 양해가 된다. 하지만 ‘뇌에 탈이 나서 정보처리가 잘못되어 나오는 엉뚱한 말이나 행동’은 양해가 잘 안 된다. 그건 배탈로 인한 설사나 구토 비슷한 것일 뿐인데.
전문가들도 가끔 증상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왜냐하면 교과서에는 겉모습에 대해서만 쓰여 있기 때문이다. 진짜 지식은 겉모습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정신장애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거다. 증상을 경험할 때 그들의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내가 어떻게 보일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 어떤 심정일까? 그것을 이해하면 그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3) 세 번째 걸림돌 : 자기 자신의 속 좁음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불안, 분노, 슬픔, 욕망이 있다. 그게 건드려지면 사람들은 예민해지고 화내고 무기력해지고 충동적이 된다. 인간의 속성이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더 큰 강적이 나타나서 나를 심란하게 만들고 속상하게 만들고 급기야는 감당이 안 되게 만든다. ‘이제 좀 괜찮아졌나?’ 싶으면 또 나를 뒤흔들어 놓는다. 겉보기에 강적은 외부의 누군가이다. 그러나 겪어보니 실제 강적은 내 안에 있다. 외부의 누군가가 내 안의 강적을 불러낼 뿐이다.
강적을 만나면 내 안의 불안, 분노, 슬픔, 욕망이 모습을 드러낸다. 중요한 건 절대로 감정을 회피하거나, 감정에 굴복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감정에 따른 고통을 묵묵히 견뎌내는 거다. 그렇게 하면 결국 자신을 괴롭히던 감정이 가라앉는다. 이 경험이 반복되면 어떤 감정이 올라오든 동요하지 않고 담담하고 초연하게 감정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조금 조금씩 성숙해간다. 중요한 건 ‘남 탓 하지 않기’다. 누구도 탓할 필요 없고 누구도 원망할 필요 없다. 속상해하는 건 항상 내 문제다.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속 좁음’을 안타까워하고 자신의 마음을 넓히려고 애쓰며 살아가야 한다.
2. 무지가 병보다 더 무섭다.
정신질환은 ‘뇌의 병’이다. 따라서 약물치료가 필수적이다. 약물치료로 뇌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야 재활과 재기를 위한 노력도 빛을 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약물 이외에도 필요한 게 있다. 약물은 증상을 가라앉힐 수는 있지만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는 못한다. 병 자체를 치료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병을 앓는 사람’의 삶을 전체적으로 봐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10여년 정신장애 관련 교과목 강의 때는 매 학기 2시간쯤은 정신장애인 당사자 리더를 초청해서 특강을 맡겼다. 정신장애를 겪었거나 현재 겪고 있으면서, 정신장애인들의 권익을 위해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당사자 리더라 한다. 강의평가에서 학생들이 가장 좋았고 인상에 남았던 시간으로 꼽는 게 당사자 리더 특강이다. 내가 들어봐도 그렇다. 자신의 투병생활과 인생경험이 녹아있는 강의여서 귀에 쏙 들어오곤 한다. 학생들이 특히 놀라는 건 그들이 자신이 상상했던 바와는 다르게 ‘자신처럼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때로 강사가 논리정연하게 강의하면 그들의 박식함과 똑똑함에 놀란다.
내가 아는 당사자 리더 중에는 의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심리학자도 있고, 컴퓨터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어린이집 원장도 있고, 대학교수, 번역전문가, 화가, 시인도 있다. 막노동 하는 사람도 있고, 암벽등반가도 있다. 스님도 있고 목사님도 있다. 부모덕에 부자인 사람도 있고 자기 힘으로 남부럽지 않게 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더 많다. 상당수가 기초생활수급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겉보기는 어떨지 몰라도 가끔은 그들이 나보다 훨씬 잘 살아가는 것 같아서 부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인간적인 존경심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호덕이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호덕이는 실명이다. 형제가 3남 5녀인데 그 중 5명이 조현증이다. 2008년 여름에 KBS1 TV의 ‘열린 채널’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호덕이 얘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방송한 적이 있다. 제목이 ‘로드무비’고 30분 분량이다. 호덕이는 자신의 얼굴을 TV에 공개한 걸 늘 자랑스러워한다. 정신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편견 해소에 앞장서고 있다. 스스로 당사자 리더라 자부한다. 호덕이의 별칭은 조나단이다. 중학교 다닐 때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읽었는데, 그게 엄청 감동이었단다. 그래서 주인공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이름을 땄다. 마르티노 얘기를 읽고 호덕이가 말한다. “저도 조나단이라고 해주세요.” 그래서 조나단이라 하고 글을 썼더니 영 어색하다. 아내의 의견. “호덕이가 훨씬 나아요. 이름이 촌스럽고 그래서 정이 가요.” 그래서 말했다. “너는 그냥 호덕이라 할게.” 두말도 않고 “예. 그렇게 하세요.”한다.
‘무지가 병보다 더 무섭다.’
이 말은 호덕이가 즐겨 하는 말이다. 다른 누가 했던 말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낸 말이라나? 아무튼 맞는 말이다. 병에 대한 무지. 병으로 인해 어떤 일들이 초래되는지를 알 지 못하는 무지. 한 인간의 시련과 성장과정에 대한 무지. 이러한 무지들이 합하여 엄청난 오해와 편견을 가져온다. 정신장애에 대한 많은 오해와 편견이 있다. ‘낫지 않는다.’ ‘위험하다.’ ‘무능하다.’ ‘의지력이 약하다.’ 등의 편견이다. 이러한 편견은 무지 때문이다. 사회 일반인이 정신질환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하기 때문에 편견과 차별이 생긴다. 그런데 일반인만 무지한 게 아니다. 당사자와 그 가족도 무지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 정신보건전문가라 자처하는 정신건강의학전문의,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간호사도 무지한 경우가 있다. 병에 대해서만 알고 증상과 진단만 꿰고 있지 정신장애인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아는 바도 없는 전문가들이다. 약만 잔뜩 써서 증상만 없애면 사회생활은 저절로 잘 할 거라 착각한다.
‘정신질환 또는 정신장애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누구 때문일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주범은 소위 말하는 정신보건전문가들인 것 같다. 그들은 편견을 없애기보다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즉 병과 치료, 재활과 재기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전해주려 애쓰기보다 남들이 손대지 못하도록 울타리만 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정신적 병은 특수한 병이다. 따라서 정신건강의학전문의나 정신보건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손대지 마라. 문제가 생기면 병원에 데려오고 전문가에게 맡겨라.” 하지만 자기가 전문가라고 주장하고, 아무 데나 데려가지 말고 자신에게 맡기라고 했으면 책임지고 낫게 하거나 최소한 낫게 하려고 애써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남들이 손 못 대게 울타리만 쳐놓고 애를 쓰지 않는다. 치료의 첫 단계는 “낫는다.”고 말하는 전문가를 만나는 일이다. “낫는다. 함께 노력하자.”고 말하고 나을 때까지 갖은 노력을 다 하는 전문가를 만나야 한다.
3. 정신장애인도 서로 다르다 : ‘도매금으로 취급하지 않길 바란다.’
어떤 당사자는 충고하기를 좋아한다. 마르티노는 그 당사자만 만나면 때때로 이삼일 뻗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몸에 힘이 쫙 빠지고 우울해서 며칠 뻗었어요.” 마르티노는 누가 강요하듯 말하면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한다. 그럴 땐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맥이 빠지고 우울해한다. 그 때는 몇날 며칠 집에만 있다가 힘이 날 때만 밖에 다니며 사람들을 만난다. 이때는 이 사람 저 사람 챙기고, 아픈 사람 심부름도 잘해준다. 항상 웃고 다닌다. 누가 웬만큼 싫은 소리해도 웃어넘긴다. 늘 남에게 잘해주려 한다. 그러다보니 당사자들끼리도 속사정은 모르고 “이상해. 마르티노가 환자 맞나? 쟤는 수급자로 편하게 살려고 환자인 척 하는 거 아냐?” 하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부모는 대학 다니다 중퇴한 정신장애인 딸이 공장에 다니며 정신지체장애인 친구만 사귀는 걸 속상해한다. “이해가 안돼요. 똑똑한 애가 왜 지능이 떨어지는 애들만 사귀죠? 자기하고 수준이 안 맞을 텐데. 자기 수준에 맞는 친구를 사귀면 좋겠어요.” 딸은 “걔들이 순진해서 좋아요. 걔들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요.” 한다. 또 어떤 어머니는 막노동하는 정신장애인 아들이 못마땅하다. 아들은 한때 부모의 바람대로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막노동이 좋다며 5~6년째 계속 막노동판을 돌고 있다. 어머니는 “제 욕심인가요? 좀 더 좋은 직업을 가지면 좋겠는데. 집에서 얼마든지 지원해 줄 수 있는데 왜 그걸 거절하나 모르겠어요.” 한다. 아들은 “저는 그 사람들이 좋아요. 일마치고 그 사람들과 소주 한잔 하는 게 낙이에요. 말도 통하고 사람들이 순수해요.” 한다.
반면에 자신보다 못하다 싶은 사람과는 애초에 상종을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왜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냐며 정신보건센터나 사회복귀시설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심지어는 병원도 안가고 부모가 대신 약을 타오게 한다. 물론 병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애초에 치료를 전면 거부하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자기보다 잘난 사람만 사귀려한다. 어떤 당사자가 말한다.
“당사자끼리도 시간이 필요해요. 최소한 5년은 필요해요. 그래야 마음을 열고 지내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나보다 나은 사람 만나야지. 내가 왜 구질구질하게 저런 사람 만나야 되나?’ 생각해요. 아프지 않은 사람, 옛날 사람들과만 관계를 유지하려 해요. ‘나는 괜찮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정신보건센터나 사회복귀시설 가는 걸 꺼려해요. 회원들끼리 만나도 겉돌아요. 저는 절대 충고는 하지 않아요. 다만 우리들끼리는 서로 통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해요.”
진단이나 주요증상이 같은 당사자도 서로 다르다. 심한 환청이나 망상에 시달리는 사람도 주변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을 피하고 혼자 지내는 사람도 있다. 성격만이 아니다. 지적수준도 서로 큰 폭의 차이가 있다. 발병 후 20년 세월 도서관 다니며 공부만해서 웬만한 대학교수보다 더 지적인 사람도 있고, 발병 후 20년 세월 책이나 신문을 전혀 안 봐서 읽을거리를 주면 애초에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관심영역도 다르다. 컴퓨터에 흥미가 있는 사람, 외국어 공부 좋아하는 사람, 클럽 다니기 좋아하는 사람, 운동 좋아하는 사람, 음악 좋아하는 사람,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보는 사람, 대화 나누는 걸 좋아하는 사람, 당사자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 각양각색이다.
여기에 더해서 생활여건도 다르다. 부모 잘 만나서 자가용 몰고 다니며 매달 몇 백만 원씩 용돈을 쓰는 사람도 있고, 가난해서 기초생활수급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부모님이 집이라도 하나 지니고 있으면 기초생활수급 신청자격 조차 안돼서 본인이 매달 몇 십만 원이라도 벌어야 생활이 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받는 수급비를 전액 집안 생활비로 내놓고 한 푼도 돈을 못 쓰는 사람도 있다. 이러다보니 정신장애인들도 서로 패가 나뉜다. 자주 어울리는 사람이 다르다.
이종찬이라는 당사자가 있다. “너는 인터넷카페 별칭이 리차드잖아. 별칭으로 쓸까? 어떻게 할까?” 물으니, “저는 이름 그대로 해주세요. 대구바닥에 이미 얼굴 다 팔렸는데, 실명으로 하는 게 더 좋아요. 전주 이씨예요. 성까지 붙여주세요.” 한다. 이종찬이 말한다. “입원해 있을 때는 안 가르쳐줘서 몰랐어요. 모를 때는 서로 잘 지냈어요. 사회복귀시설 가니까 망상, 대인관계 이런 거 가르쳐 주대요. 그때부터 ‘망상인가? 환청인가? 내가 어떻게 보여 질까?’ 고민이 돼요. 다른 회원들 보면 ‘쟤는 우울증이네, 나는 조현증인데.’ ‘쟤는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네.’ 자꾸만 이런 저런 판단을 하게 돼요. 그래서 패가 나뉘게 돼요.”
그렇다. 당사자들끼리도 자신이 아는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일반인이 정신장애인을 보는 시각은 더 심하다. 이종찬의 말이다.
“일반사람도 오해하고 화내고 하는데, 우리 당사자들 오해하고 화내면 병이라 해요. 부모도 이해를 못해요.”
그렇다. 일반인은 정신장애인을 도매금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멀쩡한 행동도 이상하게 본다. 정신장애인과 일반인은 다르지 않다. 약간의 차이점만 있다. 또한 그 차이점도 사람마다 다 달라서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다. 일반인도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대인관계 특성도 다르듯이, 당사자들도 서로 다 다르다. 당사자들을 도매금으로 취급하지 않길 바란다.
친구되기의 디딤돌
1. 아버지의 첫마디 : “밥 문나?”
파란마음센터 게시판에 늘 붙어 있는 몇 가지 글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밥 문나?”다. 김연수 소장이 자신의 얘기를 글로 적어 놓았다. 연수는 젊은 날 6개월 정도 다단계에 빠졌다. 그때 얘기다. 부모님 고생이 안쓰러워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변사람들을 온갖 솔깃한 말로 끌어들이고 아버지께도 취직되어서 방이 필요하다 거짓말했다. 어려운 형편에 아버지께서 2천만 원을 보내주셨다. 6개월 만에 통장이 바닥났다. 아는 사람들도 전화조차 받지 않기 시작했다. 고향 친구들도 마음은 있어도 자신도 붙잡힐 것 같아서 피하기만 했다. 결국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단계를 포기했다.
단란주점에서 일했다. 무조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도저히 부모님 뵐 낯이 없었다. ‘돈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절대 고향에 가지 않겠다.’고 매일처럼 다짐했다. 모든 게 만만치 않았다. 추운 겨울 잘 곳이 없어 공사장 스티로폼을 깔고 자기도 하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식사는 손님이 먹다 남긴 안주가 전부였다. 이런 생활을 3달쯤 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밤마다 부모님 생각이 간절했다. 따뜻한 방도 그리웠다. 엄마가 해주던 된장찌개와 깍두기, 김치 생각만 해도 눈물이 왈칵했다. 어느 날 무작정 시외버스를 타고 고향집으로 향했다.
터미널에서 집까지는 20분 남짓. 왜 그리도 먼지?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죄책감과 실망감에 더욱 괴로웠다. ‘부모님은 지금 뭘 하고 계실까?’, ‘나를 보고 뭐라고 하실까?’, ‘쫓겨나면 어디로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멀리 대문이 보였다. 다행히 아직 불이 꺼지지 않았다. 더 이상 생각할 힘도 없었다. 12월 겨울밤은 너무 추웠다. 대문을 열고 현관문을 열자 인기척에 아버지께서 나오셨다. 온 몸이 동태가 되었다. 시간이 멈춘 듯, 영원 같았다.
그때 정적을 깨는 아버지의 첫 마디. “밥 문나?” “아니예.” “엄마는 잔다. 작은 방에 가 있거라.”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아 본 아버지의 밥상. 아직도 그때의 온기가 생생하단다.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시던 아버지께서 다시 입을 여셨다. “엄마는 아무 것도 모른다. 말하지 마라.” “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 복학하지 않고 돈을 벌겠습니다. 꼭 돈 벌어 그 돈 갚겠습니다.” “돈은 잊어버려라. 무사히 돌아왔으니 됐다.”
그 후 연수는 복학했고 직장도 구하고 결혼도 했다. ‘가진’이라는 예쁜 딸도 뒀다. 지금은 박사과정도 수료하고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영남이공대 간호과 겸임교수도 됐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단다. 아버지가 자기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대문 앞에서 동태처럼 딱딱하게 굳은 몸과 마음이 아버지의 “밥 문나?” 그 한마디에 다 녹아내렸단다. 아무도 밥 먹었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살펴주는 사람도 없었다. 많이 서러웠던 시절이었다. 배고픈 서러움, 아무도 자기편이 되어주지 않을 것 같은 외로움, 거절당할 것 같은 두려움, 그 모든 것이 “밥 문나?” 한마디에 눈 녹듯 사라졌단다.
그때부터 주변사람들 밥 챙기는 습관이 생겼다. 내담자나 쉼터 회원을 만나면 “식사하셨어요?”, “밥 먹었나?” 묻는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게시판에 적힌 글의 끝맺음이다. 볼 때마다 마음에 와 닿는다. 아버지의 첫 마디. “밥 문나?” 말 한마디에 깊은 애정과 너그러움이 배어 있다.
2. 너그러운 무관심 : ‘잔신경은 꺼버리고 크게 보고 길게 봐야 한다.’
10여년 거의 매주 토요일 3시간씩 정신장애인 가족교육을 했다. 그 때 ‘너그러운 무관심’이라는 말이 좋아서 가족들에게 매번 강조하곤 했다. 그 단어를 어느 책에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마음에 박혔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주는 것’, ‘전체 방향만 잘 잡고 가고 있다 생각하면,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는 문제 삼지 않는 것’이라고 부연 설명을 하곤 했다. ‘정말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관심과 애정이 있되 불필요하게 간섭하거나 관여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도 했다.
애기들이 걸음마 배울 때는 자주 넘어진다. 엄마들 중에는 애기가 넘어지면 곧바로 달려가서 일으켜 주는 엄마도 있다. 그런데 다른 엄마도 있다. 애기가 심하게 넘어졌다 싶을 땐 달려가지만, 별 것 아니다 싶을 땐 보고도 모른 척 한다. 아니면 기껏해야 앉은 자리에서 말로만 “애기야 아팠겠네. 얼른 엄마한테 와.” 하는 엄마도 있다. 이게 ‘너그러운 무관심’이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너그러운 무관심’이 꼭 필요하다. 사춘기는 부모에게 반항하고, 하지 말라는 짓은 골라서 하고, 호기심이 많아서 이런저런 사고를 많이 친다. 그렇게 부모를 시험하고 세상을 시험하면서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게 사춘기다.
‘너그러운 무관심’이라는 점에서 볼 때 형제자매들 중 맏이는 불리하고 막내는 유리하다. 맏이를 키울 때는 부모도 초보 부모라서 작은 일에 걱정하고 속상해하고 안절부절 하고 호들갑을 떤다. 넘어지면 얼른 가서 일으켜 세워주고, 말을 안 듣거나 대들면 심하게 혼을 낸다. 둘째를 키울 때는 조금 느긋해지고, 막내를 키울 때는 그러려니 한다. 대다수 부모가 막내에게는 엄청 너그럽다. 이래도 예쁘다하고 저래도 예쁘다한다. 웬만한 잘못을 해도 “애들이 다 그렇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간다.
‘너그러운 무관심’이 가능하려면 자녀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저 놈은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는 놈이니까, 잠시 방황하는 거지 결국은 정신 차리고 제 길을 갈 거야.’ 하는 믿음이다. 또한 세상에 대한 믿음과 세상살이에 대한 관조와 달관도 필요하다. ‘세상살이 별거 있나. 좀 더 잘 살거나 못 살거나 거기서 거기지. 잘난 놈이나 못난 놈이나 큰 차이 있나. 남들 보기에 잘 났다 못 났다가 무슨 소용 있나. 저 하나 편하고 행복한 게 제일이지. 세상 남들 위해 사나.’, ‘지금 잘 사는 거 같아도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고, 지금 별 볼 일 없어 보여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살아봐야 알지 지금 다 아나.’ 하는 마음이다.
정신장애인 부모에게는 ‘너그러운 무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대다수 부모가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다. 발병 후 5년, 10년, 15년, 20년, 그 세월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부모는 죽는 날까지 그게 안 된다.
‘너그러운 무관심’은 자녀가 아니라 부모 자신의 인생경험에서 나온다. 세상살이에서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많이 잘 겪어낸 사람일수록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힘든 상황을 느긋하게 관조하는 힘이 생긴다. 이런 사람은 타인을 대할 때 ‘너그러운 무관심’으로 대한다. 하지만 세상살이에 별다른 풍파 없이 대접만 받고 산 사람이나, 이런저런 일에 늘 임시모면하기 바빴던 사람은 ‘느긋하고 여유 있는 마음’이라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고 늘 불안해하고 안달복달한다. 이들은 타인을 대할 때 관여하고 간섭하고 자기 뜻대로 하려하며,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낸다.
발병하여 첫 입원 시킬 때는 대다수 부모가 놀라고 당황한다. 당연하다. 정신병원하면 남의 이야기로만 알았지, 자기 자녀에게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이게 무슨 병인지 아는 바도 없고, 어디를 데려가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 여기저기 물어보느라 정신을 못 차린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늘 불안하고 걱정되고 재발조짐만 보이면 심장이 뛰고 큰 일이 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혹시라도 재발할까 싶어 사사건건 단속한다. 약 빠트리지 마라, 술 마시지 마라, 담배, 커피, 콜라는 해롭다. 컴퓨터 오래 하지 마라. 누구는 만나지 마라. 먹지 말라는 것도 많고 하지 말라는 것도 많다. 야채 먹어라, 우유 마셔라, 일찍 자라, 운동해라, 센터가라,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갔다와라. 먹으라는 것도 많고 하라는 것도 많다.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기다려주지 않는다.
가족들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병이 나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배우기도 하고 묻기도 한다. 마음에 여유가 있고 느긋한 가족은 핵심을 파악하여 가족 자신에게 적용하고 가족 자신이 바뀌려고 노력한다. 즉 핵심을 아는 가족은 ‘가족이 좋아지면 환자는 저절로 좋아진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그렇게 실천하고 남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권한다.
반면에 마음이 불안하고 조마조마한 가족은 똑 같은 강의를 듣고도 핵심은 놓치고 지엽적인 방편에 꽂힌다. 뭘 먹이면 좋다. 뭘 먹이면 안 된다. 웃음치료가 좋다. 미술치료가 좋다. 운동이 좋다. 등산이 좋다. 여행이 좋다. 시골에 휴양시키면 좋다. 이런 얘기가 귀에 쏙 들어온다. 그래서 자녀에게 이래라 저래라 권하고 설득하고 강요한다.
이때 문제는 자녀가 아니라 부모 자신이다. 부모 자신이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자녀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혹시 재발하지 않을까?’, ‘빨리 나았으면 좋겠는데’ 하는 부모 자신의 걱정과 기대 때문에 지나치게 세세한 일들에 신경을 쓴다. 세세한 일들에 대한 잔신경은 꺼버리고 크게 보고 길게 봐야 한다. 이것이 ‘너그러운 무관심’이다.
3.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
마르티노에게 물었다. “이해하기에 대해 써야겠는데 뭐 생각나는 거 있으면 말해줘.” 잠시 가만있다가 말한다.
“이해하기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거 같아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 주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며칠 후 이종찬에게 물었다. “책에 꼭 써야 할 내용이 있으면 말해줘.”, 잠시 생각하더니 힘주어 말한다.
“나의 존재 자체를 받아주는 경험을 하고 싶었어요.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박수치고 좋아하며 축복해줬던 것처럼. 그런 집단이 있을까? 그런 집단에 소속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병원이나 센터는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아요. 그들 나름대로의 룰이 있어요.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게 필요해요.”
깜짝 놀랐다. 마르티노와 같은 얘기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수용이다. 당사자는 직접 겪고 느꼈기에 쉽게 표현한다. 수용이라는 용어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가 훨씬 즉각적으로 뜻이 와 닿았다. 그래서 ‘이해하기’ 또는 ‘수용하기’라는 제목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라는 제목을 택했다.
마음이 넓으면 모든 게 저절로 이해되고 수용된다. 처음 만나 연애할 때 그렇다. 상대의 모든 게 다 좋아 보인다. 같이 있으면 그냥 좋다. 아무 이유도 조건도 없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달라진다. 내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수용은 마음그릇에 비례한다. 마음이 넓은 사람은 타인에 대한 포용력이 있다. 대충 다 마음에 품는다. 웬만한 말과 행동은 다 허용해준다. 상대가 실수해도, 잘못해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해준다.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 곁에 가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말과 행동이 편안하고 자유로워진다. 그런데 보통은 마음그릇이 어중간하다. 그것도 날에 따라 달라진다. 좋을 때는 커졌다가 힘들 때는 쪼그라든다. 상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잘하면 넓어지고 못하면 좁아진다. 이렇듯 기복이 있다. 기복이 큰 사람은 상대로 하여금 ‘오늘은 어떤가?’ 눈치보고 긴장되게 만든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가 필요하다. 그러면 병이 낫는 게 수월하다. 그런데 이 품성은 하루아침에 개발되지 않는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힘들다. 수용이 잘 안될 때는 이해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이해는 수용이라는 방의 문을 여는 열쇠다. 이해를 하면 수용이 쉽다. 물론 역도 마찬가지다. 수용하면 이해도 쉽다. 이해와 수용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가족교육 때의 일이다. 한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지난번 교육받고 오후 늦게 집에 갔더니 그때까지 애가 누워 자고 있는 거예요. 다른 때 같았으면 화를 벌컥 내고 소리를 질렀을 거예요. 그런데 교육받은 내용이 떠올랐어요. ‘애들이 하루 종일 자는 건 자고 싶어 자는 게 아니다. 힘들어서 그런 거다. 눈 뜨고 일어나도 할 일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고 뭔가 달라지고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깨어 있는 것 보다 그나마 자는 게 덜 괴로워서 종일 자는 거다. 사실은 자면서도 끙끙댄다. 힘들어 하는 그 마음을 알아줘야 한다.’
그 생각이 나자 측은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는 애 손을 잡고 ‘정말 미안해. 네가 힘들어서 자는 줄도 모르고 매일처럼 화내고 소리 질러서 미안해. 엄마한테 많이 서운했지? 네가 힘들어 하는걸 몰라줘서 미안해.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게. 엄마가 미안해.’라고 했어요. 그랬는데 애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거예요. 자는 줄 알았는데 눈만 감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둘이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어요. 다음날부터 애가 바뀌었어요. 일어나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고 쓰레기도 버려주겠다 하고. 애 마음이 달라진 것 같아요.”
마음이 뭉클했다. 모두가 축하한다며 박수치고 좋아했다. 이해와 수용이 되면 변화가 일어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이때 도움이 되는 방법들이 있다.
1) 지식을 갖추라.
지식은 이해와 수용을 도와준다. 지식이 많으면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설혹 이해가 되지 않을 때라도 미루어 짐작하는 힘이 생긴다. 좋은 관계를 원한다면 상대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갖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좋은 책을 많이 읽고, 가족교육 또는 이런 저런 교육을 받는 게 좋다. 책이나 교육보다 더 좋은 방법은 상대에게 왜 그런지? 왜 그런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는지? 직접 물어보는 방법이다. 물어보고 끈기 있게 경청하면 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상대의 마음이 닫혀서 묵묵부답일 때는 어찌 해야 하는가?
2) 좋은 의도로 짐작하라.
짐작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건 좋은 의도로 짐작하는 거다. 상대방 탓을 하면 거꾸로 간다. 예를 들면 상대가 화내고 소리 지르면 ‘뭔가 서운한 게 있구나.’ 짐작하면 된다. 그런데 ‘저 사람은 성격이 별나.’,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쁜 의도로 짐작하면 상황이 악화된다. 두 사람 관계는 멀어진다.
상대를 탓하기보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로 거꾸로 한다. 이해가 안 되면 상대를 탓하고 비난한다. 그게 아니다. 이해를 못하는 사람은 나니까, 이해를 못하는 내게 문제가 있는 거다. 내 마음이 좁거나 지식이 짧아서 이해를 못하는 거다. 결과적으로 내 마음에 화가 차고 상대와의 관계만 악화된다.
3) 화를 풀어라.
좋은 의도로 짐작해야 하는데, 화가 나고 상대에 대한 서운함이 많을 땐 그게 안 된다. 이 경우 상대와의 관계를 어찌하고 싶은지를 생각해야 한다. 인간관계를 끊어버리고 서로 얼굴 보지 않고 살 것인가? 그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끊을 수 없는 관계라면? 그리고 관계를 악화하기보다 개선하고 싶다면? 화를 풀어야 한다. 상대에게 풀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상대가 풀어주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스스로 화를 풀어야 한다. 기도와 참선도 좋고, 산책과 운동도 좋고, 설거지와 청소도 좋다. 싸우지 않고 화내지 않고 스스로 화를 풀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라도 좋다. 화가 풀리면 상대를 이해하는 게 수월하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가 수월하다.
첫댓글 본 카페의 [자료실 함께 만들어가기] 메뉴에 있는 <촛불저서> 게시판에 들어가시면, 이 책 (잡초인생: 정신장애인의 삶의 여정) 전체를 무료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단 회원가입을 하셔야만 됩니다. 가입신청 즉시 정회원으로 가입됩니다.)
촛불님의 아낌없이 주시는 마음,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 아들한테 제가 했던 행동들이 정말 많이 반성이 됩니다 좋은 자료 정말 감사합니다 생각 날때마다 읽으며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핵심은 놓치고 지엽적인 방편에 꽂힌다. 뭘 먹이면 좋다. 웃음치료. 미술치료가 좋다. 운동이 좋다. 여행이 좋다.그래서 자녀에게 이래라 저래라 권하고 설득하고 강요한다.
- 걱정과 기대 때문에 지나치게 세세한 일들에 신경을 쓴다. 세세한 일들에 대한 잔신경은 꺼버리고 크게 보고 길게 봐야 한다. 이것이 ‘너그러운 무관심’이다.
- 짐작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건 좋은 의도로 짐작하는 거다. 상대방 탓을 하면 거꾸로 간다.
- 화내지 않고 스스로 화를 풀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라도 좋다. 화가 풀리면 상대를 이해하는 게 수월하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가 가능하다.
- 핵심사항 2
- 자식 앞에서 잘난 척,똑똑한 척하며 한푸는 부모
- 환자라는 생각 없이 그냥 편하게 만난다.
- 친구가 되고서야 많은 걸 알게 되었다.
- 무지가 병보다 더 무섭다
- 태어날 때 박수치고 좋아하며 축복해줬던 것처럼.
-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주는 것’, ‘전체 방향만 잘 잡고 가고 있다 생각하면,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는 문제 삼지 않는 것’. ‘정말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관심과 애정이 있되 불필요하게 간섭하거나 관여하지 않는 것’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것
- 누가 강요하듯 말하면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한다.
배정규님(촛불), 파란마음센터 김연수님(제자) 감사드립니다
꼼꼼하게 요약하며 읽어주셨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