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보다 깊은 방 / 김경
이제 막 사회인이 된 아들은 저만의 자리를 트느라 부산하다. 책상과 침대와 전자피아노를 이리저리 배치하는 얼굴에 환희로움이 묻어난다. 흐뭇한 감정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마음이 어딘가를 향해 달려간다. 그 옛날, 처음으로 온전한 자유를 만끽하게 하던 우리 집 구석진 방이다.
학창 시절, 오빠와 언니들의 틈에서 내 방 하나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칠 남매가 북적대며 사는 시골집에 넷째 딸을 위한 방이 따로 있을 리 만무했다. 언니와 한방을 쓰며 화장품이며 옷을 탐내는 동안 내 방이 생기면 마음껏 꾸밀 것이라는 야망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도시로 통학하던 그때는 한 길까지 한참을 걸어 나가서 버스를 기다리고, 북새통인 버스에 시달리다 내려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는 다시 언덕길을 올라야 했다. 집에서 학교에 당도하기까지의 수고로움이 성가시고 불만스러웠다. 학교 주변에서 자취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고작 몇 발자국 걸어서 학교에 오가는 친구들 자취방에 놀러 가면, 거기에는 자유라는 달콤하고도 신선한 공기가 만연했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척 척 해내는 친구들이 신기해 입이 떡 벌어졌다.
한번은 나도 자취를 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가 오빠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미성년자가 혼자서 타지에 사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여자라서 더더욱 안 되는 일이라고 못을 박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서 다녀야 한다는 일언지하는 막 부풀기 시작한 무지개 꿈을 그대로 박제시켰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으니 오빠는 가장이나 다름없었다. 장남의 무게를 업고 아버지보다 더 엄하게 동생들을 단속했다. 시골 동네였어도 도시와는 지척이었으니 내 말이 타당성이 없기도 했다. 가당치도 않았던 날갯짓은 그렇게 내 몸속 어딘가에서 이따금 꿈틀거릴 뿐이었다.
오빠가 군대에 다녀온 뒤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낡은 기와집을 부수고 새로 집을 지었다. 동네에서는 첫 번째 양옥집이었다. 초인종도 달고 전화도 들어왔다. 하지만 그 새로운 문화를 압도하는 절대적 기쁨이 있었으니 그것은 `내 방`이라는 고유명사였다. 때마침 언니들이 차례로 결혼을 하고, 아래채 방을 오빠가 쓰게 되면서 내게도 방이 생겼다. 혼자만의 공간은 그때까지 받은 선물 중 가장 값지고 훌륭한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사슬 하나가 툭 끊어지는 희열이 나를 감쌌다.
온전한 나만의 세계가 거기 있었다. 문 하나를 닫았을 뿐인데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되는 해방감이 출렁거렸다. 이름 모를 기대와 설렘으로 작은 방이 가득 채워졌다. 까닭 모를 고뇌는 서쪽으로 나 있는 창이 해결해 주었는데 새로 생긴 목장의 풍요로운 광경, 풀 냄새는 더없이 좋은 친구였다. 구름과 하늘이 그대로 들어오는 창문에 기대어 서면 내 영혼은 저절로 살이 쪘다. 해넘이가 시작될 무렵이면 감성은 극에 달했다. 찌르르한 무엇이 가슴을 뜨겁게 치고 들어왔다.
사춘기의 온갖 뜬금없는 것들이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잦아들기를 반복했으며 아무리 우울하고 혼란스러워도 내 방으로 숨어들면 어느 정도 치유가 되었다. 방학이면 친구가 놀러와 여러 날 자고 가기도 했는데 그럴 때도 우리는 방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밀담 같지도 않은 밀담을 주고받았다. 무엇이든 비밀이 보장되는 공간이 주는 선물을 나는 한없이 사랑했다.
계절이 바뀌면 방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들꽃 한 무더기가 책상 위에 얹히거나 붉은 단풍잎이 벽을 따라 줄을 섰다. 내가 꾸는 꿈도 그렇게 꽃잎처럼 낙엽처럼 세월을 닮아갔다. 세계고전들을 독파하고 어디론가 보낼 두서없는 글들을 써댔다. 밤이 영원토록 새지 않기를 기도하며 목적이 불분명한 만리장성을 쌓고 부수길 반복했다. 돌이켜보면 그 은거의 시간 속에 나도 몰랐던 내 문학적 감성의 발화점이 숨어있었을 것이다.
결혼한 뒤에도 나는 여전히 그 방을 즐겨 찾았다. 그곳은 단숨에 나를 무장 해제시키는 마법의 방이었다. 저절로 마음이 풀어지고 잠이 쏟아졌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그 방의 주인이던 시절로 돌아가곤 했는데 어른이 되면서 부여받은 역할들이 사라지고 오직 옛날의 내가 거기 있을 뿐이었다. 자유와 구속을 넘나들었던, 행복과 고뇌가 적당히 뒤섞인 어느 한 시절의 기억들이 순수라는 이름으로 나를 가두었다.
세월 앞에 영원할 수 있는 것이 어디 있으랴. 그 후, 동네가 아파트 단지로 변하면서 방은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켜켜이 쌓인 추억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이별이었다. 편리한 아파트로 이사 간 엄마가 그렇게 좋아할 때도 나는 미련과 안타까움으로 잃어버린 나의 방을 서러워했다.
객지 생활에 익숙해진 아들은 제 나름으로 방을 꾸미기에 여념이 없다. 그 옛날 내가 그러했듯, 아들 역시 저만의 세상을 즐길 준비가 되었나 보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고스란히 자유스러운 방 하나를 갖는 일은 우주를 품는 일과도 같다. 좁은 사각의 절대 공간이 우주의 기운으로 그득하다. 저 거리낄 것 없는 청춘이, 상기된 여유로움이 마냥 부럽다.
오래전, 방 하나로 온 세상을 얻었던 뭉클함으로 아들을 바라본다. 시대가 달라지긴 했어도 이 작은 방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서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깨닫고 누렸으면 좋겠다. 훗날 저도 이 엄마처럼 오롯이 혼자임을 즐기던 한 시절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