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나온 모든 시간들에게
임세영
누군가 “너는 ‘스무 살’ 하면 어떤 말이 가장 먼저 떠올라?”하고 묻는다면 나는 “싱그럽고 풋풋한 나이일 거야!”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 너의 스무 살은 어땠어?”하고 다시 물으면 우물쭈물하다 난 “별로였어.”하고 대답할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청춘남녀의 이미지와는 달리 나에게 ‘스무 살’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나의 스무 살은 그저 ‘나의 스무 살’일 뿐이다. 그런데 왜 내 스무 살은 길가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빛나지 않을까? 그 시절 내 안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난 지금 열아홉 살로 시간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대학 진로를 심리학과로 정했다. 하지만 부족한 성적으로 목표를 이루지 못하였다. 그런 내게 어머니는 소위 말하는 ‘취업이 잘 되는 과’에 지원할 것을 권유하셨고, 나는 2015년 3월 어머니가 바랐던 ‘그 학과’의 학생이 되었다.
대학 생활은 내가 기대하던 것과 매우 달랐다. 원하지 않았던 전공, 선배와 동기들과의 갈등, 순식간에 퍼지는 소문,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 예상과는 달리 자유로운 학교생활이 아니었고,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바깥세상이라는 게 이런 건가? 그렇다면 나는 이런 세상에 더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고 싶지 않아.’
나는 스무 살 때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염세주의자’였다. 물론 고등학생 시절은 달랐다. 학창 시절 나는 반에서 꽤 활발한 학생이었다.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귀찮게 하고, 뜬금없이 말을 걸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반 친구들은 이런 나를 기분 좋게 받아주었다. 그리고 언제나 무슨 일이든 함께하는 친구들이 곁에 있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고등학교 3년을 보낸 나는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거야!’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은 무참히 깨졌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순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라면서 누구나 겪었을 법한 흔한 이야기지만, 그 당시 난 이런 상황이 큰 충격이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은 대학 생활은 점점 나를 위축시켰다.
한 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 때의 일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고등학교 친구와 만난 날, 내 머리를 종처럼 댕-하고 울렸던 친구의 말이 아직 생생하다.
“너 왜 이렇게 눈치를 봐?”
“내가 그랬어?”
예전에는 마치 우리 집 마당인 것처럼 온 시내를 누볐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후 나는 많이 변해 있었다. 혹시 대학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자꾸 주위를 살폈던 것 같다. 달라진 내 모습을 본 친구의 질문이 나를 돌아보게 했다. 친구에게 이런저런 하소연을 쏟아놓는데 눈물이 왈칵 밀려왔다.
하지만 나는 고작 이까짓 일로 움츠러든 내 모습에 자존심이 상할까 봐 눈물을 꾹 참았다.
세월이 한 참 흘렀지만, 그때의 기억이 아직 내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스무 살, 그때 나는 이랬었지. 색깔로 말하면 잿빛이랄까? 그런데 왜 나는 우울했던 스무 살만 자꾸 떠올리는 걸까? 아니면 이런 기억만 내게 남은 걸까?
‘나에게도 반짝거리는 스무 살의 순간이 분명 있을 텐데’ 하며 한참 동안 멍하니 그 시절을 회상하다가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대학 동기와 나눴던 대화가 불현듯 떠올랐다.
“너 진짜 잘 웃는다.”
“학교에서는 웃을 일이 별로 없는데 잘 웃는다고?”
“응, 너 볼 때마다 웃고 있어.”
동기의 말에 ‘내가 남들한테는 그렇게 보이나?’하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학교가 지옥 같다고 생각하며 꾸역꾸역 다녔는데, 그 속에서 ‘나는 매일 웃고 있었구나!’ 싶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어쩌면 나는 기억의 단면만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다섯 감정을 다루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 속의 감정들처럼.
기쁨과 슬픔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기억 구슬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주인공이 행복해지는 그 영화를 보며 ‘그래 기쁨만 있는 기억이 어딨고 슬픔만 있는 기억이 어딨어?’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 기억들을 단면적으로만 보고 있었다. 분명 다양한 빛깔이 있었는데, 왜 나는 내 스무 살을 잿빛이라고만 생각했을까? 잿빛만이 아닌 말간 노란빛의 기억을 하나 꺼내놓으니 언뜻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하나의 밝은 기억이 떠올랐다.
난 ‘그걸 왜 잊고 있었지?’하고 다급하게 네이버 중요 메일함에 들어가 메일 하나를 찾아냈다. 2014년 12월 어느 날, 그것은 아버지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열아홉의 나와 같이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열어보았다. 거기엔 세상에 막 나가려는 딸에게 쓴 아버지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많이 초조하고 고민도 깊어가리라 추측이 되는구나. 아무리 엄마 성격 닮아서 낙천적이라고 해도 인간의 공포는 죽음과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것이거든.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미래에 대한 꿈이 그려지고 있으면 누구나 행복해지는데 그것이 이뤄지든 말든 현시점은 행복하고 또 그것을 추구해야 인간은 살아갈 동력이 생기는 법이야.
네가 하고 있을 지금의 고민이 가치 없는 고민은 아니고 어쩌면 누구나 하고 있을 고민이기도 하고, 또한 꼭 필요한 고민이기도 하다는 게 내 생각이란다.
지금 아빠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너무 초조해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깊이 생각해보라고 하고 싶어. 인생은 ‘마라톤’이거든. 지겹고 또 힘든 고등학교 3년을 보냈지만 그래서 해방되고 싶겠지만 급하게 서둘다 보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지.
대부분 사람이 가는 길이 모두 옳은 것은 결코 아니며, 평생을 해도 심장이 뛰며 설레는 일이 자신에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해.
물론 그런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학교에 다니는 게 우리의 현실이지만, 만약 내가 너라면 1~2년 동안 200~300권 이상 무작위로 책을 읽고 여행도 하면서 혼자만의 사색과 독백을 하고 자신의 관심사가 뭔지,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며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곧 정시 원서를 쓰겠지만 당장 진학에 연연하여 판단을 흐리지 않도록 하고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어.
스스로 옳다고 판단되면 옳은 것이지 인생을 타자와 비교하며 나의 행복과 불행을 운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단다. 각자에 있어서 스스로 인생은 소중하고 단 한 번뿐인 인생이니깐 말이야.”
처음 이 편지를 받았을 때 나는 아버지께 어떠한 답도 회신하지 않았다. 열아홉 살의 나는 아버지가 말씀하셨듯이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공포에 사로잡혀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줄줄이 들려오는 수시 불합격 소식에 허무함과 무기력함이 밀려들었고, 다른 친구들보다 뒤처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다. 그로 인해 아버지의 편지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여유와 용기가 없었다.
이 편지가 왜 지금 생각이 났을까? 그때 내가 한 선택이 후회되어서일까? 아버지 말씀대로 바로 대학에 가지 않고 더 나에 관해 탐구해 보았더라면 나의 스무 살이 달라져 있을까?
잠시 많은 질문을 떠올려 보다 지금의 내가 2014년도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지금의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가지 않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열아홉 살의 나로 다시 돌아간다면 난 그때와 똑같은 선택을 했으리라.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졌구나. 아, 내가 달라진 건 나의 선택으로 지금까지 경험해 온 것들 덕분이겠구나. 그렇다면 열아홉 살뿐만 아니라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스무 살의 경험들도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의 밑거름이 되어줬겠구나.’ 문득 이런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래 맞아, 나는 달라진 게 아니라 성장한 거야.
나의 스무 살을 되새기며
내가 쓸 글의 주제가 ‘스무 살’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나는 한숨을 내쉬며 ‘스무 살에 대해 별로 쓰고 싶지 않은데….’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왜 내 스무 살의 기억은 흐릿하며 안 좋았던 감정만 남아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어, 추억을 하나둘 꺼내 애써 들여다보았다.
억지로라도 끄집어내 보니 힘들었던 기억도 많았지만, 그와 함께 나름 즐거웠던 추억들도 조금씩 떠올라 행복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어릴 적 미술 시간에 난 ‘크레파스 스크래치 그림 그리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도화지를 알록달록한 색깔의 크레파스로 채워두고 그 위를 검은색 크레파스로 덮은 후, 이쑤시개 따위로 긁어내는 그림 기법이었다. 그래서 도화지를 뾰족한 것으로 긁어내면 검은색에 가려져 있던 예쁜 색깔들을 볼 수 있었다.
왠지 이 그림이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내 성격을 바꿔놓은 스무 살의 기억을 검은색 크레파스로 아무렇게나 칠해놓고 외면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술 시간에 했던 것처럼 손끝으로 살살 긁어보니 그 밑에는 따뜻하고 반짝거리는 색깔들이 숨어있었던 게 아닌가. 결국, 내 기억 속에는 잊혀있던 즐거운 순간들이 계속 자리 잡고 있던 것이다.
나는 그저 좋았던 추억들을 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갑자기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나의 스무 살에게 미안해졌다. 스무 살 뿐만 아니라 내가 외면했던 나의 모든 시간들에게.
나는 작년까지 주어진 길만 걸으며 단조롭게 살아왔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않았으며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해야 할 일만 했고 다람쥐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에 눌어붙어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내 안의 무언가가 깨졌다. 그로 인해 나를 새롭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막연하게 상상만 했던 미래의 내 모습을 실현하기로 한 것이다.
새로운 도전의 길에 나섰다. 내가 바라던 강의를 듣게 되고,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아마 5년간의 직장생활을 했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열아홉 살의 나와 똑같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서도 선뜻 알을 깨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은 어제와 분명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나의 모든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구나. 남들만큼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의 스무 살이, 아니 나의 모든 시간들이 내 안에서 빛을 내며 나의 거름이 되어주고 있었구나.
“너의 스무 살은?” 누군가 다시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쁘지 않았어.”
이제 알게 되었다. 나의 모든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반짝이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첫댓글
우리 부반장님은 나이보다 깊은 눈빛을 가졌다 생각했는데.. 아빠에게 물려받은 모양입니다. 고3 딸에게 그런 편지를 써주시는 아빠.. 흔치 않을 것 같아요. 덕분에 저도 지나온 스무 살, 지나온 모든 날이 나에게 밑거름이 되었다는 걸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