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 : 2011. 11. 19(토) 23:30~11. 20(일)
□ 곳 : 돗재(해발 310m)~태악산(太岳山, 530m)~노인봉(老人峰, 530m)~성재봉(519m-‘GPS', 514m-박건석)~
말머리재(해발 344m)~촛대봉~개기재(해발290m)~계당산~예재(해발 290m)
□ 백삼오산악회, 호남정맥 14구간
□ 걷는 데 걸린 시간 : 02:42~12:02-30⇒9시간 20분(글쓴 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일러두기
이 글에서 쓰는 말[용어]은 다음과 같다
○ 백두대간@정맥 GPS 종주지도집, 산악문화→‘백두&정맥’로 줄여 씀[약기(略記)]
○ 국립지리원 최신 지도(백삼오산악회 제공)→‘지리원’로 줄여 씀[약기(略記)]
○ 진혁진의 백두대간과 산행정보→‘진혁진’으로 줄여 씀[약기(略記)]
○ 서래야 박건석 푯말→‘박건석’으로 줄여 씀[약기(略記)]
※ 서래야 박건석 - 우리보다 앞서 호남정맥을 걷고 푯말을 붙여놓은 사람
□ 간추린 발자취(글쓴 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02:42 돗재(해발 310m-‘백두&정맥’, ‘한천자연휴양림 들머리‘) 나섬
○ 03:09-10 458봉(‘지리원’)[463m-‘백두&정맥’, ‘진혁진’)
○ 03:37-30 태악산(太岳山, 530m-‘백두&정맥’, 524m-‘박건석 푯말’, ‘진혁진’)
○ 03:50 아주 작은 봉우리, 돌탑
○ 04:11-20 길 왼쪽에 녹슨 그물 철조망
○ 04:27-30 노인봉(老人峰, 530m-‘지리원’, 529.9m-‘백두&정맥’)
○ 04:52-20 성재봉(519m-‘백두&정맥', 514.0m-‘박건석’)
○ 05:24 매봉(430.0m-‘박건석’)
○ 05:35-25 말머리재(해발 344m-‘백두&정맥')(여수 오동산악회, 2004. 12. 18 푯말)
○ 06:39-40 촛대봉(527m-‘지리원‘, 522.4m-’백두&정맥', ‘박건식’)
○ 07:22-20 두봉산(斗峰山, 630.0m-‘지리원‘, 631m-'백두&정맥’, 630.5m-’박건식 푯말),
삼각점, ’산불 무인 감시 시설‘, 아침 밥 먹음
○ 07:52-30 아침밥 먹고 두봉산 나섬
○ 08:00 헬기장 자국[훈적]
○ 08:04-15 장재봉 갈림길
○ 08:41-30 471.5봉(-‘지리원’}[468.6봉-‘백두&정맥', ’전혁진’], 삼각점
○ 08:42-45 길 왼쪽에 제주 양씨 (묵은) 뫼
○ 09:01 개기재(해발 290m-‘백두&정맥‘), 2차선 아스팔트 길
○ 09:06-10 창녕 남씨 뫼
○ 09:56-30 (묵은) 헬기장, 길 푯말(↓개기재, ←복내면 사무소 5.09km, →계당산 정상 0.4km)
○ 09:58 철쭉 무리지어 있는 곳
○ 09:58-30 + 갈림길, 나무 걸상 4개무
○ 10:02 나무 걸상 2개
○ 10:05 계당산(桂堂山, 580m-푯말. ‘전혁진’, 581m-‘지리원‘, 580.2m-‘백두&정맥‘),
길 푯말(→(실제↗)쌍봉사 3.3km, ↓개기재 3.2km, ↓복내면사무소 5.5km, ↑노동), 삼각점
○ 10:27-50 569봉(?)
○ 11:12-10 길 오른쪽에 감나무 3그루 있는 곳, 쉼
○ 11:21-30 감 먹고 쉰 뒤 나섬
○ 11:55-50 묵은 헬기장, 여기서 평평한 오르막
○ 12:02-30 예재(해발 290m-‘백두&정맥’), 길 푯말(↓계당산 8.6km, ↑근덕골재 8.6km, →구례리, ←보성군 노동면),
산행 끝
□ 줄거리(글쓴 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곤히 잠에 빠졌다가 버스가 돗재에 닿아(02:16쯤) 눈을 부스스 떴는데, 다들 길 나설 채비를 하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주섬주섬 물건들을 하나하나 챙겨 버스에서 내려 체찬 바람이 몰아치는 돗재에 내렸다.
돗재는 서쪽으로 화순군 한천면 오음리, 한계리와 동쪽으로 전남 화순군 한천면 반곡리를 잇는 822번 지방도가 지난다
새벽 2시 반을 조금 넘긴 시간에 어둠속에서 청승스럽게 무리지어 사진을 찍고, 웰빙 대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앞장서고, 돗재에서 1.5m 이상 되는 시멘트 벽을 타고 올라 산행에 나섰다.(02:42)
돗재에는 ‘한천 자연휴양림 들머리’ 인데 몰아치는 바람과 꼭두새벽에 여기저기 둘러볼 새도 없이 앞 사람들이 우루루 길을 떠나니 나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꼭두새벽에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추위가 몰려왔다.
집에서 따뜻한 방에 이불 덮고 드러누웠으면 밖에 바람이 부는지 모르고 곤히 잠에 빠졌을 시간인데, 이게 무슨 꼴인지, 내가 생각해도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산에 단단히 미쳤다고 할 수밖에 달리 이를 말이 없다.
돗재에서 완만한 오르막을 11분쯤 오르면 자그만 턱에 닿고(02:53), 완만한 내리막을 6분쯤 간 뒤에 완만한 오르막을 9분쯤 가면 평평하고 작은 봉우리인 458봉(‘지리원’)[463m-‘백두&정맥’, ‘진혁진’)에 닿는다.(03:09-10)
이 봉우리에서 완만한 내리막 오르막을 번갈아 28분쯤 가면 태악산에 닿는데, 태악산 높이를 530m(‘백두&정맥’), 또는 524m(‘박건석 푯말’, ‘진혁진’)로 달리 적어 놓았다.(03:37-30)
태악산에서 완만한 내리막 오르막을 번갈아 12분쯤 가면 돌탑이 있는 아주 작은 봉우리에 닿고(03:50), 곧 뫼 2기가 나온다.
돌탑이 있는 곳에서 (아주) 완만한 내리막 오르막을 21분쯤 가면 길 왼쪽에 녹슨 철조망이 나오는데(01:11-20), 무엇을 지키려고 둘러친 철조망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돌탑이 있는 곳에서 37분쯤 가면 노인봉(530m)에 닿는데(04:27-30), 대체로 (아주) 완만한 내리막 오르막을 번갈아 25분쯤 가면 평평하고 작은 봉우리인 성재봉에 닿는데(04:52-20), 성재봉 높이는 519m(‘백두&정맥'), 514.0m(‘박건석’) 으로 표기해 놓았다.
성재봉에서 30분쯤 완만한 내리막 오르막을 번갈아 가면 아주 평평하고 밋밋한 봉우리가 나오는데, 매봉(432.0m-‘박건석’) 푯말이 있었으나(05:24), 지도에는 매봉 표기가 없다.
매봉에서 대체로 (아주) 완만한 내리막을 11분쯤 가면 잘루목인 말머리재(해발 344m-‘백두&정맥')에 닿는데(05:35-25) ’여수 오동산악회‘에서 2004. 12. 18에 달아 놓은 푯말이 있다.
말머리재에서 잠깐 머물다 길을 나서(05:39) 13분쯤 대체로 (아주) 완만한 오르막을 가면 편백이 조금 있는 곳에 닿고(05:52-30), 말머리재에서 대체로 (아주) 완만한 오르막을 조릿대 밭도 지나고 47분쯤 가면 촛대봉에 닿는데(06:39-40), 촛대봉 높이를 527m(‘지리원’)과 522.4m(‘백두&정맥’, ‘박건식’)으로 표기해 놓았다.
촛대봉에서 10분쯤 (아주) 완만한 내리막을 가다가 그 뒤로는 대체로 완만한 오르막인데 촛대봉에서 42분쯤 가면 삼각점과 산불 무인 감시 시설이 있는 두봉산(630.0m)에 닿아(07:22-20) 아침밥을 먹었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07:52-30), 두봉산에서 오른쬭으로 거의 90도쯤 굽어지는 길을 7분쯤 가면 헬기장 자국이 있는데(08:00),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헬기장 기능을 잃은 것 같았다.
이 헬기장 자국이 있는 곳에서 4분쯤 가면 평평하고 아주 작은 봉우리인 장재봉 갈림길인데(08:04-15), 여기서 바로 나아가면 장재봉으로 가는 길인데, 정맥 길은 여기서 오른쪽[남쪽]으로 거의 80도쯤 굽어 (아주) 완만한 내리막이고 그 뒤 (아주) 완만한 내리막 오르막을 번갈아 22분쯤 가면 ―| 갈림길이 나오는데(08:26-35), 여기서 오른쪽 산등성(이) 버리고 왼쪽으로 간다.
장제봉 갈림길에서 37분쯤 대체로 (아주) 완만한 내리막을 가면 삼각점이 있는 아주 평평하고 작은 봉우리인 471.5봉이 있고(08:41-30), 여기서 1분쯤 가면 묵은 제주 양씨 뫼가 나온다.(08:42-45)
471.5봉에서 6분쯤 간 지점에서 왼쪽 산등성(이)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야 하고(08:48), 471.5봉에서 14분쯤 가면 개기재 앞인데, 여기서 황금색 잎을 가진 구상나무 모를 심어놓은 오른쪽 밭으로 가서(08:59-50), 밭이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동쪽] 농사길 같은 곳으로 내려가면(09:00-30), 2차선 아스팔트 길인 개기재(해발 290m-‘백두&정맥‘)에 닿는데(09:01), 개기재는 오른쪽[서쪽]은 전남 화순군 이양면 옥리, 왼쪽[동쪽]은 전남 보성군 복내면 진봉리로 통하는 58번 국도이다.
개기재 아스팔트 길 따라 오른쪽[서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길 왼쪽에 깃이 여러 개 달려 있는데, 깃이 달린 왼쪽[남쪽] 산으로 올라(09:01-50) 이내 왼쪽으로 가야 하고, 아스팔트 길에서 왼쪽으로 들어서 바로 나아가는 쪽에 깃이 보이는데,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
아스팔트 길에서 산으로 접어들면 다시 왼쪽[동쪽]으로 아스팔트 길 오른쪽으로 아스팔트 길과 나란히 걸어야 한다.
개기재 길을 내면서 산을 깎아내 정맥 길이 바로 이어지지 못하고, 북쪽에서 개기재 닿기 전 오른쪽[서쪽]으로 갔다가 개기재 아스팔트 길에 닿아서는 고개 위로 바로 오르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갔다가 아스팔트 길에서 왼쪽[남쪽]으로 산 쪽으로 들어서 바로 왼쪽[동쪽]으로 아스팔트 길과 나란히 걸어 개기재 고개쯤에서 길은 오른쪽[거의 남쪽]으로 기울어진다.
아스팔트 길에서 왼쪽 산으로 접어들어 4분쯤 되면 창녕 남씨 뫼가 나온다.(09:06-10)
개기재에서 대체로 (아주) 완만한 오르막을 55분쯤 가면 길 푯말(↓개기재, ←복내면 사무소 5.09km, →계당산 정상 0.4km)과 나무 걸상 4개가 있는 + 갈림길인 묵은 헬기장이 나온다.(09:56-30) 여기서 정맥 길은 오른쪽이고, 왼쪽으로 조금 가면 아주 평평한 넓은 곳이 나오는데, 키 작은 철쭉이 무리지어 있다.
여기서 다시 뒤돌아 나와 다시 갈림길이고(09:58-30), 여기서 계당산 쪽으로 바로 나아간다. 오른쪽은 개기재 쪽으로 아까 올라왔던 길이다.
이 갈림길에서 6분쯤 가면 길 푯말(→(실제↗)쌍봉사 3.3km, ↓개기재 3.2km, ↓복내면사무소 5.5km, ↑노동)과 삼각점이 있는 계당산(580m-푯말, 581m-‘지리원’)에 닿는다.(10:05)
계당산에서 4분쯤 머물다 개기재쪽에서 봤을 때 왼쪽으로 40도쯤 방향으로 나서(10:09) 18분쯤 (아주) 완만한 내리막 또는 (아주) 완만한 오르막을 번갈아가면 569봉에 닿고(10:27-50), 여기서 12분쯤 가면 평평한 턱이 나오는데, 정맥 길은 왼쪽 산등성(이)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90도쯤 굽어진다.
왼쪽으로 뻗은 산등성(이)이 정맥 길보다 더 높아 보이고 뚜렷해 보이기까지 하다.
계당산에서 1시간쯤 가면 길 오른쪽에 감나무 3그루가 있는 곳이 나오는데(11:12-10), 회장이 약한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땄는데 홍시로 변한 감 3개를 먹고 길을 나섰다.(11:21-30)
감나무 있는 곳에서 34분쯤 가면 묵은 헬기장이 나오고(11:55-50), 여기서 6분쯤 가면 예재(해발 290m-‘백두&대간’)에 닿아 산행을 마쳤다.
예재에는 바람이 오른쪽[북서쪽]에서 왼쪽[남동쪽]으로 세차게 불어 소주 한 잔을 하고 이내 차 안으로 들어왔다.
예재는 옛 29번 국도가 지나가는 고개였는데, 예재 아래에 예재굴[터널]을 뚫고 새롭게 29호 국도를 내면서 호남정맥을 걷는 산꾼 외에는 오가는 사람도 오가는 차도 없이 외롭게 있다. 예재에서 오른쪽[북서쪽]은 전남 화순군 이양면 구례리, 왼쪽[남동쪽]은 전남 보성군 노동면 학동리로 가는 길이다.
□ 늘어뜨린[펼친] 발자취(글쓴 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제 블로그 참조
△ 다음(daum) 블로그에서 한뫼 푸른솔, 또는 angol-jong
△ http://blog.daum.net/angol-jong
태악산
태악산
태악산에서 노인봉으로 가는 길에 있는 아주 작은 봉우리
노인봉
말머리재
촛대봉
촛대봉
두봉산
두봉산
두봉산
두봉산. 무인 산불 감시 시설
해는 이미 솟은 뒤였다.(두봉산에서)
두봉산
계당산 조금 못 미친 아주 평평한 곳(키 작은 철쭉이 무리지어 있는 곳)
계당산 조금 못 미친 아주 평평한 곳(키 작은 철쭉이 무리지어 있는 곳)
계당산 조금 못 미친 아주 평평한 곳(키 작은 철쭉이 무리지어 있는 곳)
계당산 조금 못 미친 아주 평평한 곳(키 작은 철쭉이 무리지어 있는 곳)
계당산 조금 못 미친 아주 평평한 곳(키 작은 철쭉이 무리지어 있는 곳)
계당산 조금 못 미친 아주 평평한 곳(키 작은 철쭉이 무리지어 있는 곳)
계당산 조금 못 미친 아주 평평한 곳(키 작은 철쭉이 무리지어 있는 곳)
계당산 조금 못 미친 곳
계당산
계당산
계당산
계당산
계당산
계당산에서
계당산에서
계당산에서
계당산에서
계당산에서
계당산에서
계당산에서
계당산에서
계당산에서
예재
예재
예재
예재
□ 그밖에
1. 날씨, 일기
○ 새벽에 버스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했을 때 하현달이 떠 있었다.
○ 02:40분쯤부터 기온이 차가왔으나 새벽~해 뜨기 전까지 서릿발이 돋지 않은 것으로 보아 기온은 3도 이상 되었을 것으로 미루어 생각한다[짐작한다], 왜냐하면 2도 이하만 되어도 곳에 따라서는 서릿발이 돋기 때문이다.
가. 바람
○ 바람은 북풍이 세게 불었고, 나무 따위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가 크게 들렸다.
돗재를 나설 때는 정맥 길이 거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었기 때문에 오른쪽[북쪽]에서 왼쪽[남쪽]으로 불다가, 성재봉을 지나서는 정맥 길이 서서북쪽에서 동동남쪽으로 뻗어 있어 바람 왼쪽[거의 북쪽]에서 오른쪽[거의 남쪽]으로 불었다.
○ 2010년 11월 넷째 주 낙동산악회 백두대간 이어걷기 9기 고치령~죽령 소백산 구간 걸을 때 매우 춥고, 특급 강풍을 만나 어려움을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 정맥 길을 걷는 산행 특성상 산등성(이)을 걷기 때문에 바람을 온몸으로 바로 받기 때문에 더욱 추웠고 길 두 쪽[양쪽]~네 쪽[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 길을 걸을 때만 잠깐 동안 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나. 바람 대비
○ 대원들은 재킷에 달린 모자를 덮어쓰거나, 귀마개 달린 모자를 쓰고, 등산 수건이나 두건으로 얼굴과 귀를 가리는 따위로 바람을 막았으나 추위를 느낀 이도 있었을 것이다.
2. 길 여건
○ 철쭉, 싸리 따위가 무리지어 있는 곳, 굴[터널]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어 걷는 데 방해가 된 곳도 있었다.
○ 어떤 곳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길 둘레[둘레] 풀과 작은 나무를 베어내어 걷기 수월한 곳도 있었다. ○ 길 푯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 새벽 일찍 나서는 바람에 어둠 속에서 둘레를 보지 못하고 지나간 길이 거의 반쯤 되어 산행 의미가 줄었다.
○ 이번 구간은 대체로 가파른 오르막, 내리막이 적고, 완만한 오르내림이 펼쳐졌다.
3. 식물
○ 조릿대 많았고, 조릿대 밭을 이룬 곳도 많았고, 키는 140~170cm쯤 되는 것이 많았다.
○ 철쭉 많았고, 철쭉이 무리지어 있는 곳이 많아 걷는데 지장을 주는 곳도 있었다.
○ 싸리(키 2.5~4m쯤) 제법 많고, 어떤 곳은 무리지어 있는 곳도 있었다.
○ 산딸기 종류(?) 가시 있는 나무 많았다.
○ 솔밭, 진달래, 철쭉, 신갈나무, 떡갈나무, 참나무, 굴참나무, 생강나무, 노간주나무, 단풍나무, 때죽나무, 도장나무(?), 서어나무(?), 리기다소나무, (가시 있는) 산딸기나무(?), 감태나무, 돌배나무, 조록싸리,
○ 편백, 삼나무
4. 솔가리와 대나무 갈퀴
○ 노랗게 옷을 갈아입은(?) 솔갈비가 길에 수북이 쌓여 있었는데 70년대 초 이전 시골에서 땔감이 모자랐을 때 대나무 갈퀴로 긁어모아 크게 보아 직육면체 모양으로 다져 지게에 지고 와서 솔가리 낟가리를 만들어 쌓아 두고, 그 위에 짚으로 간단한 이엉을 만들어 덮어 눈. 비에 젖지 않게 대비하며 겨우내 주로 밥 짓는데 땔감으로 썼다.
대나무 갈퀴는 대나무를 손가락 넓이 보다 좁게 잘게 쪼갠 다음 불을 피워 불 위에서 열을 쬔 다음 그 열이 식기 전에 기역 자(字)로 구부려 7~8개를 2~3cm쯤 벌려 구부리지 않은 끝을 한데 묶고, 기역자로 구부린 쪽은 부채꼴 모양으로 벌려 묶은 다음 150~170쯤 길이로 곱게 다듬은 나무 막대기에 묶어 만들어 솔가리를 긁어모으거나 풀을 베고 나서 긁어모으는 연장[도구]으로 썼다.
○ 60년대에 우리나라에 정유공장이 들어선 뒤 60년대 후반부터 나오기 시작한 플라스틱 연장으로 말미암아 대나무로 만들어 쓰던 생활 연장[도구]이 그 쓰임새를 플라스틱 연장에게 넘겨주고, 죽세공품 만들기도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갈퀴도 대나무로 만든 것은 없고, 농경사회가 시작되고 언제쯤부터 만들어 써왔는지, 우리나라에만 있는 연장인지는 몰라도, 농사를 짓던 우리 조상들이 아마 수백 년 어쩌면 천년도 넘는 세월동안 농사 연장[농기구]으로 유용하게 써왔을 텐데, 석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에서 플라스틱을 뽑아내는 기술이 발달하고, 정부의 산림녹화 정책에 따라 나무 베는 것을 단속하고, 땔감도 나무나 진잎[낙엽], 그루터기에서 연탄으로 바뀌면서 솔가리 따위를 긁어모을 일이 자꾸 적어지면서, 이윽고 솔가리나 참나무류 진잎[낙엽]을 긁어모으고, 곡식 줄기를 긁어모으는데 쓰이던 영광스럽던 화려한 세월을 뒤로 하고 이제는 딱딱한 플라스틱 갈퀴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마는 우리 조상들이 농사지을 때 써왔던 수많은 연장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그 이름조차 사라지고 있어 풍부한 우리말 낱말 숫자가 줄어들어 씁쓰레한 마음 금할 수 없다.
플라스틱 갈퀴는 제법 단단한 모양으로 농촌에서 두엄 같은 것을 뒤집거나 낼 때 쓰이던 쇠갈퀴까지 밀어내고 쓰이고 있다.
5. 옷차림
가. 윗옷, 재킷
○ 이번처럼 찬 바람이 많이 불 때는 바람막이 재킷을 입어야 체온이 내려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오리털 옷 따위는 땀 배출이 잘 되지 않아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운 날씨일 때에도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고, 다만 기온이 영하 10~20도 이하일 때에는 제한적으로 입을 수는 있을 것이다.
오리털 제품은 등 가방[배낭] 안에 넣고 다니다 밥을 먹거나 제법 오래 쉴 때는 잠깐 입어도 좋을 것이나, 이때에도 길을 나설 때는 다시 벗어 등 가방에 넣고, 바람막이 재킷을 겉에 입는 것이 좋을 것이다.
○ 내 옷차림 : 가을 재킷, 가을 조끼, 가을 바지, 처음 길 나설 때 초겨울 장갑, 뒤에는 초겨울 장갑 안에 얇은 장갑 끼었다.
○ 신발 끈이 자주 풀려 다시 매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나. 장갑
○ 봄, 가을 장갑이나, 면장갑을 끼었다면 손도 많이 시렸을 것이고, 나는 초겨울 장갑을 끼었는데도 손이 시려 나중에는 초겨울 장갑 안에 얇은 속 장갑을 끼었는데도 손이 시렸다. 겨울 장갑을 등 가방[배낭] 속에 넣고 갔으나 아직 본격적인 겨울이 아니라고 끼지는 않았더니 손 시린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겨울에 두꺼운 장갑을 끼고 가도 손이 시리고, 특히 아침밥을 먹고 나서 길을 나서면 10~20분쯤 손이 시린 것은 대간 길 걸으면서 익히 경험한 바이다. 아마 두꺼운 장갑을 끼어 알게 모르게 땀이 배어나와 찬 기온이 낮아 땀이 식어 손이 시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첫댓글 자세한 후기 너무나 감동적입니다.미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우리 백삼오의 저력으로 봅니다.다음 부터는 동계산행을 새벽 4시 전후로 등반을 시작하도록 건의하겠습니다.
은비 지기 사진 실리는 산행후기는 100점 만점에 100점...!!!! 지나온길 복습 하고 갑니다 수고했습니다...
여러모로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