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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컨택트
[종류] 영화
[스포일러 유무] O
[가격 및 영수증] ?(모바일 발권)
[구매처 또는 관람처] 메가박스, 3회
[장점] 에이미 아담스의 섬세한 연기, 간결하면서도 압도적인 연출, 치밀한 플롯 구성, 영화와 싱크로율 100%인 OST
[단점] 중국에 대한 일방향적 묘사
[한줄평] 운명을 끌어안을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긍정
[나의 평점] 5/5
컨택트는 극장에 가서 3번이나 관람한 영화이다. 나는 SF, 외계인 소재, 그리고 드니 빌뇌브의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감독의 전작인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도 2번 봤다.)
내가 좋아하는 드니 빌뇌브 감독 영화의 특징은 바로 불편과 불안이다. 관객들은 의자에 앉아 편하게 영상을 감상하는 대신 갑자기 이야기 속으로 내동댕이쳐져 상황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주인공과 함께 허우적거리게 된다.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 특유의 연출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외계우주선의 첫 착륙 후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혼란과 군사적 긴장감은 현재의 국제정세를 묘하게 연상시킨다. 그리고 너무나 현실적인 각국의 날카로운 대응은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이 불안감에 정점을 찍는 것은 주인공이 외계인들과 처음 대면하는 장면이다. 안개 속에서 뱃고둥처럼 기묘하게 울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거대한 존재들. 게다가 2개보다 많은 거뭇거뭇한 다리는 인류의 충격을 배가시킨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같은 길을 걸어온다. '컨택트'의 충격에서 벗어나면 이제 질문을 할 차례다. 알 수 없는 존재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외계인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SF 영화는 이에 대해 명료한 답을 가지고 있다. 생물학적 청소(인류 멸종이든 에일리언의 패배이든간에)로 대단원을 맺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암묵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외부의 낯선 이는 사악한 자이므로 이놈들을 쳐죽여서 승리를 만끽하자!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고전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는다. 대신 세계에 대한 소통 수단으로서 언어의 힘을 재조명한다.
일단 주인공은 언어학자이다(여기서부터 공돌이들이 선진 과학 기술로 지구를 구하는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노선을 걷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직관적이며 단순하지만 그래서 최선인 방법으로 접근한다. 상호호혜성이다. 그들 입장에서 외계인인 인간의 언어로 질문을 외치며 돌아올 수 없는 답을 요구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외계인과 주인공 일행은 서로의 문자를 배우며 쌍방대화를 시도한다. 그리하여 오직 주인공만이 그들의 언어를 열쇠로 하여 새로운 세계를 인지하게 된다.
다른 존재, 타인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포기하지 않는 이러한 주인공의 노력은 평범하고 선량하기에 사이렌이 울리는 군사기지 한가운데서 위화감을 자아낸다. 특히 '무기'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눈을 빛내며 총을 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다. 사실 그 단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움찔했다. 아니, 저 오징어 같은 놈들이 우주전쟁을 하러 우리집에 쳐들어왔단 말이야?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무기'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핵미사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외계인이 인류를 위해 주는 선물이었다. 도구, 기술, 무기는 모두 '사용한다'라는 의미적 중복을 가진다. 하지만 무기라는 해석을 선택한 순간, 상황은 순식간에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규정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정의한 단어의 의미를 바꾸려고 애쓰지만, 이미 불안은 전파되었고 상황을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만다. 이렇듯 말이라는 불완전한 기호 체계에는 항상 오류나 구멍이 있다. 하나의 단어가 다각도로 해석될 여지는 너무나도 많다. 여기에는 의미적 중첩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세계관도 한몫 한다. 이 불완전한 체계를 만들어낸 것은 오해로 가득 찬 우리의 사상이기에.
그래서 주인공은 다가오는 전쟁을 막기 위해 자신이 외계인들에게서 받은 '무기'를 이용하게 된다.
여기서 이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또다른 점이 등장한다. 바로 시간에 대한 인식이다.
인류는 시간을 순차적인 인과관계로 인지한다. A 사건으로 인해 B 결과가 일어났다고 해석한다. 또한 미래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계인들은 이와 달리 시간을 순환적인 구조로 인식한다. 원의 모양을 생각하면 된다. 앞과 뒤, 시작과 끝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는 외계인들의 동그란 문자 구조와 동일한 것으로 그들은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비선형적(non-linear)은 '직선이 아닌'이라는 뜻이다. 과거-현재-미래의 순차성은 사라지며 결과는 거꾸로 원인에 간섭을 하게 된다. 일단 멋지게 말을 시작해도 생각하다보면 통일성 있게 끝맺기 어려운 인간과 달리 그들은 아무리 복잡한 내용도 한꺼번에 표현해낼 수 있다. 철학적으로 보면 모든 것은 이미 알고 있으며 정해져 있다는 결정론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논리이지만.
('비선형적'이라는 단어의 뜻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아래 블로그를 참조하길 바란다. 다소 어렵지만 설명이 아주 잘 되어 있다. http://m.blog.naver.com/a2zygote/220922530433)
놀랍게도 이러한 사고 방식으로 인해 그들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며(이미 알고 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이를 그대로 실현하기 위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주인공 또한 외계인의 언어를 배워가며 그들처럼 사고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미래를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 현재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기억은 여기서 진실을 드러낸다. 그녀가 남편과 헤어진 뒤 혼자 키웠으나 끝내 불치병으로 죽은 어린 딸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가족의 단란한 추억 그리고 고통은 실존하지도 않는 주제에 마음을 끝없이 뒤흔들어놓는다. 맞닿은 현실 또한 녹록치 않다. 폭격은 지금이라도 곧 시작될 듯하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미래의 기억을 더듬어 중국 장군과 만나고 자신이 그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전쟁을 준비하던 완고한 장군은 지구 건너편의 모르는 여자가 전해온 죽은 아내의 유언을 전해듣고 결국 마음을 바꾼다.
외계인들이 떠나고 이 모든 일이 끝난 후, 주인공은 현재의 동료이자 미래의 남편이었던 남자에게 그리고 스크린 너머의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자신의 인생을 모두 알 수 있다면, 바꿀 건가요?
주인공은 바꾸지 않는다. 대신 자신 옆의 사람과 서로를 끌어안았다. 태어나고 죽어갈 딸을 기다리며.
명료하고 슬픈 길을 선택한 그녀와 달리 그 질문은 극장을 빠져나가는 순간 너머까지 잊혀지지 않고 마음을 괴롭혔다. 또한 오래된 논쟁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자유의지 대 숙명이라는 명제 말이다.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은 멋지지만 고독하며 불안하다. 새롭게 만들어낼 미래는 유토피아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실체가 없는 불안은 사람을 마구잡이로 행동하게 만들고, 동시에 미래를 두려워하며 현실을 희생하게 한다. 내일은 없는 것처럼 사는 말종들과 사망 · 사고 · 재해보험 가입자들은 어느 지점에서인가 만난다.
정해진 우주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 중 일부는 편안할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될지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계바늘을 따라가는 듯한 권태와 살아있지만 사는 것 같지 않은 부유감이 그들을 지배할 수도 있다고 나는 상상한다.
사실 여기서 이러쿵저러쿵 해도 어느 쪽으로 가든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본인의 마음이 꽃밭이라면 무엇이든 행복으로 인식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꽃은 사시사철 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 관람 후 원작 소설을 구입해서 읽었는데, 소설 속 주인공의 마음가짐은 영화와 조금 달랐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선택 의지와 상황의 긴박함이 강조되지만 소설에서는 필연성과 목적성이 강조된다. 그러나 시간의 순환을 인지하고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면에서 주제는 동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의 끝, 아니 흐름의 반복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찬반이 갈릴 것 같다. 자신의 미래를 알고도 행할 것인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선택할 것인가? 솔직히 말해서 나라면 후자를 택할 것이다.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은 선택이라도,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행복과 불행, 그리고 그 모든 삶의 순간들을 긍정할 수 있는 주인공은 그 누구도 도달할 수 없도록 용감하기에 아름다워 보였다.
+ 이 감독 영화는 항상 그렇듯이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다. 이번에 딱 한 가지만 빼고.
영화 속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다소 평면적인(그러나 현실적인) 악역을 맡고 있다. 철지난 냉전체제를 연상시키면서도 단순한 이분법적 선전이 아니라 그들의 도덕성 부족(중국에서 유달리 심하긴 하지만 중앙집권정부라면 어느 나라든간에 위기의 순간순간에 망설이지 않고 버릴 그 도덕성 말이다.)을 비판의 대상이 되기에 마땅한 심각한 결함으로 만드는 제작자들의 능력은 상당히 탁월했다. 미국이 새롭게 설정한 악의 축, 그리고 두려운 라이벌이 중국인 것을 반영한 설정일까?
첫댓글 우와! 나도 이 영화 감명깊게 봐서 다른 사람 생각도 궁금했는데 진짜 보기 좋게 잘 써줬다! 책을 읽었다니 ㄷㄷ 영화도 어려운데 책도 어려울 것 같아서 엄두가 안 난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헵타포드어를 배운 주인공이 미래의 시간을 미리 볼 수 있게 되는 거라고 했잖아. 그러면 영화 시작할 때부터 지속적으로 나오는 주인공의 회상(?)장면들은 헵타퍼드 만나기 전인데 이건 어떻게 미리 알 수 있던 거야? 그냥 영화 자체로 생각해야 하나. 시간의 순환으로.. 그리고 헵타포드어 책도 내고 강의를 하는데 그거 배운 사람들도 다 미래의 시간을 볼 수 있게되는 건가? 그냥 영화 보면서 궁금했어..
나진도 주인공의 회상이자 미래인 부분 보면서 어? 했는데 2회차때 다시 보니까 영화의 구성장치로 보는게 적절한 것 같아. 영화속 인물의 처지를 넘어서 관객들이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는 장치 정도..?
그리고 나진 생각에 외계인 언어를 배우면 무조건 미래를 알 수 있게 되는 건 아닌것 같아. 어느 수준 이상으로 언어에 숙달되어야 가질 수 있는 능력인것 같기도 하고? 캠프에 있던 사람들 모두 외계어를 연구했지만 주인공 혼자 미래를 알 수 있게 되는 걸 보면ㅠㅠ 게임에서 스탯 부족으로 스킬을 배울 수 없는 그런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아
그리고 나도 마지막 문단에 진짜 공감한다! 다 완벽하게 좋았는데 그 부분이 좀 불편했다 해야하나. 약간 제국주의적인 것 같았어.
비선형적인 언어 이거 진짜 이해 안됐는데 진이 덕분에 이해하고 간다.
그리고 영화 중간에 유난히 피곤했는데 불안하게 만드는 거 진짜 맞는 것 같아. 시카리오 보면서도 피곤했거든. 좋은 후기 잘 읽고 간다!
중국 장군 이미지가 너무 최종보스 느낌이라서 보면서 아 중국인들이 싫어할것 같은데... 이러고 봤어ㅋㅋㄲ
이 감독 영화는 손떨면서 보게 되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