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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물
이 안 재
꾸준하게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 큰 선물이다. 내가 어렸을 때 꾸준하게 한 것이 있다면 학교를 빠지지 않고 다닌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개근상을 받았다. 나에게 학교는 빠지면 안 되는 꼭 가야하는 곳이었다. 왜 어렸을 때 학교는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가야했을까. 요즘처럼 가족여행 등으로 공식적으로 결석을 할 수 있는 어린이들은 이런 느낌을 모를 것이다. 내가 학교를 다녔을 당시에는 나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에 빠지지 않고 왔다. 학교에 매일 매일 다니면서 우리가 배운 것은 근면 성실한 생활태도인 것 같다.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졸업을 하고 회사에 취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출결현황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아직도 회사와 같은 사회조직에서는 그 사람이 예측 가능한 사람이길 바라는 것 같다. 지금부터 내 인생에서 꾸준함이라는 선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결석하지 않고 꾸준히 학교를 다녔고, 공부도 제법 했다. 물론 주입식 암기교육이었지만 나의 특성과는 잘 맞아 성적은 좋게 나왔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다. 전공이라는 것을 공부하고 미래를 꿈꾸기 시작하면서 주입식 교육은 한계에 다 달았다. 내가 해온 공부로는 전자공학이라는 학문은 참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으로 직장을 얻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나는 공무원이라는 조직이 나와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직장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이 당시 생각으로 지금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평생 이직 걱정 없이 한 직장에서 일 할 수 있는 큰 장점도 한 몫 하긴 했다.
군대에 다녀와서 학교를 휴학하고 본격적으로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다. 나의 예상은 비교적 잘 맞아 떨어졌다. 나의 공부 습관과 암기형 객관식 공무원 시험은 너무도 잘 맞았다. 나는 공부를 시작하고 1년 정도 만에 내가 다닌 대학이 위치한 곳에 9급 행정직 시험에 합격했다. 너무 좋았다. 그리고 공부도 재미있었다. 부가적으로 ‘내가 왜 진작에 인문사회계열 학과에 도전하지 않았나.’하는 후회도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문사회계열 대학은 공과대학보다 학습의 난이도가 비교적 쉬웠다. 그래서 나는 행정학과를 부전공하고 법학과와 경제학과 수업도 들었다. 물론 이 학과의 수업들은 내가 준비하고 있는 공무원 시험과목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분야였다.
대학교를 마치기 위해 학교에 복학을 했다. 주변의 권유로 7급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9급 시험에서 두 과목(헌법, 경제학)만 공부하면 되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시작은 편안한 마음이었는데 막상 시작을 하니 욕심이 생겼다. 객관식 시험에 묘미에 제대로 빠져들었다고 해야 하나. 20여 년을 살면서 학원이라는 곳에 처음 제대로 다녔는데 공무원 시험에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역시 객관식 시험은 학원의 도움을 받으면 정말 좋은 성과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야흐로 가을학기에 복학해 학교를 다니면서 7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병행했다. 물론 다음 봄학기에는 다시 휴학을 하고 7급 시험 준비에 매진을 했다. 다행이 공무원 채용을 늘린 정부의 방향과 내 노력이 맞물려 1년 만에 다시 7급 국가행정직 시험에 합격을 했다. 그 당시 지방에서 공부해서 7급 시험에 붙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었는데 참 운이 좋았다.
나는 다시 가을학기에 복학을 하고 면접시험 준비를 했다. 이제 최종 합격을 하면 ‘더 이상 내 인생에 공부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면접까지 보고 최종합격을 해서 이듬해 2월 직장에 출근할 때 까지도 대학교 조기 졸업을 위해 겨울 계절학기 수업까지 정말 열심히 들었다. 마지막 일곱 번째 학기는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실습으로 수료를 하고 대학을 조기에 졸업했다. 내가 다닌 대학교는 군대 가기 전 2년 그리고 군대를 다녀와서 가을학기를 두 번 다닌 총 3년이 전부였다. 나에게 대학은 처음에는 전자공학도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가지고 간 곳이었고, 군대를 다녀와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에는 졸업장을 얻기 위한 공간이었다.
나는 2008년 2월부터 대전에 있는 정부대전청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공부는 없다는 생각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직장 일 외에 공부는 일체하지 않고 살았다. 연예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10여 년 정도의 세월이 지났고, 나이도 어느새 30대 후반에 들어섰다. 승진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실제 노력도 했다. 2018년 4월 승진을 위해 다시 정부대전청사에 있는 핵심 부서로 이동했다. 여기서부터 내 인생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4월말 나는 업무능력을 나름 인정받아 인사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로 발령을 받아 갔다. 나도 승진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 같은 장밋빛 희망이 있었다. 나름 준비도 열심히 했는데 오히려 이 모든 것이 원인이 되었는지 내 몸과 마음은 그곳의 업무를 감당해 내지 못했다. 나는 병원치료도 시작하면서 거의 바로 휴직을 하게 되었다. 말은 육아휴직인데 어떤 의미에서는 내 인생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다. 처음 2주일은 그 정도의 업무도 버티지 못하는 내가 스스로 참 미웠다. 매일 매일 진악산을 등산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정신으로 매일 산에 올라갔나 싶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보내고 나니 정신이 조금 들었다. 병원도 바꾸고 치료도 제대로 시작했다. 나의 마음과 생활에 있어 변화가 필요한 시점임이 분명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한 것은 결근하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변화와 발전이 없었다. 내 몸과 마음은 건강하지 못했고, 내가 가진 능력보다 큰 욕심을 내면서 나 스스로 화를 불렀다.
어려운 상황에 있으면 귀인이 찾아온다고 했던가? 아주 친하지 않았던 동료가 귀인처럼 옆에서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 동료는 다양한 변화를 조언해주었다. 우선 첫 번째는 운동이었다. 맨날 사무실에 앉아 있는 사무직이고, 젊다는 이유를 운동을 등한시했었다. 나는 우선 헬스장에 등록을 하고 러닝머신을 이용하여 걷고, 뛰었다. 살은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근데 헬스라는 운동은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배드민턴도 잠깐 해보았는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이미 정착된 동호회에 나 혼자 덩그러니 들어가는 것도 참 외로웠다. 그런 상황에서 동료가 추천해준 수영을 시작했다.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렸을 때부터 물을 무서워했다. 당연히 수영도 개헤엄 정도 밖에 하지 못했다. 막상 수영장에 가려고 하니,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소이 말하면 팬티만 입고 운동을 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니까. 수영장에서는 아무도 누구의 복장을 의식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이니까 그런 시행착오가 있나보다 생각했다. 지금 수영장에 다닌 지 1년 6개월 정도 되었다. 처음 6개월은 수영이 너무 재미있었다. 처음 배울 때는 무척 어려웠는데 인터넷으로 동영상도 보면서 상상으로 수영도 하고 혼자 시간만 나면 수영장에 가서 연습을 했다. 어떤 날은 하루에 2번씩 간 날도 있었다. 수영을 하면서 지구력을 배우고, 인내심을 배웠다. 무엇인가 꾸준히 하면 실력이 는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도 깨달았다. 지금도 평일 새벽에 별일이 없으면 꼬박꼬박 수영장에 간다. 하루의 시작을 수영으로 하면 출근하기도 전에 많은 것을 얻고 가는 느낌이다. 하루를 참 알차게 사용하는 것 같고, 내 몸이 건강해지는 것을 많이 느낀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수영은 정말 좋은 선물이라 생각하고 꾸준히 하고 싶다.
두 번째 내 인생의 선물은 독서와 글쓰기다. 시간이 나면 독서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2014년 첫 번째 육아휴직 기간이었다. 우연하게 동료가 추천해준 김병완 작가의 『48분 기적의 독서법』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독서가 내 인생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아들을 하루 종일 돌보느라 책을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그때의 경험이 도움이 되어 독서를 큰 거부감 없이 하게 되었다. 독서는 참 즐거운 행위인 것 같다. 2014년 이전의 나는 시간이 나면 텔레비전을 보는 전형적인 사람이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의 이름이며, 월화드라마, 수목드라마, 주말드라마, 매일 매일 보는 예능 프로그램 등 하루생활에서 텔레비전이 없으면 나를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텔레비전 시청으로 푸는 일반적인 대한민국 사람이었다. 오히려 사람을 만나고 술을 즐겨 마시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텔레비전은 나와 더욱 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요즘은 시간이 나면 독서를 하려고 노력한다.
독서를 하면서 함께 가지게 된 좋은 습관은 내 생각을 표현해 보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작년 가을부터 거의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처음에는 종이에 일기를 썼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워낙 악필인데다가 조금만 써도 손이 왜 이렇게 아픈지, 딱 일기 쓰기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한글 프로그램에 쓰는 것이었다. 한글을 이용하니 하루에 있었던 일, 그 일을 통해 느꼈던 생각, 감정 등을 두서없이 쭉 써내려갈 수 있었다. 일기를 쓰니 그날의 하루가 정리가 되고, 내 생각도 정리가 되었다. 나의 감정을 여과 없이 이야기할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항상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일기는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일기를 쓴지 1년이 지났다. 지금은 일기를 쓰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고 좋다. 가끔은 귀찮아질 때도 있지만 일기라는 존재는 내게 든든한 종합선물세트 같다.
내가 지금 꾸준히 하고 있는 수영, 독서, 일기쓰기를 통해 나는 많이 변했다. 나는 과거에 정체된 사람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지금 함께 하고 있는 글쓰기 수업도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글을 쓰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매주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에 고민도 많다. 하지만 나는 안다. 꾸준함의 결과에 대해, 무엇인가 꾸준하게 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 정말 큰 선물이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확인하고, 보여주고, 단단히 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무엇이든 시작은 어렵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라고들 한다. 나는 많은 것을 시작했다. 그리고 꾸준히 하려고 노력중이다. 지금 당장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런 변화와 노력들이 모여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