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우춘희 지음, 교양인 2022
인력사무소의 세계
“인력사무소에서 사람을 불렀어요. 어쩔 수 없이”
대부분 이주노동자 알선은 고용노동부에서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인력사무소(직업소개소)를 통해 구하는 외국인은 미등록 이주민일 가능성이 높다. 현장에서는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쉬쉬했다.
“인력사무소에서 사람을 쓰는 거 불법인데, 혹시 걱정되진 않으세요?”라고 묻자 깻잎 농사를 짓는 박수현 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투자를 해놨는데 놀 수는 없잖아요. 우선은 어쩔 수 없이 인력사무소에서 사람을 받아서 써야죠.” 박수현 씨는 인력사무소를 통해 태국 여성 노동자 세 명을 상시 고용하고 가끔 비닐하우스 수리를 위해 남성 노동자 두세 명을 부른다고 했다.
“이 친구들이 깻잎 딴 지 일주일 됐어요. 한 달 정도 하고 나면 잘해요. 원래 일을 잘하는 친구들이라서. 인력사무소 사장님하고 친분도 있으니까 내년 봄까지 이 친구들을 계속 고정으로 쓸 생각이에요. 만약 12월에 (고용허가제로 들어오기로 한) 사람이 들어오더라도 일을 배울 때까지 인력사무소 친구들을 계속 쓰려고 해요. 그래도 이 친구들이 합법이 아니다 보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상황이 괜찮아지면) 합법을 써야죠.”
사업주는 미등록 노동자를 고용하다 적발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고(출입국관리법 제94조) 합법적인 외국인 고용이 제한된다(외국인고용법 제20조). 범칙금의 경우 고용 인원과 ‘불법 체류’ 기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고용한 사람당 250만~300만 원 정도라고 했다. 체류 기간이 2년 이상 고용 인원이 열 명 이상이면 2천만 원이었다. 내가 만난 사업주들은 걸리면 벌금은 내면 되지만 일정 기간 외국인을 고용하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했다.
태국 노동자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다고 요청하자 박수현 씨는 깻잎밭에서 일하고 있던 이즈나(가명, 20대) 씨를 소개해주었다. 그가 한국어를 잘 못한다고 해서 우리는 영어로 뜨문뜨문 대화를 이어갔다.
“한국에서 일한 지는 2년 됐어요. 관광 비자로 들어왔고 비자는 만료됐어요. 여기서 하루에 6만 5천 원 벌어요.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돈을 벌어요. 가장 힘든 점은 휴일이 없다는 거예요.”
박수현 씨는 인력사무소에서 부른 노동자들에게 하루 9시간 일을 시키고 한 사람당 7만 5천 원을 준다고 했다. 2020년 최저 시급이 8,590원이라 7만 5천 원이면 최저임금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인력사무소에서 중개 수수료로 1만 원을 제하면 노동자에게는 6만 5천 원이 돌아갔다. 보통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노동자들이 하루 10시간 일하고 6만 8천 원 정도 벌었기에 태국 노동자들은 수수료를 내고도 큰 손해가 아니었다.
“외국 애들도 인권이 있어”
2020년 6월 말, 나는 새벽녘에 시내에 있는 인력사무소를 무작정 찾아갔다. 인력사무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곳에서 누가 일하고 임금은 어떻게 받는지 조사할 계획이었다. 시내 주택가 도로쪽에 ‘인력’이라는 이름을 단 사무소 몇 개가 모여 있었는데, 그중 불이 켜진 한 사무소로 들어가 사장 김동규(가명, 40대)씨를 만났다.
“우리 사무소 (외국인) 남자들은 건설이나 철거 작업을 하고 (외국인) 여자들은 보통 밭에서 일을 해. 딸기밭, 사과밭, 마늘밭, 양파밭에서 일해. 합법인 애들도 있고, 비자가 만료됐는데 안 가는 애들, 코로나 때문에 비행기가 없어서 못 가는 애들도 있지. 주로 필리핀, 태국, 베트남 사람들이 있어. …… 인력사무소는 다 불법 애들 써. 100퍼센트 그래. 깨끗한 데는 하나도 없는데 뭐. 위험 부담은 있지. 출입국사무소에 애들 잡히면 한 사람당 2백~3백만 원씩 벌금 내야 하거든.”
인력사무소에는 관광 비자 등 단기 체류(체류 기간 90일 이하) 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한 뒤 초과 체류하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 보였다. 실제로 법무부의 <2020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를 보면, ‘불법 체류자’는 2018년 처음으로 30만 명을 넘어 2020년에는 약 39만 명을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71퍼센트인 약 28만 명이 단기 체류 비자로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체류 자격별로 보면 사증면제(B-1, 최대 90일 내에서 단기 관광·방문 등을 위해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한 체류 자격으로 태국,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가 약 17만 명으로 43퍼센트, 단기방문(C-3)이 약 7만 8천 명으로 20퍼센트였다. 한편 비전문취업(E-9)은 약 4만 7천 명으로 12퍼센트였다. 단기 체류 자격으로 입국해 초과 체류하며 일하는 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셈이다.
김동규 씨는 인력사무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내게 말해주었다.
“사실 인력사무소 일이 거의 마지막 수준의 일이라고 볼 수 있잖아. 여기 오는 한국 사람들은 거의 신용 불량자들이거든. 노숙자로 가기 전 단계란 말이지. 인력 시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집도 없어서 내가 보증금을 대고 원룸을 구해줘. 그러면 본인들이 알아서 월세를 내는 거야. 외국 애들도 내가 원룸을 구해주고 자기네들이 월세를 내고 이렇게 하거든. 방 하나에 보통 두 세 명이 같이 살아. ……
우리는 수수료를 애들 인건비에서 보통 10퍼센트 떼. 기본이 만 원이고. 그런데 더 많이 받는 데도 있어. 예를 들어 부추밭에서 일하는데, 일당이 10만 원이다. 그러면 우리는 만 원을 받고, 애들이 9만 원을 받아가. 그런데 다른 데는 사무소가 2만 원, 애들이 8만 원을 가져가. 만약 어떤 농장에서 애들 열 명을 보내 달라고 해. 그런데 우리는 애들이 다섯 명밖에 없어. 그럼 다른 사무소에 전화해서 애들 다섯 명 보내 달라고 해. 그러면 수수료는 반씩 받는 거야. 수수료 만 원을 받으면 우리 5천 원, 다른 사무소 5천 원, 이렇게. …… 애들 나름대로 가격표가 있어. 자기네들 인권이 있어. 우리나라에 하루 이틀 있던 게 아니거든. 작년에는 얼마를 받았지만 올해는 얼마를 받아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이 있어.“
김동규 씨는 충주, 고창, 나주, 영천을 비롯한 채소나 과일 주산지에는 이미 최저임금보다 높은 금액으로 인건비가 책정되어 있다고 말했다. 주산지가 아닌 곳에서는 시설작물의 경우 하루 9시간을 일하면 8만 원 정도 받는다고 했다. 2020년 기준 최저임금과 비슷한 수준이었다(물론 여기서 중개 수수료로 1만 원 정도를 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력사무소의 세계에서 미등록 노동자들의 노동력은 최저임금이 보장되어 있었다.
인력사무소의 노동자들은 터무니없이 낮은 돈을 주는 곳에서는 일하지 않는다고 했다. 제대로 된 돈을 받고 일하는 것, 곧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일할 곳을 정하는 것, 김동규 씨의 말마따나 이곳에서는 그들의 ‘인권’이 보호되고 있었다.
“외국인 없으면 우리나라 안 돌아가”
그날 나는 근처 다른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사장 박종민(가명, 50대) 씨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20년 정도 인력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원래 중소 도시에서 공장 노동자들로 인력 사업을 하다가 5년 전에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사장들이 잘못하고, 월급 안 주고 하니까 애들이 일찍부터 불법 체류하는 거야. 내가 이거(인력사무소) 20년 운영해서 내 말이 정확해. 15년 전에 ○○시 공장에서 야간까지 하면 그 당시만 해도 월급 140만~150만 원 했고, 20년 전에는 130만 원 했어. 공장에서 임금 체불하면 애들이 (사업장을 이탈해) 불법돼서 인력사무소로 와. 그때 인력(사무소)에서 나가는 애들이 하루 인건비가 7만 원이었거든. 20일 정도만 일해도 140만 원 이상 벌어가니까 공장에서 야반도주하는거야. 불법 상태에서 몇 년 고생하면 되니까. ……
(여기) 농장주들이 못됐어. 자기네 일이 없으면 남의 집에다가 품앗이 시켜. 사람을 막 빌려주는 건데, 그건 뭐 괜찮다고 해도, 애들을 짐승처럼 다뤘어. 일만 시키고 너무 학대한 거야. 그러니까 애들이 다 도망가버린 거지. 열 집이 있으면 반절은 그랬어. 나쁜 놈장주들은 월급을 안 주기도 해. 열심히 일하지만 월급을 안 주면 애들이 도망가서 불법 체류 한다니까. 월급도 안 주지, 욕하지, 차별하지, 완전히 인종 차별이라니까.”
박종민 씨는 이 지역 농업 노동자들 중 70~80퍼센트가 ‘불법’ 체류일 거라고 추정했다. 농업 전체 인력 중 어느 정도가 미등록 노동자인지 정확한 통계를 찾기 어렵다. 2019년에 발간된 한 연구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작물재배업 농가 290곳의 고용 경로를 설문 조사한 결과, 고용 센터 신청이 18.3퍼센트, 외국인 계절근로자 프로그램 신청이 0.7퍼센트로, 공식적 경로가 19퍼센트였다. 81퍼센트가 비공식적 경로로 외국인을 고용하고 있었다. 사설 인력사무소가 41퍼센트, 지인의 소개가 20.7퍼센트, 지역 내 또는 타 지역의 농작업팀에서 7.9퍼센트, 다문화 가정 이주민을 통한 고용이 6.2퍼센트였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공식적 경로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않았기에 아마도 비공식적인 경로의 비율이 더 높아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종민 씨의 말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닌 것이다.
내기 미등록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단속에 대해 묻자 박종민 씨는 2019년에 단속반이 이곳에 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작년(2019년)에 많이 잡혀갔어. 여기에서. 여기 딸기도 많이 하거든. 딸기를 따고 공장에서 선별 작업할 때 딱 들어왔어. 출입국사무소 애들 열댓 명이 들어와서 공장문을 봉쇄해버렸어. 그리고 버스 하나에 다 싣고 가버리더라고. 여자들은 안 달려들잖아. 건설 현장이나 밭에서는 못 잡아가. 남자들은 도망도 도망이지만 거친 놈들은 연장 들고 달려들거든. 밭에서는 여자들도 비닐하우스 옆 구멍 뚫린 데로 나가서 다 도망가고. 목숨 걸고 도망가. 그런데 이렇게 애들 다 싣고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 알아? 공장 망해. 공장 싹 다 안 돌아가.”
김동규 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실질적으로 단속을 하면 안 돼. 단속하면 우리나라 노동 시장이 전부 다 멈춘다니까. 지금(2020년 6월) 비행기도 못 뜨는데 단속해서 다 잡아간들 뭐 못하지. …… 우리나라 외국인이 없으면 건설이고 뭐고 안 돼. 사람이 없어. 농업도 건설도 마찬가지거든. 건설 업체 중에 외국인이 없는 데가 없어.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이 이런 곳에서 일을 잘 안 하려고 하잖아. 한국 사람은 60대 이후가 많은데 외국 애들은 20·30대야. 외국 애들은 열심히 일도 하고 젊으니까 힘도 좋지.”
학계와 현장에서는 고령화, 출산율 저하, 청년층 이탈 등의 현실에 맞게 농업 인력의 정책 틀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특히 밭작물의 경우 기계화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기에 지금의 폐쇄적인 노동 시장으로는 인력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18년 6월 말, 고용노동부와 한국이민학회가 주관한 ‘제4차 외국인력정책 포럼’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학계, 시민단체, 국가 기관의 전문가가 모여 건설업, 연근해 어업, 농업, 가사 노동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인권의 실태와 정책 방안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한 국가 기관 전문가가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 특히 청년층이 이런 업종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자, 50대로 보이는 한 건설협회 대표자가 답답한 듯 물을 한 모금 벌컥 들이키고 발언을 했다.
“건설업에 기능인등급제(기능 인력의 자격, 경력, 교육 훈련 등을 통해 등급을 구분하고 관리하는 제도), 적정임금제(발주처가 정한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건설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제도), 현장 내 시설 확충 문제 등 그런 고민은 하고 있는데요. 청년층 건설 현장 유입 문제는 앞으로도 장기간 개선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단순히 처우 개선이 해결책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자기 자식 공부시켜서 노가다 보낼 부모가 누가 있겠습니까? 또 수주 산업이라는 것은 일정 기간 내에 건물을 완공해야 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공사 일정 못 맞추면 안 되니까 불법 고용을 하는 것이 편한 해법이겠지요. 미등록 체류자를 못 쓰게 하면 공사가 멈출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불법 고용 하지 말라고 해도, 현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정책이 어떻든 인력이 필요한 당장의 현실에서 ‘불법’과 ‘합법’의 경계는 무의미했다. 그 현실은 인력사무소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인터뷰 도중에 수시로 전화가 울렸다. 내일 밭일에 사람을 보내 달라는 전화, 비닐하우스 보수 작업을 위해 사람을 보내 달라는 전화 ……. 수화기 너머로는 인력사무소 사장의 ‘알겠다’는 말에 연신 고맙다고 농업주들의 목소리가 들렸다.(170~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