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컴퓨터를 이기는 것도, 컴퓨터 자체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 필요한 것은 컴퓨터를 수단으로 충분히 활용하면서 우리의 인간성이 확보된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다니엘 코엔Daniel Cohen
성장 신화의 종말, 장기 침체의 시작?
최근 과학기술 발달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새로운 과학기술이 계속 등장함에도 왜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않고 오히려 내리막길을 걷는 듯 보일까요? 대답하기 전에 먼저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Robert J. Gordon의 견해를 소개할까 합니다.
1870~1970년에 인류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1870년 이전만 해도 사람들은 시골에 살면서 말을 타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 100년 동안 전기가 보급되고 라디오, 영화가 등장했으며 자동차, 비행기가 다니고 항생제가 사용되었죠. 변화의 물결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와 모든 것을 통째로 바꿨습니다.
그에 비해 최근의 새로운 과학기술,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보면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사람과 대화하거나 하는 일상적인 일들을 합니다만 그것이 과거에 비해 실생활 전반에 대대적 혁신을 일으켰다고 보기 힘들다고 고든은 말합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오늘날 경제성장이 신통치 않은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5년마다 신차로 갈아타면서 새로운 기술을 만끽할 수는 있지만, 19세기 초 고도 성장기의 혁신의 강도와 규모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신기술들은 감탄 내지 경탄할 정도의 혁신은 아닙니다.
과거 산업 시대에 미국과 유럽에서 한 세기에 걸쳐 1인당 연간 평균 2퍼센트 정도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해왔습니다. 일본의 성장률도 비슷할 것입니다. 그 성장률에서 현재 문제가 되는 고령화나 국가 부채, 격차 등이 야기할 비용을 제하면 실질 성장률은 0.5퍼센트에 불과합니다. 고든은 우리가 그런 저성장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146-147
과학기술이 격차를 초래한다
특히 저는 새로운 과학기술이 인간의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과학기술만으로 경제성장을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새로운 과학기술이 오히려 일자리를 빼앗아버리는 측면이 강합니다.
미국에서 그렇게 격차가 심하게 벌어지고 있는 이유 또한 새로운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 극히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과학기술은 기업 경영자나 투자자에게 이로움을 주는 반면 비서와 같은 단순 사무직을 대체해버리며 대다수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합니다. 물론 노인을 간호하는 일과 같이 ‘인간 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과학기술이 넘보지 못할 테니 그쪽 종사자라면 덜 위협적으로 느끼겠지만요.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많은 과학기술은 소수의 생산성만 향상시켜줍니다. 거기서 배제된 대다수는 아무 이익을 받지 못하므로 결국 격차는 심해질 것입니다. 1870~1970년에는 중산층도 기술 혁신의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중산층은 새로운 과학기술이 제공하는 혜택에서 소외되어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소득 양극화도 이야기합니다.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위대한 아티스트, 축구 선수 등은 전 세계 수억 명의 텔레비전 시청자 덕분에 엄청난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새로운 과학기술을 독점적으로 누리는 사람들은 그 기술의 적용 범위가 클수록 더 많은 돈을 법니다. 과학기술은 격차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재생산하고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새로운 과학기술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그들의 생산성은 더 이상 향상되지 못하고 정체 또는 쇠퇴하는 셈이니 그것만으로 경제성장률은 반 토막이 나는 거죠.148-149
열심히 일하면 보상받는다는 생각은 착각이었음을
일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욕구인데요, 이런 욕구가 경제성장에 기여하지는 않나요?
인간은 기본적인 육구를 충족하더라도, 심지어 그것을 충족하기 전에도 더 크고 많은 것을 끊임없이 원합니다. 하나를 달성하게 되면 또 다른 것을 달성하려는 마음이 들죠. 인간의 욕망에는 종착역이 없다는 말입니다. 최근 50년 동안 우리의 문명이 혼돈 속에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이 무한한 욕망을 들 수 있습니다. 50년 전으로 돌아가 보지요. 1968년 5월 프랑스에서는 학생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일본과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미국 버클리에서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당시에는 산업 문명이 종언을 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두 궁금했지요. 파리 카르티에라탱 지구의 학생운동 참가자들은 더 나은 시대로 이행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모두 탈물질주의post-materialism시대가 오리라고 믿었지요.
하지만 이런 현상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서 1960년대에는 경멸의 대상이었던 물질적 가치가 갑자기 다시 중요해진 것입니다.(세계 경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1960년대에 호황기를 누리다가, 1970년대 석유 파동, 인플레이션 등으로 침체기에 빠졌다.−옮긴이) 물질에서 초월한 삶을 찬양하던 젊은이들은 이제 취직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목숨을 걸게 됩니다. 생계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다들 물질주의가 끝났다는 생각은 오판이라고 생각했지요.
이러한 회귀는 현실적으로 소득 격차를 초래했습니다.(당시 경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논리로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민간 부문의 역할과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대두되었다.−옮긴이) ‘우리에게 일하려는 의지와 열정만 있으면 단일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믿음이, 자본의 독점과 빈부 격차 때문에 산산이 부서진 것입니다. 이제 경제성장은 일반인들과 거리가 먼, 딴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하고도 어리석은 짓입니다. 세상은 그리 선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일을 많이 할수록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 한때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국민들의 근로 의욕을 고취 시키고 경제성장을 이끌기도 했습니다만, 새로운 시대에 경제성장을 이끈 것은 그런 희망이 아니라 과학기술이었습니다. 단, 이런 혁신적인 과학기술에는 잠재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우리 문명은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 채 현재에 이르렀죠.150-151
교수님은 『경제성장이라는 저주Le Monde de est clos et le désir infini』(국내 미출간)에서, 행복 추구란 쾌락의 러닝머신과 같아서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늘 제자리라고 기술했는데요.
현대에 들어 더욱 두드러진 현상인데,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이 소유한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누군가가 자기 앞에 서면 뭐가 되었든 그 사람보다 앞서고 싶어 하지요. .그런 식으로 전진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살다가, 어느 날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사이에도 저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늘 군림하며 내가 처한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는 현실을 깨닫고 좌절하게 됩니다.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졌음에도 우리 사회가 경제성장에 목을 매는 이유는 출세의 길이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는 믿음 위에 자유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회의 평등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는 비민주주의 국가에게도 영향을 미치며, 경제성장은 그런 가치를 널리 확산시키고 강화하는 데 기여합니다.151-152
디지털 사회에 인간은 디지털 재화로 쓰인다
교수님 책에서 근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그린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년)가 언급되는데요, 교수님은 미래 사회가 어떤 모습일 것 같습니까?
오늘날 디지털 경제(기존의 노동, 토지, 자본과 같은 생산 요소 대신 네트워크화된 정보와 지식이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 시스템−옮긴이)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부터 생각해봐야 합니다. 디지털 경제에서 우리는 자신이 일하는 영역에서 규모의 경제(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 생산 비용이 감소하는 현상−옮긴이)를 실현할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제가 한 사람 분량의 일을 하는 경우에는 경제가 성장하지 않습니다. 저 혼자서 둘, 셋, 넷, 다섯 사람의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그만큼 성장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미래에 디지털 경제가 심화되면 인간마저 디지털화된 정보 재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기억, 경험, 감정, 정체성 등 인간성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고 인공지능이 그것을 마음대로 조작해 우리를 통제할지도 모르죠.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과 사이보그와 최첨단 과학기술이 혼재하는 세계를 보여줍니다. 디지털화된 인간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디지털화된 인간은 ‘당신은 이것을 해야합니다. 다른 일은 잊어버리십시오. 중요한 일을 달성했을 때는 내게 보고하십시오.’라는 식의 명령을 잘 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혈압을 재는 단순한 일을 반복적으로 해도 당신은 자아실현 같은 건 생각 안 하고 싫증도 내지 않고 성실하게 임할 것입니다.
규모의 경제가 성장의 동력이 되는 디지털 경제에서는 인간성을 보존하면서 성장하기란 어려운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인간을 조종하기 쉽고 통제하기 쉬운 디지털 재화로 만드는 것이 각광받는 성장 모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가 보여주는 미래는 실로 그런 발상에 근거하고 있습니다.152-153
사이보그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으로 유명한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의 미래 예측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커즈와일의 예측은 오해 또는 오독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은 생산력 증대를 위해 인간에 과학기술을 더 많이 접목하자는 것입니다. 즉,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인간과 과학기술이 융합해야 하며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얘기지요.
트랜스휴먼은 곧 실현될지도 모릅니다. 단지 그것은 인간이 인간임을 뛰어넘겠다는, 명백하게 역설적인 미래 비전입니다. 마치 15년 동안 세계 체스 챔피언이었던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nov에게 IBM에서 개발한 슈퍼컴퓨터인 딥 블루deep Blue와의 경기에서 이기고 싶다면 사이보그가 되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1997년 둘은 맞대결을 벌였고 딥 블루가 이겼다.−옮긴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컴퓨터를 이기는 것도, 컴퓨터 자체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 필요한 것은 컴퓨터를 수단으로 충분히 활용하면서 우리의 인간성manhood이 확보된 미래라고생각합니다.
만일 건축가라면 실제로 집을 짓기 전에 의뢰인에게 설계도상 예상되는 집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것입니다. 과학기술 덕분에 이 일은 실제로 가능해졌습니다.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공지능이 병원의 통상적인 사무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해줄 수 있다면 인간 의사는 환자의 치료라는 핵심 업무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사이보그 의사를 별로 원하지 않습니다.154-155
모든 인간이 사이보그가 된다면, 어쩌면 불로불사의 사회가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향후 50년 동안 우리 인간은 로봇이나 인공지능과 새로운 협력 관계를 찾아낼 것입니다. 의학계에 있는 제 친구가 말하길, 인간이 불사신이 될 일은 없다고 하더군요. 의학의 목적은 기대 수명보다 너무 일찍 죽는 불행한 사태를 방지하는 것이지, 200세까지 수명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사이보그가 되어 불로장생을 누리겠다는 생각은 현재의 과학 문명이 달성하려는 목표와 상반되는 것 아닐까 싶네요.
이제 인류는 100년 정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확실하게 100년을 살게 하려면 암이나 알츠하이머와 같은 질병으로 죽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과학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모든 사람의 수명이 120세로 연장되면 그것은 사회에 또 다른 충격을 안길 것입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155-156
고령화라는 위기를 로봇 대국의 기회로 삼자
일본 경제는 1990년대 거품 경제가 붕괴된 후 약 20년간 장기 침체를 겪다가 최근의 여러 수치를 감안했을 때 회복세로 돌아선 듯합니다. 그러나 국민은 여전히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에서 일반 국민의 삶은 1970년과 비교해 두 배 윤택해졌지만 아무도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의 수준뿐만 아니라 개인의 의식 수준 또한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가령 스마트폰의 가치는 얼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스마트폰 등장 후 첫 3년 동안에는 그 가치가 매우 크다고 말했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스마트폰은 당연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만족감을 높이는 재화가 아니라 없으면 불만을 느끼는 재화가 된 것이죠. 만일 제가 지금 당신의 스마트폰을 뺏으면 당신은 상당한 불만을 드러낼 것입니다. 이처럼 처음에는 낯설고 신선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없을 때 훨씬 더 큰 결핍을 느낍니다. 경기가 좋아지고 삶이 나아졌다고 해도 만족감이 높아지지 않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156-157
교수님은 일본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까?
1980년대만 해도 일본은 ‘세계 제일 일본’이라 불리며 미국을 위협하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그에 관한 책도 많고요. 실제로 일본은 아시아 경제를 이끄는 대표 주자가 되었습니다. 중국을 비롯해 한국, 홍콩, 대만 등 주변국의 ‘롤 모델’이 되었지요. 수출 주도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일본에서 보여주었거든요. 핵폭탄을 두 개나 얻어 맞은 폐허 속에서도 불리한 조건들을 극복하고 세계 무대에서 경쟁해 성공할 수 있음을 일본이 증명해냈습니다.
1980년대에 일본이 한 역할을 현재는 중국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중국이 눈엣가시일 수도 있겠군요. 그래도 일본이 기여한 바는 큽니다. 패전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음을 보였으니까요.157-158
지난날의 영광일 뿐이지요.
1980년대 미국을 위협하는 경제 대국으로 급성장한 일본이었지만 이후 금융 위기가 찾아오고 거품 경제가 무너졌지요. 이때 일본이 차세대 리더가 될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봅니다. 단지 일본 경제가 불황에 접어들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일본이 다른 선진국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이민자의 결여입니다. 여타 선진국에서는 이민자들이 세계 각지로부터 들어와 기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을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요.
한편으로 보면 일본은 세계 최고령국입니다. 그렇기에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로봇을 활용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죠. 미래에 노동력을 대신할 로봇 기술에 관해서라면 일본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앞설 것입니다.
맞습니다. 현재 일본은 전에 없이 노동인구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로봇 산업을 선도할 수 있다니, 역설적이지만 귀담아들을 이야기군요.158-159
부의 쏠림이 심화된다
국내총생산GDP(일정 기간 동안 한 나라 안에서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화폐단위로 환산하여 더한 값−옮긴이)은 경제성장을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그런데 측정 방식에 경제활동 관련 요소가 모두 들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며 개선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제학자인 교수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GDP는 지금 상태로 존재해야 합니다. 시장에서 거래된 모든 재화의 화폐가치를 보여주는 정보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계는 있습니다. 돈이 오가지 않는 경제활동도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가정주부의 가사노동은 시장에서 금전적 거래가 이뤄진 것이 아니라서 GDP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또 옛날에는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이 대신 처리해줬지만 지금은 인터넷에서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는데(예를 들어 예전에는 배관공을 불러 수리하던 것을 유튜브를 보고 스스로 수리한 경우−옮긴이). 이 또한 가치를 창출했음에도 GDP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이런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GDP는 시장에서 이뤄지는 금전 거래를 반영하는 중요한 경제지표이고, 굳이 그 산출 방법을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159-160
인공지능이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상위 1퍼센트에게 부가 집중된다는, 일명 ‘파바로티 효과Pavarotti effect’가 더 심해질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시나요?
파바로티 효과란 이탈리아 테너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같은 최고의 아티스트 외의 음반은 팔리지 않는다는 뜻인데요. 인공지능이 앞으로 50년 동안 모든 국면에서 혁명적 변화를 일으킬 것은 확실하고요.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현상 또한 더욱 가속될 것입니다.
상위 1퍼센트가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는 세계 기업들을 보면 알기 쉽습니다. 어느 분야든 재벌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점점 늘고 있으니까요. 그 기업들은 과학기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직원이 타사보다 많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 미국에서 ‘빅 스리Big 3’라고 하면 자동차 회사인 포드, 제너럴모터스GM, 크라이슬러를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마존,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IT 기업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서는 전 세계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요. 그들은 자동차 대기업들과 비교해 직원 수는 절반 이하지만 주가는 10배 이상입니다. 최첨단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인원을 많이 둘 필요가 없거든요. 인공지능을 이용해 생산할 수 있는 가치는 무한할 것이기에 인공지능 기술을 소유한 자와 그러지 못한 자 사이의 격차는 심해질 거라 전망합니다.160-161
우리는 더욱더 인간다워져야 한다
장기 침체가 계속되니까 경제성장이 한계에 직면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말하는 이유는 기술 혁신이 무어의 법칙Moore’s Law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 법칙은 실리콘 반도체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가 18개월마다 두 배 증가한다는 경험적 예측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뒤집어서 말하면 가격 대 성능비는 동기간 중에 2분의 1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속도가 유지될 경우 불과 1세기 안에 기술적 한계에 도달할 텐데요. 기존 무어의 법칙을 초월할 새로운 기술 혁신의 동력으로 양자 컴퓨터 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양자 컴퓨터 상용화는 이미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말인즉슨 기성 기술이 새로운 기술로 대체된다는 뜻이겠지요.
물론 시장을 분야별로 보면 하향세에 접어드는 모습도 보이긴 할 것입니다. 늘어나는 것이 있으면 줄어드는 것도 있겠죠. 예를 들어 육류 소비량은 줄어들 것입니다. 자동차처럼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여 환경에 유해한 것들도 수요가 위축될 것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경제라는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에는 한계가 없다고 봅니다.161-162
교수님은 책에서 로봇이나 인공지능 때문에 고용의 47퍼센트가 위협받는다고 썼는데요. 인간의 필요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커즈와일에게 보내는 답변으로 이해해도 좋습니다만, 인간이 컴퓨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에 비해 인간의 상대적인 이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체스나 바둑 등 명확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로봇이나 컴퓨터가 우리 인간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단순히 특정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로 최종 완제품end product입니다. 그래서 목표가 명확하지 않고 모호할 때는 인간이 필요합니다.162
[출처] 초예측
유발 하라리·제레드 다이아몬드 외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정현옥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