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트롯 프린스
이 은 집
“저어 부탁 말씀이 있는데요! 여기 알바 쓰시지 않을래요?”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올 여름도 가뭄과 장마에 이어 큼지막한 태풍까지 겹쳐 한강이 넘치는 홍수에, 태양이 두 개인듯 8월엔 열대야가 극성을 부리더니, 9월로 바뀌자 어느새 슬며서 상큼한 가을 날씨가 반가운 손님처럼 찾아왔다. 그래서 써니가 이제야 영업의 활성화를 기대하며 즐거운 기분으로 노래방 업소에 출근하니, 요즘 유투부에 자주 뜨는 AI 미소년같은 녀석이 해맑은 미소로 물어왔다.
“뭐야? 노래방 알바는 아가씨나 쓰지...!”
그러자 녀석이 재빨리 대꾸했다.
“에이! 아줌마! 그건 퇴폐업소에서나 쓰는 알바죠! 여긴 강남두 아니구 변두리 노래방인데 건전하게 저같은 알바를 써야죠!”
“뭐? 하지만 넌 미성년자라 알바로 쓸 수 없어!”
기가 막힌 써니가 화난 듯 소리치자 녀석은 아프리카 초원의 하이에나처럼 집요하게 매달렸던 것이다.
“저 아줌마! 제가 이래뵈두 알바의 달인이라구요! 글구 전 지금 학교두 안 나가니까 알바 함 써보시라구요!”
“야! 더구나 학교두 안 다니면 내가 널 어찌 믿지?”
“와아! 이거 미치겠네! 저는요! 공고 3학년이라 현장실습 대신 알바 구하러 다니는 건데 이젠 불량청소년으로 몰다뇨?”
그제야 써니는 녀석에게 목소리를 부드럽게 해서 물었다.
“그래? 한데 하고 많은 알바중에 왜 하필이면 노래방 알바야?”
그제야 녀석은 다소곳해지면서 대답했다.
“아줌마! 아니 사장님! 저에겐 꿈이 있다구요! 가수가 되는 꿈...!”
“오! 그리구 본께 너두 요즘 종편 TV의 트롯 오디션에 출전해 보려구...?”
“네에! 저같은 놈은 공부를 잘 해두 가정 형편상 진학두 틀렸구요! 한방에 스타가 돼야죠!”
순간 써니는 기가 막히기도 하고 언뜻 자신의 여고시절 추억이 떠올라 짐짓 다정한 목소리로 녀석에게 물었다.
“그렇구나? 그럼 노래엔 소질 있구?”
“그럼요! 유치원 때부터 애들이 노래 짱이니까 가수 되라구 꼬신걸요! 특히 중학교땐 가수 매니저란 사람한테 길거리 캐스팅두 당했다구요!”
이제 녀석은 써니에게 자신감을 느꼈는지 이런 자랑까지 떠벌였다.
“으음! 그럼 알바보다 노래나 한번 들어볼까?”
“네? 노래 잘하면 알바로 써 주시려구요? 제가 노래방 알바를 하려는 건 노래 연습을 맘대루 해보구 싶어서란 말예요!”
이제 녀석은 신이 나서 당장 써니가 안내하는 노래방 룸으로 따라 들어왔다.
“사장님! 그럼 무슨 노랠 불러볼까요?”
녀석의 물음에 써니가 대꾸했다.
“그야 네가 평소 잘 부르는 18번 노래를 불러봐! 그래야 실력 발휘를 할 것 아냐?”
“넵! 그럼 조항조 가수님의 <남자라는 이유로>를 한 곡조 쾅 뽑아 볼께요! 헤헤!”
이윽고 써니가 노래입력기로 번호를 찍자 곧 웅장한 반주기 룸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녀석은 현란하게 돌아가는 조명을 받으며 써니를 바라보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누구나 웃으며 세상을 살면서도
말 못할 사연 숨기고 살아도
나 역시 그런 저런 슬픔을 간직하고
당신 앞에 멍하니 서있네.
언제 한번 가슴을 열고 소리 내어
소리 내어 울어볼 날이
남자라는 이유로 묻어두고 지낸
그 세월이 너무 길었어!
앗! 그런데 이 녀석 봐라? 이건 연예인 중에 얼굴 천재 차은우가 있다덴데, 바로 이 녀석이야말로 얼굴 뿐 아니라 소리 천재가 아닌가? 원곡자 조항조를 뛰어넘어 트롯의 찐맛을 내는 꺾기가 일품이요, 박자와 음정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그뿐인가? 노래의 흐름에 따른 강약조절과 음의 길이를 정확히 끊는 능력!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감정을 담으면서 호흡 또한 완급에 맞춰 잘도 들이키고 내뿜었던 것이다. 또한 소리의 주파수와 진폭을 조절하는 비브라토가 있는데 이건 기성가수라도 소화해내기 힘든 노래의 기술이었다. 마지막 바이브레이션은 소리의 떨림으로 노래를 장식하는 기법인데 이마저 기가 막혔던 것이다. 그러니까 녀석은 마치 기획사에서 데뷔 준비를 끝낸 연습생처럼 아주 완벽했던 것이다.
“엉? 넌 이거 뭐야? 누구한테 배웠기에 그리 못된 쪼가 붙었지?”
하지만 써니가 이렇게 엉뚱한 평가를 하자 녀석은 절망이 되어 소리쳤다.
“아줌마! 아니 사장님! 뭐예요? 제가 그리 형편없단 말씀인가요?”
“그래! 내가 가르쳐주려 했더니 벌써 나쁜 쪼와 버릇이 들었잖아?”
사실은 극찬해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가수로 데뷔하기도 전에 겉멋만 잔뜩 들어 가요계에 발도 못붙인 지망생들이 얼마나 많던가?
“에이! 실은 울 아빠가 가수를 해서 보컬 트레이닝을 해주셨는데, 왜 잘못됐나요?”
“아! 그래? 하지만 너의 미친 열정을 생각해서 알바로 써주지!”
그러자 녀석은 팔쩍 뛸 듯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와아! 사장님! 고맙습니다! 쌩큐예요! 실은 저의 알바 목적은 가수가 되기 위해 노래방에서 마음껏 노래 연습을 하고 싶어서걸랑요! 헤헤!”
“그래? 잘 됐네! 실은 나두 노래방 업소를 하는 건 좋은 가수감을 찾고 싶어서였지! 그러니까 너와 난 오늘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거야! 그치?”
“넵! 이제 제가 임영웅 같은 가수가 되면하늘나라 가신 아빠두 무척 기뻐하실 거예요! 헤헤!”
“뭐? 그래? 아빤 무슨 병으로?”
“네! 갑작스레 췌장암으로...! 후우!”
한숨을 내쉬며 눈물이 핑도는 녀석에게 써니는 이렇게 달랬던 것이다.
“걱정마! 이제 내가 가르쳐 줄께! 실은 나두 젊어서 한때 가수였거든! 다만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은퇴했지!”
“아! 그러셨군요? 그럼 제가 아빠랑 사장님 몫까지 최고의 스타 가수가 되어 보답해 드릴게요!“
이제 녀석은 벌써 알바생으로 취직이 뒨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사장님! 그럼 지금부터 당장 알바를 시작할께요. 어떻게 해야죠? 가르쳐 주세요! 참! 제 이름은 오신성이예요! 가요계의 새로운 별이 되구 싶어 지은 예명이죠! 하하!”
“호호! 그래? 난 선이! 가수가 돼선 써니! 즉 SUN! 태양이란 뜻이지!”
X X X
생각도 못한 알바생을 두게 된 써니는 노래방 영업을 쫑하자 녀석을 귀가시키고 나서 수입을 계산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거의 두 배 가까이나 돈이 입금되었다.
“웬일이지? 녀석이 복덩인가?”
이에 미소를 지으며 생각해보니, 녀석이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잘하여 음료수 판매도 부쩍 늘었고, 노래 시간도 더 끌어서 수입이 상상외로 늘어났던 것이다.
“녀석! 첫날부터 대박이네! 호호! 암튼 혼자하다가 알바를 쓰니 손해 날 줄 알았는데...!”
써니는 출입구 계산대에 앉아 문득 떠오르는 자신의 추억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바로 녀석처럼 그녀도 여고시절 가수가 되고파 노래에 미쳤기 때문에 남이섬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 MBC강변가요제에 구경을 갔었다. 당시에는 남이섬에서 MBC TV와 라디오로 동시 생중계되었는데 그 인기가 대단했다.
“선이야! 너두 대학 가면 꼭 강변가요제에 나가 스타가 돼야 해!”
친구들의 충동질에 선이는 겸손 모드로 웃기만 했지만 친구들은 더욱 안달이 나서 떠들었다.
“쌍년아! 가수는 아무나 되냐?”
누군가 약을 올리자 선이의 찐 친구가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야! 이 거지 발싸개 같은 년아! 선이가 가요제 나가면 대상감인 걸 우리 학교 애들이 다 인정하잖아?”
“맞아! 누가 아니래? 가수가 따로 있냐? 선이 정도면 충분해!”
이렇게 관객석에서 떠드는 선이 일행을 바라보던 어떤 아저씨가 은근슬쩍 말을 걸어왔다.
“어이! 학생들! 이 친구가 스타감 가수라구?”
“네에! 요 생긴 것 보세요! 윤시내 같은 열창에 미모는 미스 코리아 뺨치잖아요?”
“으음! 하지만 가수는 노래만 잘 한다구 되는게 아냐!”
그러자 남자가 여학생들을 향하여 단호하게 말했다.
“네에? 그럼 가수가 노래 말구 뭘 잘해야 하죠?”
“하하! 기획사를 잘 만나야 하지! SM같은...!”
“그래! 맞아! 그런 곳에 스카웃돼야 최고 스타로 클 수 있지!”
그런데 선이가 남이섬에서 열린 강변가요제 구경을 하고난 며칠 후였다. 하루의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려고 지하철역을 향해 걷는데 누군가 불러세웠다.
“저! 학생! 잠깐만 얘기할 수 없을까?”
“네에? 누구신데요?”
순간 선이는 누군지 얼른 떠오르지 않아 경계의 눈빛으로 돌아보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남이섬 MBC강변가요제에서 우리 만났잖아? 그때 뱃지를 보구 학교를 알았거든! 어때? 가수가 되구 싶다구 했지?”
“네에? 허지만 갑자기 어떻게...?”
선이가 얼른 대답을 못하자 그가 아주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갑자기 찾아와서 놀랐지? 이런 걸 길거리 캐스팅이라 하거든! 하지만 학생은 한번 봤응께 내 기획실의 연습생으로 캐스팅하는 거라구 할까?”
이리하여 근처의 빵집으로 들어간 두 사람 사이엔 잠시 긴장감도 있었지만 금새 친해질 수가 있었다.
“알고 보면 현재 인기 스타 가수중에도 지금 같은 사연으로 매니저와 만나 스타로 뜬 거라구! 그러니까 너무 겁내지마! 나에게두 학생 같은 여동생이 있는데, 걘 가수로 만들어주고 싶어두 전혀 소질이 없는거야! 하하!”
이때 선이는 부모님께 말씀도 못드리고 끙끙 앓다가 몰래 아저씨와 밀약을 했던 것이다.
“에! 그럼 이제부턴 나를 싸부님이라 불러! 너의 매니저 겸 보컬 트레이닝을 해주는 스승이니까!”
“네! 싸부님! 근데 제가 과연 가수가 될수 있을까요?”
“으음! 그건 걱정마! 가수는 재능 7에 노력 3이면 되는데, 너는 노력도 똑같이 7로 할 것 같아!”
“네!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싸부님이 절 키워만 주신다면...!”
“좋아! 그럼 매일 학교 마친 후 두 시간씩 연습실에서 트레이닝을 하는 거야! 대신 누구에게도 이건 비밀이야! 괜히 미리 알려지면 부정타거든!”
“네! 걱정마세요! 제 입은 자물쇠니까요.”
이렇게 시작된 가수 트레이닝은 아주 색달랐다. 동네 공원에 있는 농구대에 가서 농구를 시키는가 하면, 여자인데도 헬스장에 끌고 가서 남자 아이돌처럼 몸만들기를 훈련시키는 것이었다.
“써니야! 이제부턴 예명을 써니로 하자! 근데 요즘 연예인들은 멀티로 가야 돼! 가수라도 노래만 하는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도 출연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몸만들기를 하고 나서 노래 연습에 들어갔는데, 이것도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처럼 노래를 스팔타 식으로 강하게 연습시켰던 것이다.
“아유! 싸부님! 가수가 이리 힘든 줄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결국 이렇게 아우성을 쳤지만 싸부님은 끝내 놓아주지 않았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모 TV방송의 <캠퍼스가요제>에 출전하기 위해, 써니는 여고를 졸업하고 예술대학의 실용음악과에 입학하여 오로지 가수의 길을 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써니야! 근데 <캠퍼스가요제>는 창작가요제라서 우리가 직접 작사 작곡을 해야 돼!”
“네에? 싸부님! 그럼 어쩌죠? 저는 작사도 작곡도 전혀 꽝이거든요?”
“응? 그건 걱정마! 내가 작사 작곡 다 할수 있으니까! 실은 내가 MBC대학가요제에서 대상 받은 노래도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였거든!”
“어머나! 그러셨어요? 그럼 빨리 노랠 만들어 주세요.”
“아! 하지만 진짜 작사 작곡하는 건 바로 노랠 부르는 너란 말야!”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에 어이가 없어진 써니가 묻자 싸부님은 다시 엉뚱한 대답을 했던 것이다.
“에! 그건...! 작사 작곡은 내가 하지만 너의 간절한 소망이 나에게 전해질 때, 나한테 작사와 작곡의 신내림이 된단 말이야! 하하!”
그래서 써니는 날마다 싸부님께 가사와 작곡이 신내림하도록 마음으로 빌고 또 빌었던 것이다. 그렇게 며칠을 간절히 빌면서 보내고 나자 싸부님이 그의 연습실로 불렀다.
“자아! 너의 열망이 나에게 전해졌나부다! 드디어 가사와 작곡이 신내림해서 찾아왔어!”
이런 기쁜 소식과 함께 그가 내미는 종이엔 이런 노래의 가사와 악보가 쓰여 있었다.
“에, 노래 제목은 <젊음이야! 사랑이야!>야! 캠펴스가요제의 출전곡이니까 아주 왔다지?”
싸부님이 내민 악보를 써니가 읽기 시작했다.
좋아해 정말! 살며시 다가와서 속삭이는 너!
내 마음 너무나 벅찬 느낌이야!
사랑해 정말!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너!
내 마음 너무나 벅찬 느낌이야!
이 기쁨을 어떤 대답으로 네게 표현하면 좋을지 몰라!
하늘을 봐! 눈부신 햇살속에 너의 모습!
두 손을 마주 잡아! 우리의 영원한 사랑위해
이제 눈을 감아봐! 떨리는 입맞춤!
두 손을 마주 잡아! 우리의 아름다운 사랑위해
너와 내가 느끼는 건 젊음이야! 사랑이야!
이윽고 싸부님이 써니에게 속삭이듯 건네왔다.
“이제 네가 3,000번을 연습하면 대상이 되구, 2,000번은 금상! 1,000번 하면 은상이 될거야! 그게 가요제의 불문율 법칙이거든! 하하!”
싸부님이 전수하는 가요제 수상의 비결을 들으며 써니는 날마다 연습을 거듭했다. 그리고 500대 1이 넘는 예선 경쟁이었지만 무난히 최종 본선까지 통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본선 <캠퍼스가요제>가 열리는 전날 밤이었다. 싸부님의 연습실에서 마지막 연습과 점검을 마치고 나자, 갑자기 싸부님이 실내의 조명을 붉게 바꾸고 환상적 분위기에서 속삭이듯 건네왔다.
“써니! 이젠 나와 너랑 계약을 해야해!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관계가 깨져버리니까!”
“네에? 싸부님! 그건 무슨 말씀이시죠?”
“으음! 연예계엔 이런 속설이 있지! 가수와 매니저 사이엔 서로 배신하지 못할 도장을 찍어야 한다구! 몰랐다면 날 따르기만 하면 돼! 실은 나두 MBC대학가요제에 남녀 듀엣으로 출전해 대상을 받았지만, 가수 전속계약 때 레코드사의 농간으로 짝꿍한테 배신을 당했거든!”
순간 써니는 눈앞이 캄캄했다. 당장 내일가요제가 열리는데...! 거절하면 출전도 못해보고 꿈이 깨져버리니...! 아니! 그동안 너무나 밤낮 싸부님과 만나 연습하는 동안에 정이 들었다고나 할까? 써니는 어쨌든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다.
“써니! 이건 우리들의 의식이라 생각해! 그간 네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되어 노래가 만들어졌고, 또 연습도 해왔으니까 일종의 가수가 되기 위한 결혼식이라고 할까?”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둘이 성례식(性禮式)을 마치자, 육체와 영혼이 하나가 된듯 더욱 동질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X X X
“사장님! 저 출근했슴다! 미성년자라구 누가 시비 걸면 아들이 심부름을 하는 거라구 해주십시오! 요즘 최저 시급이 너무 비싸잖아요? 헤헤!”
다음날 노래방 업소에 알바하러 나온 녀석은 이런 말을 지껄이며 써니에게 귀엽게 굴었다.
“응! 근데 고3이라며 학굔 안 다니는 거야?”
그러자 녀석이 얼른 대답했다.
“아! 어제 말씀드렸잖아요? 공고에선 3학년 2학기부터는 현장실습이걸랑요! 그러니까 저에겐 여기가 현장실습장인거죠. 헤헤!”
“그래! 암튼 요즘 젊은애들은 모두 연예인병에 걸려 큰일이야! 특히 트롯 가수병...!”
“에이! 사장님! 지금 임영웅, 영탁, 이찬원 가수가 뜨는 것 보세요! 벌써 수백억씩 돈을 벌었다잖아요?”
“그래! 암튼 그런 꿈을 갖는 것두 좋겠지! 어제두 얘기했지만 나 역시 가수 출신이니까!”
“네에! 그래서 더욱 잘 되셨죠. 절 가르쳐 주실 수 있잖아요?”
그리하여 써니는 그녀를 가수로 입문시켜 준 싸부님의 추억을 돌아보며, 녀석의 가수 훈련에 적극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좋아! 그럼 영업이 끝나면 두 시간씩 렛슨을 받아볼래?”
“와아! 제가 어릴 때부터 아빠두 절 노래공부 시켜주셨는데, 이젠 사장님까지 해주신다니...! 제가 운빨이 좋은 놈인가봐요?”
“참! 너의 아빠두 가수였댔지?”
“네! 자세한 사연은 모르겠구요! 암튼 아빠두 엄청 노래짱이었어요! 제가 가수의 꿈을 갖게 된 것두 아빠의 DNA를 물려 받았기 때문일 거예요. 몇년전에 세상을 뜨셔서 제가 공고를 가게 됐지만요!”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짓는 녀석에게 써니는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아! 미안해! 쓸데없는 소릴해서...! 하지만 임영웅 가수두 아빠가 일찍 세상을...! 그럼 지금 누구랑 살아? 엄마...?”
“아뇨! 할머니요! 엄만 없어요?”
“뭐? 엄마도 없어?”
어이없어 하는 써니에게 녀석이 명랑하게 대꾸했다.
“아! 괜찮아요! 그런 얘긴 관두시구 노래나 가르쳐 주세요!”
“오! 그래? 나두 한때는 가수로 데뷔했지만 사정에 의해 은퇴했다구 할까?”
순간 써니는 아픈 과거를 잠시 회상하며 대꾸했다. 그때 싸부님과 성례식을 치르고 캠퍼스가요제에 나가서 소망했던 대상을 움켜쥐었으나, <스캔들>이란 잡지의 연예부 기자에게 매니저가 가수에게 임신시킨 사실이 폭로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스캔들을 낸 후에, 써니는 아이도 싸부님의 어머니한테 빼앗기고 본의 아니게 가요계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자! 그럼 오늘 영업이 끝났으니 노래 연습을 해볼까?”
밤 열두시도 훨씬 넘은 심야에 써니와 녀석은 노래방 룸에 남아 연습을 시작했다.
“우선 가수는 개성과 매력과 혼이 담긴 노래를 불러야 해! 너만의 독특한 목소리! 너만의 끌리는 매력! 그리구 노래 속에 영혼을 담아 사람들을 감동시켜야 한다구!”
그러면서 써니는 그녀가 <캠퍼스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젊음이야! 사랑이야!>를 부르려다가 말고 녀석에게 말했다.
“근데 넌 나처럼 창작곡이 아니고 기성곡으로 <트롯 프린스>에 출전하니까 무엇보다 선곡을 잘해야 돼!”
그리하여 국악을 접목한 김용임의 노래 <열두줄>을 선곡해서 연습을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의 흥이 담긴 <열두줄>은 주로 가야금을 반주로 한 트롯으로 듣는이의 흥을 돋구고 절로 춤추게 하는 노래였다. 하지만 이 노래는 이미 여러 트롯 경연에서 자주 보아왔기에 녀석에게도 익숙한 노래였다.,
“사장님! 전 이 노래를 저만의 버전으로 부르고 싶어요!”
“그래? 좋아! 어디 연습해봐!”
그리하여 써니는 인사동의 한복집에서 녀석이 입을 선비복을 한산 세모시로 장만하고, 인간문화재 이수자가 운영하는 국악무용소에서 선비춤을 특별히 배우도록 했다.
“와! 사장님! 전 가수가 되는 건 노래만 잘함 되는 줄 알았어요!”
“무슨 소리야! 올림픽 출전선수보다도 더 열심히 땀흘려 연습해야 한다구!”
“하긴 청학동 훈장의 딸 김다현 가수를 봐도 전국 명산을 돌면서 노래 연습을 했다더군요!”
이런 얘기를 나누며 써니와 녀석은 스파르타 식으로 노래 연습을 하니,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실력이 늘었음을 알수 있었다. 녀석이 준비한 선비옷을 입고 부채까지 활짝 펼치며 <열두줄>을 부르니 써니와 녀석도 함께 놀라게 되었던 것이다.
가슴을 뜯는 가야금 소리 달빛 실은 가야금 소리
한 줄을 퉁기면 옛님이 생각나고
또 한 줄을 퉁기면/ 술맛이 절로 난다
퉁기당기 둥기당기당 둥기당기 둥기당기당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어화둥둥 내 사랑아
열두줄 가야금에 실은 그 사연
어느 누가 달래 주리오!
오디션 날짜가 가까워오자 이젠 노래방 업소의 영업까지 중단하고 샤터를 내린 후 지하의 노래방 룸에서 써니와 녀석은 그 옛날 써니가 싸부님과 노래 연습을 했을 때처럼 노래 삼매경에 빠졌다.
가슴을 뜯는 가야금 소리/ 달빛실은 가야금 소리...!
이 노래를 수천번이나 부르고 또 부르다 보니, 녀석도 지치고 지도하던 써니도 현기증이 나서, 두 사람은 노래방 룸의 탁자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반주기에서는 <열두줄>의 반주가 흘러나오는데, 두 사람은 문득 한양의 어느 권번 기생집에서 만난 선비와 기생처럼 묘한 분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둘은 서로 몸을 밀착하며 하나로 겹쳐졌다.
“그때 내가 <캠퍼스가요제>에 출전하기 전날밤에 싸부님이 나한테 그런 의식을 요구한 이유를 이제야 깨닫겠네!”
혼잣말로 중얼이는 써니에게 녀석이 물어왔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가수와 매니저는 서로 몸을 바쳐야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지!”
“그래서 어쨌나요?”
“지금처럼 이런 환상에 빠져서...!”
이제 두 사람은 성별도 나이도 초월하여 오직 본능이 시키는 대로 암수의 결합을 위하여 미친 듯이 몰두했다. 그리하여 팽창할대로 부푼 녀석의 심벌이 그녀의 은밀한 곳에 파고 들었다.
“아!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요!”
녀석이 열에 들떠 중얼이자 써니도 정신줄을 놓은 듯 헛소리처럼 부르짖었다.
“그래! 너의 노래를 위해서라면...!”
드디어 남녀가 꿰어진 곳에서 지진이 일어났고 녀석의 육즙이 뿜어졌다. 그리고 두 영육은 완전하게 합일되어 다음날부터의 노래는 어제와 전혀 판이하게 놀라울 정도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x x x
드디어 종편 MCJ에서 주최하는 <트롯 프린스>의 오디션 날이 닥쳐왔다. 이제 코로나의 여파도 물러가서 초대 관객도 만장했고 경연무대도 아주 화려하게 제작되었다. 출연자는 결선에 출전하는 20명 중에 톱7을 뽑게 되었다.
“자! 지금 대한민국은 트롯 열풍에 빠졌습니다! 그간 우리 MCJ에서 주최한 <트롯 퀸>에 이어 두 번째 트롯 오디션! 오늘의 <트롯 프린스>! 그럼 지금부터 예선을 거쳐 올라온 최종 20명이 겨루는 결선 무대가 펼쳐지겠습니다!”
그리하여 첫 번째 출연자는 이미 뮤지컬계의 대스타라고 했다.
“에, 뮤지컬계를 정복하고 트롯 프린스가 되기 위해 뮤지컬 공연중에 탈출해 나온 홍유준 출전자입니다. ...그럼 음악 주세요!”
MC가 소개와 반주를 청하자 무대와 홀안에 <보릿고개>가 애잔하게 울려퍼졌다.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 고갯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에/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한숨이었소
과연 뮤지컬 배우답게 온몸으로 연기하며 부르는 노래가 담박에 관객을 빨아들였다.
“이어서 두번째는 조명섭 가수의 동생같은 도전자인데요, 이름도 비슷하군요!, 조두섭 출전자의 선곡은 <한많은 대동강>입니다.”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때까지
아아아 소식을 물어 본다/ 한많은 대동강아
마치 가요무대의 원로가수처럼 엄숙하개 노래를 부르는데 트롯의 꺾는 맛이 일품이었다.
“하하! 조두섭 출연자는 트롯 프린스! 트룻 왕자보다는 트롯 킹! 트롯 왕 같은 실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자! 그럼 오늘의 <트롯 프린스>에 도전한 15,000명의 지원자 중에 최종 20명이 결선에 출전하는 MCJ의 <트롯 프린스> 오디션! 세 번째 도전자가 되겠습니다. ...아! 오늘 무대의 최연소 출전자는 오신성 군입니다. 부를 노래는 김용임 원곡의 <열두줄>!”
순간 오신성은 한산 세모시로 지은 선비복을 입고 반주에 따라 부채를 들고 한들한들 선비춤을 추며 무대에 등장하자,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맞아주었다. 오신성은 반주가 노래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부채를 활짝 펴 휘두른 다음 노래를 시작했다.
가슴을 뜯는 가야금소리
달빛실은 가야금소리
한 줄을 퉁기면 옛님이 생각나고
또 한 줄을 퉁기면 술맛이 절로 난다
그런데 그의 의상은 자세히 보니 등짝 부분을 알몸이 되도록 파낸 퓨전 선비복이었고, 너무 투명해서 열아홉 탄탄한 헬스 몸매가 고스란히 에비치어 차마 똑바로 바라보기가 민망했다. 특히 옛날 사람들처럼 팬티를 입지 않아 사탱이 속이 훤히 내비쳤으니...! 게다가 기생 차림의 여성 무용단이 좌우를 받쳐주니 무대가 더욱 돋보였다. 특히 오신성의 목청은 남청이 아니라 여청중에도 폭발적인 고음이어서 무대가 계속되는 내내 누구하나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다.
“아! 이건 춘향전의 이몽룡 같은 선비인데, 소리는 명창 중의 명창이라 정말 놀랍습니다!”
MC의 감탄이 아니라도 오신성의 노래는 압도적으로 출중하여 다음 순서는 절로 맥이 빠졌다고나 할까? 이윽고 20명 출전자들의 경연이 모두 끝나고 심사 결과 발표가 점수판에서 시청자를 애태우기 위해설까? 심사위원 점수와 현장 관객 점수 그리고 전국의 시청자 실시간 점수까지 덧셈해서 매겨지고보니, 분위기는 점점 달아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최종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자타가 공인한 것처럼 오신성이 영예의 대상인 진을 차지하니, 모두들 열화같은 박수로 축하해 주었던 것이다.
이윽고 한밤이 깊어서야 방송국 일정을 마치고 오신성은 사장님이 계신 노래방 업소로 달려왔다.
한편 TV방송을 통해 <트롯 프린스>를 시청하던 써니는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감 속에 결과까지 지켜보고서야 감격의 만세를 불렀다.
“만세! 그래! 네가 진이 될 줄 알았어!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이미 <캠퍼스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써니였지만, 오신성이 대상인 진을 수상할 줄은 정말로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때 드디어 오신성이 상패를 안고 달려왔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톱7에서 진이 된 건 다 사장님 덕택이예요. 사장님!”
그리고 써니를 포옹하며 기뻐하는 오신성에게 써니 역시 환희에 넘쳐 소리쳤다.
“그래! 하지만 다 네가 열심히 한 결과지! 그렁께 이제부턴 최고의 스타 가수가 될 때까지 더욱 열심히 해야 돼! 알았지?”
써니의 진정어린 격려에 오신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속삭이듯 말했다
“사장님! 이젠 제가 가수가 됐으니까, 하늘나라에 가신 아빠의 소원도 풀어드릴래요.”
“으응? 아빠의 소원이라구?“
“네! 돌아가신 아빠가 저에게 남겨 주신 노래가 있다구요.”
“뭐? 아빠가 작사 작곡도 하셨어?”
“네! 가요제에 출전시킨 가수가 대상 받을 때 아빠가 작사 작곡을 하셨대요! 바로 이 노래예요!”
이윽고 오신성이 메고 다니던 가방에서 악보를 꺼내 써니에게 내밀었다. 그리하여 써니가 악보를 펴보니 거기엔 <젊음이야! 사랑이야!>의 가사와 악보가 적혀 있는게 아닌가? 순간 써니는 쓰러질둣 몸의 균형을 잃고 외마디 소리처럼 부르짖었다.
“아니! 이 노래가 정말 너의 아빠 꺼란 말야?”
그러자 오신성이 의아한 눈으로 써니를 마주보며 대답했다.
“네에! 그래서 이 노래를 트롯으로 새롭게 작곡받아 제가 불러 보려구요! 전 아빠의 피를 물려 받아 가수가 된 거니까요!”
“아! ...이제 오늘부터 너와 나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야! 그러니까 어서 너의 집으로 돌아가!”
갑작스런 써니의 말에 오신성은 어리둥절하여 말했다.
“네에? 사장님도 절 사랑하시잖아요? 제가 비록 연하지만...!”
“아! 하지만 이젠 안돼!”
“왜요? 류필립이란 가수도 저처럼 엄청 연하던데요!”
“여하튼...! 어쩄든...! 네가 가수가 된 이상 넌 네 길로...! 가수의 길로만 가야 한다구! 으흐흑!”
이윽고 오열하는 써니에게 오신성은 안타까운 눈길만 보내다가, 이윽고 써니를 향해 조용히 <젊음이야! 사랑이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좋아해 정말! 살며시 다가와서 속삭이는 너!
내 마음 너무나 벅찬 느낌이야!
사랑해 정말!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너!
내 마음 너무나 벅찬 느낌이야!
이 기쁨을 어떤 대답으로 네게 표현하면 좋을지 몰라!
하늘을 봐! 눈부신 햇살속에 너의 모습!
두 손을 마주 잡아! 우리의 영원한 사랑위해
이제 눈을 감아봐! 떨리는 입맞춤!
두 손을 마주 잡아! 우리의 아름다운 사랑위해
너와 내가 느끼는 건 젊음이야! 사랑이야!
이은집 : 충남 청양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서울 용산고 여의도고 등 6개 고교에서 30년간 교사로 근무. 1971년 창작집 <머리가 없는 사람>으로 문단 데뷔. 저서 <학창보고서> <스타 탄생> <눈물 한방울> <내 고향 청양 추억> <응답하라! 사랑아! 결혼아!> <통일가족 통일남북> <한국인 멸종> <청산별곡> 등 35권 발간. 한국문인상. 충청문학상. 카뮈문학상. 헤세문학상. 한국문학신문문학상. 타고르문학상 수상 등 다수. 한국문인협회 수석 부이사장.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소설가협회 상임이사 역임. 게간문예지 <시와창작> 주간. 작사가와 방송작가로도 활동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