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 원장 노도영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주요 기술을 따라잡는 방식의 추격형 R&D를 통한 성장이 한계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로 국가 기초과학 연구역량 강화를 제시하며 2011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마련됐다. 기초과학연구원(이하 IBS)은 이 사업의 구심점으로 같은 해 출범해, 지난 2018년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 옆에 자리를 잡았다.
IBS는 본원과 더불어 KAIST, POSTECH, 서울대 등 전국 연구 중심대학의 인력과 인프라를 공유하며 2개 연구소, 31개 연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수학,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융합, 지구과학의 폭넓은 분야의 기초과학 연구 주제를 다루며,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본계획에 따라 향후 총 50개 연구단 운영을 목표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 대전 본원
1.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기관으로 발돋움
IBS는 설립 이후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세계적인 기초과학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발표하는 지표인 네이처 인덱스(Nature Index) 2022에서 IBS는 전 세계 정부연구소 중 18위, 국내 1위에 올랐다. 또 국제 학술정보그룹 클래리베이트(Clarivate)가 전 세계에서 최고의 과학자만 선정하는 ‘노벨상 수상 유력후보(Citation Laureates)’로 국내에서 선정된 4인 중 3인이 IBS 소속이다. 2022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HCR, Highly Cited Researcher)에 IBS 연구자 8인이 선정되기도 하였다.
IBS는 세계 수준의 석학들로 이루어진 기초과학자 지성 집단을 구축하고 있는데, IBS의 핵심인 31개 연구단 단장은 각 분야에서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연구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초과학에서는 사람 즉 연구자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며, 이러한 연구자들이 이루어 온 파급력 있는 연구성과로 인해 IBS는 Nature지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계가 주목하는 연구소로 성장해 가고 있다.
2. 우주 기원부터 생명의 탐색까지 폭넓은 기초과학 연구
IBS는 설립 이래 우주와 생명에 대한 새로운 기초과학적 발견을 이어 나가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고해상도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여 코로나를 치료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고, 현생 인류의 최초 발상지와 이주 원인을 규명하여 지구상의 기후와 생명체 사이의 상호작용을 규명해 가고 있다.
이처럼 IBS는 우주의 기원과 자연의 근본 법칙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고 생명 현상의 원리와 메커니즘 규명하는 등 인류 난제 해결을 위한 한계돌파형 기초과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기초과학은 질병, 기후, 우주 등 인류가 안고 있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열쇠로 IBS는 집단·융합연구에 기반해 과학 난제를 발굴하고 규명해 가고 있다. 또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여 기초과학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설립 초기에는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연구 주제를 정했지만, 최근에는 국가경쟁력 강화 및 지속 가능한 발전 구현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IBS에서 역량을 집중할 핵심분야를 선정하여 전략연구(Top-down)도 강화해 나가고 있다. IBS는 지속적으로 우주의 기원과 구조, 인간의 뇌와 유전체, 원자 단위 물질세계, 지구적 기후변화, 신개념 미래 소재, 수학과 계산과학 등 자연과 우주의 근본적 질문(Big Question)에 답해, 지식의 최전선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며 새로운 지식의 축적을 선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3. 국가 기초과학의 핵심 인프라 구축
IBS는 시설·장비적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지난 5월 중이온가속기연구소는 유성구 신동지구에 구축된 한국형 초전도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의 저에너지 전체 가속구간에 걸친 빔 시운전에 성공했다. 라온은 무거운 원소(중이온)를 가속해 표적에 충돌시켜 새로운 희귀 동위원소들을 생성하고, 이 과정에서 우주와 원소의 기원 및 별의 진화 과정을 밝힐 실험적 데이터를 획득함으로써 우리의 지식과 과학을 새로운 영역으로 이끌 수 있다. 반도체,
중이온 가속기(RAON)
이차전지 및 항암치료 등 소재·의료분야의 혁신 등 기초과학을 넘어 산업적 파급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한다.
암흑물질 입자 탐색으로 우주의 구조와 기원을 연구하는 지하 실험 연구단은 지난해 9월 강원도 정선군 예미산 지하 1,000m에 약 3,000㎡ 규모(면적 기준 세계 6위급)로 암흑물질 탐색을 위한 우주입자 연구시설 ‘예미랩’을 완공했다. 올해부터 양양실험 실험장비를 이전하여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베타붕괴(AMoRE-II) 연구와 암흑물질탐색(COSINE-200) 연구 등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연구를 본격적으로 수행할 예정이다. 광주에 위치한 초강력 레이저 과학 연구단은 극한 영역에서의 새로운 물리현상 탐구가 가능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펨토초 레이저를 보유하고 있다.
우주입자 연구시설(에미랩) 펨토초 레이저
한편, 대전 본원에는 대형 핵심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고 전문인력이 운영 및 지원하는 첨단 연구시설‧장비 집적센터 ‘리서치솔루션센터(RSC)’가 조성되어 있다. 이미징/분석자원 (Cryo-EM, 현미경, 유세포・분석 등), 초고성능 컴퓨팅자원 (슈퍼컴퓨터, 대용량 데이터분석 시스템 등), 실험 동물자원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다양한 연구시설·장비를 단계적으로 추가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4. 자율성 부여해 도전적 연구 장려
IBS는 장기·집단·대형 기초과학을 지향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기초과학에서 위대한 발견을 이루려면 여러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IBS의 중이온가속기, 우주 입자 연구시설, 초강력 레이저시설 등 인프라 구축과 더불어 연구단에 소속과 전공을 망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기초과학은 연구자의 호기심과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연구가 큰 파급효과를 낳으며 발전해 왔다. IBS도 세계 수준의 연구자들을 선발해서 좋은 환경에서 연구하도록 지원하는 것을 제1원칙으로 삼고 있다. 세계적 석학을 연구단장으로 뽑고, 연구 주제와 연구단 운영에 완전한 자율성을 부여해 왔다. 이는 3년, 5년 뒤 목표를 설정하게 되어 있는 기존 연구과제에 비해 파격적인 정책으로, 도입 당시 화제가 됐다. 장기적으로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연구가 가능해지면서, 학계의 요구와 연구 중간 결과에 따라 연구자 스스로 최적의 연구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연구자에게 장기적 지원과 자율성을 부여해, 도전적인 연구를 하도록 장려한다는 취지다.
IBS의 핵심 조직인 연구단은 단장을 정점으로 복수의 PI들이 이끄는 그룹들이 모여 구성된다. 연구단의 첫 성과평가는 5년 차에 이루어지며 장기·안정 연구의 취지에 따라, 모든 연구단은 최소 10년의 연구 기간을 보장받는다. 따라서 연구과제 경쟁에 대한 부담 없이 원하는 주제에 몰입해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IBS의 성과체계는 연구의 질적 우수성 평가가 핵심으로 논문 수 등 정량적 성과가 아닌 창의성과 연구 영향력 등 연구 내용을 정성적으로 평가한다. 기존의 양적 평가체계에서 벗어나 질적 평가체계로 연구성과를 평가하여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5. 인류와 사회에 공헌하는 기초과학 연구기관으로 도약
지난해 12월 IBS는 세계를 선도하는 기초과학 연구 기관으로의 도약을 목표로‘기초과학연구원 중장기 발전 전략(2023~2027)’을 확정했다. IBS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초‧혁신 분야를 전략 분야로 삼아 연구단을 확대할 계획이다. 우주, 뇌과학, 기후, 감염병 등 국가에서 필요한 기초과학의 전략 분야를 강화하는 동시에 양자정보 기초과학 등 미래 전략기술의 중심이 되는 연구단을 공모하고자 한다.
또한 본원 연구단을 중심으로 캠퍼스와 외부연구단을 연구소화하여 전국적인 기초과학 기반을 완성하려 한다. 본원이 국가 연구거점 역할을 맡아 캠퍼스는 특화된 연구클러스터로 재편하고, 외부 연구단은 강소연구소로 육성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2021년부터 연구 분야별 연계·협력 강화, 전략적 분야 집중 등을 위해 연구클러스터 체제를 단계적으로 도입·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중이온가속기연구소 등 전략형 연구소 육성, 안정적‧효율적 연구몰입환경 조성, 기초과학 성과‧지식을 확산에 역점을 둘 예정이다.
기초과학연구를 통한 새로운 발견으로 인류 행복과 사회발전에 공헌하겠다는 미션 하에 IBS의 연구자들은 안 되는 일에 도전하는 진정한 과학 정신을 바탕으로 지금도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필자소개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광주과학기술원 물리·광과학과 교수
(전)한국방사광이용자협회 회장
MIT 물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