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皴法)
□ 개설
산수화를 그릴 때 보통 포국법(布局法), 용필법(用筆法), 용묵법(用墨法), 구륵법(鉤勒法), 찰법(擦法), 준법(皴法), 염법(染法), 점법(點法), 설색법(設色法), 임모법(臨摹法), 수목법(樹木法), 산석화법(山石皴法), 수천화법(水泉畵法), 시경화법(時景畵法) 등이 쓰인다. 이중 가장 중요한 화법은 준법(皴法)이다.
‘준법’은 산수화를 그릴 때 산, 바위, 토파(土坡 : 흙으로 쌓아 올린 둑) 등의 입체감, 양감(量感), 질감(質感), 명암(明暗) 등을 나타내기 위해 표면을 처리하는 유형적(類型的)인 기법을 가리킨다. 20여 가지가 있지만 10여 가지가 널리 쓰인다.‘준(皴)’의 중국음은 ‘춘’이며 영어는 ‘texture stroke’라 한다.
□ 연원 및 변천
산과 돌의 생김새(입체감·양감·질감), 즉 문리(紋理)를 표현하고 나아가 음양(陰陽)의 향배(向背)까지 표현하는 데 쓰이는 준법은 1500년이 넘는 산수화 역사 속에서 수 많은 화가들에 의해 각양각색의 기법이 생겨났다.
1) 중국
준법에 관한 최초의 기록을 남긴 사람은 북송(北宋) 때의 산수화가이며 화론가(畵論家)였던 곽희(郭熙)이다. 그는 조춘도(早春圖 1072)에서 운두준법(雲頭皴法)과 피마준법(披麻皴法) 등을 사용했다. 그의 저서 임천고치집(林泉高致集)에서 “날카로운 붓을 옆으로 뉘어 끌면서 거두는 것을 준찰이라 한다(以銳筆橫臥, 惹惹而取之, 謂之皴擦).”고 썼다. 곽희는 ‘터져 주름질 준(皴)’과 ‘문지를 찰(擦)’을 구별하지 않았으나 준이라는 낱말을 최초로 문자화한 인물이다.
곽희가 맨 처음으로 산수화에 준법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곽희보다 훨씬 먼저 산수화를 그린 동원(董源), 거연(巨然), 범관(范寬), 이성(李成)과 같은 화가들도 저마다 피마준, 운두준, 우점준(雨點皴) 등을 사용하여 산수화를 그렸다. 그런 암석 화법(巖石畵法)을 특정한 이름의 준법이라고 명명(命名)하지는 않았다. 특정 이름의 준법이라는 말은 12세기 전반기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곽희와 거의 같은 무렵의 미술사가였던 곽약허(郭若虛)는 저서 도화견문지(圖畵見聞誌 1074)에서 준을 ‘들쭉날쭉하다’는 뜻으로 ‘준담즉생요철지형(皴淡卽生凹凸之形)’이라고 했다. 곽희와 곽약허의 준의 풀이는 오늘날 준법과는 거리가 있다.
‘준’과 ‘찰’의 확연한 구별은 그로부터 약 반세기 후에 편찬된 한졸(韓拙)의 산수순전집(山水純全集 1121)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한졸은 그의 책에서 다섯 가지 ‘준’의 명칭을 적고 그 모습이 저마다 다름을 밝혔다. ‘준법’이라는 명칭은 이들보다 500여 년 후에 활동한 명나라 말 미술사가 진계유(陳繼儒)의 저서 이고록(妮古錄)에 처음 등장한다. 이 책의 제3권에서 여러 가지 준법의 이름과 사용한 화가에 대해 서술했다. 명나라 말기의 미술사가 왕가옥(汪珂玉)도 저서 산호망(珊瑚網 1643년)에서 14가지의 준법을 들었다. 왕가옥은 비교적 자세히 준법을 다뤘지만 함께 곁들인 그림이 없어 이해를 돕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부족함은 청나라 초 미술사가 왕개(王槪)가 저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1679년)과 학화천설(學畵淺說)에서 보완했다. 그는 18가지의 준을 하나하나 그림으로 보여 주면서 자세히 설명했다. 왕개와 같은 무렵의 화가 겸 화론가였던 석도(石濤)도 자신의 저서 화어록(畵語錄)에서 자세하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문장으로 준법을 해설했다. 그는 산의 모습은 가지가지이며 산천은 모두 준을 가졌고 산이 주름진 것처럼 봉우리마다 이름도 다르고 모습도 다르기 때문에 준법도 제각기 다르다며 13가지의 준을 들었다.
발묵산수화(潑墨山水畵)와 하화(荷畵)를 잘 그렸던 20세기의 중국화가 장대천(張大千)은 화보(畵譜)인 장대천화(張大千畵 1961년)에서 석도와 비슷한 말을 하고 준법의 활용을 특히 강조했다. 미술사가 이임찬(李霖燦)은 저서 산수화준법·태점지연구(山水畵皴法苔點之硏究 1976)에서 18가지의 준을 연구해 설명했다.
사실 준법은 대자연의 산석(山石)과 능곡(陵谷)을 직접 보고 관찰한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내기 위한 필묵의 조합이지 지질학적으로 분류한 것은 아니다. 그런 준법을 써서 산수화를 그린 화가가 “나는 무슨 준법을 써서 그림을 그렸다”고 밝힌 것도 아니다. 준법의 발전은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 발전했으며 천 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풍성한 성과를 이룩했다.
2) 한국
우리나라에서는 18세기 진경산수화가였던 정선(鄭敾)이 대나무 빗자루로 싹싹 쓸어내리는 듯한 평행집선준(平行集線皴), 이른바 겸재준(謙齋皴)을 창시해 사용하면서 금강산을 비롯 한국의 산하를 독창적으로 조형해냈다. 20세기 한국 산수화가였던 이상범(李象範)도 미점준법(米點皴法)을 독자적으로 변형시킴으로써 한국의 조야(粗野)한 산야의 특징을 살려 그렸다.
□ 내용
널리 쓰이는 10여 가지의 준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귀면준법(鬼面皴法) : 귀피준법(鬼皮皴法)이라고도 하는데 수성암(水成巖)의 특질을 잘 표현할 수 있다. 산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바위의 형세를 귀신의 얼굴처럼 험상궂게 그려 괴이한 느낌을 내는 준법으로 남송(南宋)의 화가 염차평(閻次平)의 사락도(四樂圖)에 쓰였다.
② 대부벽준법(大斧劈皴法) : 글자 그대로 큰 도끼로 찍어 갈라 터진 것처럼 산석(山石)을 그리는 기법으로 소부벽준법과 큰 차이가 없는 준법이다. 이 대부벽준법은 양강(陽剛)의 미(美)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남성적이고 힘찬 화법이다. 마하파(馬夏派) 화풍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남송대 하규(夏圭)의 계산청원도(溪山淸遠圖)와 조선시대 이인문(李寅文)의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에 이 준법이 적용됐다.
③ 마아준법(馬牙皴法) : 글자 그대로 산의 모습을 말의 이처럼 뾰족뾰족하게 그리는 준법이다. 몰골법(沒骨法 : 그림을 그릴 때 윤곽을 그리지 않는 화법)이 아닌 구륵법(鉤勒法 : 그림을 그릴 때 윤곽선을 분명하게 그리는 화법)으로 윤곽을 그리고 그 안에 담채(淡彩)를 더해 장식적인 맛이 나게 하거나 채색을 하지 않기도 한다.
④ 몰골준법(沒骨皴法) : 중첩된 산석이나 바위의 괴량감(塊量感)을 표현할 때 필선(筆線)으로 윤곽을 긋지 않고 먹물로만 나타내는 준법이다. 먹색의 농담(濃淡)으로만 체적(體積 : 부피)과 전절(轉折 : 돌다가 뚝 끊어짐의 비유)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몰골준법으로 그린 산세(山勢)는 마치 제빙공장에서 만든 얼음덩어리를 쌓아놓은 듯하다. 이 준법은 당나라 말 오대 때부터 시작된 최고(最古)의 것이다.
⑤ 소부벽준법(小斧劈皴法) : 산과 바위의 굳세고 뻣뻣함을 작은 도끼나 자귀로 찍어 갈라져 터진 것처럼 그리는 준법이다. 이 소부벽준법은 북송 말에 시작하여 남송의 수묵창경파(水墨蒼勁派), 즉 마하파(馬夏派) 화가들이 애용했다. 쇠조각처럼 날카롭고 굳센 이 준법을 써서 그린 그림은 보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필묵의 효과가 넘친다.
⑥ 우모준법(牛毛皴法) : 원나라 말 사대가(四大家) 중 한 사람인 왕몽(王蒙)이 만들어 쓴 것으로 수많은 쇠털처럼 산의 모습을 복잡하게 묘사하는 준법이다. 짧고 끈끈한 털 같은 가느다란 선이 수백 수천 겹으로 그려져 여름철 산림의 푸르고 무성함을 나타낸다. 단필준산법(短筆皴散法)이라고도 할 수 있다.
⑦ 우점준법(雨點皴法) : 북송 초의 범관(范寬)이 창시한 준법으로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수많은 점을 찍어 그리는 화법이다. 지마준법(芝麻皴法)이라고도 불리며 기후가 건조한 화북지방의 황토암석(黃土巖石)을 표현하는 적절한 화법이다.
⑧ 운두준법(雲頭皴法) : 산봉우리를 구름으로 휘감아 그윽하게 그리는 준법으로 북송 초의 곽희가 창시한 것이다. 산세를 영웅적으로 그리고 사계(四季)의 변화를 민감하게 표현한 곽희는 바람이 일고 구름이 솟는 듯한 산수화를 잘 그렸다.
⑨ 절대준법(折帶皴法) : 원나라 때의 문인화가였던 예찬(倪瓚)이 창시한 준법이다. 대부분의 준법이 붓을 세로로 그으면서 그리지만 이 절대준법은 가로, 즉 옆으로 긋는 준법이어서 독특한 효과를 낸다. 대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붓을 긋다가 수직으로 내리 꺾으면서 먹색을 짙게 쓰는 것이 특징이다.
⑩ 피마준법(披麻皴法) : 대체로 같은 방향으로 길게 선을 긋는 준법이다. 즉 위아래로 또는 좌우로 일정한 리듬과 굵기로 긴 선을 그어 마치 베를 짜놓은 듯이 보이기 때문에 ‘헤칠 피(披)’자를 붙여 이름 지은 준이다. 이 준을 써서 그리는 법을 피마준법이라 한다. 흙이 많은 산의 모습을 그릴 때 쓰는 준법으로 준법 가운데에서도 종주적(宗主的)인 준법이라 하겠다.
⑪ 하엽준법(荷葉皴法) : 피마준법, 절대준법, 해색준법 등과 같이 긴 선으로 그리는 준법이다. 강남산수의 음유(陰柔)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한 준법으로 원나라의 조맹부(趙孟頫)가 잘 썼다. 연잎의 잎맥이 퍼져 내린 것처럼 그리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⑫ 해색준법(解索皴法) : 엉킨 노끈을 푸는 것처럼 그리는 준법으로 피마준법이나 하엽준법과 비슷하지만, 선이 더 길고 복잡하게 엉킨 점이 다르다. 조맹부는 그의 그림 「작화추색도(鵲華秋色圖)」에서 해색준법과 하엽준법을 함께 쓰기도 했다.
몰골법(沒骨法)
윤곽선 없이 색채 또는 수묵의 농담만으로 물체를 그리는 고테크닉 전법이다. 주로 꽃잎이 넓은 꽃을 그리는데 많이 쓰인다.
물상(物像)의 뼈(骨)인 윤곽 필선이 ‘빠져 있다(沒)’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채색법의 일종으로 구륵법(鉤勒法)과 반대되는 수법이었으나 수묵화가 보편화되면서 색채뿐 아니라 수묵으로도 윤곽선을 사용하지 않고 농담(濃淡)만으로 형태를 나타내는 경우 몰골법이라 부르게 됐다.. 화조(花鳥)나 화훼(花卉)·초충(草蟲) 분야의 기법에 주로 쓰인다.
중국의 전통적인 선조(線條) 중시의 구륵법에 비해 남북조시대 때 서역을 통해 유입된 이란과 인도 계통의 요철법(凹凸法)에 토대를 두고 형성됐다. 양나라의 장승요(張僧繇)와 당나라의 양계(楊界) 등에 의하여 이어져 오다가 오대(五代)와 북송 초기에 이르러 서희(徐熙)·서숭사(徐崇嗣) 등에 의해 ‘서씨체(徐氏體)’ 또는 ‘야일체(野逸體)’로 지칭되는 화조·화훼 분야의 기본 양식으로 정착됐다.
북송대 이후 수묵화와 문인화의 성행에 따라 보다 생기발랄하고 사의성(寫意性)을 띤 몰골법이 문인들의 취향과 밀착되어 주류를 이뤘다. 우리나라에서는 각저총(角抵塚) 씨름도의 수목도(樹木圖)를 비롯 고구려 고분벽화의 수지법(樹枝法)에서 몰골법의 초기적인 양상을 엿볼 수 있다.
고려시대까지 구륵법에 비하여 큰 세력을 누리지 못하다가 조선 중기부터 구륵과 몰골의 절충 양식과 더불어 주류를 이루게 됐다.
조속(趙涑)을 비롯한 조선 중기의 수묵사의화조화가(水墨寫意花鳥畫家)들과 조선 후기의 심사정(沈師正)·김홍도(金弘道), 말기의 홍세섭(洪世燮)·장승업(張承業) 등의 화조화법에서 이 기법이 잘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