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해설
이러한 유형의 문제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는 자주 출제됩니다.
두 가지 유형이 자주 출제됩니다.
먼저, 특정 지역을 지도에 표시하고 그 지역과 관련된 문화재(유물, 유적)를 찾거나 역사적 사실을 묻는 문제,
다음으로 이 문제처럼 특정 지역을 설명하는 사료를 제시하고 그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통시대적으로 묻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사료에서 설명하는 지역이 어디인지를 찾고,
그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보기>에서 고르면 됩니다.
사료를 요약해 보면, '마한의 옛땅으로 후에 고구려의 소유가 되었다. 고구려 멸망 후 신라의 영토가 되었고 신라 말에는 궁예가 차지하였다가 태조 왕건이 모두 차지하였다.'
여기까지 보고 어느 지역인지 아는 분이 있겠지만, 한강 유역의 이남인지 이북인지 조금 헛갈리는 분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힌트가 바로 그 아래 있어요.
'성종 때 국내를 10도(道)로 나눌 때 황주와 해주 등의 관할이 관내도로에 속하였다'라고 나와 있죠?
이것을 보고 사료에서 설명하는 지역이 황주+해주=황해도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그 뒤의 사료는 '서해도로 고쳤다가 조선 태조 때 풍해도로 했다가 지근의 이름(황해도)로 했다'는 것이네요.
우리가 알고 있는 8도의 이름(도명)은 그런 조합으로 지어졌다는 거 상식으로 알고 계세요.
(함경도는 함흥+경성, 평안도는 평양+안주, 강원도는 강릉+원주, 충청도는 충주+청주, 경상도는 경주+상주, 전라도는 전주+나주의 조합입니다)
그럼 이 지역이 황해도 지역임을 알았으니 황해도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찾으면 <보기>에서 찾으면 되겠네요.
ㄱ - 통일 신라 때 5소경 중의 하나인 북원경이 설치되었던 지역은 오늘날 강원도 원주입니다.
ㄴ - 원 간섭기에 쌍성총관부가 설치된 지역은 철령 이북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함경 남도 지역에 해당합니다.
ㄷ - 의적으로까지 불린 임꺽정은 황해도를 중심으로 경기·평안·강원도에 걸쳐 광범위하게 활동하였습니다
임꺽정이 도적으로 이름 떨친 시기는 수취제의 문란으로 농민들의 유망이 증가하던 때입니다.
16세기 들어 수취제의 문란으로 농민 생활이 악화되자 농촌에서 유망하는 유민이 증가하고, 유민 중 일부는 도적이
되어 양반과 중앙 정부로 바치는 물품을 빼앗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16세기 중엽(1559~1562년)인 명종 때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한 임꺽정은 대표적 인물입니다.
ㄹ - 대동법은 광해군 때인 1608년에 경기도에 처음 실시된 이후 마지막으로 황해도까지 실시(1708)되기까지 약 100년
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ㄷ, ㄹ로 묶인 ⑤번입니다.
■ 유사 기출문제 더보기
특정 지역과 관련된 사료나 설명을 제시하고 그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찾는 문제
9회 고급 34번 문제
문제해설
문제에 주어진 자료는 시기가 다른 두 개의 사료입니다.
두 사료에서 공통으로 의미하는 밑줄 친 '이곳'을 파악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순서겠죠?
두 개의 사료 모두 생소한 것은 아니라서 사료를 많이 접한 분들은 '이곳'이 어딘인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겁니다.
첫번째 사료를 보면, '수덕이 순조로워 지맥의 근본이며 대업을 만대에 전할 땅, 왕이 춘하추동에 걸쳐 100일 이상 머물러라'라고 나와 있네요.
이 사료는 태조 왕건이 남긴 훈요 10조 중의 일부입니다.
태조는 서경(평양)을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중시하였습니다.
두번째 사료에는 '이곳은 대화세의 명당 지역으로 이곳에 궁궐을 세워 천도하면 천하를 병합할 수 있고 금이 재물을 가지고 와 항복할 것이다'라고 나와 있네요.
이는 고려 중기에 일어난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당시 묘청이 왕에게 건의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두 자료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이곳'은 서경(평양) 지역이니 평양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찾으면 되겠네요.
① 진흥왕 순수비는 전국 네 곳에 세워졌습니다.
창녕비(경남 창녕), 북한산비(서울), 황초령비와 마운령비(함경도)로, 평양 지역에 세워진 것은 없습니다.
진흥왕 때 신라가 평양을 차지한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겠죠? ㅋ
② 평양은 옛 고조선과 고구려의 수도였던 역사가 깊은 도시입니다.
고려 때는 건국 초부터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중시되어 개경과 유사한 중앙 부서의 분소를 설치하는 제도인
분사 제도를 실시하였습니다.
③ 조선 후기의 사상인 만상은 의주로 기반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당시 평양을 근거지로 활동하였던 사상은 유상입니다.
④ 세도 정치기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지역은 청천강 이북의 평안북도 지역입니다.
⑤ 국채 보상 운동이 시작된 곳은 경북 대구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어난 물산 장려 운동이 시작된 곳이 평양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0회 고급 8번 문제
문제해설
문제에 제시된 (가) 지역을 지도와 연혁을 통해 유추해 보면 됩니다.
(가) 지역의 연혁을 소개한 내용 중에서 12목, 그리고 뒤에 정비된 8목 중 하나, 다인철소 등을 통해 (가) 지역이 충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를 풀 때 (가)의 연혁 내용으로 이 지역이 충주임을 파악할 수 없다면, 문제에 표시된 지도 (가)가 남한강 유역임을 볼 때 (가)는 충주와 단양 중 한 곳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충주는 통일 신라의 5소경 중의 하나인 중원경이 었던 곳입니다.
충주는 남한강 유역에 위치하여 조선 시대에 가흥창이라는 조창이 설치되었던 지역입니다.
① 진흥왕 순수비는 창녕비(경남 창녕), 북한산비(서울), 마운령, 황초령비가 있죠?
충주 지역에 세워진 순수비는 없네요.
그리고 가까이에 단양 적성비가 있지만 그건 순수비가 아니니 조금 헛갈릴 수도 있는 답지네요.
② 신라 민정문서는 5소경 중 하나였던 서원경 지역의 4개 촌락에 대한 토지의 종류와 면적, 인구, 가구 , 가호, 노비의
수와 3년 동안의 사망, 이동 등을 기록한 문서로, 서원경은 오늘날의 청주입니다.
③ 주진군은 양계에 주둔하는 지방군입니다.
충주는 고려 시대에 5도 중 하나였던 곳으로, 5도에는 주현군이 주둔하였어요.
⑤ 조선 형평사는 백정들이 차별 철폐를 위해 1923년 진주에서 설립한 조직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0회 고급 18번 문제
문제해설
이 문제는 1점짜리로 조금은 쉬운 문제네요...^^
① 삼별초는 정부가 개경 환도를 결정하자, 환도에 반대하여 강화도에 남아 항전하다가 진도, 제주도로 옮겨다니면서
끝까지 항전하였으나 제주도에서 여, 몽 연합군에게 토벌되고 말았지요...ㅜ.ㅜ
② 지도에 표시된 벽란도 보이시죠? 예성강 어귀에 있던 벽란도는 대외 무역의 발전과 함께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여
송, 요나라 상인들은 물론, 대식국이라 불리던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왕래하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