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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신년 1박2일 군산 여행 - IV
일시: 2013/1/19-20(토-일) 제2일 후반
여행지: 군산, 새만금, 부안
참가자(네부부 8명): 김 우용, 홍 승표, 채 희묵 등
동선: 군산근대역사박물관(11:35~12:40)-새만금 방조제(신시도 전망대) (13:20~25) - 부안댐(14:00~50) - 변산 채석강-격포항 (15:10~16:40) - 곰소(17:10~18:00) - 귀경(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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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근대역사박물관
고우당 커피숍에서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다 보니 시간이 흘렀다. 다들 흡족한 표정이다. 박물관 주차장에 도착하니 11시30분 입장료 1인당 2,000원. 입구에 들어가니 어청도 등대라며 실물크기로 하얗게 서 있다. 어청도라면 군산과 보령을 잇는 선을 밑변이라고 하면 정삼각형 꼭지점으로 군산에서 제일 먼곳에 있는 섬이다. 거리로는 64km.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물 맑기가 거울과 같다 하여 어청도(於靑島)라 부른단다.
실물 크기로 재현된 어청도 등대... 사람들이 많아 외롭지 않겠지요
비안도 해저 유물을 위해 2011년 9월 개관
비안도 해저유물 발굴로 박물관 필요성에 따라 지난 2011년 9월30일 개관했으니 1년 4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유료화한 것도 지난 해 11월1일이다.언듯 보아도 배 형상이다. 항구다보니 배가 자연스럽게 모델이 된다. 우리는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해설 기기를 하나씩 받아 들어갔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4개국어로 가능하다.
군산 역사 한눈에
1층 해양물류전시실에는 군산의 역사와 발전과정, 해저 유물 발굴과정 등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특히 군산의 역사가 자세하게 잘 되어 있어 군산을 아는데 큰 도움이 되나 오래 머물수 없어 근대쪽만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1624(인조2년) 군산도에 별장을 두고 고군산진이라고 칭했다니 새만금으로 더욱 각광을 받게 될 군산도가 고(古)자를 붙게 되는 배경을 알 수 있었다.
일본, 조선 합병 수순 차곡차곡
한국을 합병할 목적으로 설치한 감독기관 통감부가 중앙에 설치됐다면 지방 조직으로 10개 시 즉 항구의 영사관자리에 이사청(理事廳)을 두었는데 그 중 하나가 군산이었다. 그 때가 부잔교 1기가 만들지고난 1년 후인 1906년. 1910년에는 이사청이 군산부(시)로 개칭되고 2년 후 인 1912년 호남선의 지선으로 군산선이 개통된다. 밀려들어오는 일본인들이 마실 물을 확보키 위해 제1 수원지인 월명호수가 1915년 생기는 등 군산이 쌀 반출기지로 되면서 커지게 된다.
미두장과 탁류의 인물들
이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강점기 시절 대표적인 것들을 재현해 놓아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 당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도록 했다. 미두장이라고 부르는 군산미곡 취인소는 칠판에 주식 시세표처럼 분필로 시세를 적어놓아 배팅을 하게 만들어놓았다. 도박이나 다름없는 이 쌀 선물시장으로 조선인들은 돈과 땅을 뺏기게 되는데 예로부터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탁류”의 정주사도 그렇고 정주사의 큰 딸을 쥐어 차는 조선은행 군산지점 직원인 고태수도 이 미두장으로 망하게 된다. 다른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유관순 언니들이 인력거에(?)
당시 중요한 교통수단의 하나였던 인력거는 채만식문학관 마당에도 있었고 이 박물관 밖에도 있었다. 당시 옷차림으로 모델을 서보는 아가씨들이 30년대로 시간을 돌려놓은 듯 했다.
술도매상, 고무신 가게, 임피, 군산역, 영명학교
일본인 술도매상 집에는 술찌게미 냄새 체험을 하라고 해 놓았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찌게미 냄새가 아닌 것 같다고 한다. 경성고무에서 만들어 파는 고무신 가게도 재현해 놓았다. 그 외에도 臨陂驛(임피역), 群山驛(군산역), 최초의 근대 사립중등학교인 영명학교도 있다. 부잔교부두 모형에서는 지게지는 체험을 하도록 되어있다.
재현된 군산 최초의 사립 중등학교 영명학교
종을 치니까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교실에 다모였네요
그렇게 해서 군산의 옛 모습, 아니 우리가 어릴 때 보았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켰던 견본이었다. 원래 어떤 견학이든지 1시간을 넘으면 뇌가 피로감을 갖는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을 45-50분으로 한 것이다. 우리는 1시간 5분만에 군산근대역사공부를 마치고 나온 것이다.
월명공원 서남쪽에 국가 산업단지와 신항
이제는 어시장을 지나 GM 대우 자동차 조립 라인 등 국가 산업단지를 지나 새만금을 달린다. 그런데 요즈음 미세먼지가 들어있는 운무로 시야를 확보하기가 힘들다. 승용차가 원래 낮은데다 날씨도 추워지고 사야도 확보가 안돼 그저 달릴 뿐이다. 비응항 가는 길도 나오고 중간 중간 조망장소도 있지만 어느 누구도 멈추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국가산업단지 코너에는 각종 홍보물이
고군산도의 일부인 신시도에 있는 새만금 기념탑
새만금의 신시도
40여분 정도 달려 우리가 잠깐 들르기로 한 새만금 중도에 있는 신시도 전망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왔는데 서쪽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보이지만 동쪽 건너편 새만금 기념탑까지 가려는 멤버는 없다. 남쪽으로 전망대가 보이기는 하나 운무 때문에 다들 관심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부안댐으로 가서 점심을 하기로 했다.
빈틈없이 뒤 벽에 붙은 저 액자들이 다 이 바지락죽에 대한 찬사의 말이겠지요?
부안댐 인근의 뽕잎바지락죽
33km를 달리고 나니 처음 공사때 기공식을 했던 새만금 홍보관을 두고 좌회전하고 차를 세웠다. 선도차에서 네비가 부안댐을 잘 못 찾는다는 것이다. 다시 지리산에 있는 재록 친구에 전화를 하고 나서 안심하고 달렸다. 온천이 있는 곳에 죽집이 여럿 있는데 지나쳐 부안댐이 있는 곳까지 갔다 돌아 왔다. 원조라는 집으로 들어갔다. 뽕잎바지락죽, 복분자술 등 뽕나무를 활용한 게 유난하다. 뽕나무가 많다는 뜻이다. 곤충 과학관인 누에타운, 부안참뽕연구소, 뽕절임고등어 등에서 보듯 뽕나무가 얼마나 많은가를 짐작케 한다.
우리는 바지락뽕잎전을 하나 시켰으며 두 명은 뽕잎바지락죽을 시켜먹기도 했다. 사람들이 빼곡하다. 음식은 맛이 있다싶으면 입소문으로 방방곡곡에서 몰려든다. 배도 고픈 시각이라 다들 맛있어했다.
차창밖 새만금 간석지
언제봐도 신비한 시루떡 절벽 채석강
우리는 다시 채석강으로 갔다. 중국 당나라 시절 이태백이 술에 취해 뱃놀이를 하던 중 강물에 뜬 달의 그림자를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주차관리요원이 보름에 2-3일밖에 이렇게 깊게 물이 빠지지 않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라며 운이 좋단다. 물이 많이 빠져 관광객들이 사진 찍고, 바위에 붙은 굴을 따며 휴일을 즐기고 있다. 우리 팀 어부인들도 돌을 주워 새끼굴을 따본다. 떡시루처럼 생기 바위가 물이 빠져 완전히 드러나 장관이다.
채석강은 선캄브리아기(6억년∼46억년 전)에 만들어진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하고 중생대의 백악기(약 7천만 년 전)에 퇴적한 해식단애가 마치 얇은 시루떡을 쌓아놓은 것 처럼 정교하다. 켜켜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테지만 맘을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입을 열지 않는 절벽이다. 억년은 무슨 단위이고 7,000만년은 어떤 숫자인지 내 머리로는 상상이 안가는 숫자다. 기껏해야 인류 출현이 4-5백만년, 내가 세상에 있다 가는 시간은 수명이 길어졌다해도 100년. 불교에서말하는 영겁에서의 찰나이고 기하학에서 위치만 있는 점에 불과하니 침묵으로 일관하는 채석강 앞에서 미미함을 생각해 본다.
정면으로 보이는 게 대명콘도
손 바쁜 찍사 우용
우리는 돌아서 격포항으로 들어갔다. 방파제가 있어 추운 바람을 맞으면서도 거니는 관광객들... 추울수록 서로 파고들어 연인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날. 엿도 사머 먹어 보고 번데기도 한 컵 사서 어린 시절 맛있게 먹었던 기억을 되살려 본다.
위쪽으로 대명콘도 지나서 중국 이름인 적벽강이 있다. 둘 다 강은 아니다. 이는 송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노닐었다는 강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나중에 대명콘도에 올 때 보기로 하자.
곰소에서 어시장 보기
우리는 이제 소금밭이 있는 곰소로 간다. 소금이 있으니 젓갈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혹시 장을 볼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나는 길에 호랑가시나무 군락지도 나온다. 잎에 가시가 있는 나무로 실물을 본지가 오래다. 그래도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구별이 뚜렷하다. 남쪽이라 후박나무 군락지라든가 중부지방에는 잘 안보이는 개나리 닮은 미선나무 군락지도 있는 곳이다. 같은 물푸레나무과인데 개나리는 노랗고 미선나무는 하얗다.
곰소는 내변산을 등산하면서 들러본 적이 있어 어시장도 기억이 난다. 젓갈을 사는 어부인, 서대를 사는 어부인 등 장을 보고 핸들을 잡았다. 6:00.
서해안, 경부 고속도로 타고 귀경
우리는 줄포 IC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새로 생긴 동서천-공주고속도로로 바꿔타고 가다 서공주에서 천안으로 논산-천안 고속도로로 들어갔다. 서공주에서 천안고속도로로 그렇게 연결을 해 놓았다. 안성휴게소에서 잔치국수 하나로 배를 채우고 집에 오니 9:30. 그렇게 즐거운 1박 2일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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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회장님인 효진 엄마가 갑작스레 왜 우리남정내들의 고향 인근인 군산같은 곳은 가지않느냐는 말에 얘기가 된다 싶어 흔쾌히 군산으로 잡았던게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계획을 짜는데 30년을 그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최재록(4반) 친구가 적임자임을 알고 부탁, 숙소, 밥집, 코스를 알려줘 거의 완벽한 여행을 했다.
군산이 급속하게 일제 강점기 시절의 잔재를 관광상품화하고 있어 앞으로 더 개발하면 많은 국내외 관광객을 끌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근대사박물관, 진포해양테마공원, 채만식문학관과 탁류에 나오는 채만식 거리, 일본식 가옥과,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 등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일반 일본식 가옥들을 계속 관광 상품으로 단장을 하고 있고 그 외에도 째보선창의 철길 등 개발할 게 많아 보였다. 새만금이 옆에 있어 33km 대 역사를 볼수도 있다.
특히 가본 기억이 없는 군산의 역사를 알게 되었고 장항제련소 굴뚝은 서천에 가는 바람에 덤으로 가 볼 수 있었다.
채만식의 장편 “탁류” 와 단편 “민족의 죄인”을 읽어 채만식과 군산의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를 상당히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최유찬(1반) 연세대 교수의 채만식 관련 비평서인 “채만식 항일문학”이 때 맞춰 출간되어 6년 전 것과 함께 사진을 찍어 여행기에 끼어넣은 수확을 거두기도 했다.
모든 멤버가 불평없이 같이 해준데 대해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일정 짜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재록 친구와 책을 보내준 최 교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채희묵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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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친구덕분에 군산부안 구경 잘했수. 40년전 격포항에서 잠간 놀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광진 친구, 전화번호 바뀌었나요?
희묵친구말마따나 나는 군산에 온지가 30년이 넘었는데..나보다 더 군산을 샅샅이 구경하고 간 모양이네그려~ ㅎ 그것도 1박2일만에말이네..완벽한 여행을 했다니 다행이고..내가 지리산 들어 가는 바람에 직접 만나지 못해서 다시 한 번 미안하게 생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