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 보장 건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었다.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를 비판한 이준석을 두고 정치권에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비난하기 전 그들은 장애인 시위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 묻고 싶다. 오히려 사회적 이슈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이준석이가 침묵한 다수보다 더 나은 역할을 한 셈이다. 일반인들이 상상으로 그려보거나 한 두 번의 체험은 실제 장애인들이 겪는 현실과는 너무나 판이하다, 그래서 장애인 문제는 일반인들로서는 결코 알 수 없고 장애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이준석이로 대변되는 젊은이들의 세계는 거침이 없다. 싫고 좋음이 분명하다. 그들의 시각에선 장애인들이란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일반 다수에게 불편을 끼치는 존재로 치부되는 것은 아닐지.... 젊은 세대에서 만연한 이러한 장애인들의 인식 속에 이준석이는 연일 스스로 자신의 말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건으로 드러난 인식의 충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오롯이 젊은 세대들이 이런 인식을 가지게 만든 기성세대들의 책임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