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도량과 이근원통
제3절 바닷가와 해조음
두 번째 가설은 소리를 듣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나 하는 관점이다. 즉 소리를 듣기 위해서 법당에 구멍을 만들어 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필자가 지난 96년 처음 홍련암 법당의 구멍을 목격했을 때 특별히 주목했던 부분이다. 소리와 관계지어서 주목한 배경에는 필자의 개인적인 이유도 작용하였다. 당시에 필자는 소리에 의식을 집중하는 선법인 『능엄선(愣嚴禪)』을 연구하면서, 소리와 수행의 밀접한 관계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능엄선이라고 하는 것은 『능엄경』의 이근원통 수행법을 가리킨다. 이근원통이란 이근을 사용해서 원통을 얻는, 즉 귀로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는 수행법인데, 이 방법은 관음보살이 사용했던 방법이라고 『능엄경』에 나와 있다.
『능엄경』에서는 여러 보살들이 사용했던 25가지 방법 중에서 관음보살이 사용해서 깨달음을 얻은 이근원통을 최고의 수행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엄경』에 따를 것 같으면 관음보살은 소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관음이라는 표현 자체가 소리에 집중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 한다. 필자가 논문에서 주장한 '능엄선'이란 관음보살이 소리에 집중해서 수행을 한 선법(禪法)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필자는 홍련암 법당의 구멍을 처음 보았을 때 이것은 소리를 듣기 위한 장치라는 판단이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이다. 홍련암은 관음보살의 도량이다. '능엄선'의 수행원리에 의할 것 같으면 관음보살은 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 구멍이 그러한 소리를 보다 잘 듣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그러나 이 한 가지 사실로 섣불리 소리와 구멍의 관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또 다른 증거가 필요하다. 필자는 또 다른 증거의 하나로 홍련암의 위치가 다름아닌 바닷가에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닷가라는 점이 문제를 해결하는 모종의 암시를 주고 있다. 홍련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에 속하는 보문사는 강화도에서 더 들어간 섬인 석모도(釋母島)에, 그리고 보리암도 남해바다 바로 옆에 접해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최고의 관음도량인 불긍거관음원이 있는 곳도 중국 동해의 보타도(普陀島)라는 섬이다. 관음도량은 모두 공통적으로 바닷가에 접해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왜 유명한 관음도량은 바닷가에 있는 것인가? 관음과 바다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가?
이 상관관계를 밝히기 위해 먼저 관음신앙의 소의경전이라 할 수 있는 『법화경』을 보자. 『법화경』 가운데서도 대중들로부터 가장 많이 수지독송되는 부분인 「관세음보살보문품」그를 주목해 보자. 여기에 보면 보던 4가지 소리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통상 이 부분은 '묘음, 관세음, 범음, 해조음이 저 세간음보다도 낫다'고 해석된다. 이 대목에서 바로 해조음이 처음 등장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해조음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있다. 해조음을 상징적인 의미의 해조음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면 문자 그대로 바닷가 파도소리에서 들리는 해조음으로 볼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상징적인 의미의 해조음인가, 실제 바닷가에서 들리는 해조음으로 볼 것인가? 이 부분을 살펴보기 위해서 선학들의 해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불교경전 역경(譯經)에 권위가 있는 운허(耘虛, 1892~1980)의 해석을 보자. 운허는 그의 『법화경』 번역에서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妙音觀世音 묘음과 관세음과
梵音海潮音 범음과 해조음이
勝彼世間音 저 세간음보다 나으니
是故須常念 그러므로 항상 생각하여
念念勿生疑 의심일랑 잠깐도 하지 말아라
觀世音淨聖 관세음보살 청정한 성인은
於苦憎死厄 고뇌와 죽음과 액운 당하여
能爲作依估 능히 믿고 의지할 바 되리
具一切功德 일체의 여러 공덕 두루 갖추어
慈眼視衆生 자비로운 눈으로 중생을 보며
福聚海無量 그 복이 바다처럼 한량 없으니
是故應頂禮 그러므로 마땅히 정례 할지어라."
운허의 이 해석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묘음, 관세음, 범음, 해조음을 각각 어떻게 해석하였는가 하는 대목이다. 운허는 '묘음과 관세음과 범음과 해조음이 저 세간음보다 나으니'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범음과 해조음에 대해서는 각각 주(註)를 달아 놓고 있다. 그 주를 보면 범음에 대해서는 '범천왕의 소리. 더없이 청정한 소리'라고 주석하고 있다. 해조음에 대해서는 '바다의 조수 소리'라고 주석하고 있다. 해조음에 대한 운허의 또 다른 해석을 살펴보자. 운허가 1961년도에 출간한 『불교사전』에서 '해조음' 항목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소리가 큰 것을 조수에다 비유한 것. 또 해조가 무념이나 때를 어기지 않음과 같이, 부처님의 대비하신 말소리가 때를 따르고 근기에 맞추어 설법하심을 말한 것"
운허는 해조음에 대해서 『법화경』 번역에서는 '바다의 조수 소리'라고 해석하고 있고, 『불교사전』에서는 '소리가 큰 것을 조수에다 비유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자의 해석이 구체적이라면 후자의 해석이 보다 추상적이라는 차이가 발견된다. 양자 가운데 필자는 전자의 구체적인 해석에 동의하고 싶다. 즉 해조음을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보다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맥락에서 해석하고 싶은 것이다. 해조음을 '바닷가의 조수 소리'라는 구체적인 해석에 의거한다면 관음도량이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는 이유를 해명할 수 있는 단서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법화경』에서 등장하는 이 4가지 소리에 대한 언급이 『법화경』과 함께 관음신앙의 양대 경전이라 할 수 있는 『능엄경』에서도 또한 발견된다는 점이다. 『능엄경』 제6권에서도 역시 묘음, 관세음, 범음, 해조음의 4가지 소리를 언급하고 있다. 왜 이 소리들을 언급하고 있는가. 제6권에서 소리를 언급하고 있는 배경을 살펴보면 진정한 삼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들음으로써 들어가야 한다'(欲取三摩提 實以聞中入)는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들음으로써 들어간다'는 말의 의미는 소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고, 어떤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문맥상 따져볼 때 위의 4가지 소리를 암시하고 있다. 이를 다시 간추려 보면 『능엄경』의 내용중 핵심에 해당하는 부분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관음보살의 수행법인 이근원통에 있고, 이근원통은 들음으로써 들어가는 수행법이다. 들음으로써 들어간다는 것을 좀더 파고 들어가면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고, 소리에는 다시 4가지 종류가 있다고 설명한다. 4가지 소리는 물론 묘음, 관음, 범음, 해조음이다.
『법화경』에서는 단지 4가지 소리가 있다고 언급하는데서 그치고 있지만, 『능엄경』에서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리에 집중해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만을 놓고 본다면 『법화경』보다 『능엄경』이 한걸음 더 나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관음신앙 내지는 관음수행과 관련된 양대 경전이 모두 공통적으로 4가지 소리를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가 『법화경』과 『능엄경』의 차이점이다. 양 경전이 모두 관음보살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지만, 필자는 그 경향성에 있어서는 두 경전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차이라고 하는 것은 『법화경』이 관음신앙쪽을 강조하고 있다면, 『능엄경』은 관음수행 쪽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관음신앙이란 관음보살의 힘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다분히 타력적인 신앙이라면, 관음수행은 관음보살의 수행법인 이근원통법에 의해서 자력적인 수행에 무게중심을 둔다는 차이이다. 타력과 자력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법화경』이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관음보살을 철저하게 신앙함으로써 중생들이 수많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면, 『능엄경』은 소리에 집중하는 이근원통의 수행, 즉 능엄선(愣嚴禪)에 들어가는 단계적인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는 데서 차이가 있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신앙과 수행을 둘로 나눌 수는 없다. 신앙이 몸수행이 되고 수행이 몸신앙이 되기도 하지만, 그 경향성에 있어서 노선 차이가 발견된다는 이야기이다.
필자가 두 경전에서 언급되고 있는 해조음에 주목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 4가지 소리가 관음도량이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묘음은 무엇이고, 관음은 무엇이며, 범음은 무엇인가. 4가지 소리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소리는 해조음이다. 필자가 생각할 때 지상에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소리는 해조음이다. 해조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묘음, 관음, 범음은 어떤 소리인가 확실하게 파악할 수 없다. 애매한 소리이다. 이 소리들은 깊은 수행체험이 없는 보통사람들이 평상시에 쉽게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아닌가 싶다. 반면에 해조음은 앞의 3가지 소리에 비교할 때 그 의미가 분명하게 포착된다. 해조음은 다름아닌 파도소리인 것이다. 『능엄경』의 이근원통에서 관음보살이 집중한 4가지 소리 가운데, 보통 사람이 제일 쉽게 접할 수 있는 소리가 해조음이다.
그렇다면 해조음인 파도소리를 듣기 위해서 관음도량은 의도적으로 바닷가에 세웠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말할 필요 없이 바닷가에서만 해조음을 청취할 수 있다. 유명한 관음도량이 공통적으로 바닷가에 위치한 이유는 해조음에 의식을 집중하기 위한 수행상의 이유때문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하던 홍련암 법당의 구멍은, 이 구멍을 통해서 들리는 해조음을 듣기 위해서 설치해 놓았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법당밑의 관음굴에 파도가 밀려들면, 그 파도소리는 굴 안으로 밀려 들어가면서 공명현상 때문에 한참 동안 요란한 소리를 낼 것이고, 이 소리를 법당의 구멍을 통해서 귀로 듣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 구멍은 오디오의 서라운드 스피커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나 할까, 이 구멍은 즉 해조음을 통한 관음수행을 하기 위한 구멍인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첫 번째의 가설이 구멍을 통해서 관음을 친견하기 위한 쪽이 관음신앙적인 용도라면, 두 번째의 가설인 해조음 청취 쪽은 다분히 관음수행적인 용도라고 블 수 있다.
홍련암 법당의 구멍이 해조음을 청취하기 위한 용도가 맞다고 한다면, 홍련암외의 보문사나, 보리암의 구조는 어떤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들 도량도 홍련암과 마찬가지로 바닷가에 위치한 관음도량이라는 점에서 조건이 같으니까, 해조음을 청취하기 위한 법당의 구멍이나, 아니면 파도소리가 진동할 수 있는 해안가의 굴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하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 스스로 제기한 이 반론을 의식하면서 보문사와 보리암을 현장 답사하였다.
유감스럽게도 홍련암 법당의 구멍과 같은 구멍은 이들 도량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대신에 굴은 발견할 수 있었다. 보문사의 굴은 경내에 있는 유명한 굴법당(窟法堂)이 바로 그것이고, 보리암은 아래쪽 용굴 옆에는 얕은 굴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하여 '음성굴(音聲窟)'이다. 석굴법당과 음성굴은 모두 보문사와 보리암에서 신앙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굴들이다. 석굴법당에는 어부들이 바다에서 그물로 걷어 올렸다고 전해지는 22구의 석불이 모셔져 있고, 음성굴에는 기도하던 세 비구니가 굴속에서 음성을 들었다고 해서 음성굴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굴법당과 음성굴은 홍련암과 같이 곧바로 바닷가와 붙어 있는 위치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의를 집중하면 어느 정도 바닷가의 파도소리를 관할 수 있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거리의 차이는 약간 있지만 바닷가와 근거리에 있는 굴이라는 점에서 홍련암의 관음굴(聖窟)과 비슷한 입지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만 가지고는 구멍과 해조음의 상관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로는 부족한 감이 있다고 느껴진다.
<능엄경 수행법의 한국적 수용/ 조용헌 원광대학교대학원 불교학과 철학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