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 언니
임 현 순
주말 오전 영화관은 텅텅 비어 있었다. 24년 2월5일
이미 다들 한 번씩 보고 간 뒤라 그런지 영화관은 여섯 사람이 전부였다. 연인 인듯한 두 사람 우리 또래의 중년 부부 둘 그리고 우리 부부 둘. 스크린에서는 이 순신의 명언 내가 죽었다는 것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말한 명량의 바다 화면이 흐르고 있었다.
영화 보면서 졸아 보기는 처음이다. 시간이 더디 갔다.
2시간 20분 짜리 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오니 허기가 느껴졌다.
집과의 거리가 불과 15분 사이. 집에 가서 먹어도 못 참을 일은
아니지만, 모처럼 나온 김에 간단하게 한식부페 에서 한 끼를 해결하고 가자고 남편을 달랬다.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에 코트를 놓아 자리 표시를 먼저 해놓았다. 그리고 배를 채우기 위해 중간에 마련된 음식을 넓은 접시에 가득 담아 자리로 왔다. 먹으려고 수저를 들다 눈이 주방 안에서 움직이고 있던 참모의 모습에 멈추었다.
그러니까 내가 한식부페에서 참모인 정숙 언니를 만난 것은 코로나가 세계를 침입하기 전이었으니 5년 정도의 세월이 지났다고 볼 수 있다.
발안 제약단지 내에 한두레 한식부페에서 정숙 언니와 나는 참모와 보조의 관계로 처음 만났다. 내가 준비 작업을 해주면 언니는 거칠어진 손으로 완성된 음식을 빠르게 내놓았다. 그리고 덧붙였다.
앞으로 많이 알려 줄 터이니 잘 배워서 보조에 머물지 말고 참모 자리로
옮겨가라는 조언의 말까지 해주는 참 배려심이 많고 따뜻한 언니였다.
언니의 모습을 그대로 조금 설명하자면 이렇다. 아주 작은 키에 등이 휘고 머리는 아침 서리를 맞은 듯 검정 머리보다 흰머리가 많아서 원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였다. 파마기가 전혀 없는 긴 머리를 검정 고무밴드로 묶고 다녀 언제나 단정한 모습이었다. 파마라는 것을 한번 도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본 정숙 언니의 첫인상은 맑고 순수한 마치 어디선가 본 듯한 친숙함이 가득 묻어 있는 언니였다.
언니와 일하는 동안은 매시간이 즐거워서 시간도 빠르게 지나갔다.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뜻밖의 상황을 마주했다.
일을 끝내고 퇴근을 위해 언니와 식당을 나왔다. 그런데 앞에 그랜저 자가용을 세워놓고 아주 훤칠하고 깎아 놓은 듯한 얼굴의 한 남자가 언니를 보고 손을 흔들어 보이는 것이다. 그때 내가 “저 남자 뭐야“ 하고 언니에게 말을 했더니 언니의 답변. “우리 남편이야“ 정말? 평상시에도 농담이라고는 잘 하지 않는 성격인지라 의아했지만 믿어야 했다. 그때 정숙 언니의 말을 건너편에서 듣기라도 했는지 남자 쪽에서 ”여보” 하고 언니를 부르며 어서 차에 타라고 손짓을 보냈다.
설마 저 남자가 언니의 남편이라니 수긍이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라서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키가 작고 허리가 굽은 여자는 멋진 남자를 만나면 안 된다고 금기로 정해 놓았단 말인가. 언니는 남편이 운전하는 옆자리에 타고 떠났다. 다음 생에는 저런 멋진 남자랑 만나서 한번 살아볼까. 10초간의 생각을
하고 나서야 이성이 돌아왔다.
다음날 언니는 나의 의문을 풀어 주었다. 평생을 한량으로 살면서 한 여자의 남편보다는 만인의 남자로 한곳에 머물러 있지를 못한다고 했다. 나도 잠시 그 만인의 여자 한사람이 되었었구나. 언니의 남편도 할말이 있지 않을까. “어쩌라구 부모가 낳아준 외모를“ 그래도 다행히 남매인 아들은 의사로 딸은 대기업에 나름 잘 자라주어서 그것으로 위로를 받으며 버티어 왔다고 했다. 그런 언니에게 나 같으면 이혼하고 편하게 살겠는데 하고 한마디 조언하려던 말이 목까지 올라 왔지만 꿀꺽 넘겨 버렸다. 정숙 언니의 행.불행은 그 언니가 판단할 문제지 건방지게 다른 누군가 나서서 관여할 일은 아니다. 너나 잘하세요 마음속으로 읎조린다.
내세에 멋진 남자랑 한번 살아보겠다는 허꿈을 휴지통에 구겨 넣는다. 그래 차라리 내가 멋진 여자로 태어나 한번쯤 남자들의 시선을 주목 받으며 살아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다.
정숙 언니 오늘 따라 더 생각이 나네요.
시간 내서 한번 찾아 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