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나루역 1번출구에서 오전 10시에 모였습니다.
사전답사까지 하며 꼼꼼하게 인솔을 준비한 오늘 하루놀이의 호스트 얼떨님이 산행 코스를 설명합니다.
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있는 길을 따라 아차산 입구로 들어섭니다.
아차산에는 고구려 유적지가 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가 한강을 두고 대치할 때 고구려의 산성이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발굴터는 사유지라고 합니다.
고구려 유적을 만나기 위해 1997년 9월 22일 오후 아차산 정상의 속칭 헬기장으로 불리던 곳에서 간단한 행사가 있었다. 1,450여 년 동안을 그곳에 묻혀 있던 고구려 유적의 발굴을 고하는 개토제였다. 서기 475년 백제 한성(漢城)을 함락시킨 고구려 장수왕의 군대가 남기고 간 토기임을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다. 백제 고분으로 알려졌던 구의동 유적이 고구려 군사 요새였음이 밝혀졌다. 잠실 대교 북단에 위치한 구의동 유적은 1976년에 발굴되었는데, 발굴 조사 당시에도 군사 시설일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백제 고분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던 유적이다. 중국이나 북한의 고구려 유적과 유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던 당시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를 계기로 남한 지역 고구려 토기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확인되었고, 학계의 관심이 증폭되었다. 1994년 4월 구리시·구리 문화원과 한양 대학교 조사단이 공동으로 실시한 아차산 일원에 대한 지표 조사에서 15개소에 달하는 고구려 보루가 확인되었으며, 1997년에는 그중 하나를 발굴하였다. 1997년에 시작된 아차산 4보루의 발굴 조사는 이듬해까지 지속되었고, 1999년부터 2000년까지는 시루봉 보루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아차산 4보루의 발굴은 남한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고구려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라는 점에서 각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1997년도의 발굴 조사 결과는 엠바고를 깨고 주요 일간지의 일면을 장식하였으며, 보도 이후 발굴 조사 현장에는 연일 학계는 물론 많은 시민들이 방문하였다. 아차산 4보루 발굴 조사를 계기로 경기도 양주와 임진강 일대에서 많은 수의 고구려 보루가 추가로 확인되었으며, 남쪽으로는 대전에 이르기까지 고구려 유적이 조사되었다. 또한 2002년 중국의 '동북 공정'은 아차산 고구려 유적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04년에는 아차산의 고구려 유적이 국가 사적 제455호로 지정되었다. 홍련봉 1보루와 홍련봉 2보루, 아차산 3보루, 용마산 2보루에 대한 발굴 조사가 연속적으로 이루어졌다. 2013년까지 지속된 발굴 조사를 통해 이제는 한강 유역을 둘러싼 고구려와 백제의 각축 양상을 비교적 자세히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1500여 년 전인 서기 475년 9월, 고구려왕 거련(巨璉)[장수왕]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백제의 왕도 한성을 포위하였다. 백제의 개로왕(蓋鹵王)은 두려워 성문을 닫고 능히 나가 싸우지 못하였다. 고구려는 군사를 네 길로 나누어 양쪽에서 공격하였고, 또 바람을 이용하여 불을 놓아 성문을 불태웠다. 고구려의 대로(對盧) 제우, 재증걸루, 고이만년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북성(北城)을 공격하여 7일 만에 함락시키고, 남성(南城)으로 옮겨 공격하였다. 성 안은 위태롭고 두려움에 떨었다. 개로왕은 곤궁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기병 수십을 거느리고 성문을 나가 서쪽으로 달아났다. 과거 개로왕의 신하였다가 고구려에 망명한 장수 재증걸루 등은 왕을 보고는 말에서 내려 절한 다음에 왕의 얼굴을 향하여 세 번 침을 뱉고는 그 죄를 꾸짖었다. 그리고는 왕을 포박하여 아차성(阿且城) 아래로 보내 죽였다. 이상은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 본기(百濟本紀) 개로왕 21년 조에 나오는 백제의 한성 함락 기사를 요약하여 정리한 것이다. 위 기사에서 북성은 한강 남안의 풍납토성(風納土城), 남성은 몽촌토성(夢村土城), 아차성은 아차산성(阿且山城)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백제 한성 시대는 막을 내리고 웅진(熊津)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고구려는 이후 80여 년간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남진 경영을 시도하게 되며, 몽촌토성과 한강 북안의 아차산 일대에 수십 개의 요새를 쌓았다. 그러나 551년 나·제 연합군의 공격으로 아차산의 고구려 군은 양주 방면으로 철수하였고, 고구려 군이 주둔하였던 요새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아차산을 등산하는 도중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전경입니다. 서울은 회색도시입니다.
한강이 가장 잘 보이는 지점에서 얼떨님의 브리핑
아차산 정상에 왔습니다.
정자에서 서울감상
기념사진
아차산을 넘어 용마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하산하여 소고기모둠구이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여기 물냉면이 맛있다고 초심님이 감탄하였습니다.
첫댓글 하루놀이 후기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