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 용어해설 78. ≪존재물음의 형식적 구조≫ 제2절
“ #모든_물음은_일종의_찾아나섬이다. 모든 찾아나섬은 찾고 있는 것에서부터 자신의 앞선 방향을 제시받는다. 물음은 존재자를 그것의 '있음의 사실'과 '그리있음'에 있어 인식하려는 찾아나섬이다. 인식하는 찾아나섬은 물음이 향하고 있는 그것을 밝히 파헤쳐 내어 규정함이기에 <탐구〉가 될 수 있다. 물음은 어떤 것에 대한 물음으로서 자신의 물어지고 있는 것을 갖고 있다. 모든 어떤 것에 대한 물음은 어떤 방식으로건 어떤 것에 물음을 거는 것이다. 물음에는 물어지고 있는 것 외에 물음이 걸려 있는 것이 속한다. 탐구하는, 다시 말해 이론적인 물음에서는 물어지고 있는 것이 규정되고 개념에로 데려와져야 한다. 이 경우 물어지고 있는 것에는 본래 의도되고 있는 것으로서 물음이 꾀하고 있는 것이 놓여 있다. 물음은 여기에서 목표에 이르게 된다.”(5쪽)
“물어지고 있는 것은 존재이다.………… [존재]물음이 꾀하는 것은 존재의 의미이다.………… 존재가 물어지고 있는 것을 형성하고 있고, 존재가 존재자의 존재를 말하고 있는 한, 존재물음에서 물음이 걸려 있는 것은 존재자 자체라는 것이 귀결돼 나온다."(6쪽)
해설: (@ #물어지고_있는_것 #물음이_걸러_있는 것, #물음이_꾀하는_것 #존재물음, #찾아나섬)
#존재물음 은 “#존재는_무엇을_의미하는가?”라는 물음이다. 따라서 존재물음은 '존재'에 대한 물음이다. 존재물음을 제기하는 까닭은 우리가 그 물음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존재물음을 제기할 수 있는 까닭은 우리가 이미 존재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존재이해는 아직 개념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물음에는_앎과_모름이_함께_속한다. 존재물음은 존재이해의 이러한 무규정성을 개념적으로 밝히고자 하는 물음이다. 이 물음이 명확하게 제기될 수 있으려면, 존재물음이 하나의 물음인 한, 먼저 #물음의_ 구조 가, 즉 물음 일반에 무엇이 속하는지가 투명해져야만 할 것이다.
묻는다는 것은 찾아나선다는 것이다. '...'에 대해 묻는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 묻고 있는 바를 찾아나섬을 뜻한다. 찾는이가 자신이 찾고 있는 그것'을 찾아나설 수 있으려면, 그는 먼저 '그것'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있어야만 한다. 찾는이는 자신이 찾고 있는 바 '그것'에 의해 이미 이끌려져 있는 셈이다. 찾아나섬에서의 '#찾아지고_있는_것'이 물음에서의 '#물어지고_있는_것’에 해당된다. 물음은, 어떤 것에 대한 물음으로서, ‘#물어지고 있는 것’( #das Gefragte), 즉 #물음의 대상 을 갖는다. 그런데 우리는 물음을 어디에다 묻는가? 그 물음을 물어볼 데는 어디인가? 그곳은 물음과 관련된 것,
즉 '#물음이_걸려_있는_것’( #das_Befragte)이다. 예컨대 우리가 만일 “교육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그때 이 '물음이 걸려 있는것'은 교육과 관련된 모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물음을 던지는가? 그것은 우리가 우리들이 묻고 있는 것에 대해 명확히 모르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물음을 통해, 그 물음에서 물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밝혀 내고자 한다. 우리가 물음을 통해, ‘물어지고 있는 것'에서 밝혀 내고자 하는 바가 바로 ‘#물음이_꾀하는_것'(
#das_Erfragte)이다.
존재물음은 ' #존재에 대한 물음이다. 존재물음의 대상으로서의 ‘존재’가 바로 '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존재'는 '존재하는것'이란 말에서 다의적으로 쓰이고 있는 '존재하는'이라는 분사를 실사화한 것이다. 존재는 존재자[' #존재하는_것']를 존재자로서 규정해 주는 것이고, 존재자가 이해될 수 있는 #지평이다. 따라서 #존재는_존재자가_아니다. 존재와 존재자는 서로 다르다. 그러나 '물어지고 있는 것'으로서의 '존재'는 언제나 존재자[존재하는 것']의 존재이다. 존재는 '존재하는 것[존재자]에서의 존재이다. 따라서 ‘존재’와 관련된 물음에서 그 ‘물음이 걸려 있는 것은 '존재하는것' [존재자]이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에서.그것의 존재에 대해 묻는다. 이러한 물음을 통해 우리는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히려 하는 것이다. 존재물음을 통해 묻고자 하는 것, 즉 '물음이 꾀하는 것'은 '존재'의 의미이다.
우리는 존재물음의 이러한 세 구성 요소를 언제나 그것의 구조하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 세 가지 구성 요소는 서로 맞물려 있다. 왜냐하면 #존재의_의미 에 대한 투명한 물음제기는 존재의 의미를 물어볼 수 있는 존재자['존재하는 것']가 먼저 그 존재에서 적합하게 설명되어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 구성 요소 가운데 두 번째 것, 즉 '물음이 걸려 있는 것'에서부터 존재물음을 정리해 가야 할 것이다.
‘#물음이_걸려_있는_것은 #존재자[존재하는 것]이다. ‘#
물어지고_있는_것'으로서의 #존재 는 #존재자에서_캐물어진_것 이다. 우리가 존재자의 존재를 올바로 제시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 존재자가 우리들에게, 그것이 그것 자체에서 존재하듯이 그렇게 접근 가능해야 한다. 존재자에로 올바르게 접근할 수 있으려면 먼저 존재자에로의 올바른 접근양식이 획득되어야 한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존재자]은 수없이 많다. 이 수많은 존재자들 가운데 우리는 어떤 존재자에게서 존재의 의미를 읽어내야 하는가? 그러한 #범례적_존재자는 자신의 존재 속에 존재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즉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존재물음을 물을 수 있는 자이다. 존재물음은 존재의 의미를 이미 이해하고 있는 존재자만이 던질 수 있다. 따라서 존재의 의미를 읽어내야 할 범례적 존재자는 다름 아닌 우리들 자신이다. 존재물음을 그 형식적 구조에 입각하여 정리해내는 일은 묻고 있는 자를 그의 존재에서 명시적으로 밝히는것을 뜻한다.
참고자료- 질문에 관한 시
백 톤의 질문 / 서안나
뒤돌아보면
가을이었다
소주가 달았다
내가 버린 구름들
생강나무 꽃처럼 눈이 매웠다
고백이란 나와 부딪치는 것
심장 근처에 불이 켜질 때
그렇게 인간의 저녁이 온다
불탄 씨앗 같은 나를 흙 속에 파묻던 밤
죄많은 손을 씻으면
거픔 속으로 사라지는 두 손은 슬프다
어떤 생은 어떤 눈빛으로
커튼을 닫고 밥을 먹고 슬픔을 물리치나
깨진 중국 인형의 눈동자 속에서
울고 싶은 자들이 운다
죽은 꽃이 죽은 꽃을 밀고 나오는
부딪치는 밤이었다
돌아누우면
물결이던
애월
밤의 질문들/ 박가경
가느다란 줄에 매달려 말라가는
가자미의 눈과 마주쳤다
필연일 수 없는 멀어짐의 눈빛들이
모서리를 닮아가고 있다
어떤 방향도 되지 못하는 모서리들처럼
갯벌은 자꾸만 서쪽으로 멀어졌다
우리는 모르는 척 갯벌을 바라보았다
입술에 고이는 피처럼
저녁이 오고 있었고
두 손을 꼭 잡은 채 멀어지는 일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손목이 지워지고 있었다
우리 다시 시작하지 말자
녹지 않는 얼음의 기후를 슬픔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
멀어지는 것의 따뜻함을 어떤 기후라 불러야 하는지
너는 주머니 속 질문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질문 속에는 파란 피가 묻어있을 것만 같아서
나는 가방 지퍼를 닫는다
가자미의 납작 엎드렸던 몸이 바람에 반듯해지고 있다
너의 발목에서 햇빛이 부서지고
맞지 않는 신발은 끝없이 나의 발목을 잡아당기고
어떤 상냥한 인사처럼
밤이 온다면
뜻밖의 질문/ 천양희
눈이 녹으면 그 흰 빛은 어디로 가나*
그가 질문을 던졌을 때
우리는 다만
그 질문을 생각하고 기억하고 상상할 뿐
그 흰 빛의 행방을 알 수가 없다
이 세상에
눈보다 더 눈부신 흰 빛이 있을까
얼마간 의문을 가져보다가
생각은 머릿속으로 하는 혼잣말 같고
날리는 눈발은
하염없이 잃어버리는 목소리 같아
눈이 쌓이고 쌓인 눈 위에
또 눈이 쌓이는 것을 보면서
나는 누구의 기억 속에 얼마나 쌓였을까
거듭 가파른 생각을 한다
어느덧
눈에 눈[雪]물이 차오른다
눈이 녹아도
그 흰빛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눈을 쓸면서 뒤늦게 받아들인다
저 흰 빛만큼 눈부시게
내 생각을 들어올린 구절은 없다
어떤 눈은 너로부터 무너지고
어떤 너는 눈처럼 쌓인다
눈이 와서 하는 일이란
나에게서 오점을 지워주는 일
백색이 모두인 눈의 세계에도
유백 설백 청백으로 나뉜다는 걸 알고 난 뒤
눈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뜻밖의 질문을 받을 때처럼 놀라서
눈길을 오래 걸어 본다
쌓이거나 녹거나 하는 것만큼
긴 문장이 있을까
돌아보니
어느 소설의 첫 문장같이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마침내
뜻밖의 질문이 완성되었다
* 셰익스피어
나에게 던진 질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
미소 짓고, 손을 건네는 행위,
그 본질은 무엇일까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에도
홀로 고립되었다고 느낀 적은 없는지?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듯,
첫 번째 심문에서 피고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엄정한 법정에 끌려나온 듯,
과연 내가 타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책을 펼쳤을 때 활자나 삽화가 아닌
그 내용에 진정 공감하듯이,
과연 내가 사람들의 진심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럴듯하게 얼버무리면서
정작 답변은 회피하고,
손해라도 입을까 겁에 질려
솔직한 고백 대신 번지르르 농담이나 늘어놓는 주제에,
참다운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
냉혹한 세상을 탓하기만 할 뿐,
우정도 사랑처럼
함께 만들어야 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혹독한 역경 속에서
발맞춰 걷기를 단념한 이들도 있으련만,
벗이 저지른 과오 중에
나로 인한 잘못은 없는 걸까?
함께 탄식하고, 충고를 해주는 이들도 있으련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전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메말라버렸을까?
천년만년 번영을 기약하며
공공의 의무를 강조하는 동안,
단 일 분이면 충분할 순간의 눈물을
지나쳐버리진 않았는지?
다른 이의 소중한 노력을
하찮게 여긴 적은 없었는지?
탁자 위에 놓인 유리컵 따위엔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법
누군가의 부주의로 인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기 전까지는
사람에게 품고 있는 사람의 마음
과연 생각처럼 단순하고 명확한 것이려나?
불가능한 질문/ 양안다
우리가 달걀 모양의 어항에 산다면
그런 열대어라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열대어들은 자신의 이름조차 잊은 듯 보이는데
우리가 달걀 모양의 어항에 든 열대어라면
서로가 서로인지 모른 채
그렇게 영역을 잊었다면
너는 나를, 나는 너를, 어디까지 잊은 채
계속 밀어내려 하게 될까
누가 이 먹이를 주는지 왜 궁금해하지 않는 걸까
우리가 달걀 모양의 어항에 산다면
그래서 우리, 언젠가 수면 위에서 하얗게 뒤집어진다면
우리를 건져내는 손의 주인은 너
혹은 나,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어느 화원에 묻혀 어느 꽃으로 피어나게 될까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꽃잎을 서로에게 던지고
서로를 침범하려 할까
그때 꽃을 꺾는 손은 누구일까
어린 질문 / 김희숙
어린 질문은 대부분 깨져 있어
멀리서 보면 별모양이다
어린 말에는 사금파리가 들어있거나
부서진 햇살이 들어있다
자꾸 눈을 찡긋거리게 한다
어린 말들은 방언하는 듯하다가
어느 날 쑥쑥 자라난다
오래전에 질문을 던져놓고 뒤늦게
찾으러 오는 어른이 있다
반쪽의 질문에는 반쪽의 대답을 주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질문의 정답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질문하고
알고 있는 답을 또 질문한다
질문에 뿔이 달려 있거나
검은 허방이 묻어 있어 한쪽 발을 슬그머니 넣는다
간혹 허공에 대고 질문하는 이도 있지만
그건 헛헛한 웃음을 대답으로 듣는다
퇴근길, 깨진 질문을 주머니에 가득 넣고 걸으면
만지는 손끝이 까르르 웃는다
질문은 진화하고
늙고
대답보다 더 많이 생겨나거나 바뀐다
질문/ 정희성
석 달에 한 번 혈압을 재고 약을 처방해 주던
담당의가 여의사로 바뀌고 질문도 달라졌다
의사가 물었다 혈압약 말고 무슨 약을 먹냐고
오메가 쓰리요
또?
비타민 씨요
또?
Zn-씨요
아연 아니에요? 그건 왜 먹지요?
……그냥요
나는 괜히 멋쩍은 생각이 들었다
처방전을 받아 들고 나오면서 자신에게 물었다
왜 먹었지?
사월의 질문법 / 서안나
사월은 무엇입니까
물에 젖습니까
ㄱ과 ㄴ입니까
톱니바퀴입니까 익명성입니까
경찰입니까 질문입니까
3백 번 질문해도
질문은 썩지 않습니다
인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알약을 삼키면
왜 녹슨 철봉 맛이 날까요
사월에는 왜 꽃이 더 아름다운가요
씨발이라는 말이 자꾸 생각납니까
지랄병 걸린 애들이
7시간씩 사라지곤 합니까
사월은
왜 검정 같은 것이 만져집니까
지울수록 빛이 됩니까
뭉클하고 끈적거립니까
불쑥
질문처럼
내 손을
움켜잡습니까
누군가 곁에서 자꾸 질문을 던진다 /김소연(1967~)
살구나무 아래 농익은 살구가 떨어져 뒹굴듯이
내가 서 있는 자리에 너무 많은 질문들이
도착해 있다
다른 꽃이 피었던 자리에서 피는 꽃
다른 사람이 죽었던 자리에서 사는 한가족
몇 사람을 견디려고 몇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
우리는 같은 사람을 나누어 가진 적이 있다
같은 슬픔을 자주 그리워한다
내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마다
나를 당신이라고 믿었던 적도 있었다
지난 연인들이 자꾸 나타나
자기 이야기를 겹쳐 쓰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 되어간다
당신은 알라의 얼굴에서
예수의 표정이 묻어나는 걸 보았다고 했다
내 걸음걸이에서 이제는
당신이 묻어나오는 걸 아느냐고
당신에게 물어보았다
우리는
두 개의 바다가 만나는 해안에
도착해 있다
늙은 아기가 햇볕에 나와 앉아 바다를 보고 있다
바다가 질문들을 한없이 밀어내고 있다
우리에게 달라진 것은 장소뿐이었지만
어느새 우리들 기억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기억할 만한 질문/ 박의상
들어봐, 이것 좀 들어봐, 내가 어제 저녁에 말이다,
아들네 집에서 떠들썩 저녁을 먹고
혼자 커피를 마시는데 말이다,
우리 둘째 손녀가 말이다,
이제 겨우 만 세 살이 되는 것이 말이다,
쪼르르 내 무릎 아래 와 앉더니 말이다,
할아버지, 불러서 응, 했더니
쬐끄맣게 묻더라니까, 이렇게,
할아버지도, 엄마 있어요오?
그럼
어디 있어요오오오?
가만히 있으니까, 또 묻더라니까
아빠도요오오?
어때, 요 녀석, 세 살배기가 무섭지 않아?
들어보자, 세상 이치를 여기
냉큼 내놓아봐라아아!
웃기는 왜 웃니, 왜, 왜,
친구라는 것들이
나, 참,
질문 / 정하해
일생을 통틀어 그대를 향해 걸었으나
나는 아직 동틀 무렵을 벗어나지 못했다
생활이 늘 붐비는 치레인가 싶어
잠시 허공을 느낀다
모르는 날들은 쏜살같이 달려와
분분 천 년이라 하고
그리하여 내가 이 꽃 저 꽃으로 피고, 피다가
북두 어디쯤
가서
시퍼런 가슴 하나 위로하는 일이 마지막이라면
분명 바다가 휜, 쪽으로
오르는 암자가 있을 것이다
저 끓는 날을 때리던, 나는, 목탁이 되었으나
소리가 없다
질문의 혀 / 김미정
너와 나의 입맛은 닮았을까
그것은 붉다
위험한 처음처럼
설탕처럼 뿌려진 별빛을 혀끝으로 찍어 먹는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로의 입술을 물어본다
재가 될 때까지
우리는
그 안에 담긴 별자리에 대해 물어본다
기억에 없는 나무들이 젖어가고
검은 이파리가 밤의 모서리를 궁금해한다
밤의 한 부분이 확대된다
너 하나만을 생각할 때
어둠은 별이 만들어 낸 숨소리인가
우리의 포옹이 중얼거리는 동안
너는 이미 없고
나의 질문에는 이유가 없는 것이 이유다
우리의 혀는 지금 깨어나는 중이다
뾰족한 나뭇가지 위에서
세 개의 형광등에 뜬 아홉 개의 질문/ 천수호
세 개의 형광등이 나란히 뜬 방
불을 껐는데도 그 형체가 남아있다
귀가 닫혀있는 질문은
이렇게 사방이 희미해질 때 하는 거다
눈도 없는 몇 개의 질문들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검은 우산의 귀가 활짝 펴졌다
박쥐가 들끓던
인도 괄리아르 만 싱 궁전의 지하 감옥 천장처럼
몇 개의 가능한 답들이 잔발을 뗐다가 다시 붙인다
어둠 속 질문은 주둥이가 긴 장화를 신고
이 구석 저 구석을 저벅거린다
석가모니가 아난다에게 한 세 가지 질문처럼
질문의 입구가 너무 커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어둠
세 개의 형광등이 꺼지면서 꼬리가 아홉 개인 질문이 뒤섞였다
빛이 밝혀낼 답은 없지만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올린다.
깜 빠르르르 팍, 주문 같은 불이 켜지니
어둠 속에 어슬렁거리던
아홉 개의 질문들이 재빨리
벽의 부조 속으로 스며든다
봄에 소박하게 질문하다 / 엄원태
몸 풀린 청량천 냇가 살가운 미풍 아래
수북해서 푸근한 연둣빛 미나릿단 위에
은실삼단 햇살다발 소복하니 얹혀 있고
방울방울 공기의 해맑은 기포들
바라보는 눈자위에서 자글자글 터진다
냇물에 발 담근 채 봇둑에 퍼질고 앉은 아낙 셋
미나리를 냇물에 씻는 분주한 손들
너희에게 묻고 싶다, 다만,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산자락 비탈에 한 무더기 조릿대
칼바람도 아주 잘 견뎠노라 자랑하듯
햇살에 반짝이며 글썽이는 잎, 잎들
너희에게도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폭설과 혹한, 칼바람 따윈 잊을 만하다고
꽃샘추위며 황사바람까지 견딜 만하다고
그래서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질문/ 남유정
사람이 우르르 몰려가는 쪽으로는
되도록 가지 않으려 한다
그 바람이 한참 잠잠해질 때까지
느리게
내 것이 될 때까지
기다리려 한다
적막하게 걸으려 한다
먼 곳까지 흘러온 이야기
가령 여옥의 노래 같은 것에
가슴이 먹먹해지면
저물녘 강가에 가서 조약돌을 던져보려 한다
조약돌이 강바닥에 닿는 동안이
한 생
단단하게 저를 닫은 돌이
다시 강물 밖으로 나오기 위해
생을 되새김질하는 동안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네 얼굴이
몇 생을 흘러와
무심히
내 어깨에 기대어 오는지
물으려 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질문 / 이명윤
통 기억이 안 난단다
이름을 말하셔야 재발급해 드리죠
다른 가족 분은 없으세요
홀로 사신 지 이십오 년, 아들 하나 있는데
십년 넘게 소식이 없단다
사람들이 부르던 할머니 이름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아침부터 찾아와
지갑 잃어버렸다며 울상 짓던 할머니가
재발급 수수료가 비싸다며 깎아 달라던 할머니가
이름을 물어보자
갑자기 멍한 표정을 짓는다
기억 속의 이름은 어디로 갔을까
아주 어릴 적
친구들이 정답게 부르던 이름
엄마가 밥 먹으러 오라며 애타게 부르던 이름
돌아가신 할아버지
젊은 날 어느 오동나무 아래서 두 번 세 번
손 흔들며 불렀을 이름
어느 날 문득
새처럼 훨훨 유년 속으로 날아가 버렸을까
할머니 몰래 얼굴의 검버섯 속에 꼭꼭
숨어 버렸을까
이름을 찾아 꼭 다시 오세요
한참 동안 허공을 응시하다
현관을 나서시는 할머니
언제 다시 오실까……
먼 길 가시는 할머니 머리 위로
오랫동안 새록새록
첫눈이 내렸으면 좋겠네.
풍경 A에 대한 질문 / 강인한
몰래 갖다 버린 쓰레기
전신주에 기댄 검정비닐 하나 둘 셋
옆구리에 손 얹고 불량하게 휘파람을 분다
간밤 고양이들이 할퀴고 찢어놓은 아가리
발정 난 허리짬에선 녹물 같은
액체가 추억을 부르며 흘러나온다
여남은 마리 비둘기들 대가리를 주억거리며
여기서 걸어오고 저기서 달려온다
반쯤 부패가 시작된 공기 속에
무식한 삽이 엿 먹어라 엿이나 먹어라
뻥뻥 구멍을 뚫고 다닐 때 보행도
좌파에서 우파로 바뀌듯 신호등이 바뀌고
한꺼번에 내디디는 발걸음에 놀라
찌꺼기를 쪼던 비둘기들
검정비닐처럼 화들짝 활짝 날아오른다
기우뚱 풍경이 흔들린다
돛대와 이물 사이
함부로 벗겨진 전선과 철사가 뒤엉키고
검정비닐을 깃발로 흔드는
이 도시는 지금 조난당한 선박이거나
꽃피는 팔도강산이다 그래그래 기냐 아니냐.
체크무늬에 관한 질문/ 서안나
당신은 세로로 가고
나는 가로로 간다
당신에겐 왜 자꾸 묻고 싶어지는 걸까요
당신은 왜 새처럼 날아가려 하는지
새들은 왜 시들지 않는지
사랑을 거쳐 간 마음들은 어디에 도착하는 걸까요
마음엔 왜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지
구멍에서 왜 밤마다 우는 뱀이 기어 나오는지
뿌리들은 왜 캄캄한가요
나무들은 왜 세상 밖으로 가지를 뻗는 건가요
당신이 받고 싶은 질문은 무엇인가요
빨간 종이를 줄까요
파란 종이를 줄까요
유령들은 왜 다리가 없는 걸까요
당신은 왜 유령처럼 나를 스쳐가기만 하나요
우리는 왜 직각으로만 만나는 걸까요
사랑은 왜 질문들로 가득 차는 건가요
당신은 왜 도착하지 못하나요
당신은 왜 세로로 가고
나는 가로로만 가는 걸까요
은행나무의 질문 / 강인한
당신에게 들키고 싶은 마음으로
이 거추장스런 옷을 벗는다.
가야 하는데, 당신에게로 가야 하는데
빗금을 긋는 햇살 사이로 먼 산이 춥다.
뉘우칠 것은 다닥다닥 은행알처럼 많아서
이쪽저쪽 초행길에 어디로 갈까 망설일 때
누가 다가와 모르는 길을 모르는 나에게 물어보듯이
세상엔 아는 이보다 모르는 이가 더 많이 산다 .
몰라도 그냥 길을 간다, 인생처럼
은행나무, 벚나무, 느티나무랑
멀찍이 스크럼을 짜고 내려다보는 아래
주먹을 제 턱까지 끌어올리며 조깅하는 아낙들,
열심히 열심히 시계 반대 방향으로만 걷는다.
석촌호수에서도 동네에서도
시계 반대 방향으로만 걷는다.
나뭇잎, 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은행잎
팔을 들고 은행나무가 묻는다.
그래 넌 거기 떨어져서 갈 수 있겠니.
뿌리까지 내려가자면
오는 겨울까지 갈 수는 있는 거니.
한밤의 질문 / 강인한
-- 불꽃 15
어디선가 진정한 기도 소리가 들린다.
순금의 회상이 시작된다.
문 밖에서는 바람이 불고
부드러운 어둠이 이방의 도시를 지나온다.
소리없는 폭우 속으로 들이 달리고
촛불 속에 깜박거리는 동양의 산문,
내가 읽다 만 고전의 문장이
문득 장미빛 불에 날개를 적신다.
마음 속에 잠자지 않는
그대 자정의 뒤척임도 사라져갔다.
내 마음 속에서는 인제 아무것도
울지 못한다, 내 마음 속에서는.
풀밭에 떨어지는 희미한 별빛
벌레 울음 소리마저 깊이깊이 파묻히고
한 마디 대지의 흐름을 빌어
불은 내게 묻는다.
안에서 내다보는 캄캄한 혼란과
밖에서 들여다보는 눈부신 질서를.
마음과 마음 사이에 서성거리는
시간의 어두운 그림자,
내 몸 안에 전 생애의 그늘을 던지는
진정한 목소리가 들린다. 흔들린다.
첫댓글 궁금 나무 / 임지은
궁금함은 나뭇가지처럼 자랐다
가지를 하나 잘라서
물음표를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궁금하지 않으니까
한숨처럼 말할 수도 있으니까
애완동물같이 무럭무럭 질문을 길렀다
왜 나를 뱉었어요?
나와는 다른 것이 될 줄 알았거든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들이 늘어났다
계단은 나를 뛰어넘은 물질이에요?
엄마는 하지 마와 그만 해를 섞은 문장이에요?
나를 뚫고 나온 질문들을
하나씩 나무에 걸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몰라보게 가벼워지고
나무가 자랐다, 대답보다 거대하게
나는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아무도 다음으로 건너갈 수 없도록
왜 사람이 사람인지 움켜쥘 수 없도록
손끝에 돋아난 질문을 떨어뜨리자
복숭아와 오이와 오렌지가 동시에 열렸다
서로 엉켜 있어 잘라낼 수 없는 대답이었다
햇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