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교실! 그립습니다
김선희
일정하게 매이는 직장에서 벗어나자 허전한 마음은 시간이 엄청 많아진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나의 직분에 맡겨진 것을 해결하기만 하면 되었던 직장생활의 습관과는 달리 오직 나의 선택으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새로운 경험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루의 시간을 무엇으로 매울까? 인터넷 속을 헤매면서 기웃거려 보지만 특별한 계획이 없으니 이것 해 볼까? 저것 해 볼까? 결정 또한 쉽지 않아 그냥 마음이 가는 데로 편하게 해 보자며 내려놓는데 퇴직 후 많은 사람이 자서전을 쓴다는 말에 솔깃해졌다. 퇴직자인 나도 그 속에 포함되어야 할 것 같은 소속의 욕구가 발동하였다. 내가 살아오며 겪은 일들을 되새기는 글쓰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의 글쓰기는 엄마의 명령(?)으로 가족과 떨어져 타향에서 일하고 계시는 아버지께 안부 편지 쓰기나 일기에 내 생각을 가감 없이 나오는 대로 그냥 끄적거리는 수준이었다. 편지 쓰기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것은 기억에 남지도 않았으며, 일기는 선생님께 검사받는 것이 습관이 된 정도였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억지 안부편지는 아버지 기대에 미치지 못해 핀잔을 받고, 일기로 나타나는 명확한 글이 시비의 대상이 되었던 아픈 기억으로 글쓰기를 덮었다. 이제는 그 아픈 기억도 뒤적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의 창고를 뒤적이며 써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글쓰기를 해 보자는 쪽으로 생각이 좁혔지만 ‘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지?’ 자신감 결여와 정보 없음이 한꺼번에 밀려와 막막하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었다. 만나면 살갑게 얘기를 풀어내는 멋진 친구가 ‘상록수필교실’에 같이 다니자며 나를 이끌었다. 좋은 교수님을 모시고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에 다른 활동에 방해되지 않는 편한 시간인 오후에 수업을 한단다. 자선전이 수필로 바뀌고 있었다. 생활 속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이나 체험한 것을 형식, 내용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수필교실에 입문했다. 교수님께서 글제를 제시해 주시는 수업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머리에서는 글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도 장문의 글로 이어지지 않았다.
돌아보니 소중했던 순간들이 대부분 기억에서 사라져 서툴고 어눌하게 남은 조각들뿐이었다. 내면을 끌어올려 매만지고 다듬었다. 읽는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구색을 갖춘 글이 되는 듯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생각으로만 맴 돌뿐 진솔한 마음이 담기지 않는 것 같아 ‘내가 나를 잘 모르는구나’로 문을 덜컹 잠가 버렸다.
나 자신을 돌아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구나. 희로애락의 감정 중에 기쁨은 금방 날아가 버렸다. 슬픔은 가슴 저 밑바닥으로 스며들어 흔적을 감춘 채 숨바꼭질하고 있었다. 즐거운 것은 무엇일까? 부지런히 찾아 돌아다녔다. 화의 감정만 꽉 차 있는 듯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다. 왜 그렇게 된 것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주워 담아 줄을 세워야 했다. 수필교실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도와주신다. 칭찬과 격려로 이끌어주신다. 하지만 글쓰기가 하루아침에 되지 않았다. 수필교실에 오겠다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글쓰기를 해 봤다는 이야긴데 자신을 잘 살펴보라며 친구도 다독인다. 자신감을 키워야 한다. 되짚어본다.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것은 원감으로 승진한 그해 개원한 유치원에 근무하면서부터였다. 큰 유치원이라 엄청 많은 교육 행사 때마다 사진으로 장면들을 찍어놓고 표제, 부제, 전문, 본문의 형식으로 홍보물을 썼다. 1년 동안 지역신문에 실리는 내 글을 쳐다보면서 자신감이 점점 쌓여갔다. 밀양으로 옮긴 유치원에서 6개월쯤 지나자 계간으로 발간되는 학교신문에 인사 글 청탁이 들어왔다. 이제까지 썼던 글과는 다른 글이다. 무엇을 쓸까? 어떻게 구성할까? 의례적인 인사말과 말하고자 하는 중심 생각이 잘 나타나도록 내용을 빠트리지 않으면서도 분량이 적절하게 써냈다는 만족감은 자신감으로 바뀌어 한껏 부풀어졌다.
교수님께서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은 다른 사람의 글을 많이 읽으라고 하신다. 요즘은 글을 읽으면 페이지 넘기기 무섭게 잊어버리는 수준이라며 엄살을 부리면 콩나물시루를 비유로 들어주신다. 덧붙여 말씀하신다. 좋은 글을 쓰는 두 번째 방법은 필사하라고 하시면서 수필의 정석인 피천득 님의 인연을 소개하신다. 미진했다. 필사를 더 해봐야겠지? 교수님의 가르침을 담아 최고의 책인 성경을 선택하여 첫째, 글을 읽고 둘째, 글이 부드럽게 쓰이는 펜을 사용하며 셋째, 주님의 말씀은 구별하여 다른 색으로 필사하며. 넷째, 마음에 닿는 문구는 형광펜으로 칠하여 여러 번 읽기 등 필사한 옆자리에 어휘의 뜻 달기로 빼곡히 채우니 잊었던 자신감이 살아났다.
코로나19로 수필 수업이 중단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쓰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깊이 체험하여 알고 있음을 나타낸 것인데 문우들이 쓴 창작 수필을 읽고 감상하며 주어진 글제와 해설이 따르는 좋은 수필 수업이 중단된 것이다. 또 글쓰기가 멈칫거리고 있다.
교수님! 좋은 수필 공부시켜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언제 다시 교수님과 수업을 하면서 그 목마름을 채울 수 있을지 그립습니다.
2020 《수필춘추》 등단/상록수필문학회, 달구벌수필문학회 회원
k17815sh@hanmail.net
첫댓글 "지난날은 전부 그립다.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도 가고 싶다." 선희 선생님 그때가 그립지요. 나 역시 그립습니다. 하지만 지금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