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선덕여왕 주변인물 이야기
선덕여왕의 주변 인물들은 비교적 잘 알려진 편입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인 진평왕은 물론 어머니인 마야부인도 의외로 알려진 편이지요. 자매로는 여동생으로 보이는 김천명이 있었고 실존 인물인지 논란이 있는 또 다른 여동생(?) 김선화가 있었습니다. 김천명도 본인은 별 유명세가 없다 싶지만, 그녀가 김용춘의 부인이자 김춘추의 어머니였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선덕여왕에게 남편이 있었다는 말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학자들이야 이미 파악했겠지만 의외로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지요. 이번 글에서는 그 문제에 대해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덕여왕 자체는 이미 잘 알려진 편이니까요.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의 경우 실제 선덕여왕 상을 상당히 왜곡시킨 문제가 있습니다만.
② 수수께끼(!)의 인물 음갈문왕(飲葛文王)
음갈문왕은 신라의 왕족으로 보입니다. 당시 신라의 혼인풍습이 근친혼이었기 때문이지요. 세계사적으로도 정치적 이유를 위한 근친혼이 의외로 성행했습니다. 많은 왕족들과 귀족들 사이에서 외척이 왕위를 찬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이유 등이 있었지요. 혹은 대의명분적으로는 신성한 혈통을 유지 시킨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백제의 경우는 가뭄에 콩 날 정도의 근친혼 흔적 밖에는 없습니다. 그것도 사례가 하나둘이 될까 말까지요. 고구려의 경우에는 아예 사례가 없습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경우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정치적으로 귀족들을 분열시키고 왕실을 강화하려면 족외혼이 필수였지요. 근친혼 혹은 족내혼 같은 사치(!)를 부릴 여유는 1도 없었습니다.
여하튼 선덕여왕의 남편은 왕족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성골(聖骨)이기도 했을 것이고요. 이 음갈문왕은 한국사에서 보기 드문 국서였습니다. 국서(國壻)는 임금의 사위라는 뜻과 여왕의 남편이라는 뜻이 있는데 전자의 경우는 몰라도 후자의 경우는 지극히 사례가 드문 경우입니다. 신라의 여왕이 총 3명인데 진덕여왕의 경우는 아예 남편 이야기도 없으니까요.
③ 『삼국유사』 「선덕왕지기삼사」 다시 보기
『삼국유사』에 실린 「선덕왕지기삼사」 이야기에서 당 태종이 선덕여왕에게 그림을 보냈을 때 선덕여왕이 다음과 같이 발언한 바가 있습니다.
“이것은 당나라 황제가 내가 남편이 없는 것을 비웃은 것이오.”
그런데 모순되게도 같은 『삼국유사』의 「왕력편」을 보면 선덕여왕의 남편이 음갈문왕이라고 분명하게 적혀있습니다. 문제는 음갈문왕에 대한 기록이 이것 하나로 끝이지만요. 이러한 모순은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한다면 어느 정도 해결될 듯합니다. 당 태종이 선덕여왕에게 그림을 보냈을 당시에 음갈문왕이 이미 사망했다면 가능한 이야기지요.
음갈문왕의 본명이 '음(飮)'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갈문왕 작호에서 갈문왕 앞에 붙은 글자는 이름인 경우가 많기도 하고요. 광개토태왕 비문에서도 제왕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을 꺼리지 않는 문화임을 감안하면 신라라고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임금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꺼리는 중원의 문화와는 확연히 차이가 있지요.
만약 이 설을 받아들인다면 선덕여왕 남편의 성명은 아마도 김음(金飮)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내물 마립간 이후로는 왕족은 모두 김씨였으니까요. 석씨는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왕족 계보에서는 탈락했습니다. 여하튼 이 음갈문왕은 여왕의 남편이라서 갈문왕에 책봉된 듯하고요. 일단 음갈문왕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서 이것 하나인데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27대 선덕여왕(善德女王) [이름은 덕만(德曼)이다. 아버지는 진평왕(眞平王)이고, 어머니는 마야미인(麻耶美人)이며, 김(金)씨이다. 성골 남자가 다해버린 까닭에 여자가 왕이 되었다. 왕의 배필은 음(飮) 갈문왕(葛文王)이다. 인평(仁平) 갑오(甲午)년에 즉위하여, 14년간 다스렸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제1 「왕력(王曆)」 |
이 간단한 원전을 가지고도 의외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지 않아 이런 글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음갈문왕에 대해서 진평왕의 두 아우인 김국반과 김백반 중 하나라는 설도 나왔지요. 신라에서 숙부와 질녀간의 혼인이 있었던 경우가 있으니 나올 수 있는 설이기는 합니다. 여기에 대한 주장을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음(飮)과 반(飯) 글자가 비슷해서 일연이 잘못 적었을 수 있다는 추측이 있습니다. 흠(欠)의 두 번째 획을 길게 늘여뜨리고 첫 번째 획의 기울기를 바꾸면 반(反)과 유사해지기 때문이라지요. 서예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필자지만 나름 납득 되는 추론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름에 반(飯) 글자가 들어가는 인물들 중 하나가 선덕여왕의 남편이었을 수도 있지요.
이런 전제 위에 논지를 전개한다면 진평왕의 두 아우인 김백반, 김국반 둘 중 하나를 음갈문왕과 동일인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만약 선덕여왕의 배우자가 성골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지요. 그렇게 된다면 선덕여왕의 여동생으로 여겨지는 천명공주처럼 왕위 계승 순위가 한참 밀렸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경우의 수를 따지는 듯하지만 음갈문왕과 김국반, 김백반과의 관계는 다음의 네 가지 정도로 압축될 수 있을 듯합니다.
ⓐ 음갈문왕이 김백반과 동일인이라는 설
ⓑ 음갈문왕이 김국반과 동일인이라는 설
ⓒ 음갈문왕이 김국반, 김백반이 아니라 진평왕의 다른 동생이라는 설
ⓓ 음갈문왕이 김국반, 김백반은 물론 진평왕의 다른 동생도 아니라는 설
이렇게 여러 설들이 있지만 결정적인 학설들은 없는 듯합니다. 일단 기록도 부족하고 어느 하나도 결정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이 음갈문왕에 대해 김씨 혹은 박씨로 보는 설과 백반, 국반과 같은 항렬의 왕실 종친 또는 서자로 보는 설, 알천, 흠반 중 한 사람과 동일인으로 추정하는 설 등이 있으나 모두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음 글에서 뵙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