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총타주(總舵主)의 제자가 되다 위소보는 관안기와 이역세 등을 따라대문 밖으로 나섰다. 그러 고 보니 이삼백여명의 사람들이 여덟 팔(八)자로 나란히 서있었 고 얼굴은 모두 흥분된 빛을 띄우고 있었다. 잠시 후 두명의 대 한이 담가를 등에 떠메고 나왔다.모십팔을 데리고 나온 것이다. 이역세는 말했다. "모형, 그대는 손님이니 그렇게 겸손해 할 것 없소." 모십팔은 말했다. "진총타주(陳總舵主)의 명성은 오래 전 부터 누차 들어왔습니 다.오늘 만나 뵙게 된다면 설사...설사 죽게 된다 하더라고 그것 은 보람 있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소리는 여전히 힘이 없었다. 그러나 얼굴은 붉은 빛이 감도는 것을 보니 지극히 기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때 말발굽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먼지가 일어나는 곳에서 십 육필의 말이 달려왔다. 앞장을 선 세필의 말에 타고 있던 사 람들은 말이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훌쩍 말에서 뛰어 내렸다. 이역세등은 마중나가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매우 다정해 보였다. "총타주께서는 앞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형과 관부자 몇 분께서 그 쪽으로 오시라고...." 몇 사람은 서서 몇 마디 말을 상의 했다. 그러더니 이역세와 관안기, 기표청. 현정도인 등 여섯 명이 말을 타더니 달려온 사 람과 함께 말을 타고 떠나갔다. 모십팔은 매우 실망해서 물었다. "진총타주는 오시지 않는 것입니까?" 그의 물음에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각자 총타주를 뵙 지 못한 데 해대 하나같이 맥이 빠지는 표정들이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누가 당신네들에게 은자 일만 냥의 빚을 갚지 않았나? 아 니면 노름판에서 지게 되어 마누라의 바지라도 내놓게 되었더란 말인가. 제기랄 어째서 얼굴을 우거지 상을 하고있어?) 한참 지난 후 다시 한 필의 말이 달려와 밀명을 전했다. 그는 열 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그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 총타주 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열 세 사람은 크게 기뻐서 말을 타고 앞으로 달려갔다. 위소보가 모십팔에게 물었다. "모형. 진총타주는 나이가 매우 많소?" 모십팔은 말햇다. "나도...나도 본적이 없다네. 강호 사람들이 모두 다 진총타주 를 앙모하지마는...그 분을 한번 뵈옵기는 정말로 힘든 노릇이 지." 위소보는 흥. 하는 소리를 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제기...더럽게 거드름을 피우는군. 뭐가 대단하다고.) 군호들은 이와 같은 형세를 대하게 되자 총타주가 이것에 쉽게 들이닥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한 가닥 희 망을 품고 대문 밖에 서서 기다렸다. 어떤 사람들은 서서 오래 기다리게 되자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어떤 사람이 모십팔에게 권했다. "모나리, 모나리는 역시 집 안으로 들어가 쉬도록 하시오. 우 리가 총타주께서 만약 도착하신다면 될 수 있는 한 빨리 모나리 를 모셔와서 만나 뵙도록 하겠소." 모십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나는 역시 이곳에서 기다리겠소. 진총타주께서 어려 운 걸음을 하셨는데 불초가 문 밖에서 기다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야말로...너무나 불손한 행동이 아니겠소. 아. 이 모십팔이 살아 생전에 그 분을 만나 뵙게 될 복을 타고났는지 모르겠구려." 위소보는 모십팔과함께 양주에서 북경으로 올때에 모십팔이 무 림의 인물에 대해서 대부분 대수롭게 여기지 않으나 진총타주에 대해서만은 언제나 존경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지라 자기 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정도 감염이 되었고 따라서 마음 속으로 다시는 더 욕을 하지 못했다. 그때 별안간 말발굽 소리가 우렬 퍼지는 가운데 다시 한 사람 이 달려왔다. 땅바닥에 앉아 있던 회원들은 모두다 몸을 일으켜 목을 길게 빼고 살폈다. 모두 다 총타주가 또 어떤 사람을 불러 갈 모양인데 이번에는 자기도 한 몫 끼었으면 하고 바라는 눈치 였다. 아니나 다를까 나타난 사람은 네 명의 전령이었다. 앞장을 선 한 사람이 말에서 내리더니 포권을 하고 말했다. "총타주께서는 수고스럽겠지만 모십팔 모나으리와 위소보 위나 으리 두 분을 만나자고 하십니다." 모십팔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담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 다. 그러나 곧 아이쿠.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담가에 쓰러져 부 르짖었다. "빨리 갑시다. 빨리가." 위소보 역시 매우 기뻐서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은 나를 공공이라고는 많이 불렀지만 위나으리라고 불 러준 사람은 없었다. 하하하....내가이젠 위소보 위나으리가 되 었구나.) 다 명의 전령은 말 위에서 담가를 받아서는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천천히 나아갔다. 다른 한 명의 진령은 자기가 타고 온 말 을 위소보에게 타도록 건네어 주고 자기는 다른 말을 타고 뒤를 따랐다. 여섯 명은 클 길을 따라 삼 마장쯤 나아가 오른쪽의 조 그만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길을 가는 동안 이삼 명씩 짝을 지 은사람들이 앉아 있거나 서서는 순시를 돌고 있었다. 그런데 앞 장을 선 청년이 중지와 무명지 그리고 새끼 손가락을 땅바닥 쪽으로 가리키자 경계를 하고 있던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역 시 손을 뻗쳐서는 암호를 전해왔다. 위소보는 그 사람들이 보내오 는 암호가 각기 다른 것을보고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십 이삼리 나아가자 한 채의 장원 앞에 이르게 되었다. 대문 앞을 지키던 한 명의 사내가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손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곧이어 대문이 크게 열려지면서 이역세 관안기 그리고 얼굴을 보지 못했던 두명의 사내가 걸어나와 포권을 하며 말했다. "모나으리, 위나으리 왕림해 주셨군요. 폐회의 총타주께서 청 하십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위소보는 크게 흐뭇해져서 생각했다. (이 위나으리는 그야말로 떼어 놓은 당상과 다름이 없구나.) 모십팔은 허둥거리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면서 말했다. "내가 이 모양으로 진총타주를 뵙는다는 것은 실로....아이쿠" 끝내 그는 견디지 못하고 다시 담가 위에 드러눕고 말았다. 이역세가 말했다. "모나으리는 몸에 상처가 있으니 너무 예의를 차릴 것 없소이 다." 그리고 두 사람을 안내하여 대청 안으로 들어갔다. 한 명의 사 내가 위소보 에게 말했다. "위나으리는 여기서 한 잔의 차를 마시며 기다려 주시구려. 총 타주께서는 먼저 모나으리와 이야기를 나누시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십팔을 등에 메고 안으로 들어갔다. 위소보는 한잔의 차를 마셨다. 그러자 하인들이 네 접시의 음 식을 갖다 주었다. 위소보는 한 조각을 집어서 먹으며 생각했다. (이 간식의 음식은 황궁의 것과 비교하면 훨씬 떨어지고 여춘 원 것보다도 못하구나.) 따라서 그는 이 총타주의 신분에 대해서 약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마음이 일었다. 그러나 한창 배가 고프던 판이라 그는 그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음식을 적지 않게 집어 먹었다. 밥 한 끼 먹을 시간이 흐르게 되었을때 이역세 등은 네 사람이 함께 다 시 왔다. 그 가운데 반백의 수염의 늙은이가 말했다. "총타주께서는 위나으리를 청하십니다." 위소보는 재빨리 입 안에서 씹고 있떤 음식을 삼키고는 두 손 으로 옷자락을 한 번 문지른 이후 네 사람을 따라 나갔다. 어느 객실 밖에 이르게 되었을때 그 노인은 휘장을 치우고 말했다. "소백룡(小白龍) 위소보 위나으리께서 오셨습니다." 위소보는 놀람과 기쁨을 함께 느꼈다. (그가 내가 멋대로 지어낸 호를 알고 있따니 아마도 모형이 말 한 것이겠지.) 방안의 선비 차림을 한 서생이 몸을 일으키더니 온 얼굴에 가 득히 웃음 빛을 띄우고 말했다. "어서오시오." 위소보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는 두 눈알을 뒤룩 뒤룩 마구 굴리며 안을 살폈다. 그런데 미처 다 살피기도 전에 관안기가 입을 열였다. "이 분이 우리의 총타주이시오." 위소보는 약간 고개를 쳐들고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 의 안색은 온화한 편이었다. 그런데 그의 눈에서는 번개불 같이 안광이 곧장 쏟아져 나오는데 위소보는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 그만 두 무릎을 꿇고 절을했다. 그 서생은 몸을 굽히더니 허리를 부축해 일으키며 웃었다. "너무 예의를 차릴것 없네." 위소보는 두 팔이 그에게 떠올리는 것을 느끼는 순간 갑자기 전신이 화끈 달아 오르는 것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려서 오히려 절을 할 수가 없었다. 서생은 웃으며 말했다. "이 소형제가 만주의 제일 용사 오배를 잡아 죽여 오배의 손에 무수히 죽음을 당한 우리 한나라 동포의 원한을 갚아 주었으니 수일 안으로 천하에 명성을 떨치게 될 것일세. 이토록 일찌기 명 성을 떨친 사람은 그야말로 고금을 통해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 지." 위소보는 볼래 얼굴 가죽이 매우 두꺼운 편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그를 칭찬한다면 그는 따라서 자화자찬을 한바탕 늘어놓 기 일쑤였다. 그러나 성을 내지도 않았는데 위엄이 저절로 솟아 나는 총타주 앞에서는 그만 말문에 막혀 입을 열지 못했다. 총타주는 하나의의자를 기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앉으시오." 그리고 자기가 먼저 앉았다. 위소보도 역시 의자에 앉았다. 이역세 등 네 사람은 공손히 서 있었다. 충타주는 미소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모십팔 모나으리의 말을 듣건데 소형제는 양주 득승산(得勝 山)아래서 계책으로 한 명의 청나라 군관인 흑룡편 사송을 죽였 다고 하더군. 강호에 첫발을 내 딛는 순간세운 공로는 정말 비범 한 것이었군. 그런데 도대체 소형제는 어떻게 오배를 사로잡게 되었는가?" 위소보는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과 마주치게 되자 마음이 그만 갑자기 두근거려 가슴 가득히 생각했던 자화자찬의 터무니 없는 말들을 삽시간에 잊어버리게 되었다. 어떻게 하여 강희의 총애를 받게 되었으며 오배가 어떻게 오만무례하게 나왔 으며 또한 자기가 어떻게 하여 황제와 합심협력하여 오배를 잡게 되었는가를 이야기 했다. 다만 강희에 대한 의리로써 소황제가 오배의 등뒤에 칼질을 했다는 사실은 들먹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되자 자기가 향로의 재를 뿌려 눈을 제대로 못 뜨게하고 구리 향로를 들어 머리를 내려쳤던 사실은 아주 비열하거나 치사 한 수단인 줄 분명히 알면서도 더 속일 수 없어 털어놓고 말았 다. 총타주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다 듣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원래 그랬었군. 소형제의 무공은 모나으리와 한 길은 아니군. 그런데 존사는 어느 분이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약간의 재간을 배운 바는 있지만 존사를 모셨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늙은 폐병장이는 정말로 저에게 무공을 가르친 것 이 아닙니다. 저에게 가짜 무공을 가르친 것입니다." 총타주는 견문이 넓은 사람이었지만 폐병장이가 누구인지 몰라 서 물었다. "폐병장이라니?" 위소보는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폐병장이는 바로 해로공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해 대부라고 하지요. 모십팔 형과 저는 바로 그에게 사로잡혀 궁안 에 끌려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뒤자기가 또 실수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 았다. 그 자신은 천지회 사람들에게 모십팔과 자신은오배에게 사 로잡혀 갔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해로공에게 의해서 궁 안으로 들 어갔다고 했으니 앞뒤 말이 틀리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데 다행 이라고 할까 그는 거짓말을 잘 둘러대는 재간이 역시 적지 않았 다. 따라서 그는 보충 설명을 했다. "그 늙은이가 바로 오배의 명령을 받아서는 우리 두 사람을 잡아 간 것이죠. 아마도 오배는 지극히 높은 벼슬아치라 자연히 함부로 손을 쓸 수 가 없었겠지요." 총타주는 잠시 생각해 보는 눈치더니 중얼거렸다. "해대부? 해대부? 오랑캐 궁내의 태감 가운데 그와 같은 일류 의 인물이 있었다니 ...소형제 그가 그대에게 가르친 무공을 한 번 펼쳐 보이지 않겠나?" 위소보는 얼굴 가죽이 아무리 두껍다 하더라도 자신의 무공이 별로 고명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터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늙은 폐병 장이가 저에게 가르쳐 준 무공은 모두가 가짜입니 다. 그는 내가 독으로 그의 눈을 멀게 했다는 것을 증오해서 온 갖 방법을 다해 저를 헤치려고 했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무공 은 남에게 보여줄 것이 못됩니다." 총타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왼손을 휘둘렀다. 관안기등 네 사 람은 모두 다 방에서 물러가며 문을 닫았다. 총타주는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그의 눈을 멀게했지?" 위소보는 영기 발랄한 충타주 앞에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메 우 고생스럽고 역시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한결 개운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상대는 일찌기 겪어 보지 못하던 느 낌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어떻게 해로공을 해치게 되었으며 어떻게 소계자를 죽이고 소계자로 변장하여 소태감의 노릇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전말을 모조리 이야기하게 되었다. 총타주는 놀랍기도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그리고는 왼손으로 그의 사타구니 쪽을 슬쩍 더듬어보았다. 그리고 보니 그의 양기와 고환이 모두 그 자리에 있었으며 결코 정신(淨身:거세)를 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정말 태감은 아닌 듯 했다. 그런 데 그는 길게 숨을 내쉬고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 매우 좋아. 나는 마음속으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쳐서 한동안 정신을 써 줄 수 없었는데 알고보니 소형제는 정말 정신 을 한 것이 아니면서 태감 노릇을 했군." 그리고 왼손으로 탁자 위를 가볍게 한번 치더니 다시 말을 이 었다. "반드시 그리 하겠소. 윤형제의 대를 이을 사람이 생겼고 이제 청목당에도 우두머리가 있게 되었군." 위소보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아 들을 수가 없었 다. 더구나 그가 기쁜 빛을 띄우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가슴 속 으로 지극히 어려워하던 일을 풀게 된 것이 확실한 것 같아 그 자신도 그를 대신해서 기뻐했다. 총타주는 뒷짐을 쥔채 방안을 서성거리더니 말했다. "우리 천지회에서 한 일은 그야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번도 행하지 않던 일이었다. 만사는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또 듣기 에도 놀라운 일들로서 많은 물의를 빚었지만 그게 어떻다는 것인 가?" 그는 사뭇 점잖은 어조로 말을 하기 때문에 위소보는 더욱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총타주는 말했다. "이곳에는그대와 나 두사람 뿐이니 거북하게 여길 필요가 없 네. 그 해대부가 그대에게 가르친 무공이 진짜라도 좋고 가짜라 도 좋으니 나에게 펼쳐 보려나?" 위소보는 그제서야 관안기 등 네사람을 내보낸 것은 자기가 거 북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처인 것을 알았다. 따라서 이젠 사양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이것은 늙은 폐병장이가 가르친 것이니 저와는 상관 없는 일 입니다. 만약 너무나 우습다고 하더라도 저를 욕하지 마시고 그 를 욕하여 주십시오." 총타주는 미소했다. "마음놓고 펼쳐보게. 걱정할 것 하나도 없네." 위소보는 이윽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리고몇 수밖에 되지 않 았지만 해로공이 가르쳐준 '대자대비천엽수(大慈大悲千葉手)'를 한번 펼쳤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잊어버렸고 어떤 것은 아직도 기억할 수 있었다. 총타주는 정신을 가다듬고 살피더니 위소보가 모두 펼치고 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손씀씀이로 미루어 볼때 그대는 소림파의 금나수를 약 간 배운 것 같군. 그렇지 않은가?" 위소보는 대금나수를 먼저 배운 바가 있었다. 그러나 이 무공 에 대해서는 더 형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추려 고 했다. 그런데 총타주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니 별수 없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폐병노인은 저에게 금나수법을 약간 가르쳐 주었조. 그것 은 소황제와 시합을 할때 사용한 것입니다." 위소보는 대금나수의 어떤 초식을 한번 펼쳐 보였다. 총타주는 한 번 빙그레 웃고 말했다. "맞았어." 위소보는 말했다. "저는 처음부터 웃으실 줄 알았어요." 총타주는 다시 빙그레 웃었다. "그대를 비웃는 것이 아니야. 나는 속으로 기뻐서 웃는 것이라 네. 그대의 기억력이나 이해력이 다 그럴싸해서 다듬으면 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낀 것이야. 그 일초 백마번제(白馬飜蹄) 는 해대부가 일부러 잘못 가르친 것이야. 그러나 그대가 이어탁 새(이魚托새)로 전환할 때 스스로 약간의 변화를 가한 것은 어떤 일정한 법칙에 구속 받지 않은 것으로서 정말 훌륭했어." 위소보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총타주의 무공은 늙은 폐병장이보다 훨씬 고강한듯하다. 만약에 그가 나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려고 한다면 이 위소보는 반드시 진자 한 명의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다시는 엉터리 가짜 영 웅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곁눈질로 진총타주를 바라보았다. 이때 총타주 역 시 한쌍의 냉전(冷電)과 같은 시선을 그에게로 쏘아보내고 있었 다. 위소보느 언제나 떼거지를 잘썼다. 황태후가 그토록 위엄스 럽게 보였는데도 그는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총타주 앞에서는 그는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의 시선 과 마주치게 되자 그는 즉시 눈길을 거두어들였다. 총타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는 우리 천지회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는가?" 위소보는 말했다. "천지회에서는 반청복명(反淸復明)의 기치아래 한나라 사람을 돕고 오랑캐를 죽이자는 것이 아닙니까?" 총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다. 그대는 우리 천지회에 들어와 똑같은 형제가 되겠는가?"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그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의 마음으로는 천지회의 회원들으르 하나같이 진자 영웅호걸 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자기 역시 천지회의 형 제가 될 수 있다니 그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리하여 그는 다시 생각했다. (모형까지도 천지회원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보다 더 낫 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제가 자격이 될지 두렵군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는 삽시간에 눈 빛을 빛냈으나 곧 그 눈 빛을 거두어 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 속으로 여간 아쉽지 않았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날아든 횡재인 것처럼 느껴졌으나 십 중팔구 진짜일 리 없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저 총타주가 자 기에게 농담을 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대가 가입하겠다면 자격은 충분히 있어.다만 우리가 행하는 것은 청나라를 물리치고 명나라를 되찾자는 큰 일이며 한나라의 강산을 중요시하고 자기 자신의 몸이나 목숨따위를 가볍게 여겨 야하네. 거기다가 천지회의 규칙이 매우 엄해 만약 어기는 사람 이 있다면 무거운 벌을 받게 된다네. 그러니 그대는 잘 생각해 보게나."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어떤 규칙이 있으신지 모르지만 저는 규칙을 지키겠습니다. 총타주께서 만약 제가 가입하는 것을 허락 하신다면 저는 기뻐서 죽을 지경입니다." 총타주는 웃음을 거두며 정생을했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대사이며 생사와도 관계있는 일로서 결 코 어린애의 장난이 아니지." 위소보는 말했다. "저는 물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서 천지회에서는 작은 일을 하더라도 행하는 것이 모두 다 천지를 진동시키는 큰 일들이란 것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어찌 어린애의 장난일 수 가 있습니까?" 총타주는 빙그레 웃었다. "안다면 좋다. 본회에 가입하게 될때는 삼십 육조의 맹세할 말 이 있으며 또한 십금(十禁), 십형(十刑)의 엄한 규칙이 있네." 거기까지 말하던 총타주는 안색을 굳히고 말을 이었다. "그와 같은 규칙은 그대가 아직도 나이가 어리니 필요 없을 것 이지만 그 가운데 한 가지 조목만은 지켜야하네. 즉 무릇 우리 형제들에게는 신의와 성실을 근본으로 삼되 거짓말로 속여서는 안된다는 것일세. 이 조목에대해서는 그대는 행할 수 있겠는가?" 위소보는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총타주에게 물론 저는 감히 거짓말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형제들에게도 모두 다 참말만 하라는 것입니까?" 총타주는 말했다. "작은 일은 덮어두고 큰 일만 가지고 논하는 것일세."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본회에 몸을 담고 있는 형제들끼리 놀음 을 하게 되었을때 약간 사람을 속이는 수단을 써도 괜찮은 것입 니까?" 총타주는 그가 그와 같은 문제를 들고 나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지라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노름을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지만 회의 규칙에서는 금 하지는 않네. 그러나 그대가 그들을 속였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 게 된다면 그대를 치는 것도 회의 규칙에서는 금지되지 않았다 네. 따라서 그대는 얻어 맞게 되니 손해를 보는게 아닌가?"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속임수를 쓰지 않 는다해도 돈을 따는 것은 그야말로 따놓은 당상이지요." 천지회의 회원들은 대개가 강호의 호걸들이었다. 대부분이 노름을 즐기거나 술을 퍼마시고는 주사를 부리는 것 쯤은 천성으로 여기고 언제나 따지지 않았다. 따라서 총타주 역 시 금전은 더 논하지 않고 위소보를 잠시 응시하더니 물었다. "그대는 나를 사부로 모시고 싶은 생각이 없는가?" 위소보는 크게 기뻐 즉시 땅바닥에 꿇어 엎드려서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불렀다. "사부님." 이번에는 그를 부축하지 않고 열 몇번이나 절을 하도록 내버려 두더니 말했다. "됐다." 위소보는 싱글벙글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총타주는 말했다. "나의 성은 진씨이며 성명은 진근남이라고 한다." 이 진근남이라는 석자는 강호에서 사용한 것이리라. "너는 이제 오늘 나를 사부로 모셨으니 반드시 이 사부의 잔짜 이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의 진짜 이름은 진영화(陳永華)로서 영원할 영자이고 중화(中華)할 때의 화자이니라." 그는 자기으 진짜이름을 밝힐때는 음성을 낮추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예. 제자는 명심하겠으며 더욱 감히 누설치 않겠습니다." 진근남은 다시 그를 한참 동안 살펴보더니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너와 내가 사제지간이 되었으니 이제 더 숨길 것이 없다. 솔 직이 너에게 말하지만 너는 경망스럽고 교활한 데가 많아 이 사 부와 성격이 전혀 걸맞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사실상 그와 같은 성격을 좋아하지 않는다.내가 너를 제자로 삼게 된 것은 실제로 큰일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제자는 이후로 모든 것을 고쳐나가겠습니다." 진근남은 말했다. "강산은 변하기 쉬워도 본성은 좀처럼 고치기 어렵다. 고친다 하더라도 얼마 고치지 못할 것이다. 너의 나이가 아직 어려 성격 이 경망하지만 아직은 커다랗게 나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이후 로는 반드시 수시로 내가 한 말을 기억해 두도록 해라. 나는 제 자에 대해서 지극히 엄하다. 네가 만약 본회의 규칙을 어기고심 술(心術)이 올바르지 못해 나쁜 짓을 일삼는다면 이 사부가 너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쉬운 노릇이며 또 조금도 가엽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왼손을 뻗치더니 싹하는 소리와 함께 탁자 한 모서리의 귀퉁이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두 손으로 몇 번 비비자 그 나무 조각은 톱밥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위소보는 혀를 내밀고 한동안 혀를 움츠려들이지 못했다. 그리 고 그는 그야말로 벅차오르는 기쁨에 온몸이 근질근질해질 지경 이었다. 따라서 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결코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나쁜 짓을 한다 면 사부님께서는 바로 저의 머리를 그와 같이 움켜 잡게 될 것이 고 또 그와 같이 부벼댈 것이 아닙니까? 더군다나 몇 가지 나쁜 일만 하더라도 사부님은 무공을 이 제자에게 전수하지 않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근남은 말했다. "몇가지 저지를 필요도없이 한 가지 나쁜 일만 했더라도 너와 나는 사제지간의 명분이 끊어지고 말것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두가지로 하면 안될까요?" 진근남은 얼굴을 굳혔다. "너는 좀 의젓하게 굴수 없느냐? 경박스럼게 함부로 입을 놀리 지 마라. 한 가지면 바로 한가지다. 이런 일에도 에누리가 있다 고 생각하느냐?" 위소보는 공손히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나 속으로 그는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내가 만약 한 가지 나쁜 일을 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진근남은 다시 말을 이었다. "너는 나의 네번째 제자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의 관문제자(關 門弟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천지회에서 돌보는 일은 너무나 복 잡하고 무겁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제자를 거두어들일 여유가 없다. 너의 세 사형 가운데 두 사람은 오랑캐와 싸움을 벌이게 되었을때 싸움터에서 죽었고 한 사람은 국성야(國姓爺)께서 대만 을 광복하는 싸움에서 죽었다. 모두 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남아들이다. 이 사부는 무림에서 지위가 낮지 않다. 그리고 명성 도 나쁜 편이 아닌데 너는 나의 체면을 깍이는 일을 하지않도록 해라." 위소보는 말했다. "예...하지만....하지만...." 진근남은 말했다. "하지만 무엇이란 말이냐?" 위소보는 말했다. "저는 체면을 깍이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더라도 때로는 어 쩔 수 없이 체면을 잃게 될 때는 별수 없는 노릇입니다. 예를 든 다면 상대방에게 지게 되어 잡히게 되고 대추나무 통안에 갇히게 되어서는 화물처럼 이리저리 옮겨지는 것 말압니다. 그때는 사부 님께서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근남은 눈살을 찌푸렸다. 화가 나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그는 길게 한 숨을 불어 내며 입을 열었다. "너를 제자로 저두어들인 것은 아마도 내 한평생 가장 커다란 실수를 한 것 같다. 그러나 천하의 대사를 으뜸으로 여기는 우리 이니 모험을 한번 할 수 밖에 없다. 소보 나중에 달리 중대한 일 을 치르게 되었을때 너는 모든 점에 있어서 나의 분부를 따라 일 을 처리하도록하되 쓸데 없는 말은 하지 않도록 해라. 그러면 벌 탈이 없을 것이다." 위소보는 대답했다. "예." 진근남은 그가 말을 하려다가 그만 두는 것을 보고 다시 물었 다. "너는 또 무슨 할 말이 있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제자는 언제나 이치에 합당해야만이 말을 합니다. 저는 결코 터무니 없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데 사부님께서는 저를 터무니 없이 지껄인다고 하시니 그것이야말로 정말 억울한 노릇 이 아니겠습니까?" 진근남은 그와 다시 이러쿵저러쿵 입을 열고 싶지 않아서 말했 다. "그렇다면 너는 될 수 있는데로 몇 마디의 말이라도 적게 하도 록해라." 그리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천하의 많은 명성을 떨친 영웅호걸들이라 하더라도 내 앞에서 는 모두 다 공손하며 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데, 이짓궂은 장 난꾸러기는 언제나 쓸데없는 말이 많구나.) 진근남은 몸을 일으키며 문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위소보는 서둘러 문을 열고 휘장을 들쳤다. 그리하여 진근남이 나가자 그 뒤를 대청으로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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