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순간을 살아라 2-1편] 마음을 물처럼 다루는 것이 지혜다 | 전념후념(前念後念) | 힘을 뺀다.(40:32)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 The power of Now '책의
25페이지 1장을 보겠습니다
자 1장의 제목은 < 마음은 내가 아니다. >
그러면,
이제 질문이 마음이 내가 아니면 나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죠.
항상 구분할 때 지금 톨레식으로 이제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
톨레의 용어를 따른다면 마음과 의식을 구분하는 거예요.
마음은 생각 감정, 생각 감정은 생겼다가 없어지죠.
그러니까 생멸, 생각 감정을 생멸한다.
그래서 현상이다.
현상이다 할 때,
그러면 현상 (現象 )의 한자가 코끼리상( 象 )자예요.
코끼리 상자( 象 )는 뭐냐면 중국의 한자에서 우리가
여러분,
중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코끼리를 잘 봤겠어요 잘 못 봤겠어요?
잘 못 봤겠죠.
코끼리는 인도에 있잖아요.
그러니까 인도에 있다는 말은 들었어.
그리고 뭐 코가 길고 덩치가 크다 이런 말은 들었는데
실제 본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렇죠 ?
그런데 그래서 어떤 사물을 지칭할 때 익숙하게 보는 것,
인간이 익숙하게 보는 것은 소우( 牛 )자를 써요.
한자에 그래서 물건 (物件 )할 때 이게 소우( 牛 )자죠.
물건, 물건 할 때는 이게 사람인 (人)변에 소우 (牛 ) 자를 써가지고
물건할 때, 우리 일반적인 물건들은 우리가 이렇게 보잖아요 .
그러니까 실제로 보는 건 물건, 소 (牛 )를 쓰고
근데 우리가 잘 못 보는 거, 잘 못 보는 것은 코끼리를 썼어요.
코끼리상 (象) 자는 이미지란 뜻이에요. 요즘 말로 하면!
중국인들 참 현명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현상은 무엇이냐?
현재 일어나는 이미지들이라는 거예요.
그 이미지는 실체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제법이 무아다' 그러잖아요.
'제법이 무아다' 할 때 이때 '제법'할 때
'제'는 에브리(every)고 '법'은 씽(thing),
에브리싱이 무아다.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이 말은 에브리싱(everything)이 현상이다, 이미지다.
현재 잠시 인연따라 나타난 이미지들이다.
그런 뜻이 있어요 이 말 자체에.
그러니까
그 인문학의 한 분야가 이런 어원학이 있거든요.
그래서 어원학에서 보면 참 재미있어요.
마음심( 心)자 하고 물수(水)자가 어원적으로 보면 같은거예요.
물수 (水) 자는 뭐냐하면
밖에는 음이고 양이고 음이 되어서 이게 물수가 되는 거예요.
가운데는 양이고 아래 위로는 음이 되어서
요게 세우면 요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쓰면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살짝 살짝 이렇게 그래서 물수자고,
마음심자도 같은 요게 물수자를 변형시킨 거예요.
그러니까 작은 점 요거를 작은 점으로 표현하고
요거는 조금 길게 표현하면 돼.
그래서 아무튼
여러분 물수( 水 )자하고 마음심 (心 )자가 같다는 이 말은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다시 한번 우리 항상 공부할 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니까
마음을 물처럼 다루는게 지혜예요.
동양의 지혜를 한마디로 말하면
마음을 물처럼 다룬다.
공자도 물 앞에서 물이여 물이여! 하고 감탄했고,
노자도 상선약수 (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인간이 인간의 마음이 가장 착한 마음은 물 같은 마음이다.
근데 이때 물 같은 마음이 뭐냐면 물은 하나예요.
어제도 제가 여기서 멀지 않은 계곡에
잠시 오후에 산책을 했는데 물이 얼마나 맑은지 모르겠어요.
요즘은 비가 좀 왔잖아요.
이 서울에 가까운 데라도 물이 쫙 흐르는 곳에는
너무너무 물이 맑은 거예요.
그러니까 물이 맑을려면 우리 마음이 물 같아서
마음이 맑을려면 통해서 흘러야 돼요.
깨끗함의 기본 원칙이에요.
그러면 물이 만약에 한쪽으로 들어갔는데
막혀 가지고 막히면 고이고,
고이면 어떻게 되죠? 물이 썩지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 물이 마음인데
마음이 흘러서 통하느냐? 고여서 썩느냐?
이게 모든 지혜의 정수다.
그러면 우리 마음이 언제 막히느냐!가 중요하잖아요.
언제 막히느냐? 마음을 뺏길 때 막혀요.
마음을 뺏긴다.
어떤 대상에 내 마음을 뺏기면 그 대상에 이제 막히는 거죠.
흘러서 통해야 될 거 아니예요.
그래서 내 마음이 어느 대상에 가서 자꾸 가서
그쪽으로 마음을 뺏기면
내 마음은 이제 종이 되는 거예요. 상대의
그걸 미혹(迷惑)이라 그러죠. 불교에서는
그러니까 미혹이라는 말이 마음을 뺏긴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어딘가에 가서 이 내 마음이 붙어 버리면 썩는 거에요.
그래서 육조스님이 깨달은 대목도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 )
마땅히 머물지 말고 그 마음을 내라 할 때
이 마음이 물처럼 통해서 흐르게 해라.
머물면 고여서 썩는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내 마음이 지금이라도 어디 가서 붙으면
혹은 뺏기면 내 마음이 썩고 썩으면 번뇌가 일어나요.
생각이 계속 일어나요. 그렇지요. 그쵸?
생각이 계속 일어나요.
자, 내 마음이 어디 가서 붙지 않으면
항상 내 마음은 흘러서 통하겠죠.
그런데 또 하나가 나, 내 의도와 상관없이
안에서 또 생각 감정이라고 하는 마음이 또 일어나지요.
그러면 걔들을 흘러서 통하게 해야 돼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 감정을
흘러서 통하게 하는게 지혜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어떻게 하는가?
여러분 감정을 다 표현해 줍니까?
감추지 않나요? 감추고 억누르지 않나요? 그럼 고여서 썩어요.
억눌린 감정이 내면에 고여서 썩는 거를
심리학 용어로는 '내면아이'라고 불러서
그 억압된 감정은 해소되지 않고 끊임없이 칭얼거리는 거예요. 안에서~
생각 감정이 일어날 때 충분히 발현되어서
이게 표현되고 흘러서 지나가면 아무런 흔적 없이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데
그거를 억압하면 막히고 썩는다.
어디서 썩느냐? 인간의 무의식에서~
의식의 표면에서는 환해서 잘 사는 것 같은데
그 아래에 억압된 무의식 층에는,
그 지하층에는 기생충이라고 부르는
스스로 자기를 비하하는 그런 인격체들이 있다.
한 둘인가? 많다. 그래서 중생(衆生)이에요.
중생, 무리 중 (衆)자에 생명 생 (生)자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인간 안에는 여러 가지 인격체들이 같이 있다.
다중인격이라고 표현하는 그게 중생이란 말은
우리 안에 많은 감정들이
억압되어 있는 사람을 중생이라고 부른다. 이해되지요?
그러니까 계속 생각이 나고 썩으니까 냄새가 계속 풍기잖아요.
일단 번뇌망상이 계속 들끓는 거죠.
그게 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 악순환을~
그 윤회, 요게 이제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청소해야 되잖아요. 청소한다.
지금 청소하는 법 배우는 거예요.
자기 무의식 청소하는 거,
그래서 마음은 현상이다.
그리고 의식은 본질이다. 할때
이 본질을 지금 톨레는 마음은 내가 아니다.
생각 감정은 내가 아니다.
나는 무엇인가? 본질인 의식이다.
그래서 이걸 '참나'라고 지금 부르고 있어요.
참나, 나는 누구인가? 할 때 '나는 의식이다.'
그러면 여러분, 지금 이 책 시작하자마자 어떤 이야기가 나오냐 하면
어느 우화에 거지가 평생 거지 노릇하는데,
하루는 어떤 사람이 깔고 앉아 있는 통 그 안에 뭐 들었소? 라고 물어보니까
한 번도 거지가 열어 본 적이 없는 거예요.
매일 그 통에 깔고 앉아 가지고 동냥을 하는데
그래서 한번 보자고 해서 열어보니 금덩어리가 들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어디 앉아 있어요? 금덩어리 ㅎㅎㅎㅎ
근데 여러분, 생각을 안 한다 이거예요.
실제로 자 우리가 앉아 있는 의자가 뭐냐면 상자,
우리가 지금 누구나 다 앉아 있는 상자, 상자가 뭐냐, 공간이에요.
여러분이 지금 어디에 앉아 있어요?
공간에 앉아 있지 않나요?
근데 이 공간을 의식하느냐 이거에요, 인간이~
인간이 살면서 이 공간을 의식하느냐 이거예요.
거의 의식 안하고 살지요~
그러면 공간이, 여러분, 공간을 관찰해보면
공간이 그냥 그냥 nothing의 공간은 없어요.
이 소리가 어디서 나지요?
지금 제 목소리가 어디서 나고 있어요?
공간에서 나고 있지 않나요?
지금 이 바람이 어디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고 있어요?
공간에서 불어오고 있잖아요?
여러분 몸뚱이도 어디에 있어요? 공간에 있죠.
이 공간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 현상이다.
이걸 코끼리 象자로 쓰는 이미지라고 쓰는 가장 주된 이유는
생겼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빨리 생겼다가 사라지는가?
여러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이 소리가 일어났다, 사라지는 시간을 보세요~
찰나 아닙니까?
알고 보면 모든 것이 찰나 안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어요.
알고 보면, 그래서 이런 고체로 보이는 것들도 알고 보면
입자가 지금 수없이 지금 움직이고 있잖아요?
과학적으로 보면 이거 안이 텅빈 공간이라는 소리 아니에요?
공간이 지금 입자가 있는데 조금 더 여기보다는 밀도가 높아서 이렇게 보인다는 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조금만 우리가 눈이 예리해지면
이 공간에 텅빈 공간은 nothing이 아니라
자, 이 텅빈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허무가 아니라
우리 의식이 이렇게 차 있죠~
여러분, 우리 의식이 어디 있나요?
우리 의식이, 자, 의식의 크기가 있나요?
자, 다시 처음부터, 지금 하여튼 새로 오신 분도 계시니까
지금 우리가 이렇게 앉아 있어요. 앉아 있는 건 사실이죠.
이거 부정할 수 있나요?
우리가 이렇게 앉아 있다는 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요?
자, 그러면 이렇게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있는데,
첫 번째는 몸뚱이가 있죠. 맞아요?
몸이 있잖아요. 그렇죠, 이거 부정할 수가 없잖아요.
몸이 이렇게 있어요.
근데 재밌는 거는 내가 내 몸이 있는 곳에 몸만 있느냐는 문제에요.
자 지금 이 자리에 이런 몸이 있어요.
몸만 있어요. 한번 느껴보세요~
몸만 있느냐!
저같은 경우는 이렇게 또렷또렷하게 소리 듣는 거.
그러니까 이 몸뚱아리는 숨 떨어지면 귀 달리고 눈 달렸지만
숨 떨어지면 장작불에 들어가도 뜨거운 줄도 모르고 타버리고 몸은 물질이죠.
몸은 죽으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지요.
근데 이 몸뚱아리는 이렇게 있는데 있다는 걸 아는 것은
몸뚱아리가 지가 하는게 아니라 지금 이것이 안다 이거예요.
지금 몸이 있어 분명히,
그러면 몸이 있다고 아는 것은
몸 자체가 아니고 이거를 의식이라고 부른다 이거예요.
지금 까마귀인지 까치인지 소리가 계속
공부 재료를 제공해 주고 있네요.
그러니까 여러분, 의식이 몸 안에 어디 있어요?
아니면 지금 여기에 다 퍼져 있어요?
의식의 크기가, 크기가 있다? 없다?
의식이 크기가 있다? 없다? 없죠.
남자다? 여자다?
동그라미다? 네모다? 세모다?
뭐라고 할 수가 없죠.
그러니까 지금 이 공간이 의식이에요.
그러니까 의식 없는 공간은 없어요.
그건 존재할 수가 없어요.
불가능해요.
그러니까 지금 누구나 우리가 깨어 있는
이렇게 몸이 있는 곳에는
항상 의식이 지금 같이 있죠.
육조 스님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몸이 있는 곳에 같이 있는 부처님,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해요.
몸이 있는 곳에 같이 있는 부처님,이 말 이해되세요?
몸이 있는 곳에는 항상 부처님이 같이 있다.
근데 그 부처님이 뭐냐?
육조 스님은 그 부처님을 불성(佛性)이라고 불렀어요.
불성, 깨어 있는 본질.
본질 性자예요, 佛은 깨어 있는 뜻이고.
그러면 이 불성을, 깨어 있는 본질을
톨레는 뭐라고 부르느냐?
의식이라고 불렀어요.
영어로 하면 awareness가 깨어 있는 거예요.
그리고 consciousness라는 말도 써요. 둘 다 써요.
그러니까 지금 의식이 본질이다.
왜냐? 여러분, 현상은 지금 변하죠.
나타난 이미지 같은 모든 것들은 다 변한다.
근데 그것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는
이 무대로서 배경으로서 공간으로서 있는
이 의식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이거의 발견인 거예요.
그래서 톨레가 항상 그러잖아요.
나, 의식 그리고 마음은 현상.
일종의 여러분, 이 공간 자체가 호텔 같은 곳이고,
이 호텔의 현상들은 투숙객 같아요.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같은 방이라도 매일 밤 바뀌잖아요.
가끔 장기 투숙객도 있지만,
장기 투숙객도 가끔 있어요, 있기는.
그렇지만 거의 다 바뀌잖아요.
그러니까 마치 호텔처럼 본질은 항상 이렇게 있고,
그리고 모든 인연은 손님처럼 왔다 간다.
요 두 개를 일단 구분할 줄 알아야 되는 거죠.
안목이라고 하는 거, 안목이라고 하는 것은
현상과 본질을 한 번은 구분할 줄 아는거.
그리고 마지막에는 현상과 본질의 관계가 뭐냐?
현상과 본질의 관계가
지금 지금 본질은 이 텅 빈 의식공간이죠.
의식으로 꽉 차 있는 공간. 오케이.
여기가 텅 빈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생명으로 꽉 차 있어서
인연 따라 이 생명이 온갖 지금 모습으로 드러나는 거예요.
요 그냥 살아있는 생명으로 가득 찬 이 공간이
생명이 가만히 있지 않고
생명의 특징은 가만히 있지 않고
이 본질이 인연따라 현상으로 나타나는 거야.
그래서 하여튼 제일 좋은 비유가, 제일 좋은 비유가
한바닥 가득 차 있는 모든 파도는 물이다. 바닷물이다.
현상은 본질이 인연 따라서 일어났다가 인연 다하면 돌아가는 거,
그러니까 이게 법칙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일반인은 현상밖에 모르고 살아요.
그러다가 본질을 한번 발견해.
본질이 무엇인가?
이 거지가 평생 구걸하면서 깔고 앉아 있는 그 상자,
금으로 가득 찬 상자.
그럼 금으로 가득 찼다 이 말은 뭐예요?
이 텅 비어 있는 의식공간이 금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럼 금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 모든 것이 다 금이에요.
이것이 여기서 무한정하게 나온다.
그래서 요 텅 빈 공간이지만
이거를 무진장이라고 불러요.
장은 창고, 무진 끝이 없는 창고.
지금도 이렇게 나와요.
놀랍게도 지금도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법(法)이라고도 해요.
이때 법(法)은 생각, 감정들이에요.
지금 이 순간에도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
이 순간에도 샘 솟고 있다.
이 순간에도 샘솟고 있다. 맞아요.
느껴요. 못 느껴요. 우리는 좀 신비 속에서 살고 있어요.
이 정신이라고 하는 신비 속에서 살고 있다.
거지가 평생을 동냥하면서도 깔고 앉아 있는 상자가
이 신비로운 모든 것이 이렇게 일어나고 있는
텅 빈채로 깨어있는 우리들의 의식, 정신,
정신이라는 spirit, 같은 말이거든요.
근데 그것이 있긴 있다 이거예요.
그죠? 잘못된 고정관념을 바로잡아가는게 공부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자 그러면 자 지금 방금 우리의 몸하고 생각 감정이라고 하는 마음은
생겼다가 변화해서 사라져서 현상에 속한다. 여기까지 이해되시죠.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몸만 있는게 아니고
이렇게 정신이, 깨어있는 정신이 지금 같이 있다.
요 말을 이제는 앞으로 수업시간마다 들으셔서 세뇌될 정도로,
이걸 자꾸 들으시는 거에요. 그러면 문득 문득 지금도 정신이 있네.
그러니까 지금 거지가 평생 깔고 앉아 있으면서도
그 상자의 뚜껑을 열어볼 생각을 못하다가 저같은 사람이
"깔고 앉아 있는 거 한번 보세요"라고 하는 말을 제가 하는 거예요. 지금.
지금 상황 이해되시죠.
그래서 곧 돌이켜보면 지금 내가 어디에 앉아 있는가
이 공간을 앉아 있다, 이 공간이 막연하게 그냥 빈 공간인가,
아니면 내가 있는 공간을 항상 나의 정신이 같이 있다,
같이 있지 않나요, 요게 좀 정신을 동양에서는 신령스럽다고 표현했어요.
조금 신령스러운 거예요.
모든 공간 자체는 우리의 정신이 없을 때는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런 죽은 공간 같은 건데
우리가 나타나는 순간 모든 자리가 우리 몸이 나타나는 그 자리에는
의식으로 항상 가득 차 있어서 신령스러운 의식이 깨어 있어서
반짝반짝 생명이 그때부터,
의식은 빛이에요. 우리가 가는 곳마다 우리가 방광(放光) 하고 있어요.
방광해서 생동감 있게 의미 있는 공간으로 살아나고 있어요.
사실 그런 것만 알아도 여러분이 만약에 댁으로 돌아가셔서
빈방에 들어가면서 불 켜기 전에는 죽은 느낌이거든요.
불 켜고 내가 딱 들어가면.. 과연 애니메이션이라는게 뭐냐면
anima가 이게 그리스어로 영혼이란 뜻이에요. anima 라고 해요.
그러니까 만화영화를 영어로는 애니메이션이라 하거든요
그러면 anima 가 영혼이 잖아요.
한 개 그림에 영혼이 anima 가 animation
tion을 붙으면 이제 이게 명사화 되어서 영혼이 불어넣어진 것이 되거든요.
그러면 같은 그림이 애니메이션이 되면 움직이잖아요.
그러면서 영혼이 불어넣어져서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잖아요.
그거랑 같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의 몸은 그냥 그림 이미지 현상 이미지인데
anima 가 있어서 지금 이것이 움직여지면서 아연(뜻밖에),
활기를 띠고 살아있는 것처럼 이렇게 모든 것이 움직여진다
그러면 여러분의 여러분은 누구인가?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
죽어있는 그림을 아연 생기있게 살아있는 것으로 만드는 사람.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생명이 넘치는 것으로 만드는 주체가 나다, 이거예요.
여러분 그러면 우리가 어마어마한 사명을 띠지 않았나요?
내가 나타나기 전에는 다 죽었어, 다 죽었어.
실제로 그 선사들이 그래요, 선사들이,
‘내가 나타나기 전에는 전부 해골 무더기들이다.’
‘다 죽은 사람들이다.’
‘내가 나타나서 모두를 다 살려낸다.’
그런 말 하거든요, 선사들이 그런 말씀을 하세요.
‘돌아보면 우리는 이 죽은 공간을
아연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사람들.’
소중하지 않나요?
그런 걸 자기가 조금이라도 인식한다면
내가 가는 모든 곳에는 다 살려내는 힘이 나한테 있다.
실제로 이 공간도요,
우리가 싹 빠져나가고 불 끄고 다 해버리면
그냥 텅 비고 죽은 공간이다. 이거예요.
근데 한 사람이 딱 들어오면 여기가
그 사람의 의식으로 꽉 차버린다.
완전히 생명의 공간이 된다.
자, 그러면 여러분,
이 몸뚱이가 있는 곳마다 의식이 있어요? 없어요?
여러분, 지금 거지가 평생 깔고 앉아 있는 상자가
이 의식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조금이라도 실감되지 않나요?
여러분, 지금 여기에 착안한다면,
자, 모든 현상이, 모든 현상이 무엇을 타고 일어나는가?
이게 지금 톨레의 메시지에요.
톨레의 메시지,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현상이 무엇을 타고 나타나는가?’
여러분, 무엇을 타고 나타나요?
무엇을 타고 나타나요? 이 모든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
무엇을 타고 나타나요?
의식이라는 공간에 나타날 때는
현재를 타고 나타난다. 시간을 타고 나타난다.
지금도 찰나의 현재지요? 오케이?
그럼, 이 찰나의 현재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고,
자, 중요한 이야기네요.
찰나의 현재가 그냥 나타나는 게 아니라
사물을 타고 나타난다.
현재만 나타나는 법은 없어요.
자, 그래서, 질문!
지난 시간 제가 잠깐 한 거 같은데 다시 질문!
지금 여러분,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우리가 감각적으로 느끼죠?
맞아요? 그럼, 질문!
시간이 어디서 흘러요? 여기 보세요.
시간이 어디서 흐르냐면, 여러분, 시간이 어디서 흐르냐?
요게 물질이지요? 요게 변해가고 있지요?
요게 시간이에요.
소리가 ([음향] 딱! 딱! 딱!) 변해가고 있지요?
따로 시간이 있는 게 아니고,
색성향미촉법이 시간이에요.
현상이 시간이에요.
본질은 공간이에요.
다시, 현상은 그 자체가 시간이에요.
그리고 본질은 그 자체가 공간이에요.
그래서 공간 속에 시간이, 다시 말하면,
공간이 움직이는 게, 공간이 움직이는 게 시간이다.
다시 말하면, 본질이 출몰하는 게
시간이다, 이거에요. 현상이다, 이거에요.
그러니까 참, 우리 선조들은
하필이면 ‘간(間)’ 자를 3개만 붙여놨다.
모든 단어 중에서 ‘간’ 자가 붙어 있는 단어 3개!
시간, 공간, 인간이다, 이거에요.
그리고 요걸 뭐라고 불렀느냐?
시간, 공간, 인간을 ‘삼재(三才)‘라고 불렀어요.
‘재(才)’는 '천재(天才)'할 때 ‘재‘ 자예요.
‘삼재,‘ 이건 뭐냐면, 가장 중요한 것 보물! 3가지 보물!
중국인들이 사용하기에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이 세계의 3가지 보물! 시간, 공간, 인간.
이때, 시간은 현상이고, 공간은 그 자체가 본질인데,
시간과 공간이 어디서 만나는가? 그게 인간이라고요.
이 인간의 지금 의식에서 시공간이
다 여기서 벌어진다는 거예요, 인간의 의식에서.
인간의 본질은 의식이다.
그 의식에서 시간도 벌어지고 공간도 벌어진다.
지금 이 순간 새로 나오잖아요.
항상 이렇게 나오잖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난생 처음 아닌가요?
지금 이 시간이 난생 처음 아니에요?
난생 처음이자 우리 남은 여생의 가장 젊은 나이,
이게 선물이다 이거예요.
매 순간순간 난생 처음으로 우리가 맛보고 있는데,
이게 프레젠트다.
프레젠트에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프레젠트가 현재이면서 동시에 선물이죠, 프레젠트란 말이.
그러면 지금 맞이하고 있는 이 현재가 나한테 선물로 주어지고 있다.
그럼 이 현재가 조금 전의 맥락에 가면,
이 현재가 나한테 주어지는데, 선물로 주어지는데,
이 현재라고 하는 것이 무엇으로 주어지고 있는가?
저한테는 지금 여러분이 현재예요.
저의 본질이라고 하는 의식 공간에 여러분이,
이 순간 현재가 여러분의 모습으로, 선물로 나타났어!
저한테는 여러분이 최고 선물인 거 아시겠어요?
여러분한테는 제가 지금 의식으로 나타났고, 서로 나타난 거야.
여러분의 본질인 텅빈 의식 공간에 인사동 선방이 지금 나타났고,
그 속에 있는 도반과 뭐 저도 포함해서 이렇게 같이 있는 거예요.
그게 선물로 주어지고 있다.
이렇게 따져보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 전부 선물이다, 이 순간에.
오늘 또 아침에는 새털구름이 촤~악 그죠.
이제 가을이 되어가니까 새털구름이 정말 제가 탁 보니까,
새털구름이 뭉쳐가지고 높게 흐르더라고요.
아! 봉황이 지나간 꼬리구나 그랬어요, 제가.
이 하늘에, 봉황이 시간 아니에요? 봉황이 본질 아니에요.
본질이 지나가면서 그 구름 꼬리로
저한테서 이렇게 나타나는게 모든 것이 선물이다 이거예요.
그리고 난생 처음 보는 거잖아요.
이 순간 난생처음 보는 나한테 주어지는 선물.
그것이 여러분 매 순간순간 주어져요,
아니면 어느 한 특정한 순간에만 주어져요?
매 순간순간 새롭게 주어지는 난생 처음에,
지금 이 즐거운 우리 법회,
법회라는 말도 진리를 가지고 모였다 이말이잖아요.
진리 법(法) 자에다가 모일 회(會) 자잖아요.
그러면 우리 법회가 진리를 중심으로 이렇게 모인건데,
지금 이 시간이,
우리 인생에서 난생처음 경험하는 시간으로 주어지는데
하필이면 도반하고 같이 법회를 하고 있네, 금상첨화 아닌가요?
그래서 육조스님의 용어만 소개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전념(前念)과 후념(後念)에 대한 안목이
육조스님의 가르침에는 항상 나와요.
전념은 뭐냐하면 지난 한생각이 일어났는데 지나가는 것,
후념은 그것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는 것, 요게 후념의 뜻이에요.
육조스님이 말하는 전념 후념의 개념이.
근데 일반인은 전념이 일어나면
그 다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요. 이해되세요?
근데 육조스님이 강조하는 것은
전념에서 후념이 일어날 때 끊으라는 거예요.
그리되면 우리의 의식이 과거에 있지 말고
항상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라.
육조의 가르침도 현재를 살아라예요, 현재를 살아라.
전념에서 후념이 전념에 물들지 마라!
그걸 굉장히 강조하거든요.
그러면 실제로 내가 현재를 의식하면,
자, 여러분 현재 한번 의식해 볼까요?
지금도 현재지요? 지금도 현재지요? 지금도 현재지요?
그러면 보세요.
우리 의식을 현재에 두면 지금도 현재지요.
그렇지 않나요?
무서운 일이 벌어져요.
우리 의식을 지금도 현재잖아요?
이 현재를 느끼면 여기 생각이 없어져요.
이게 비밀 중에 비밀이에요.
이게 인간의 비밀이에요.
현재를 느끼면 생각이 없어져요.
여러분 뭐 때문에 괴로워요?
생각 때문에 괴롭잖아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현재를 느끼면, 희안한거에요.
지금 현재를 느끼보세요.
현재를 느끼면서 생각할 수가 있느냐? 없어요.
현재 느끼는 것과 생각은 공존할 수가 없어요.
현재를 못느끼면 생각 속으로 빨려들어가요.
생각 속에 들어가게 되면,
여러분 사건사고 투성이 아닌가요?
생각 속에는.
근데 현재를 느끼면 생각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 현재를 계속 느끼는 사람한테는 생각이 없다 이거에요.
무서운 일 아닌가요?
현재를 계속 느끼는 사람한테는 생각이 따라붙을 여지가 없다.
그러면 자,
지금도 현재가 흐르나요?
새로운 현재가 일어나고 있지요?
새로운 현재를 내가 지금 탄다.
새로운 현재를 탄다.
지금도 현재지요.
지금도 현재지요.
계속 현재를 탄다, 맞아요?
현재를 계속 타고 있으면
지금도 현재잖아요.
현재지요? 현재인데,
삼라만상이 같이 타고 있지요.
이 느낌 오실려나?
내가 현재를 지금 타면, 지금도 현재가 계속 새로 일어나고 있어요.
생각을 일으키면 과거로 그냥 밀려가버려 물살 따라 떠내려가는데..
떠내려가지말고,
새로운 물살을 계속 탄다. 이 자리에서.
현재의 자리에서 계속 현재를 탄다.
현재를 타면 생각 없지요.
무서운일이 또 뭐가 뭐냐하면,
현재를 타고 있으면 이 전체가 현재가 되버리는 거에요.
현재를 타는 사람들한테는...
지금 제가 계합하는 비밀을 알려 드리고 있어요.
깨달음은 계합이에요.
깨달음은 깨달음은 뭐냐하면 현상이 본질에 계합하는 거예요.
계합한다는 말은 하나가 되는거.
현상에 본질하고 하나되는 방법은 현재를 타면,
현재를 타면..
지금도 현재지요? 또 현재지요.
이 현재가 삼라만상이 우주 전체가 현재가 되고,,
현재를 타버리면, 현재밖에 없어져요.
현상이 본질하고 계합하는 방법,
현재를 타는거다 이거에요.
그러면 현재를 타면,
지금도 현재지요? 계속 현재지요?
현재를 타고 있으면 생각이 못붙고
생각이 못붙으면 분별되지 않아요.
개합의 가장 조건이 분별심이 떨어지는 거예요.
분별심이, 분리감이 떨어지는 거에요.
이건 정말 우리를 끈질기에 괴롭하는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히는 핵심은,
분리감이에요.
나 따로 세계 따로.
나따로 너 따로.
근데 놀랍게도 현재를 타며
현재를 타면 모든 것이 한덩어리 전체가 되는 겁니다.
아 이거를 잘 음미해보세요.
현재를 탄다는 말을,
잘 음미해 보세요.
지금 이 순간도 실제로 타고 있지요?
그렇지 않나요?
놀라운 것은 힘 뺄수록 현재를 타게 되요.
여기서 뭘 하면 현재를 놓쳐요.
자, 유위법으로 들어가면 현재를 놓쳐요.
근데 무위법으로 들어오면 항상 현재를 타고 있어요.
거지가 항상 황금 상자를 깔고 앉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현재를 타고 있어요.
근데 이걸 발견을 못해.
왜 발견을 못하느냐? 거지 짓 하는 것(때문에).
거지 짓하는 한다는 건 뭐에요?
이 황금 덩어리 놓치고 가서 내 마음이 욕망을 일으켜 가지고
가서 붙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동냥하느라 동냥하느라고 깔고 앉아 있는 현재를 놓친다,
이 말 이해되세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책 제목 <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위법으로 살아야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겁니다.
어깨의 힘을 빼야 되.
어깨의 힘을 빼고 아무것도 안하면 자각이 오는 거에요.
현재를 내가 타고 있다는..
첫댓글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녹취 >
시작 ~ 5분 무소
5분 1초 ~ 10분 무비
10분 1초 ~ 15분 신비
15분 1초 ~ 20분 무척
20분 1초 ~ 25분 완전한영광
25분 1초 ~ 30분 진리의빛
30분 1초 ~ 35분 무지
35분 1초 ~ 40분 정배
함께 수고해 주신 기조실 보조교사님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저의 참 주인이 되어 주신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지도사제의 가르침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아버지를 아버지로 모시고
아버지께 내뜻을 내맡겨드림으로써,
진정한 아버지의 뜻을 선물로 받았기에,
살아있는 지금 현재가 빠짐없이 아버지의 선물임을 깨달은 저희가 되었네요~
하느님을 알고 내맡기게 해주신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불교의 마음 공부를 엿보며,
가슴이 벅차오르도록 감사, 또 감사를 드립니다.
이 육과 생각과 마음을 주인으로 여기던
과거를 모두 내맡겨드리고,
미혹에 빠진 모든 상념과 망상을 끊어내고(에포케)
<끊임없는 아버지기도>로 힘을 빼고 살아가니
나를 지으실 때 불어넣어 주신 아버지의 영이 일깨워지고
아버지의 영의 이끄심을 받아
아버지와 함께 하는 삶을 기도로 살아가며,
아버지의 뜻이라는 지금 현재를 타고 기즐행! 누리고 있습니다.
어떻게도 기쁘지 않고 어떻게 해도 즐겁지 않고
어떻게 봐도 행복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던 제가
내안의 무진장한 금덩어리, 성령의 샘물을 퍼올리는 삶,
오직 아버지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방광"의 삶을 느낍니다.
<끊임없는 아버지기도>를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타고 살아 가는 이 무위법의 삶,
최고 최선의 선물만을 받게 하시는 진짜 무위의 삶을 외치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모든 사제와 <거내영>을 통하여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크게 드러내소서!
[ 지도사제 10.08.09 10:50
(..)
나의 삶이, 나의 행위가 진실된 행위, 진실된 삶이 되기 위하여
현재 나의 모든 생각과 행위를 멈추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 멈춤은 단순히 "無爲"를 위한 무위가 아니라,
진실한 "行"을 위한 무위, 즉 "無爲行"을 위한 멈춤입니다.
"하지말고 하기 위한 멈춤"입니다.
"삶 없이 살기 위한 멈춤"입니다.
"하라, 하지 말고 하라!
하지마라, 네가 하지말라!
네 안에 계신 그분께서 하시게 하라!
살라, 삶 없이 살라!
살지마라, 네가 살지말라!
네 안에 계신 그분께서 사시게 하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삶"(갈라2,20)을
살기 위한 거룩하고도 위대한 멈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맡긴 영혼들은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자신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소유가 되어 無가 되었기에 자신의 모든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던 모든 생활의 습관까지도 모두 "에포케"해야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맡겼다 하면서 과거의 모든 습관,
즉 생각과 말과 행위, 거기에는 모든 활동 특히 "기도 행위들"도 "에포케"해야 합니다.
과거의 모든 생활 습관을 그대로 따라 갈 때,
내맡긴 영혼들의 영적 성장은 더뎌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모든 습관도 새 습관으로 갈아 입어야 합니다.
새 습관으로 갈아 입기 위해서는 잠시 "에포케"해야 합니다.
아니, 오랜동안 "에포케"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멈추는 그 기간은 하느님만이 아시는 것입니다.
"에포케"할 줄 아는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에포케"는 어쩌면 영적 도약을 위한 움추림이라 할까? ]
[ 지도사제 11.06.09 07:49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들은
반드시 성령을 만나서 성령을 입고 살아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저는 성령의 다른 말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람들이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1테살4,3)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사람들이며
성령의 이끄심대로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완전한 사랑에서 발현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니케아 신경)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은
그분의 아들, 성자 예수님의 뜻과 항상 일치하셨습니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요한6,38)
성부와 성자의 뜻은 똑같은 하느님의 뜻이며,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나온 성령의 뜻도 똑같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성령의 역할은 사람들을 거룩히 하시는 일이며,
하느님의 뜻은 사람들이 거룩히 되는 일이기에
'성령'의 다른 이름은 곧 '하느님의 뜻'이기도 한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사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며
그들이 바로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거룩한 하느님의 자녀들은 하느님의 뜻대로 삽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8,14)
하느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며,
거룩한 사람은 성령을 받아 성령을 입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보조자(협조자)이신 성령을 입고 사는 사람은 곧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삶'(갈라2,20)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
[ 지도사제 17.09.27. 22:06
<*우리 안에 하느님이 사시게 된 것*은
우리가 특별한 업적을 세우거나 의식儀式을 행해서가 아니다. >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사시게 하는 것*은,
우리의 어떤 특별한 업적이나 의식에 의해서가 아니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사시게 하는 가장 탁월한 벙법은
오직, 하느님을 사랑하려는 뜨거운 열망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끊임없이* 부르는 것 ★이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덧 *하느님의 때*가 되면,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계신 하느님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 체험★이다, ★성령을 받은 것이다.★
<성령을 받기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느님의 내재하심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다.
(로마 8,9; 갈라3,1-5 )
성령을 여러 교리 가운데 하나로 '믿으려'하지 말라.
그 대신 * 당신 안에 있는 깊은 샘물을 길어 올려라. *
그러면 저절로 믿어질 것이다.>
거룩한 내맡김의 끊임없는 화살기도는,
우리 안에 있는 깊은 샘물인 성령을 길어 올리는 일이다! ]
[ 지도사제 20.09.28 21:20
사랑하는 식구 여러분!
여러분은 관세음보살처럼 용(龍)을 타시겠습니까?
아니면 무엇을 타시겠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으로
이미 하느님의 뜻을 타고 계십니다, 아니 하느님의 등을 타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타고
하느님께서 가시는 대로만 그저 얹혀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내려 오지 않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내려 오지 않는 방법이 바로
끊임없는 화살기도입니다, 끊임없는 화살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이곳의 모든 이들이 아버지만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지금 제가 계합하는 비밀을 알려 드리고 있어요.
깨달음은 계합이에요.
깨달음은 깨달음은 뭐냐하면 현상이 본질에 계합하는 거에요.
계합한다는 말은 하나가 되는 거.
현상에 본질하고 하나 되는 방법은 현재를 타면, 현재를 타면..
지금도 현재지요? 또 현재지요. >
< ■ 내맡김 영성 ■
질문에 대한 답변의 답변
지도사제 11.01.29 11:18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면
하느님과 완전히 하나됩니다.
하나는 둘이 아닙니다.
구별이 없어집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죄스러움이 남아 있어도 완전히 하나됩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부족함도 죄"도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분이라고 말하는 모든 이는
반드시 이 사실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맡김의 법칙"입니다.
"내맡김"은 곧 "일치"이며, 일치가 곧 "소유"입니다.
"하느님을 소유한다"는 말은 하느님과 하나된다는 뜻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김"으로 "하느님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
[ ■ 내맡김 영성 ■
< 후속 > 13. 내맡김의 힘 ( 괴테의 詩 ) 해설
지도사제 10.03.24 20:42
"내맡김"에는 엄청난 능력이 숨어 있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완전히 100%를 하느님께 내맡겨 드렸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소유"가 됩니다.
나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 되었기에 "나"는 없어진 것입니다.
내가 사라지고 "하느님만" 남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자신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것이고,
그러므로, 자신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임을 인정해 드리고
또한 그러므로, 앞으로 모든 삶을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로 "굳게 결심"하는 그 순간,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게 됩니다.
현세에서 "천국"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천국을 "죽음"으로 완성 시킬 것입니다.
그 "단순한 결심" 하나로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 오셔서 온전히 작용하시기 시작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움직여 주십니다.
하늘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삶 자체가 기적이고,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그 기적이 계속됩니다.
우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굳은 결심" 하나로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
[ ■ 내맡김 영성 ■
< 후속 > 18. 왜, 내맡김의 영성이 최고라고 떠드는가?
지도사제 10.04.16 11:50
저는 하느님과 일치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정말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 ,
이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려드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시고
무엇을 바라시는 지를 늘 헤아려드립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진실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사랑은 때로는 힘들어도 행복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
[ 지도사제 18.01.04. 10:32
거룩한 내맡김 영성의 탁월성이 바로,
★ 사랑의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가르쳐준다 ★ 는 것입니다.
어떻게 가르쳐 주냐고요???
하느님에 대한 愛사랑가,
★ 끊임없는 화살기도 성가 ★ 를 통하여 말입니다.
하느님 愛사랑가가 끊임없이 불려지는 데,
사랑의 원천이시며 사랑 자체이신 사랑의 하느님이
그냥 바라만보고 계시겠습니꺄?
< 끊임없는 화살기도 >는 하느님을 감동 시킵니다.
하느님과의 ★ 사랑이 공명되어 ★ < 하느님과 일치 > 시켜줍니다, 정말입니다!
곧 하느님 사랑과 우리 사랑과의 주파수를 일치 시켜줍니다.
男女라 하여 아무나 서로 사랑을 일치 시킬 수 있나요?
아닙니다, 아니어요.
서로의 사랑이 ★공명 ★ 되어야 합니다. ]
아멘, 아멘!
의자에 금덩어리가 들어 있는 지도 모르고 깔고 앉아 오랫동안
처량한 동냥을 하고 살았습니다.
< 끊임없는 화살기도 >로 아버지하느님을 < 사랑 > 하게 되니
기적처럼 눈과 귀와 입이 열렸습니다.
부족한 제가 실은, 언제 어디에서나 아버지 품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아버지가 창조하신 '너'도 아버지 품 안에
있다는 사실까지도 알아졌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 하나 >가 되었습니다.
참 평화와 참 행복을 살게 되었습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너무나도 쉽고 간단한 끊임없는 화살기도의 신비 안에
흘러 넘치는 아버지의 자비하심에 하염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아버지께 내맡겨 드립니다.
우주만물을 내맡겨 드립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과 하나되어 현재에 있게해주신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현재를 타면 모든 것이 한덩어리 전체가 되는 겁니다.>
아몐아멘!
아버지를 향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부릅니다.
아버지라는 제 외침과 함께
아버지 안에서 아버지와 하나되고,
동시에 아버지 안으로 모여든 우리식구와 하나되는...
그렇네요
왜 우리는 식구인지도 깨닫게 해주시네요.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저라는 이물질 하나 묻어있지 않은 그 순간, 현재만이 아버지와 하나되는 그리고 진정한 우리가 되는...
사랑하는 아버지, 식구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하내영과 모든 피조물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이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아멘~!!!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어느 우화에 거지가 평생 거지 노릇하는데,
하루는 어떤 사람이
"깔고 앉아 있는 통 그 안에 뭐 들었소?" 라고 물어보니까
한 번도 거지가 열어 본 적이 없는 거예요.
매일 그 통에 깔고 앉아 가지고 동냥을 하는데
그래서 한번 보자고 해서 열어보니
금덩어리가 들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어디 앉아 있어요?
금덩어리~!
본질이 무엇인가?
이 거지가 평생 구걸하면서 깔고 앉아 있는 그 상자,
금으로 가득 찬 상자.
그럼 금으로 가득 찼다 이 말은 뭐예요?
이 텅 비어 있는 의식공간이 금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럼 금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 모든 것이 다 금이에요.
이것이 여기서 무한정하게 나온다.
그래서 요 텅 빈 공간이지만 이거를 무진장이라고 불러요.
장은 창고, 무진 끝이 없는 창고.
그래서 곧 돌이켜보면 지금 내가 어디에 앉아 있는가
이 공간을 앉아 있다,
모든 공간 자체는
우리의 정신이 없을 때는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런 죽은 공간 같은 건데
우리가 나타나는 순간 모든 자리가
우리 몸이 나타나는 그 자리에는 의식으로 항상 가득 차 있어서
신령스러운 의식이 깨어 있어서 반짝반짝 생명이 그때부터,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생명이 넘치는 것으로 만드는 주체가 나다, 이거예요.
여러분 그러면 우리가 어마어마한 사명을 띠지 않았나요?
내가 나타나기 전에는 다 죽었어, 다 죽었어.
‘돌아보면 우리는 이 죽은 공간을
아연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사람들.’
지금 거지가 평생 깔고 앉아 있는 상자가
이 의식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이라도 실감되지 않나요? ]
아멘~!
사랑하는 아버지,
금 덩어리를 깔고 앉아 있었지만
거내영이 아니었으면 평생 그 사실을 모르고
가짜 자아에 속아
평생 그 부족함으로 구걸만 하다 죽을 뻔했습니다.
이제 저의 모~~~든 것을 내맡겨
무진장의 원천이신 당신과 계합하여 참 자아를 찾아
선물 받은 현재를 프레젠트를 타고
죽은 공간을 생명의 공간으로 만드는 주체가 되었으니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리며
부족한 제 안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간청합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지도사제 10.06.15. 23:06
내맡긴 이들은 "무진장의 원천"을 따라 가는 이들이며,
다른 지친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이들입니다. ]
@무화.보조.고문단(SG)
[ ★벌거벗은지금
이미 받은 선물
테바 17.09.26 20:45
1부
이미 받은 선물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로마 5,5)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요한 14,17)
(,,,)
완벽함이나 통제,
또는 다음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을 추구하는 것은
참된 영성이 아니다.
참된 영성은
<지금 여기에서 신과 하나 됨(unity)을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을 이미 받았음을 보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발견>이다!
내가 그것을 발견한 게 아니다.
그것이 나를 발견한 것이다.
꿈에 하늘에 닿은 사다리를 본 야곱이
잠에서 깨어나 내지른 외침(Eureka!)이 바로 그것이었다.
(창세 28,16-17)
하나 됨과 왼전함은
매우 다른 방편들로 이어가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여정이다.
일반적인 종교는 개인의 완전함을 추구하고,
신비가들은 바탕 자체,
곧 전적으로 선물일 뿐인 신과 하나 됨을 추구하고
더 나아가 즐긴다.
개인의 완전함은 지식과 확신을 강조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 됨이 지식으로 가는 훨씬 좋은 길이다.
그것은 공유된 지식으로서 더욱 견고하고 위안을 준다.
예수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사실은,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과는 달리
무질서와 불완전함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대들도 그렇게 하라고,
아니면 이 땅에서 결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이 때문에
예수는 대부분의 시대와 문화에 낯설고 거북한 존재가 되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의 복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그의 핵심 메시지와
그것을 스스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구체적 프로그램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로 여기에,
오늘 우리 종교의 중심 문제가 있다.
우리는 약속받지 못한 곳에서 희망을 찾으려 했고,
아무도 우리에게
무질서와 불완전함 속에서 희망할 수 있게 해줄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고약한 것은,
우리가 희망과 하나 됨이 같은 것이고.
참된 희망은 정신적 확신과 전혀 상관없는 것임을
몰랐다는 사실이다. ]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모든 공간 자체는 우리의 정신이 없을 때는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런 죽은 공간 같은 건데
우리가 나타나는 순간 모든 자리가 우리 몸이 나타나는 그 자리에는
의식으로 항상 가득 차 있어서 신령스러운 의식이 깨어 있어서
반짝반짝 생명이 그때부터,
의식은 빛이에요. 우리가 가는 곳마다 우리가 방광(放光) 하고 있어요.
방광해서 생동감 있게 의미 있는 공간으로 살아나고 있어요. >
사랑하는 아버지,
거내영을 만나기 전에 저는 '나'라는 개인 의식만 갖고 살았습니다.
아니 나라는 개체로서 살았을 뿐
'의식'이라는 것을 거의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를 '나'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내가 가진 생각, 내 마음에 떠오른 생각과
내가 행한 행동이 곧 '나'라고 생각하여서
그것들을 통해서 우쭐해하거나 정당화하고
사람들의 평가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거내영으로 습관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빛이 조금씩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빛이 저의 의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렸습니다.
생명의 빛이 저를 차지할수록 '의식'의 힘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리적으로 오고가는 시간 속에서
아버지의 빛은 시간의 흐름처럼 드러나더라도
동시에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가 잠자고 있을 때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 못하여 죽어있는 것과 같은 모든 것들이
현재의 의식에 깨어있을 때
이미 많은 곳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고
빛을 드러내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아갑니다.
저의 감각이 그것을 알아챌 때에는
이미 완성이 되어 드러나는 순간일 뿐이지요.
아버지의 빛을 품고 있는 영적인 존재는
나 혼자의 삶이 아님을 깨닫고
어우러져 사는 가운데 빛을 드러내는 존재이고
다시는 죽음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갑니다.
< 시간은 현상이고, 공간은 그 자체가 본질인데,
시간과 공간이 어디서 만나는가? 그게 인간이라고요.
이 인간의 지금 의식에서 시공간이
다 여기서 벌어진다는 거예요, 인간의 의식에서.
지금 이 순간 새로 나오잖아요.
항상 이렇게 나오잖아요.
난생 처음이자 우리 남은 여생의 가장 젊은 나이,
이게 선물이다 이거예요.
@무사.보조.기조실
매 순간순간 난생 처음으로 우리가 맛보고 있는데,
이게 프레젠트다. >
여지껏 김홍근 교수님의 강의에서
"인간의 지금 의식에서 시공간이 다 벌어진다."는 말씀은
처음 들어보는 것 같은데요,
정말 굉장한 의미를 지닌 말씀 같아요!
매 순간이 새로운 시간이며
새로운 창조를 일으킬 수 있는 모든 것이
내 의식 안에 있다는 것으로 들립니다.
아버지가 만드신 인간의 존재의 놀라움을 보게 되고
소중한 지체로서 나의 존재가
빛으로서 귀하게 쓰여져야 함을 다시금 느낍니다.ㅠㅠ
그렇죠, 아버지!
아버지의 자녀인 저희는 작고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을 행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이지요.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갔다면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저희의 존재를 높여주시고 용기를 북돋아주시는 아빠아버지,
감사합니다, 찬미합니다.
아버지가 내려주시는 빛으로 살면서
빛나는 의식으로 죽음 속에서 생명으로 되살아나는
모든 것이 되게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제와 <거내영>의 모든 것을 통하여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거룩하신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마음을 물처럼 다루는게 지혜예요.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생명이 넘치는 것으로 만드는 주체가 나다, 이거예요.
여러분 그러면 우리가 어마어마한 사명을 띠지 않았나요?
내가 나타나기 전에는 다 죽었어, 다 죽었어.
이때, 시간은 현상이고, 공간은 그 자체가 본질인데,
시간과 공간이 어디서 만나는가? 그게 인간이라고요.
난생 처음이자 우리 남은 여생의 가장 젊은 나이,
이게 선물이다 이거예요.
전념에서 후념이 전념에 물들지 마라!
현재를 타고 있으면 이 전체가 현재가 되버리는 거에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책 제목 <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위법으로 살아야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겁니다. ]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한 방울의 물이 바다에 합쳐서 아버지의 은총을 온통 누립니다.
생명의 원천을 몰라보고 노예처럼 살아온 저를
어마어마한 사명이 기다리는 아버지 품으로 안으시고
참 생명을 시공간에 뿜으며 진정한 본질을 탄생시키시는 아버지!
모든 순간 일어나는 일들 속에
애시당초 죽을 에고를 완전히 차단하시어
매 순간 가장 큰 선물인 아버지의 뜻이 기다리심을 깨닫게 하시니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후념이 전념에 물들지 않는
진정한 현재의 창조를 이 작은 하느님을 통해 이루시며
아버지의 기쁨으로 넘치는 생명을 되돌려 드리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기품을 살아내는 인간이 되게 하신 사랑의 아버지!
거내영과 모든 사제와
참 인간으로 탄생한 하내영들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황금 덩어리 놓치고 가서 내 마음이 욕망을 일으켜 가지고
가서 붙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동냥하느라 동냥하느라고 깔고 앉아 있는 현재를 놓친다.>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가 제게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마음이 이곳으로 달려왔습니다.
아버지앞에 앉아있고 싶은 이 마음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현재를 살지 못하고 제 욕망에 붙어 동냥하며 살지 않도록 아버지께서 깨우쳐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현재에 깨어있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실천 방법을 몰랐을 저를 화살기도로 깨어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을 뺏긴다.
어떤 대상에 내 마음을 뺏기면 그 대상에 이제 막히는 거죠.
흘러서 통해야 될 거 아니예요.>
어떤 대상에 제 마음을 뺏겨 막히지않게 하는 방법인 <거룩한 내맡김 화살기도>을 하게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육체적으로는 몹시 피곤하지만 아버지앞에 앉아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만이 제게 진실한 행복이라는 걸,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수임을 느끼고 또 느낍니다.
거내영식구들과 저의 모든것을 맡기오니 이끌어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현상>
<현재 잠시 인연따라 나타난 이미지들이다.>
<마음을 물처럼 다루는 게 지혜예요.>
<물이 맑을려면 우리 마음이 물 같아서
마음이 맑을려면 통해서 흘러야 돼요.
깨끗함의 기본 원칙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 물이 마음인데
마음이 흘러서 통하느냐? 고여서 썩느냐?
이게 모든 지혜의 정수다.
그러면 우리 마음이 언제 막히느냐!가 중요하잖아요.
언제 막히느냐? 마음을 뺏길 때 막혀요.
마음을 뺏긴다.
어떤 대상에 내 마음을 뺏기면 그 대상에 이제 막히는 거죠.
흘러서 통해야 될 거 아니예요.>
아멘 아멘!!!
사랑하는 아버지,
어제 이 대목이 참 와닿았습니다.
제가 부족하니 옆사람을 통해 제 문제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예요!
저는 아버지만 좋아하는데, 단지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한테
반하고 마음이 갈 뿐인데..
그런데 어디선가 본 책에서 아버지께서 만드신 피조물,
즉 대자연에게도 너무 마음을 뺏기지 말라고 하신 것을 보았어요.
그렇게 보면 저는 사람한테 마음이 갔으니, 피조물에게 뺏긴 게 맞지요.
그런데 피조물에게 갔어도 아버지기도로서 아버지께 돌아오는데,
아버지께선 제가 그렇지 않았어요?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나봐요!
이번 성탄절엔 첨 경험해 본 일이 있었지요!
해마다 늘 오던 성탄 메시지 말이에요.
이걸 은근히 부담스러워서 좀 안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한 명도 안오니까,(물론 저도 하지 않았지만)
제 마음이 이상한 거예요. 쓸쓸함이 올라왔어요!
거기에 마음이 딱 박히니 물이 흐르다가 고였잖아요!
거기에 계속 젖었다면 ‘썩은 내’가 올라왔겠지만 다행히
저를 알아차리게 해주셔서 계속 맡겨드리니까 제 맘이 흘러가졌어요.
아!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그래서 마음이 어디에 딱 붙기 전에 아버지기도가 깨어 있게
해주니 참 고마워요!
그런데 아버지, 그렇지 못할 때도 있어요!
아버지기도는 돌아가는데 좀 늦게 알아차릴 때가 많아요!
제가 아버지께 집중하지 않아서 그런거지요!
이번 일로 제게 큰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오직 아버지께 집중하자!‘
제 마음이 오직 아버지께만 꼭 붙어 있겠습니다.
저의 다짐을 아버지께 내맡깁니다.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맡기오니 아버지만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놀라운 것은 힘 뺄수록 현재를 타게 되요.
여기서 뭘 하면 현재를 놓쳐요.
자, 유위법으로 들어가면 현재를 놓쳐요.
근데 무위법으로 들어오면 항상 현재를 타고 있어요.
거지가 항상 황금 상자를 깔고 앉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현재를 타고 있어요.>
사랑하는 신부님,
사랑하는 테바님,
올려주신 동영상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지금여기 아버지와 하나되어 말씀 듣는것에
집중 하는것이 무위법 이었습니다.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아버지만 옹알이 하는것도 무념무상이 되는 현재 라는것을 더 또렷이 깨달았습니다.
정말 단순히 현재를 사는 지금 저는 댓글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어깨 힘 빼고 아버지께 기도 하는 바로 이거 철부지가 아빠만 부르는 매순간임을 감사히 잘들었습니다.
신부님,테바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지도사제와 거내영을 통하여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크게 드러내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마음을 물처럼 다루는 게 지혜예요.
인간이 인간의 마음이 가장 착한 마음은 물 같은 마음이다.
근데 이때 물 같은 마음이 뭐냐면 물은 하나예요.
마땅히 머물지 말고 그 마음을 내라 할 때
이 마음이 물처럼 통해서 흐르게 해라.
머물면 고여서 썩는다 이 말이에요.>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제 마음을 다룰 힘이 없었습니다.
하내영이 되고 알았지요. 제 마음의 주인이 아버지이심을요.
그러니 제가 제 마음을 제 맘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 제 마음을 맡기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하면 아버지께서 알아서 다 해주십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요즘 어떤 생각도 잘 안나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기도를 드리고 오늘은 무언가 특별히 아버지께서 시키시는 일이 있는지
여쭈어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을 떠올려주시기도 하시지요.
오늘은 떠 올려 주신대로 피부암 수술을 하고 집에 있는 이웃에게 호두파이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파이를 구울 때 성호를 긋고 이웃집 존을 내맡겨드렸습니다.
아버지, 이렇게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아버지께서 주시는 마음으로
살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지, 또 착한 마음이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전에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 내 의견을 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순종하는 사람에게
붙는 수식어였지요.
그러나 지금 제겐 착한 사람이란 당신께서 주시는 분별력을 갖춘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형의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들이 날마다 성령 아버지의 힘이요, 능력이 되어
저를 키우시고 기쁘게 살도록 안배하시지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아버지를 더욱더 뜨겁게 사랑하게 하시어
제 모든 것이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이 되게 하소서.
거룩한 내맡김을 통하여 아버지참자녀로 이끌어 주신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마음을 물처럼 다루는게 지혜예요. >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거룩한 내맡김 영혼이 되어 아버지의 참자녀로 사는 기쁨과 감사,
사랑으로 제 영혼육이 정화되어가고, 의식과 언어의 수준이 달라졌습니다.
어릴 적부터 엄격하신 할머니와 아버지 아래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이라는 틀 안에 갇혀 숨죽이다 보니 여린 제 마음과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보듬을 줄도 몰랐고, 다룰 줄도 몰랐네요.
가톨릭 신자로서 살아온 적지 않은 세월 동안에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아버지의 사랑 보다는 존엄하신
아버지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의무방어전에 전력을 쏟을 뿐,
제가 사랑의 존재라는 의식을 놓치고 살았습니다.
< 우리가 나타나는 순간 모든 자리가 우리 몸이 나타나는 그 자리에는
의식으로 항상 가득 차 있어서 신령스러운 의식이 깨어 있어서
반짝반짝 생명이 그때부터, >
비천한 제게 오신 사랑하는 아빠아버지께서는
내맡김으로 이끄시어 제가 제가 현존하는 모든 공간과
시간, 인간들 안에서 의무를 뛰어넘는 사랑의 의식을 불어넣어주는
< 끊임없는 아버지기도 >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거룩한 말씀의 댓글과 하느님아버지에게서 멀어진 영혼육을
아버지 사랑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교육으로 담금질하는 여정으로
거룩한 사도 바오로가 외치셨던 말씀을 부족한 제가 삶으로
받아들이고 무슨 처지에 있든지 늘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는
영혼되어 온몸과 마음과 정신과 목숨을 다하여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놀라우신 아빠아버지께서는 4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제 무의식까지도 불러내어 의식으로 떠올려주시고 녹슬고
볼품없는 제 영혼을 반짝반짝 생명의 힘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제 뜻을 온전히 아버지께 쏟아내고 내던지는 철저한 내맡김
그때부터, 저의 의식과 언어는 지상에서 사는 제 안에 오시어
아버지께서 사시고 하시어 저의 손과 발이 되어주셨지요.
< ‘돌아보면 우리는 이 죽은 공간을
아연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사람들.’ >
< 인간의 본질은 의식이다.
그 의식에서 시간도 벌어지고 공간도 벌어진다. >
돌아보면 제 삶의 모든 순간이 아버지와 함께 내딛는
은총의 발자국인 것을 놓치고 아버지 나라가 멀고 먼 나라라 여기며
죽은 공간에서 살던 저를 깨워주시려고 고난의 협곡을 지나게 하셨음을요!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제게 일어나는 모든 일, 모든 순간이 아버지 뜻이기에
지금 이순간을 놓치지 않고 < 끊임없는 아버지기도 >로
아버지의 참자녀로 아버지 가슴팍에 끌어안아주시고
인간의 본질인 의식으로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깨닫게 해주시니
무한감사 찬미영광 받으소서.
죽도록 죽기까지 아버지를 뜨겁게 사랑하며
제게 허락하신 황금 선물상자인 현재를 타고 살면서
아버지와 행여 멀어진 빈 간격을 메워가며 살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부족한 저와 < 거내영 >의 모든 것을 통하여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거내영을 통하여 거룩함의 원천인 현 순간에만 살게 해 주신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와~~~
거내영을 불교 용어로 이렇게 맛깔스럽게 표현할 수가 있나요?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저에게 베풀어 주신 꿀맛같은 진리의 수업에
다시 한번 엎디어 감사드립니다!
용어만 살짝 바꾼다면,
지도 사제이신 위무위 사제의 평소 가르침의 요약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다만, 본질을 <의식>이라고 표현한 부분에서
모든 이의 이해를 돕고, 종교를 초월한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아무리 곱씹고 또 곱씹어도,
내맡김으로 제가 만난 <아버지하느님> 보다 더욱 포괄적으로 하느님을 표현하는 단어는
세상에 다시 없을 거라고 확신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의식>이라는 단어로는
그것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을 불러 일으키기가 조금 어려우니까요.
기독교가 타 종교에 비해 월등 우수한 측면이 있다면
본질, 의식, 절대라고 부르는 대신, 하느님아버지라 부름으로써
그 대상을 뜨겹게 사랑할 수 있다는 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거내영 안에서 배웠듯, 그것이 시작이고 완성이지요.
[동양의 지혜를 한마디로 말하면
마음을 물처럼 다룬다.
공자도 물 앞에서 물이여 물이여! 하고 감탄했고,
노자도 상선약수 (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인간이 인간의 마음이 가장 착한 마음은 물 같은 마음이다.
근데 이때 물 같은 마음이 뭐냐면 물은 하나예요.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 )
마땅히 머물지 말고 그 마음을 내라 할 때
이 마음이 물처럼 통해서 흐르게 해라.
다중인격이라고 표현하는 그게 중생이란 말은
우리 안에 많은 감정들이
억압되어 있는 사람을 중생이라고 부른다. 이해되지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청소해야 되잖아요. 청소한다.
지금 청소하는 법 배우는 거예요.
자기 무의식 청소하는 거, ]
사랑하는 아버지께 저의 모든것을, 죄스러움마저 몽땅 내맡겨드리니
제가 스스로 하지 않아도 아버지께서 무의식의 청소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고 계시지요.
아마도 엄마 뱃속에서부터 억압된 무의식이 시작되어,
한도 끝도 없이 그것이 아마 쌓여있을 것이라 생각되어요.
그 청소를 제가 제 힘으로 한다 한들
얼마나 꺠끗이 많이 없애고 교정하겠는지요!
@옴니아.보조.기조실
매 순간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을 통해 현재를 경험하면서
잘못된 틀에 걸러져 아버지의 뜻과 어긋난 형태로 제 무의식에 박혀있는
쓰레기들은 아마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그것이 물과 같은 마음이 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바위, 돌, 자갈이었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완전한 스케쥴에 맞춰
아버지의 세탁기 안에서 무의식의 청소를 하고 계심을 저는 똑똑히 압니다.
제가 죽을듯 아프더라도,
잘못된 고정 관념과 감정 구조를 교정하시는 것을 멈추지 않으시지요!
아버지께서는 지금 당장 저에게 때가 잔뜩 끼어 있다고 하더라도
때가 잔뜩 낀 그 상태로도 얼마든지 현순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화살기도를 허락해 주셨지요!
내맡김 이후 바로 직후부터 세탁기는 세탁기대로 가동되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아버지께 이끌려 드리게 되구요!
<본질이 무엇인가?
이 거지가 평생 구걸하면서 깔고 앉아 있는 그 상자,
금으로 가득 찬 상자.
그럼 금으로 가득 찼다 이 말은 뭐예요?
이 텅 비어 있는 의식공간이 금으로 가득 차 있다.>
<본질>을 하느님으로 바꿔 넣으면 잘 이해가 됩니다.
@옴니아.보조.기조실
제가 하느님의 자녀, 왕비 공주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평생 거지인 줄 알고 가난하게 살아왔습니다.
금으로 가득찬 상자가 하느님아버지이신데,
하느님아버지를 깔고 앉아 있으며 아버지를 능멸하였지요ㅜㅜ
그 금으로 가득찬 상자 뚜껑을 열고
금을 발견하게 해 준 것이 바로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입니다!
금을 꺼내어 언제든지 마음껏 쓸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끊임없는 내맡김의 화살기도입니다!
이제는 거지 짓을 멈추고, 거지라는 정체성에서 완전 벗어나,
저의 온 몸을 금으로 치장하여 반짝반짝 빛을 내며
왕비처럼 공주처럼 살고 있습니다.
가끔, 거지 적의 근성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잠시 그러다 곧바로 정신을 차리지요!
<현재의 자리에서 계속 현재를 탄다.
현재를 타면 생각 없지요.
무서운일이 또 뭐가 뭐냐하면,
현재를 타고 있으면 이 전체가 현재가 되버리는 거에요.
현재를 타는 사람들한테는...
지금 제가 계합하는 비밀을 알려 드리고 있어요.
깨달음은 계합이에요.
깨달음은 깨달음은 뭐냐하면 현상이 본질에 계합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아버지,
놀랍게도 끊임없는 화살기도 속에 제가 아버지와 하나임을 알아차리면
@옴니아.보조.기조실
그 어떤 난관 앞에서도, 마음 산란함 속에서도,
얼마 안 있어 곧바로 현순간에 저와 함께 계시는
아버지로부터 흘러나오는 엄청난 에너지와 힘으로,
다른 생각, 다른 감정, 다른 행동이 제 안에서 나오게 됨을 경험합니다.
이전의 저라면 할 수 없었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을 품고
이전의 저라면 품을 수 없었던 기쁘고 밝은 감정을 지니고
이전의 저라면 할 수 없었던 말과 행동이
제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저의 시간시간을 새롭게 가꾸고,
결국은 저의 운명이 아버지와 함께함으로 재 창조됨을 꺠닫습니다!
거내영을 통하여
저는 척추를 갈아 까우고 뇌의 신경전달 구조를 갈아 엎고
새로운 심장을 장착하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끄심에 따라 내맡김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움직이는
혀와 눈과 귀와 팔다리를 갖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베풀어 주신 모든것이 엎디어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의 모든것을 통하여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크게 드러내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옴니아.보조.기조실
[ ★하느님섭리에내맡김(韓)
제2장 -09 현재의 순간은 계속해서 거룩함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신비 19.06.24 07:33
제 2 장
거룩함이 끊임없이 샘솟아나는 원천인 현순간을 감싸 안음에 대하여
우리는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생명수의 샘을 발견하기 위해 멀리 떠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샘물은 매순간 우리 곁에서 콸콸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마름을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자그마한 개울을 찾는 데에만 집착하여 지쳐 버리고 만다면
그 얼마나 바보스러운 짓이겠습니까.
생명수의 샘만이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그대는 예언자들과 사도들 그리고 성인들처럼 생각하고 기록하며 살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느님의 영감(靈感)에 자신을 내맡겨야 합니다.★★
오,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여!
당신이 행하시는 경이로움은 다 끝난 것같이 보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옛적에 행하셨던 일들을 모방하고
과거에 하셨던 말씀들을 반복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옴니아.보조.기조실
오,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여!
당신이 행하시는 경이로움은 다 끝난 것같이 보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옛적에 행하셨던 일들을 모방하고
과거에 하셨던 말씀들을 반복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의 활동이 사그라들고 말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는 신선한 사고들과 새로운 고통들, 새로운 활동들을 끊임없이 생겨나게 하는 원천이며
또 새로운 태초의 예언자들, 사도들, 성인들을 보내주는 샘이기에
그들은 자기들 시대에 앞서서 이미 쓰여진 어떤 것이나 이루어 놓은 어떤 것을
모방하고자 하는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고
단지 당신의 비밀스러운 인도하심에 자신들을 계속해서 내맡기는 가운데
고유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초세기"와 "성인의 시대"에 대해 늘 듣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것을 말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시대를 포함하여 모든 시대 안에서 하느님의 뜻은
각 사람을 성화시키고 또 각 사람에게 초자연성(超自然性)을 부여하는 가운데 매순간 일하십니다.
@옴니아.보조.기조실
옛적에 하느님의 뜻에 자신들을 내맡기는 비밀스러운 방법들이
지금에 와서는 그저 고리타분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와 같은 시대에
성인들은 매순간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비결을 지니고 있었을까요?
하느님은 당신에게 스스로를 완전히 내맡기는 모든 영혼들에게
당신의 은총을 세상 끝 날까지 계속해서 선사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까?
오, 찬양하올 사랑이여,
영원하고 한없는 결실과 경이로움을 베푸시는 분이시여!
당신은 제가 필요로 하는 모든 지식과 학식을 가져다주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은 제가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고 고통 받는 모든 것을 감싸주십니다.
당신은 저로 하여금 당신의 일하심을 연구하는 것이 아닌,
모든 일 안에서 당신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 선조들이 걸었던 오래고도 충성스러운 길을 따름으로써
저는 그들처럼 빛을 받아 생각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따르고 인용하며 모방하려는 전부입니다. ]
사랑하는 아버지,
아브라함, 성모님, 예수님의 내맡김이야 말로
제가 인용하며 모방하려는 전부여야 함을
거내영을 통하여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옴니아.보조.기조실
그것이 이 강의에서 말하는
현재에 계합함이며, 깨달음이며,
거지 짓을 멈추고 황금 상자를 활용하는 일이며,
물과 같이 마음을 경영하는 일이며,
<power of now> 로 사는 길이며,
저를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거룩한 도구되는 삶임을 확실히 알았사오니,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저를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