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는 강에서도 살고 바다에서도 산다. 가을이나 겨울에 민물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하구에 알을 낳고, 그 알에서 깬 어린 물고기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 봄과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깊어지면 다시 바다로 간다. 다 자라면 길이가 일미터쯤 되는 농어는 등쪽이 회색빛과 청록색을 띠며 살빛은 다른 생선에 견주어 푸른빛을 낸다. 그런 농어는 비싼축에 드는 생선이나 입에 들어가면 그 비싼값을 톡특히 하니 철이 되면 별러서 호사를 해 봄직하다. 농어로 해먹을 수 있는 것들로는 여느 생선과 마찬가지로 찜, 찌개, 젓갈, 회가 있다. 이제 곧 농어철이니 그 비싼 생선으로 젓갈이야 못 담글망정 한 마리 사다가 우리식으로 어회도 쳐먹고, 회치고 남은 것들로 매운탕 한 그릇을 끊여 봄이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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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국의 역사 소설에서였던가 한 신하가 임금께 송강의 농어회 맛을 못 잊어 고향으로 돌아가겠노라고 아뢰는 대목을 본 적이 있다.
거기서 농어회가 어지러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려는 핑계에 지나지 않았을 터이나 그만큼 맛이 뛰어남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농어는 강에서도 살고 바다에서도 산다. 본디 가을이나 겨울에 민물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하구에서 알을 낳고, 그 알에서 깬 어린 물고기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 봄과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깊어지면 다시 바다로 간다. 그러지만 줄곧 바다에서만 살기도 해서 우리나라의 농어는 거개가 바다 특히 황해에서 잡힌다.
다 자라면 길이가 일 미터쯤 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대충 그 반쯤 되는 것들이다. 몸뚱아리의 생김새는 "생선처럼" 생겼으며, 머리가 다른 생선에 견주어 큰 편이고 주둥이가 뾰족하고 아래턱이 위턱보다 튀어나와 있다. 등쪽이 회색빛과 청록색을 띠며, 등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가 발달되어 있어 매우 강해 보이는데 아닌게 아니라 게나 새우 같은 갑각류나 조개종류 그리고 작은 물고기 들을 잡아 먹고 산다.
혼인한 지 십년째에 접어들어 이제 제법 부엌 살림에도 이골이 난 서울 성북동에 사는 권 성택 씨는 가끔씩 수산 시장에 나가면 회거리를 사 온다. 남편이 워낙 회를 즐기다 보니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까지 덩달아 해삼이니 멍게니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엄마가 시장에 간다는 날이면 샌성회를 기다리며 입맛을 다시는 판이라 철따라 제맛 나는 싱싱한 생선을 서러 새벽 수산 시장에 가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는 흔히 알려진 도미, 전어, 숭어, 은어, 뱅어, 광어 따위 말고도 농어나 웅어, 준치로도 회를 마련한다. 요즈음은 광어가 들어가고 농어 철이 막 시작될 무렵이다. 그것들이 모두 비싼 축에 드는 생선이나 입에 들어가면 그 비싼 값을 톡톡히 하는 것들이라 철이 되면 별러서 호사를 해 봄직하다.
권 성택 씨가 상에 올리는 생선회는 흔히 일식집이나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맛볼 수 있는 제법 큼직하게 썬 일본식 회가 아니라 옛날부터 먹어 오던 방법대로 생선을 얇게 저며 다시 채를 친 것이다. 친정부모 또한 회를 즐겨 시집오기 전에 생선마다 조금씩 특징이 있는 회 뜨는 법만은 확실하게 배워 온 터이며, 요새도 집에는 늘 숫돌에 잘 갈린 얇은 칼이 준비되어 있다.
이제 권 성택 씨가 농어로 회를 뜨는 모습을 살펴보자.
어떻게 해 먹더라도 싱싱함이 중요함은 마찬가지이지만 회를 뜰 생선은 특히 더 싱싱해야 한다.
바다에서 막 건져올린 생선이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이 좋겠으나 대처에 가만히 앉아서 그런 것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우선 냉동한 생선은 반드시 피할 것이며, 비록 숨은 멈춘 것이라도 눈망울이 또랑또랑하고, 비늘이 다 제대로 붙어 있으며 , 아가미를 들춰보아 빨간빛이 선명하고 냄새가 없는 것을 골라야 한다.
싱싱한 농어에서 피를 빼고 비늘을 깨끗이 긁어 낸 다음에 아가미 뚜껑을 들춰 아가미를 들어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낸다. 그 다음에 칼질을 하는데 그 순서는 이렇다.
농어를 도마 위에 뉘고 꼬리에서 머리쪽으로 살을 뜨되 아가미 가장자리 가운데에서 배 가운데까지 눈대중으로 쳐 본 줄을 넘지 않게 뜬다.
그러기를 그 뒷편에서도 뒤집어 놓고 똑같이 한다. 껍질이 붙은 채로인 살이 두 도막이 나왔다.
그 다음에 그것들을 껍질이 붙은 도마 쪽으로 가게 놓고 그 껍질을 벗기는데 먼저 꽁지 쪽에서 조금 껍질을 벗겨내고 그것을 잡고 칼을 뉘어 머리 쪽으로 밀면 칼만 웬만큼 잘들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놀랍도록 잘 벗겨진다.
이번에는 순 살 두 도막에서 가시가 있는 가운데 부분을 잘라낸다. 그러면 크고 작은 도막이 저마다 두 개씩 생겼다. 일본의 여느 "사시미"는 그런 뒤에 그냥 한입에 들어갈 만한 크기로 고르게 썰지만, 한국식 어회를 칠 때는 좀 다르다.
그 도막들에서 조금 도톰하게 포를 뜨듯이 살을 떠내어 그것들을 모아 채를 써는 것이다. 참기름을 조금 치고 손가락으로 그것들을 조물조물 무치면 그것이 한국식 농어회이다. 참기름을 치는 것은 고소한 맛을 더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그리하면 조금 시간이 지나도 맛이 변치 않는다.
그처럼 채쳐 무친 농어의 살은 빛깔이 다른 생선들에 견주어 파르스름하고 초고추장을 찍어 먹으면 맛이 고소하면서 담백하며 씹을 때에 쫄깃쫄깃하다.
권 성택 씨는 욕심 같아서는 농어로 젓갈을 담그고 싶으나 워낙 값비싼 생선이라 감히 엄두를 못 낸다. 그렇지만 시집 오기전에 친정에서 먹어 본 농어젓을 넣고 담근 겨울 김치의 맛을 생각하면 입에서 군침이 돈다.
그가 처녀적에 보고 눈으로 익혀 둔 농어젓 담그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농어 한짝을 사다가 비늘도 긁지 않은 채로 대소쿠리처럼 물이 잘 빠지는 데다 늘어 놓고 찬물을 한 두 번 끼얹는 정도로만 씻는다.
생선을 "너무 잘" 씻으면 그 고유한 단맛이 빠지니 그런다. 그것들 아가미에다가 굵은 소금을 꽉꽉 채워 넣고 항아리에 담고 또 굵은 소금을 농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넣고 채우기를 켜켜로 되풀이한다. 한창 농어가 성어철인 유월쯤에 그처럼 젓을 담가 그늘에 두면 김장철에는 폭삭아 여간 달지 않다. 그것을 꺼내어 농어살은 적을 떠서 김치 속에 넣고, 나머지 대가리, 뼈 따위는 푹 고아 체에 받쳐 김치국물을 하면 썩 달다.
아무튼 젓갈이야 욕심대로 못 담근다는 권 성택 씨가 농어회를 뜨고 남은 것으로 끓이는 농어 찌개 또한 일품이다. 농어회 뜨고 남은 것을 가시까지 몽땅 넣고 국물을 바특하게 잡아 고추자을 풀고 호박을 듬성듬성 썰어 넣고 끓이는데 농어는 좀 비린 편이라 양념을 할 때에 생강을 좀 넣어 비린 맛을 없앤다.
처녀적부터 음식을 즐겼던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만큼 남도 자기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 주기를 바라니, 그가 요리에 쏟는 관심은 각별하다.
남들처럼 특별히 시간내어 "요리학원"을 다니지 않았어도 워낙 본 것이 많고 타고난 눈썰미와 솜씨가 있어서 유난히 잘 차리지 않아도 어쩌면 끼니 때에 불쑥 찾아온 이로부터 "이 집은 날마다 잔치인가"하는 칭찬을 심심찮게 듣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