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어머니
10장 신(神)세계를 향한 위대한 도전
2. 흑진주의 눈물, 하나님의 품에 안기다
1 흔히들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가면 빨간색과 황토색이 더 많습니다. 땅은 빨갛게 드러나 있고, 사람들이 사는 동네는 하루 종일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모래가 쌓여서 황토색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은 늘 힘겹기만 합니다.
2 유럽 사람들은 착취만 했을 뿐 아프리카에 베푼 것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을 '영혼이 없는 인간'이라 하여 노예로 끌고 가기만 했습니다, 그들을 위로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살아가는 방편에 도움을 준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구원의 말을 들려주는 사람은 더구나 없었습니다.
3 나는 1970년대 여름에 아프리카에 첫발을 들였을 때부터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가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들이 연이어 건너가 교회를 세우는 일은 뒤로 미룬 채 작으나마 학교를 짓고 치료소를 만들고 공장을 세운 것도 삶을 더 낫게 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일들은 당장의 배고픔은 면하게 해주었음에도 마음속에 있는 의문을 풀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4 아프리카 사람들은 통일교회 선교사와 목사들을 붙잡고 늘 물었습니다.
"왜 우리들은 이렇게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나요?"
"참부모님은 언제 우리를 만나러 오십니까?"
"참부모님이 정말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아프리카에 대해 참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5 그들의 간곡한 애원은 바다 건너 내 귀에도 들려왔습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프리카에 갔지만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너무나 많았고, 나라마다, 부족마다 처한 형편이 다 달라 한 말씀으로 들려주기도 난망했습니다. 어떤 나라는 영어를 쓰고 어떤 나라는 프랑스를 쓰고, 또 어떤 나라는 카톨릭신자가 많고 어떤 나라는 이슬람교인이 많아서, 같은 얼굴색임에도 서로 데면데면했습니다. 종족분쟁으로 십수 년간 피 흘리는 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상처를 보듬고 하나의 마음으로 뭉치게 할까,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프리카의 모든 정치지도자들과 부족장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6 2018년 1월 18일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세네갈 다카르의 압두디우프국제센터(CICAD)에서 '신(神)아프리카: 공생, 공영, 공의와 보편적 가치'라는 주제로 '아프리카서밋 2018'을 개최했습니다. 마키 살 (Macky sall) 세네갈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과 총리, 국회의원들이 나의 초청에 응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북쪽에 있는 알제리부터 가장 남쪽에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55개 나라에서 1,2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그토록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대륙 역사상 처음이었습니다.
7 한국은 동장군이 기승을 부려 온 나라와 사람들이 꽁꽁 얼어붙었지만 아프리카는 햇살이 뜨거우면서도 종일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토록 갈망했던 참어머님이 찾아오셨다고 반기면서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 연설이 끝난 후 아프리카에서 활발히 펼쳐지고 있는 새마을 운동과 세계평화고속도로, 선학평화상이 소개되었습니다. 또한 나의 후원으로 세계평화국회의원연합(IAPP), 세계평화종교연합(IAPD), 세계평화족장연합(ICAPP)도 만들어졌습니다.
8 그날 저녁 한국의 자랑인 리틀엔젤스가 축하공연을 했습니다. 장구춤, 북춤, 부채춤, <시집가는 날> 공연과 <아리랑> 등 우리나라 전통춤과 노래를 선보일 때마다 청중들은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세네갈 국가에 이어 세네갈의 국민가수 이스마엘의 노래 <디비디비렉(Dibi Dibi Rek)>을 부르자 그 청아한 노랫소리에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엉엉 소리 내며 우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노래 하나로 사람들은 한마음이 되었고, 아프리카에 새로운 희망과 기쁨을 안겨 준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9 다음날 나는 고레섬으로 떠나는 배에 올랐습니다. 슬픔과 비통의 땅이었던 아프리카를 해방, 해원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레섬 노예수용소는 2층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2층에는 주인인 백인들이 거주했습니다. 반면 아프리카 많은 곳에서 잡혀 온 흑인 노예들은 배에 실려 나가기 전까지는 1층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은 현재 관광객을 위해 보수가 되었음에도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야 할 정도인 데다 채광이 되지 않아 마치 음습한 토굴과 같습니다.
10 고래섬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세계 정상이나 지도자들은 주로 2층을 관광하고 돌아가는 것이 관례입니다. 하지만 나는 1층 '돌아오지 못하는 문'에 손을 얹고 노예 해원을 위해 간곡한 기도를 했습니다. 당시 함께 참석했던 고레섬 시장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통곡했습니다. 이미 생을 달리한 영혼을 해원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심정을 위로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인류 구원의 사명을 지닌 독생녀의 간구를 통해서 가능한 일입니다. 침묵에 잠긴 수용소 돌벽을 마주하고 이제껏 그 누구도 끊어 내지 못한 아프리카의 비참한 억압의 사슬을 영원히 끊어 냈습니다.
11 수용소 건너편의 작은 광장에는 성모마리아 동상이 있고 그 옆의 노란 벽에는 몇 개의 손바닥만 한 명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섬을 찾아온 세계 유명인들의 방문 명패였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명패 옆에 내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붙였습니다. 세네갈 대통령과 국민들의 간구로 내 명패가 붙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습니다.
"슬픔의 땅 아프리카에 따뜻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500년 동안 짊어진 고통을 해원해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작은 명패 하나로 은혜를 다 갚을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를 위한 귀한 발걸음을 길이길이 기억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12 육지로 돌아가는 배를 기다리며 나는 궁금증이 일어 섬 주민에게 물었습니다.
"배는 하루에 몇 번 다니나요?"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다녀요."
"밤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요?"
"밤새 끙끙 앓다가 아침이 되어야 육지로 갑니다."
"그러다가 화급하게 생명에 위험한 일이라도 생기면 ·······?"
"그렇지 않아도 그것이 큰 걱정이에요. 이곳에는 병원도 없고, 의사가 없고 ········."
13 나는 병원선을 사주마고 약속했습니다. 육지로 돌아오자마자 응급용 배를 구입해서 고레섬에 기증했습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는데, 단지 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또 생명을 희생당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14 아프리카는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습니다. 자연은 아름답고 풍요롭지만 사람이 사는 곳은 척박합니다. 그래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착하고 온순하며 부지런합니다. 나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볼 때마다 흑진주를 떠올립니다. 모나지 않고 둥글고 작은 흑진주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흑진주를 닮아 모두가 빛이 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실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