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방 탈출 기념'하던 이재명 '與 대선후보'로 [포착]최민우 입력 2021. 10. 10. 18:30 댓글 72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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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이재명 캠프 제공
“기회보다 위기가 더 많았던 흙수저 비주류 출신이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성과를 만들어 온 저 이재명이야말로 위기의 대한민국을 희망민국으로 바꿀 수 있다습니다”(1일 출마선언문)
10일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경기지사(56)를 관통하는 단어는 ‘비주류 흙수저’이다.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해 공장에서 소년공 생활을 했던 그는 검정고시를 통해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고, 변호사를 거쳐 이제 여당의 대선후보가 됐다.
이 지사에게 가난은 정치적 자산이 됐다. 2017년 대선 때 “나는 흙수저보다 더 낮은 무수저”라며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이 지사의 후원회 이름은 ‘흙수저 후원회’였다. 정치적으로도 그는 자신을 ‘변방의 장수’로 칭할 만큼 특정한 계보나 조직이 없는 ‘비주류’다.
이 지사 캠프가 이날 공개한 사진들에는 그런 이 지사가 걸어온 고단한 삶의 흔적이 담겨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1978년 고입 검정고시 응시원서 사진. 이재명 캠프 제공
이 지사는 1963년 10월 경상북도 안동시 예산면 도촌리 지통마을에서 5남4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가난에 힘이 부쳐 그가 태어난 날조차 헷갈렸다고 한다. 그는 산나물을 캐 먹으며 겨우 주린 배를 채웠다고 한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1980년 성남으로 이사온 지 4년 만에 지하를 벗어나 처음 1층으로 이사한 날. 가족들과 밥 나누어 먹는 장면을 셋째 형님이 촬영한 사진. 이재명 캠프 제공
그는 삼계국민학교(현 삼계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족들과 함께 경기도 성남 상대원 시장 뒷골목 반지하 단칸방으로 이사했다. 일찍 떠난 누나 둘을 제외한 여덟 식구가 지내기에는 턱없이 좁았다.
1980년 성남으로 이사온 이 지사의 가족이 4년 만에 지하방을 벗어나 처음 1층으로 이사한 날 밥을 먹으며 찍은 사진을 보면 그의 어려웠던 시절을 반추해볼 수 있다.
1978년 이재명 경기지사가 야구 글로브 공장에서 소년공으로 일하던 시절. 그 해 4월 말 고입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해 8월 합격. 이재명 캠프 제공
이 지사는 생계를 위해 중학교 입학도 포기한 채 일에 매달렸다. 그는 성남 상대원 공단 공장 곳곳을 전전하며 일당 400원을 받기 위해 특근과 야근, 철야를 반복했다. 그가 고입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해 합격한 1978년엔 야구 글로브 공장에서 소년공으로 일하던 시절이다.
이재명이 6급 장애 판정으로 군 복무를 면제받게 된 것도 소년공 시절 사고 때문이었다. 그는 다섯 번째로 취직한 ‘대양실업’에서 프레스에 왼팔 손목 관절이 눌리는 사고를 당했는데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왼팔은 손목이 뒤틀린 ‘굽은 팔’로 성장했다.
1982년 이재명 경기지사가 중앙대 입학식에서 어머니와 함께 있는 모습. 이재명 캠프 제공
이 지사는 이후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1982년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4년 뒤인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1987년 사법연수원 동기들과 야유회에 참석했던 모습. 이재명 캠프 제공
‘6월 항쟁’이 있었던 1987년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이 지사는 군부독재 횡포에 맞서는 동기들을 보고, 광주 5·18 항쟁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판·검사 임용 대신 인권변호사를 목표하게 됐다.
1990년대 중후반 이재명 경기지사의 인권 변호사 시절 토론회에 참석한 모습. 이재명 캠프 제공
청년 변호사 이재명은 1989년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인근 이천시와 광주시의 노동상담 소장을 지내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활동했다. 이 지사가 음대 졸업생이던 부인 김혜경 씨를 처음 만난 것도 이때다. 이 지사는 1995년 성남시민모임(현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창립 구성원으로 참여하면서 시민운동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2004년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가 성남시의회에서 '날치기 부결'된 후, 의회 본회의장에서 오열하는 모습. 이재명 캠프 제공
10여년간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던 이 지사는 2003년 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주도하며 성남시 10만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를 바탕으로 2004년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발의했으나 성남시의회는 토론 절차도 없이 이를 ‘날치기 부결’시켰다.
이 지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의회 결과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고발당해 수배를 당하기도 했다.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촛불집회에서 이재명 경기자사가 문재인 당시 후보와 함께 있는 모습. 이재명 캠프 제공
민주당에 입당한 이 지사는 이 지사는 2006년 성남시장 선거와 2008년 총선 낙선 등을 겪었지만 제19·20대 경기도 성남시장을 지내며 주목받았다. 특히 2016년 11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며 전국적 인지도를 얻고 이듬해 제19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3위를 기록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서울 합동연설회에 참석하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choijh@kmib.co.kr
이 지사는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 토론회에서 ‘친형을 강제 입원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돼 위기를 겪었지만,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으며 지사직을 유지했다.
기사회생한 이 지사는 핵심 현안마다 목소리를 내며 대권 행보에 나섰다. 경선 과정에서 지지율이 꾸준히 오르면서 유력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최근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이 불거졌지만, 오히려 지지층 결집 효과로 이어지면서 대세론에 쐐기를 박았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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