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은 그래놓고는 능청스레 주유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주유 또한 손책이 죽어가면서 강동의 바깥일을 맡긴 사람,
공명의 몇 마디 말에 바로 걸려들지는 않았다.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나
겉으로는 별다른 기색 없이 공명에게 물었다.
"떠도는 말을 어찌 다 믿겠소?
조조가 대교(大壽)와 소교를 얻고 싶어하는 다른 증거가 있다면 대보시오"
"조조의 아들 중에 식(植)이 있는 데
자(字)를 자건(子建) 이라 쓰며 제법 문장을 이루었소.
조조는 일찍이 식(植)에게 명해 동작대부(銅雀臺賦)를 쓰게 한 적이 있는 바
그 속에 바로 저희 집안이 천자의 집안이 되는 것과 2교(二喬) 얻기를 서원(誓願)한 게 있소이다"
공명의 그 같은 대답에도
주유는 여전히 아무런 내색 없이 묻기만을 거듭했다.
"그 동작대부인가 뭔가 하는 부(理)를 공은 외우고 있소?"
"그 문장이 하도 화려하고 아름답기에
사랑하게 되어 일씩부터 외어 두고 있소이다"
주유의 속마음을 뻔히 들어다보면서도
공명 또한 대수롭지 않은 일 말하듯 그렇게 한가로운 대답을 했다.
☞ 그리고 주유가 한번 들려주기를 청하자 목소리를 가다듬어 읊기 시작했다.
명후를 따라 노닐음이여 높은 대에 오르니 정취 더욱 즐겁다.
태부(太府) 넓게 열려 있음이여 성덕(成德)이 황송함을 본다.
높이 세운 문 불쑥 솟아 있고 두 대궐 푸른 하늘에 뜬 듯하다.
중천에 서서 황홀하게 보니 서성(西城)부터 공중누각이 잇대었구나.
장수의 긴 흐름을 끼고 멀리 동산의 과일 여무는 걸 바라본다.
두 대를 좌우에 벌려 세우니 하나는 옥룡(玉龍)이요, 하나는 금봉(金鳳)이다.
이교(二壽)를 동남(東南)에서 끌어와 아침저녁으로 함께 즐기리라.
☆☆☆
공명이 거기까지 읊어갔을 때였다.
주유가 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으켰다.
"조조 이 늙은 역적 놈이 너무 나를 욕보는구나!"
주유는 불길이 이는 눈길로 조조가 있는 북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원래 조식의 동작대부(鋼省틀賦)에는
두 다리(二橋)를 동서에 놓아 잇고 인 것을
공명이 <교씨집 두 딸을 동남에서 끌어와서>로 슬쩍 바꾸고
그 다음에는 생판 없는<아침저녁으로 함께 즐기리라>는 구절까지 집어넣은 것이었다.
일부러 남의 글까지 바꾼 것으로 보면 분명 그걸로 노린 게 있었으나
공명은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는 체하고 주유의 속을 한번 더 뒤집어 놓았다.
놀란 얼굴로 일어나 주유를 말리며
능청스레 묻는 것이었다.
"지난날 흉노족이 자주 국경을 침략하니 한의 천자는
공주를 그 우두머리에게 시집 보내가며 까지 화친을 했소이다.
그런데 장군은 어찌하여 지금 한낱
백성의 두 딸을 가지고 이토록 애석해 하십니까 ?"
그러자 주유가 버럭 소리 질러 대답했다.
"공은 모르는 소리하지 마시오.
대교(大壽)는 곧 돌아가신 손백부의 부인이시고
소교(小喬)는 바로 이 주유의 아내 되는 사람이외다"
바로 공명이 노린 것이 그것이었다.
강동의 대단찮은 선비까지 출신내력을 훤히 알고 있는 공명이
어찌 손책과 주유의 그 유명한 혼사를 모르겠는가.
다만 알면서 그 일을 가지고 주유를 격동시키려 들기에는
민망한 구석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칫 효력도 줄어들까 싶어
짐짓 모르는 체했을 뿐이었다.
"양(공명)이 참으로 그걸 알지 못하고 잘못 어지러운 소리를 한 것 같습니다.
실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갈량은 펄펄 뛰는 주유에게
거짓으로 두렵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죄를 빌었다.
그러나 주유가 워낙 성이나 제갈량을 의심할 틈이 없었다.
이를 갈며 다만 조조를 한할 뿐이었다.
"내 맹세코 그 늙은 역적 놈과는 한 하늘을 이지 않으리라!"
그런 주유를 보고 마음을 놓은 제갈량이 한번 더 성난 범의 콧등을 튀겼다.
"그렇지만 그와 싸우고 안 싸우고의 결정은
나라와 백성들에게 아울러 몹시 크고도 무거운 관련이 있습니다.
세 번 생각하시어 뒷날에 뉘우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나는 죽은 손백부로 부터 뒷일을 당부 받은 사람이오.
어찌 조조 따위에게 몸을 굽혀 항복할 까닭이 있겠소?
다만 지금까지 항복을 말해온 것은
여럿의 속마음을 떠보기 위해서였을 따름이외다.
나는 이미 파양호(鄕陽湖)를 떠날 때부터
북으로 치고 올라갈 마음을 먹고 있었소.
비록 칼과 도끼가 머리에 떨어진다 해도 이 뜻은 변함이 없을 것이오.
바라건대 공명도 한 팔의 힘을 빌려주시어 함께 조조를 깨뜨리도록 합시다"
먼저 공명을 격동시켜 무언가를 얻어 보려던 처음의 뜻은
깨끗이 잊고 깨끗이 속마음을 드러내는 주유의 말이었다.
분노가 지나쳐 주유가 오히려 차게 가라앉는 걸보고
공명도 더는 말과 뜻을 비웃지 않았다.
문득 엄숙한 얼굴로 주유를 바라보며 진정 섞어 말을 받았다.
"장군께서 버리시지 않는다면 개나 말의 힘일지라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떨지 않아 적을 내쫓을 계책을 듣게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내일 주공을 들어가 뵈옵고 곧 군사를 일으키도록 하겠소"
주유는 다시 한번 자신의 뜻을 다짐해 밝히고 공명과 노숙을 내보냈다.
☆☆☆
다음날이 되었다.
날이 밝기 바쁘게 손권은 문
무의 관원들이 기다리는 대청으로 나가 당(호)에 올랐다.
왼편으로는 장소와 고옹을 비롯한 문관(文官) 30여명이 늘어서고
오른편으로는 정보와 황개를 비롯한 무관(武官) 30여 인이 늘어섰는데
한결같이 의관을 가지런히 하고
엄숙하게 칼을 찬 모습으로 서 있었다.
오래잖아 주유가 들어와 손권에게 예를 하자
손권은 주유에게 위로의 말부터 건넸다.
주유는 손권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바로 현안에 들어갔다.
"요사이 듣자니 조조는 군사를 이끌고 한상(漢上)에 이르러
이곳에 항복을 권하는 글을 보내왔다는데, 거기 대해 주공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그러자 손권은 자신의 뜻을 밝히기에 앞서
조조에게서 온 격문을 가져다 주유에게 보여주었다.
다 읽고 난 주유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늙은 역적 놈이 우리 강동에는 사람이 없는 줄로 여기는구나.
어찌 감히 이토록 우리를 깔본단 말이냐!"
"그렇다면 장군은 어찌했으면 좋겠소?"
주유의 태도를 보고 손권이 도리어 물었다.
그러나 주유는 대답 대신 되물었다.
"주공께서는 그 동안 문무의 관원들과 의논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연일 이 일을 의논했으나 어떤 이는 항복하자 하고
어떤 이는 싸우자하여 한가지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소.
그 때문에 공근을 불러 단번에 결정을 지으려는 것이오"
"항복을 권하는 이들은 누구 누구였습니까 ?"
주유는 뻔히 알면서도 다시 물었다.
"장자포를 비롯한 몇 사람들이 그리 뜻을 밝혔소"
그러자 주유는 이번에는 장소를 돌아보며
전날 이미 들은 까닭을 한 번 더 물었다.
"바라건대 선생께서는 항복을 주장하게 된 까닭을 들려주시오"
"조조는 천자를 끼고 사방을 치는데
움직일 때는 반드시 조정을 받든다는 명분을 내세웁니다.
거기다가 또 근래에는 형주를 얻어 위세가 더욱 커졌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원래 우리 강동이 조조에게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장강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형주가 조조에게 떨어짐으로써
그 장강을 조조와 나누게 되고
크고 작은 싸움에도 천 척이 넘게 그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 조조가 뭍과 물로 군사를 몰아 오는데 어찌 감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잠시 항복을 하고 뒷날을 도모함만 같지 못합니다"
하지만 장소에게 뜻밖인 것은 그 말에 대한 주유의 대꾸였다.
전날의 그 은근함은 간 곳 없이 날선 목소리로 주유가 말했다.
"실로 미덥지 못한 선비의 소리구려!
강동은 나라를 연 이래 이미 3대가 지났소이다.
어찌 하루아침에 3대의 공업(功業)을 없애 버린단 말씀이오?"
"이 계책 말고도 달리 길이 있단 말이오?"
듣고 있던 손권이 슬며시 장소를 대신해 주유에게 되물었다.
주유가 대쪽을 쪼개는 듯한 기세로 말했다.
"조조가 비록 이름은 한식 승상이나 실은 한의 흉악한 도적입니다.
그에 비해 주공께서는 군사를 부림에 귀신같고 영웅의 재질을 갖추신 데다
부형(父兄)께서 남겨주신 기업(基業)에 의지하고 계십니다.
군사는 날래고 양식도 넉넉한데
어찌하여 떳떳하게 천하를 주름잡으며
나라를 위해 잔혹한 무리를 없애려 하지는 않으시고
오히려 역적에게 항복한단 말씀입니까.
뿐만 아니라 지금 조조는 비록 많은 군사를 이끌고 왔다 하나
여러 가지로 병가(兵家)에서 꺼리는 일들을 많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북쪽이 아직 평정되지 않아 마등(鳥艦)과 한수(緯遂)가
근심거리로 남아 있는데도 오래 남쪽을 치고 있는 것이 그 첫째요,
북쪽 군사는 수전(小戰)에 익숙하지 못한데
말(烏)을 버리고 배에 의지해 동오와 싸우려드는 게 그 둘쨉니다.
또 한참 추운 겨울철에 군사를 움직여
관마를 먹이고 재우는 데 쓰이는 풀이 없는 게 그 셋째요,
멀리 중원의 군사를 남쪽의 강호로 끌고 와
기후풍토와 물이 맞지 않은 까닭에 병이 많이 날 것이니 그것이 넷째입니다.
조조는 이와 같은 군사를 부리는 사람이면
누구나 꺼릴 일을 한꺼번에 몇 가지나 어기고 있습니다.
비록 데리고 온 군사가 만다 해도 반드시 패하고 말 것이니
주공께서 조조를 사로잡을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오늘입니다.
이 주유에게 정병 수천만 주신다면
그들과 더불어 하구로 나아가 주공을 위해 조조의 대군을 깨뜨려 보이겠습니다.
실로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이요
땅을 뒤집을 듯한 배포였다.
그리고 동시에 손권이 은근히 애태워 기다리던 대답이기도 했다.
드디어 마음속에 뚜렷한 결단을 얻은 손권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조조 그 늙은 역적 놈이
한(漢)을 없애고 스스로 천자의 자리에 앉으려 마음먹은 지는 오래되었으나
두 원씨와 여포. 유표 그리고 이 몸이 두려워 감히 그렇지 못했다.
이제 다른 영웅들은 모두 죽고 오직 이 몸만 남았으되
맹세코 이 몸은 그 늙은 역적과 함께 살기를 바라지 않으리라!
마땅히 조조를 쳐야 한다고 말한 경의 말은 바로 이 몸의 뜻과 같다.
경은 실로 하늘이 이 몸에게 내리신 사람이다!"
"저는 이미 주공을 위해 한바탕 혈전을 다짐했으니
만 번 죽더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두려운 바는
주공께서 지나친 의심으로 결단을 정착시키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
주유가 손권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쐐기를 박았다.
그러자 손권은 차고 있던 보검을 뽑아 앞에 놓인 탁자(奏案)모서리를 베며 소리쳤다
"문관이든 무장이든 두 번 다시
조조에게 항복하자는 말을 꺼내는 자는 이 탁자처럼 될 줄 알라!"
행동으로 자신의 매서운 결의를 보여준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보검을 주유에게 넘겨주고 조조를 맞아 싸울 장렬을 정했다.
곧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아 전군을 거느리게 하고
정보를 전부도독,
노숙은 찬군교위(贊軍校財)로 삼은 것이었다.
"문무를 막론하고 명을 어기는 자는 이 칼로 베시오"
그 같은 손권의 영과 함께 보검을 받은 주유는
곧 여러 벼슬아치를 돌아보며 엄숙히 말했다.
"나는 주공의 명을 받들어 군사를 이끌고 조조를 깨뜨리려 한다.
여러 장수와 벼슬아치들은 모두 내일 아침 강가의 군영으로 나와 영을 받들도록 하라.
늦거나 어기는 자가 있으면
7금령과 54참의 법에 따라 처단하리라!"
그런 다음 손권에게 감사하고 몸을 일으켜 부중(府中)을 나가니
나머지 문무의 벼슬아치들도 그 서슬에 눌려 입도 한번 떼보지 못하고 흩어 졌다.
☆☆☆
그런데 여기서 한번 살펴보고 싶은 것은
동오가 조조에게 항전하기로 결정하는 데 제갈량이 한 정사(正史)에서의 역할이다.
제갈량이 손권의 결의를 다져준 것은
정사(正史)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고 노숙과의 관계도 대강은 맞다.
그러나 동오의 여러 선비들과 차례로 설전을 벌여 그들을 굴복시킨 것이나
이교(二喬)의 일로 주유를 격동시킨 것은 모두 연의(舊義)를 지은이가 꾸며낸 듯하다.
제갈량을 미화하고 과장하려는 의도는 넉넉히 알 만하나
주유쯤이 되면 아무래도 억울할 성싶다.
주유가 원래 용렬한 위인이 아닌데 제갈량의 몇 마디 말에 격해
국가의 대사를 감정에 따라 결정한 것으로 되고 만 까닭이다.
실상 동오의 항전, 한 걸음 더 나아가 적벽(赤壁)싸움의 빛나는 승리는
주유에게 으뜸가는 공이 돌아가야 함을 밝힌다면 그의 넋이라도 위로가 될까.
어찌 됐건 조조와 맞서 싸우는 것으로 동오의 국론을 결정한 주유는
거처로 돌아오자마자 공명을 청해 들였다.
이제는 한편이 되어 싸우게 된 그와 더불어 앞일을 의논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