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逆) 남파랑길(네 번째 - 3)
(회진항∼보성다원, 2023년 5월 27일-28일)
瓦也 정유순
숙소가 있었던 관산읍 방촌리 국도 23호선 도로변, 좌우측에 화강석으로 된 2기의 석장승이 마주보며 서있다. 이중 서쪽에 위치한 장승은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으로 표시되어 있고, 이 장승과 마주하는 동쪽의 장승은 아무 표시가 없으나 미륵석불(彌勒石佛) 같은 모습으로 짝을 이룬다. 장승은 흔히 신앙의 대상으로 마을의 입구에 세워진다. 밖에서 들어오는 재앙을 막고 마을의 안팎을 구분해주며, 길가에 세워 이정표 역할도 하였다.
<장승 - 진서대장군>
장승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장승은 곧 탈의 기원이며, 바로 단군 할아버지의 얼굴”이라고 주장한다. 아무튼 장승은 동네 어귀에 서서 액을 막는 마을의 수호신이다. 장승은 무섭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하다. 슬프게 보면 매우 슬픈 얼굴이며, 기쁘게 보면 한없이 기쁜 얼굴이다. 한편 이러한 표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탈이라 부르는 가면의 표정들과도 똑같다. ‘장승은 탈의 기원’이라는 주장은 입증되지 않았지만, 장승과 탈이 어느 정도 비슷하다.
<여장승>
아침 숟가락을 놓자마자 장흥군 용산면 덕암리 원등마을로 이동한다. 덕암리(德岩里)는 억불산(億佛山) 남쪽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남상천이 마을 옆으로 흐른다. 덕암은 마을 뒤에 있는 덕바우, 덕암, 벼락바우, 벽영암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자연마을로는 덕암, 원등마을 등이 있다. 원등마을은 원집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조선시대 남하면사무소가 있었던 곳이라 하여 남하라고도 불렀다. 문화재로는 지석묘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등마을회관>
갈 길은 멀고 시간은 제약되어 있어 다시 소등섬이 보이는 용산면 상발리남포마을로 이동한다. 소등섬은 남포마을 앞에 떠있는 작은 무인도다. 먼 바다에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나 가족들을 위해 호롱불을 켜놓고 그 불빛을 보고 무사히 귀환하기를 빌었다하여 소등섬이라 불린다. 소등섬은 일출 명소이며 득량만의 떠오르는 해나, 지는 해와 같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이 있으며, 현 소등섬은 하루에 두세 번 모세의 기적을 체험하는 신비로운 섬으로 바닷물이 빠지면 도보로 5분 정도 걸린다.
<소등섬>
남포(南浦)마을은 본래 죽포(竹浦)였으나 일제강점기 때 이름이 바뀌었다. 또한 이곳은 이청준의 소설 ‘축제’가 임권택 감독의 영화(1996년) 무대이기도 하다. 이청준이 그려온 ‘어머니 이야기’의 결산 편이자, 어머니를 씻기는 자식의 ‘씻김굿’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한 작품으로 ‘장례식이 단순히 망자를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산 자들의 묵은 감정이 해소되고, 화합의 새 출발이 되는 자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상발리해안의 잔잔한 파도>
섬 입구에는 기도를 올리고 있는 <소등 할머니상>과 제단, 손 편지를 1년 후 배달해주는 <행운의 우체통>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본래 소등섬은 마을에서 단(壇)을 설치해 당제와 갯제사를 모시던 신령스런 공간이었다. 당제는 음력 정월 대보름 하루 전날(1월 14일)이며, 제관(祭官)은 자기 집 입구에 황토를 깔고 왼새끼로 금줄을 쳤으며, 소등섬 역시 왼새끼를 꼬아 주위에 금줄을 치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고 한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주민들의 마음은 변함없을 것이다.
<소등섬의 빛>
남포마을을 감싼 매봉산 고개를 넘으면 정남진 대교가 기다린다. 정남진대교는 용산면 상발리와 안양면 장재도를 잇는 교량으로 길이 430m, 폭 14.5m 규모로 2022년 1월 개통했다. 이 대교는 강진, 장흥, 보성을 연결하는 남파랑길에 위치한 해상교량으로 지방도 819호선 확·포장공사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다도해의 수려한 풍광으로 걷기와 자전거 라이딩에 필수 코스로 손꼽힌다.
<정남진대교>
안양면(安良面)은 동쪽으로 보성군 회천면(會泉面), 북서쪽과 남서쪽은 장흥읍·용산면(蓉山面)이 있고, 남쪽은 득량만(得糧灣)이다. 서·북·동 방향을 연태봉(燃台峰)·억불산(億佛山)·사자산(獅子山) 등이 둘러싸고 있으며 남향으로 평야가 있다. 앞바다에는 장재도가 있으나, 인공방조제로 육지와 연결된다. 광주∼장흥 간 도로와 목포와 여수 등지로 운항하는 정기여객선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관광지로 수문해수욕장이 있다.
<장흥군 안양면>
장재도(長財島)는 장흥군 안양면 사촌리 남쪽에 있는 섬으로, 인공방조제로 육지와 연결된다. 『해동지도』(장흥)에는 장재도(壯載島)라고 표시되어 있다. 중종 때에 정국공신 정해군(貞海君) 백수장(白壽長)이 은퇴하여 서재를 짓고 살았다. 1957년에 둑을 쌓아 육지와 맞닿아 있다. 사촌리(沙村里)는 억불산과 한덕산 사이의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동남쪽에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지역이다. 모래가 쌓여있었으므로 사촌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사촌, 대룻골, 덕산, 모개나뭇골, 율산마을 등이 있다.
<사촌리어항>
<사촌리마을>
장재교를 건너면 안양면 사촌리 율산마을 앞에 펼쳐진 여다지해변에 있는 한승원문학산책길은 작가인 한승원의 문학작품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여기에 문학산책길이 조성된 것은 한승원의 집필실인 <해산토굴>이 율산마을에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평소 “내 소설의 9할은 고향 바닷가 마을 이야기”라고 말하며 고향의 언어로 창작활동을 해왔는데, 솔숲을 품은 해안과 아름다운 백사장, 물 빠진 갯벌의 활력이 생명력 넘치는 작품세계와 같다.
<한승원문학산책길>
한승원(韓勝源, 1939년 10월 13일∼ )은 장흥군 회진면 신상리 신덕마을에서 아버지 한용진(韓瑢鎭)과 어머니 박귀심(朴貴心) 사이에서 10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위로 누나 두 명과 형 한 명이 있었으며, 아래로 남동생과 여동생이 각각 세 명 있었다. 장흥중학교와 장흥고등학교,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하고 1966년 장동서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가증스런 바다>가 입선하여 등단했다.
<한승원 시비 - 시인의 무덤>
그 후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木船)>으로 당선한 뒤 소설가와 시인으로 수많은 작품을 펴냈고, 단편 <해변의 길손>과 장편 <그 바다 끓며 넘치며>·<포구> 등 고향 바다를 소재로 한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며 한국 문단에 큰 궤적을 남겼다. 1968년 광양중학교, 1969년 광주춘태여자고등학교 등에서 1979년까지 교사로 근무하며 학생들을 가르친 후 고향인 장흥군에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한승원 문학공원>
한승원에게 남해 바닷가는 한국 근대사가 압축된 곳이며, 그 안에 존재하는 억압과 해소를 표출하는 원형 상징적인 공간이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바다와 마찬가지로 운명에 구속된 채 그에 맞서는 과정에서 비극을 구현함으로써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운명과 대면하는 상태를 지향하고 있다. 그가 구사하는 토속적인 언어는 삶의 구체적인 감각과 섬세함을 극대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후 그는 ‘생명력’을 주제로, 인간 중심주의적 문명에 대한 반성과 극복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한승원의 내 할아버지 이야기>
여다지 해안을 따라 600m 남짓 이어진 산책로 위에는 한승원의 시비 30여개가 세워져 있다. 이 시들은 모두 해산토굴이 있는 여다지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율산마을에서 한승원이 내려온 뒤 쓴 작품들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책장을 넘기듯 새로운 시를 마주하니, 마치 시집 한 권을 읽는 것 같다. 한승원은 이곳에 문을 연 <한승원 문학학교>에서는 작가와의 만남의 시간도 가질 수 있으며, 문학의 담론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할 수도 있다고 한다. 장흥의 문학현장을 지나면서 지나칠 수 없는 문학의 명소가 될 것 같다.
<한승원 문학의 길>
둘째인 외동딸은 역시 소설가인 한강이며, 부녀가 모두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특히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필력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첫째인 한규호도 작가로 <받침없는 동화>를 썼다. 셋째 한동림도 등단한 작가다.
<부녀작가 한승원과 한강 - 네이버 나무위키>
한승원의 작품 중 ‘아제아제바라아제’는 강수연(1966∼2022) 주연으로 1989년 영화화되어, 제16회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감독 임권택은 성조지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제아제바라아제는 반야심경의 가장 마지막 부분으로 ‘가자가자넘어가자’라는 의미의 범어 문구다.
<아제아제바라아제의 고 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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