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음굴(淫窟), 불야궁(不夜宮)
이레 내내 내리던 비가 그치자, 대기는 초겨울 날씨로 차가워졌다. 관도
를 따라 달리는 건마의 입에서는 더운 김이 푹푹 피어 나왔다.
호북성의 최남단 지역.
백 리만 더 가면 천하대호(天下大湖) 동정호가 자리잡고 있는 지역이다.
일컬어 천마성(天馬城).
사통팔달(四通八達)한 거리에다가 동정호로 흘러드는 샛강으로 인해, 자
연스럽게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잡게 된 거대한 시진이다.
천마성 안에는 십만 호(戶)가 머물러 있는 바, 세상의 잡다한 지역이 모
조리 공존하는 듯 각 지방의 방언(方言)이 도처에서 들려 온다.
천마성의 교외 지역, 차가운 바람이 울울(鬱鬱)한 송백림(松柏林) 가득 고
엽(枯葉)을 말아 올리고 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 이럴 때 남자들은 한 잔의 술을 생각하게 되기 마련
이다.
송백림 깊은 곳에는 천여 평에 달하는 궁관(宮觀)이 세워져 있었다. 햇살
을 받아 찬란하게 반짝거리는 청와(靑瓦)가 사치의 극치를 치닫고 있다.
궁관의 시종으로 보이는 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비단옷을 걸치고 있다.
궁관의 길모퉁이에는 한꺼번에 이천 마리 말이 머물 수 있는 마방(馬房)
이 세워져 있고, 마방에서는 하루 종일 말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이 곳은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한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궁관을 일컬어
불야궁(不夜宮)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불야궁은 강호계에 꽤나 이름이 난 곳으로, 세칭 마도십궁(魔道十宮)으로
꼽히는 열 개의 특이지역 가운데 으뜸 가는 장소로 평가되고 있다.
불야궁은 황성(皇城)보다도 화려하게 치장이 되어 있는 바, 불야궁 안으
로 접어드는 사람들의 신색은 형형색색이라 할 수 있었다.
지극히 화려한 금포(錦袍)를 걸친 공자대부(公子大夫)들의 모습도 보이며,
경장(警長)에 온갖 병장기를 걸친 강호무부(江湖武夫)의 모습도 보인다.
어옹(漁翁), 도공(陶工), 장인(匠人)의 옷차림을 한 사람도 보이고 있었다.
잡다한 인물이 불야궁에 모여드는 이유는 오직 하나, 불야궁에는 승부가
있기 때문이었다.
승부(勝負)!
남아는 승부의 매력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족속인지, 뭇사람은 지
능(知能)으로 싸우고, 검 대 검으로 싸우다 못해 황금으로 전쟁을 일으킨
다.
불야궁에서의 싸움은 검패(劍牌)나 마작(麻雀), 표구를 이용한 도박이었
다.
가장 큰 승부는 마작.
어떤 자는 하룻밤 사이 이만 냥 이상을 잃고 할복 자살하며, 어떤 자는
십오만 냥이라는 거금을 딴 나머지 일약 강호거부로 발돋움한다.
불야성은 강호에서 가장 거대한 비밀 도박장이다.
비밀 도박장은 마도세력의 협박과 비호 없이는 성장하지 못하는 사업이
다.
하나, 불야궁은 호위 세력이 불분명한 가운데 이제까지 한 번도 외부의
침입을 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다.
마방 어귀.
한 청년이 노마(老馬)를 탄 채 접어들고 있었다.
그는 빛 바랜 회색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피곤하고 지친 기색이다. 그는 눈길을 내리깐 채 불야궁의 마방으로 말을
몰고 접어들었다.
마방에 붙어 있는 하인은 그의 몰골을 보자 어처구니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저런 파락호가 이 곳을 기웃거리다니…….'
하인은 유명한 도박꾼들을 대부분 알고 있다. 도박이란 마약과 같기에,
하는 사람이 계속하기 마련이다.
백면서생은 도박을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방 앞에 이르러
말을 멈추게 했다.
하인은 코를 냅다 풀어 대며 이렇게 쏘아붙였다.
"이 곳은 객잔(客棧)이 아니오. 그러니 말에서 내리지 말고 어서 돌아가
시오."
"이 곳이 불야궁이 아니더냐?"
"불야궁은 맞소."
"그럼 제대로 찾아왔군."
청년은 천천히 말에서 내렸다.
하인은 그제야 그의 얼굴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었다.
'눈썹이 희다. 빌어먹을! 새파란 놈의 눈썹이 희단 말인가?'
청년의 눈썹은 검미(劍眉)라 불릴 정도로 멋들어지게 뻗어 나가고 있었
다.
다만 그 빛깔이 눈처럼 희기에, 창백한 얼굴과 대조되어 묘한 마력을 풍
기는 것이다.
"나를 안내해라. 강호를 떠돌기 지쳤다. 이 곳에서 도박을 하며 머리를
식히고 싶어 왔다."
"입궁하려면 자금이 두둑해야 하오."
"자금?"
"금원보(金元寶)나 전표(錢票)가 있어야 하오. 불야궁은 삼 개 지역으로
구분되는 바, 도박 자금의 다과에 따라 거주지가 달라지게 되오."
하인은 퉁명스럽게 불야궁의 운영 방법을 설명했다.
은자 천 냥 이하면 축객령 아래 쫓겨나게 되며, 천 냥 이상이면 입궁이
허락된다.
오천 냥 정도를 지니고 있으면, 이품(二品)의 도박사로 분류되어 내전으
로 모시게 된다.
이품의 도박사에게는 숙식이 제공되며, 숙식은 완전 무료이다. 일품의 도
박사에게는 특실이 제공되며, 시중을 들 여인까지 딸려진다.
하인은 그러한 내력을 설명하면서 왼쪽 새끼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벼팠
다.
"호주머니에 천 냥을 지니고 있지 못하면, 이 곳에 머물 수가 없소."
하인은 그렇게 말하며 왼쪽을 힐끗 봤다.
마방 좌측에는 차일이 쳐 있고, 차일 아래에는 오십여 명의 장한이 장기
나 바둑을 두며 소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도나 검, 창 따위의 병장기를 지니고 있는 바 하나같이 우락부락
하게 생겼으며… 대부분이 얼굴에 흉측한 칼자국을 갖고 있었다.
"저들은 호의무사들. 법대로 모든 걸 처리하고 있소. 괜히 객기를 부리다
몸만 다치지 말고 어서 물러가시오. 일확천금을 노리고자 하다가 패가망
신하지 말고."
그의 말이 거기에 이를 때, 청년은 호주머니 속에서 헝겊 뭉치를 꺼냈다.
"내가 지니고 있는 건 이게 전부다. 혹 천 냥이 될 지도 모르니, 감정을
해 다오."
헝겊 뭉치는 하인의 손으로 옮기어졌다.
'젠장, 땀 냄새나는 수건에 뭐가 있다고?'
하인은 사소한 일에 휘말려들어 시간 낭비를 한다는 심정으로 헝겊을 풀
었다.
일순, 그의 눈빛이 현란한 광채에 휘어 감겼다.
"이, 이것은……?"
하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헝겊에 쌓여 있는 것은 스무 개 정도의 보석(寶石)이었다.
남해(南海)의 심해에서 자란다는 흑진주(黑眞珠)가 다섯 알, 고양이 눈알
처럼 생겼다고 해서 묘안석(猫眼石)으로 불리우는 보석이 일곱 알, 하나
만으로 일 성(一城)을 살 수 있다는 칠채신주(七彩神珠)도 두 알 끼여 있
다.
그 이외에 빛이 영롱(玲瓏)하여 안력을 희미하게 하는 보석도 보인다.
"재, 재신(財神)이시군요?"
하인의 허리는 고무 허리처럼 굽어졌다.
그는 이제까지와는 정반대되는 표정을 지으며 간사하게 말했다.
"일품실로 드시겠습니까?"
"일품실이라면 얼마의 도박을 하게 되는 곳이냐?"
"십만 냥까지의 도박입니다."
"시시하군."
"아……!"
"난 한 줌의 보석을 얻기 위해 피를 흘렸다. 후후, 네가 갖고 있는 보석
은 목숨과 바꿔진 보석이지."
"으으, 그럼… 청부살객(請負殺客)?"
하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강호에서 가장 위험스러운 자는 황금과 목숨을 바꾸는 자들이다.
그들은 대의명분을 생각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데에다가, 여차하면
살상을 해 대기에 모든 사람들이 청부살객을 꺼려하는 것이다.
"청부살인 생활이 지겨워 손을 끊을 작정이다. 난 이 곳에서 부족한 돈을
만든 다음, 천축(天竺)으로 갈 작정이다. 내가 가진 재물을 다 걸 수 있는
도박판으로 안내해 다오. 이 곳에 그런 판이 없다면 떠나겠다."
"잠,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하인은 허둥대며 장원 쪽으로 뛰어갔다.
눈썹이 흰 청년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감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걸 비웃는 냉소(冷笑)였다.
그는 일각도 되지 않아 달려온 일급 총관(總官)을 따라서 특실로 접어들
게 되었다.
특실은 아방궁처럼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각 방마다 목욕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벙어리 미녀가 안마를 하며 음
식 시중을 들어 준다.
갖고 있는 돈을 다 잃든 따든, 특실에 머무는 동안에는 제왕처럼 생활할
수가 있다.
"도박은 언제 시작되는가?"
청년은 화려한 방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나이답지 않게 매우 노련해 보였다.
"오늘 밤 안에 큰 판이 시작됩니다. 그 때, 판을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좋아."
"그럼 푹 쉬십시오."
총관은 허리를 숙여 절한 다음, 뒤돌아서려 했다.
그 때, 청년이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
"예?"
"이 곳은 여자가 드물군."
"예에?"
총관은 얼떨떨해하며 벙어리 미녀를 바라봤다. 절세미녀라고는 할 수 없
으되, 상당히 아름다운 얼굴이다. 물론 낡아 보이는 아름다움이며 퇴폐적
으로 보인다.
청년은 그녀의 용모에 대해 지극히 못마땅하다는 듯 싸늘히 꾸짖어 말했
다.
"난 여자 보는 눈이 높은 사람이야."
"죄, 죄송합니다. 나으리, 당장 다른 시녀를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총관은 쩔쩔매며 방을 물러났다.
그 후 한 시진 동안 다섯 미녀가 방으로 들어왔고, 흐느끼며 방을 나서야
했다.
총관은 불야성의 시녀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수란(水蘭)을 보내고서야
겨우 그의 웃음을 볼 수 있었다.
불야궁주의 거처.
모든 즙기가 여성적이다.
즙기의 빛깔은 밝은 감색이었으며, 발목까지 잠기는 천축산 양탄자 위로
그윽한 용뇌향(龍惱香)이 번지고 있었다.
등신대(等身大)의 동경(銅鏡) 앞, 자색 궁장을 걸친 여인이 등나무 의자를
놓고 거울로 얼굴을 비춰 보면서 어지럽게 자란 눈썹을 뽑고 있었다.
총관은 여인의 뒤쪽에 시립한 채 입술을 떼었다.
"그 자가 지닌 보석은 황금으로 따질 때 십칠만 냥(兩)에 달합니다."
"도박에 미친 놈이군. 십칠만 냥이면 장원을 백 채 이상 살 수 있는 돈이
거늘……."
"그 잔 유명한 도박사가 아닙니다."
"그럼?"
"아직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 거금을 한판 도박에 쏟아 부을 자라면 보통 인물이 아닌데…
…?"
거울 속의 얼굴은 요염하기 짝이 없었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복숭아가 이러할까?
달처럼 동그란 얼굴이 화사하기 이를 데 없다.
화장기가 짙은 것이 천해 보이기는 하나, 남자들을 숨막히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흑묘아(黑猫兒).
불야궁을 지배하고 있는 여인이다.
"아직 신분을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군사(軍師)가 직접 가서 그의 정체를
파악하는 상황입니다."
"수란이라면 믿을 만하지. 호호! 보통 사내라면 수란에게 걸려 뼈도 못
추리지."
흑묘아는 요염하게 웃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뒤돌아서며 총관을 쏘아보았다.
"우린 이공자(二公子) 직속이다. 이공자는 최근 화가 단단히 나신 상황이
다. 까딱 잘못하여 그분의 눈에 뜨이게 되면 목이 잘려진다. 매사에 주의
하라."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나가 봐라."
"예."
총관은 뒷걸음질쳐서 방을 나섰다.
흑묘아는 화장이 잘 되었는가 새삼 확인하다가 손바닥으로 미간을 짚었
다.
'이공자는 눈이 너무 높단 말이야. 나만 하더라도 빠지는데 없는 미인이
거늘, 아무리 유혹해도 넘어가지 않으시니… 흐음, 관산검맹의 냉약빙이
라는 계집년은 그게 세 개라도 된단 말인가? 이공자가 그년에게 빠져 날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그녀는 질투의 눈빛을 던지며 거울을 쏘아봤다.
정말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던가?
그런데, 한 남자가 그녀를 백안시하는 것이다.
흑묘아는 그야말로 강호대영웅이라 생각하고 있기에, 그가 여기 들릴 때
마다 그를 유혹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으되… 그는 쉽게 유혹되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불야궁주 지위마저 빼앗길지 모른다. 최근 해외 마두들이 대
거 진출하며 요직을 노리는 자들이 많아졌다. 자칫 방심하다간 자리를 빼
앗길지도. 물론 문제가 생겨 봤자 내 풍만한 둔부로 몇 번 문질러 주면
만사가 해결되겠지만.'
흑묘아는 배시시 웃었다.
수란은 청년을 보며 방긋 웃었다.
청년은 탁자 곁에 앉아 수반의 꽃을 감상하고 있었다.
흰 눈썹이 매우 이질적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그건 대단한 성적 매력이
기도 했다.
"흰 눈썹이 매력적입니다요."
수란은 가죽옷을 걸치고 있는 바, 몸에 꽈악 맞는 가죽옷이 몸매를 여실
히 드러나게 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미끈하게 빠진 허벅지가 드러난다.
뇌쇄적인 육향(肉香), 보보(步步)를 내디디며 풍만한 상체를 흔들어 대는
솜씨는 상당히 세련되어 보였다.
그녀는 칠 보 걷기 전에 남자를 유혹할 수 있다 하여, 칠보미랑이라 불리
우고 있었다.
청년은 문득 고개를 쳐들었다.
눈빛이 칙칙하게 가라앉은 게 불길하게 느껴졌다.
수란은 그의 눈빛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악마의 눈이다!'
수란은 걸음을 내디디기 힘들 정도로 심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많은 무사들을 겪어 보았는지라, 상대의 눈빛만 보아도 상대의 내
심을 파악하는 것이다.
"아름답군."
청년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오라는 신호!
수란은 겁먹은 표정을 애써 감추며 사뿐사뿐 다가섰다.
"제 몸을 바라시는군요?"
"훗훗… 난 오랫동안 여체에 굶주렸다. 젠장, 쫓겨 다니느라 계집을 안고
뒹굴 시간도 없었단 말이다."
청년은 수란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는 다짜고짜 수란의 입술을 힘차게 빨아 댔다.
수란은 숨이 막히는 듯한 압박감에 사로잡히는데, 상대의 손은 어느 틈엔
가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떡 주무르듯 주물러 대기 시작했다.
'동물!'
수란은 역감을 느꼈으나, 필요에 따라 교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성적으로 흥분된 자는 비밀을 감추지 못한다.'
그녀는 상대의 거친 애무를 요리조리 빠져 나가면서 상냥히 물었다.
"왜 쫓겨 다녀요, 바보처럼?"
"암살을 실패했다. 빌어먹을!"
"누굴 죽이려다 실패했나요? 호호호……!"
"묻지 마. 솔직히 그 잔 죽이기 힘든 자였어. 내가 아니었더라도, 그 잘
죽이지 못했을 거야."
청년은 수란의 가죽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그는 해초처럼 무성히 자란 수풀을 더듬으며 더운 숨을 토해 냈다.
"그, 그가 누군가요?"
수란의 몸뚱이는 상대의 체중 밑에 깔리기 시작했다.
청년은 발정한 수캐가 되어 수란을 알몸뚱이로 만들었다.
그는 어지간히나 여체에 굶주린 듯했다.
"그 잔, 절대자야."
"절대자?"
"녠녠…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젠장! 으음, 그나저나 네 몸이 꽤 차갑군.
좋아, 널 불태워 주마."
그의 손이 점점 더 깊은 골짜기 속으로 파고들었다.
'미친 개!'
수란은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얼굴에는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사내를 다루는 데는 능숙한 여인.
그녀는 마도에서 오대색녀(五大色女) 안에 끼이고 있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이기는 하나, 이미 서른두 살의 여인이다.
그녀는 주안술(駐顔術)을 써서 청춘을 꽤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것이
다.
"누굴 죽이려고 했지요? 왜?"
"돈이 급해서 했을 뿐이야. 젠장, 솔직히 청부를 맡아서는 아니 될 일이
었어."
"으음……!"
사내의 손이 그녀의 어디를 건드렸는지,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
다.
사내는 여자와 교접한 경험이 풍만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여자를 지
극히 거칠게 다뤘다.
수란의 피부에는 여러 군데 손톱에 긁힌 자국이 남기 시작했다.
그는 수란의 팽만한 아랫배에 자신의 체중을 실었다.
뱃머리에서는 비밀이 없다던가?
그는 마음 속에 깊이 파묻어 두고 있던 비밀을 술술 토하기 시작했다.
"청부자는 새파란 놈이었어. 제법 돈이 많아 보이는 놈이었지. 크크, 놈은
거상(巨商)의 후예였지. 놈은 제 아비를 죽인 자를 죽여 달라며 내게 부
탁한 거야. 거금이었지. 비록 십분지일밖에 받지 못하기는 했지만."
"얼마이기에……?"
"백만 냥!"
"으음, 강호에 그만한 목값을 지닌 자가 있다니요?"
"관산을 움직이는 자이니, 그 정도의 가치는 되지!"
눈썹이 흰 자는 이미 욕정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그는 수란의 두 젖가슴이 터지도록 꽈악 움켜쥐었다.
두 개의 유실에서는 핏물이 약간 내비칠 정도였다.
'관산을 움직이는 자라니?'
수란의 몸 움직임이 문득 정지되었다.
그녀는 당세무림을 경동(驚動)시킨 하나의 사건을 기억해 냈다.
그 사건은 그녀의 세력과 너무나도 밀접히 연관된 사건이 아니던가?
'이 자가 바로 잠풍을 척살시키려고 한 자?'
수란은 근육을 단단히 뭉친 채 몸을 석고 조각처럼 경직시켰다.
"으음, 네 몸에서 꿀 내음이 난다."
사내는 그녀의 몸 안으로 깊이 탐닉해 들어갔다.
'그렇다면… 희대의 대어(大魚)다!'
수란의 눈에서 마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사내가 자신의 성문을 파고들고자 하는 찰나, 손을 올려 그의 목
을 휘어 감았다.
허벅지 사이로 파열의 고통이 시작되는 찰나, 수란은 손가락으로 그의 척
추 맨 위쪽 혈도를 눌렀다.
"으으… 네, 네가?"
사내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는 찰나적으로 힘을 잃어버린 듯 전신을 축 늘어뜨렸다.
수란은 점혈(點穴)을 성공시키는 찰나, 재빨리 그의 품안에서 빠져 나왔
다.
"들개 같은 놈! 호호호! 잠시만 기다리고 있거라. 네게 진짜 극락을 구경
시켜 줄 테니까."
수란은 찢어진 가죽옷을 대충 걸쳐 입은 다음, 창문 밖으로 떠올랐다.
그녀가 시전하는 신법은 비서난무(飛絮亂舞).
수란은 보기보다 막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살집 좋은 둔부가 창틀을 뛰어넘는 찰나, 기절초풍 놀라워하던 흰
눈썹의 사내는 여유만만한 미소를 입가에 흘렸다.
"더러운 계집."
그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솔직히 그는 점혈당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이혈대법(移穴大法)을 써서
혈도의 위치를 슬며시 바꾸어 버린 것이다.
'후후… 난 잠풍을 증오하거늘, 잠풍의 세력을 보호해 주기 위해 거짓말
을 했다!'
그는 백무영이었다.
그는 연환마교로 잠입하기 위해 제일보(第一步)로서 불야궁에 발을 내디
딘 것이다.
백무영은 벌거벗은 채 모처로 옮기어졌다.
그의 의복이며 소지품은 샅샅이 펼쳐졌는 바, 흑묘아와 수란이 찾아 낸
것은 행장에 감추어진 용혼한옥검(龍魂寒玉劍)이었다.
그것은 강호에 백대보검으로 꼽히고 있는 보검이 아니던가?
그것은 관산검협 잠풍이 소지하고 있는 스물여덟 자루 항마신검(降魔神
劍) 가운데 하나로서 유명하다.
용혼한옥검이 나옴으로 백무영이 잠풍을 베고자 했던 탁무군의 화신이라
는 건 명명백백히 밝혀지게 된 것이다.
어두운 뇌옥(牢獄).
바닥에 오물이 수북이 쌓여 있다.
악취가 뇌옥을 휘감고 있다. 시체 썩은 냄새도 짙게 번지고 있었다. 뇌옥
구석에는 시체 여러 구가 겹쳐져서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백무영은 나
무 의자에 앉게 되었으며, 두 팔과 발목에 교룡삭(蛟龍索)이 얽매어진 상
태였다.
"이름을 말해!"
수란은 전과 달리 혈포를 걸치고 있었으며, 손에 채찍을 쥐고 있었다.
"……!"
백무영은 역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올려다봤다.
수란은 그의 눈을 보자,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빛이 없다. 죽어 버린 눈. 으음, 가히 영혼을 마비시켜 버릴 눈빛이다!'
수란은 채찍 양 끝을 쥔 채 내심 호흡을 했다.
'연쇄점혈술(連鎖點穴術)로 혈도를 찍힌 이상, 사지를 제맘대로 놀리지
못하겠지!'
수란은 그러한 마음으로 자위하며 더욱 모질게 쏘아붙였다.
"네가 무검서생(無劍書生) 탁무군(卓武君)이냐?"
"아냐."
"탁무군은 내 손에 죽었다. 난 탁무군을 죽이고, 그의 모습으로 위장했을
뿐이다."
"호호호… 그래. 비밀을 쉽게 털어놓아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게다.
호호호……!"
수란은 채찍으로 백무영의 등을 후려쳤다.
철썩-!
소리와 함께 옷자락이 찢어졌다.
백무영은 등판이 뜨거운 액체에 젖음을 느꼈다.
고통은 참을 만한 정도이지만, 그는 수란을 기분 좋게 해 주기 위해 일부
러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우욱!"
"호호호… 바른대로 말하면 재생의 기회를 주겠다."
"천한 계집! 네년에게 말려든 게 통한스러울 뿐이다."
"닥쳐!"
수란은 잇달아 채찍을 휘둘렀다.
피가 튀고 살점이 뜯겨져 나간다.
백무영은 오공(五孔)에서 피를 흘렸으며, 오십여 대 맞다가는 의식을 잃
어버렸다.
백무영이 깨어난 곳은 화려한 규방 안이었다.
그는 눈을 뜨며 야광주(夜光珠)를 볼 수 있었다.
야광주는 일곱 개였으며, 북두칠성(北斗七星) 모양으로 박혀 있었다.
"아, 이 곳은……?"
백무영이 탄성을 발할 때, 등 뒤쪽에서 요사스런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대로 누워 있어요."
등 뒤, 흰 옷을 걸친 미녀가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빗으로 머리카락을
가다듬고 있었다. 비녀를 꽂지 않은 머리카락의 길이가 일곱 자에 달한
다.
동그스름한 얼굴이 교태를 듬뿍 담고 있다. 호두알처럼 동그란 눈에 탐스
러운 입술, 입술이 벌어질 때마다 나타나는 새하얀 치열. 절세미녀라고는
할 수 없으되 상당히 매력적인 용모이다. 용모에 흠이 되는 점이라면, 화
장기가 너무 짙어 천박해 보이는 정도랄까?
여인이 걸치고 있는 궁장 허리띠가 느슨한지라 앞가슴 옷섶이 벌어졌으
며, 보름달처럼 풍만한 젖가슴의 위쪽 부분이 돌출되고 있었다.
반라(半裸)는 전라(全裸)보다 유혹이 더하다.
옷을 완전히 벗고 있다면, 한결 천박해 보일 것이다.
여인은 빗질하던 손길을 멈추며 배시시 웃었다.
"대단하더군요?"
"뭐가?"
백무영은 냉혹스런 표정을 유지했다.
"호호… 다 알고 있어요."
여인은 품에서 두루마리 한 권을 꺼냈다.
두루마리는 백무영에게로 전해졌다.
"이게 뭐지?"
"펴 봐요."
"……."
백무영은 무뚝뚝한 표정 가운데 두루마리를 폈다. 두루마리 안에는 이런
글이 기록되어 있었다.
<무검서생 탁무군으로 위장했던 자는 냉혈살흔으로 밝혀졌음. 그는 암살
극 후 도망치다가 폭풍귀혼조에게 포위되었는 바, 그 곳에서 역용술이 풀
어져 본래의 모습이 드러난 것임.>
백무영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일생일대의 수치다. 내 정체가 드러나다니……."
그는 두루마리를 힘껏 내던졌다.
두루마리는 유리 어항을 박살냈으며, 유리 파편이 퉁기면서 어항 안의 물
고기가 물과 더불어 양탄자 위로 쏟아져 내렸다.
"호호호… 귀하는 단신으로 관산검맹 전체를 조롱한 것이니, 대영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귀하로 인해 몹시 큰 피해가 있었습니다."
"피해?"
"이공자(二公子)가 당신을 찢어 죽이려 합니다. 귀하의 일 검(一劍)이 이
공자의 십 년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그분이 분노할 수밖
에 없지요."
여인이 다시 배시시 웃었다.
"난 이공자 따윈 생각하지 않아."
백무영은 무식한 어조로 외치며 여인을 쏘아봤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하게 처신할 뿐이었다.
"넌 누구지?"
"이공자의 애첩, 그리고 불야궁의 우두머리입니다. 강호인들은 저를 흑묘
아(黑猫兒)라 합니다."
"흑묘아, 들은 이름이군."
"호호호… 냉혈살흔, 귀하는 매력적인 사내예요. 호호호……!"
흑묘아는 일어나 사뿐사뿐 다가섰다.
백무영은 구역질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뭘 하자는 거야? 날 잡은 기념으로 내 귀를 잘라 기념품으로 지니겠다
는 거야?"
"귀하는 노예예요. 머지않아 총단(總壇)으로 압송되어 갈 겁니다."
"총단?"
"옥천산(玉泉山)으로……!"
흑묘아는 그렇게 말하며 침상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의 손은 백무영의 탄탄한 가슴에 닿았다.
"뭘 하자는 거야, 흑묘아?"
"으흥, 오랫동안 사내에 굶주렸어요. 날 안아 줘요."
흑묘아는 백무영의 가슴에 자신의 가슴을 밀착시켰다. 봉긋이 부풀어오른
가슴이 주는 질감은 육감적이었다.
"세 시진밖에 시간이 없어요."
"흑묘아, 남자가 그리우냐?"
"갈증이 날 정도예요."
"녠녠… 피차일반이로군."
백무영은 흑묘아를 와락 끌어안았다. 흑묘아는 아교처럼 그의 몸에 달라
붙었다. 백무영은 흑묘아의 옷을 벗기며 구역질을 느꼈다. 그는 본시 여
자엔 강한 성격이다. 그는 신체의 욕망을 마음대로 자제하는 경지에 이르
렀다.
하나, 지금 흑묘아를 배척하다가는 자신의 잠입계(潛入計)가 초기에 발각
된다.
'어떻게든 함백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 곳에 끈이 없는 한, 죄수가 되
어서라도 함백 쪽으로 다가가야 한다!'
백무영은 빠른 솜씨로 흑묘아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 몸뚱이로
만들었다.
흑묘아의 가슴은 수박만큼 컸다. 뭇남자가 그 가슴을 매만지며 쾌락에 사
로잡혔을 것이다. 백무영은 구역질을 느끼며 풍만한 젖가슴을 움켜쥐는
첫번째 남자이리라.
냉약빙은 그의 첫 여인이었다.
그는 구태여 성의 도덕에 얽매이고 싶은 생각은 없으되, 뭇여인의 수캐처
럼 얽혀 들고 싶지는 않은 청년이다.
하지만 지금은 흑묘아를 위해 수캐가 되어 주어야만 한다.
"몸매가 빼어나다, 흑묘아."
그는 손가락으로 흑묘아의 배꼽을 문질렀다. 흑묘아의 피부에는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여자를 많이 안아 본 솜씨군요?"
"천 명은 넘을 거다."
"흐응, 색마(色魔)!"
"녠녠… 쾌락을 참는 자는 위선자이지."
백무영은 파락호 행세를 하며 흑묘아의 육체를 압박해 나갔다.
그는 어느 틈엔가 화산(火山)이 되어 버렸다. 흑묘아는 남자 경험이 많지
만, 지금처럼 뜨겁게 그녀를 불살라 버리는 남자를 만난 바 없었다. 그녀
는 애무의 초기부터 세 차례 이상 까무라쳤다.
백무영은 쉽게 돌진하지 않고 그녀의 몸만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묘수
환궁에서 배운 방중술(房中術)을 쓰는 이상, 흑묘아를 달아오르게 하는
것은 지극히 쉬운 일이다.
게다가 그는 내공을 고스란히 간직한 상태이니, 흑묘아는 어느 새인지 미
환술(迷幻術)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백무영은 입술로 흑묘아의 아랫배를 애무하면서 야릇한 어조로 물었다.
"이공자가 누구이지?"
"그, 그분은… 사륵(邪勒)."
흑묘아는 미환술에 걸려 뱃속의 비밀을 고스란히 토해 냈다.
"사륵?"
"백도에서는… 연검천(燕劍天)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청천벽력이다.
그러나 백무영은 거의 놀라지 않았다. 그는 연검천이 마도의 첩자일지 모
른다는 걸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은 신풍도(神風島) 출신으로… 으음, 그분은 십 년 전 관산검맹으로
들어갔으며 이미 잠입해 있던 마도십성자(魔道十聖子)와 더불어……."
흑묘아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비밀을 토설했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슴 속의 비밀을 토
해 내는 것이다.
불야궁은 연환마교의 호북단(湖北壇)이다.
백무영은 이미 그러한 사실을 알고 불야궁에 잠입해 든 것이다.
'불야궁은 연검천의 휘하세력이었으며, 자금을 모으고 무사들을 납치하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연검천은 함백의 후계자 가운데 가장 방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백무영을 뒤쫓았던 폭풍귀혼조는 그의 고향인 신풍도에서 무공을 터득한
인자(忍者)들이었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추적술이 경이로울 정도로 집요했던 것이다.
흑묘아는 몇 번이고 까무라쳤다.
새벽이 올 때까지 흑묘아는 자신이 정사(情事)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