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장(第十章). 말도둑 봉황화(鳳凰花).
금몽추는 나직하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름이라는 것은 어떻게든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겠지. 중요한
것은 그 이치를 아는 것이오. 만일 당신이 그 이치에 깊이 도달해
있었다면 아까 구태여 그와 같은 무공을 펼치지 않아도 저 괴물들
을 충분히 상대할 수가 있었을 것이오."
제운우는 어색하게 웃다가 슬그머니 다시 화제를 돌리면서 입을
열었다.
"헌데 아까 그 곳에서 보니 곤륜파(崑崙派)의 사람들이 죽어 있
던데, 그들이 어째서 그와 같은 변고를 당하게 되었는 지 알고 있
소? 하하, 우리는 좀 더 나중에야 그 곳에 도착하게 되었던 것이
오."
왕산산이 다소 어리둥절해 하며 말을 받았다.
"어마, 그렇다면 아까 그...... 괴상한 사람들에 의해 죽음을 당
한 도인(道人)들이 바로 다름아닌 곤륜파의 사람들이었다는 말인가
요?"
제운우는 미소하며 말했다.
"무림각파의 사람들은 대부분 각기 특징적인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니 쉽게 간파할 수가 있소. 이 부근에서 곤륜파의 사람들을 보
았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오."
왕산산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사실 우리도 당시 이상한 소리를 듣고......, 우리가 그 곳에
도착했을 때에도 이미 그들은 죽어 있었어요. 그들이 왜 그 괴상한
사람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되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
어요?"
공심이 어느새 건량을 다 먹어 치우고 나서 입을 닦으며 불호소
리와 함께 말했다.
"아미타불, 그 괴상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바로 역시 일월신교의
괴인(怪人)들이외다. 그들은 반쯤 미쳐서 거의 저 괴물들과 다르지
않게 된 그런 사람들이외다. 실로...... 실로 다르지 않소. 다만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그 일월신교의 무공(武功)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일 것이외다."
제운우가 말했다.
"그들은 일월신교의 흡성대법(吸星大法)을 사용하고 건곤대나이
(乾坤大 移), 월영인(月影印) 등을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
히려 그 위력이 더욱 강력하오. 일월신교에서 그들은 사고로 태어
난 자들이며 자신들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고 말하고들 있지만 그
러한 말을 어찌 믿을 수가 있겠소?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한 자들
에 의해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이외다. 게다가,
보다 큰 문제는 현재 현현사(玄玄社)나 태양마교(太陽魔敎)에서도
그런 비슷한 괴인과 괴물들이 배출되고 있다는 것이오."
'아, 어쩐지...... 그들은 역시 강호의 하류배들이 아니었어. 알
고 보니 세외팔세의 사람들이었구나!......'
왕산산이 속으로 그와 같은 생각을 굴리고 있을 때, 문득 풍덩!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 돌아 보니, 어이없게도 궁구가가 그 깊은
물속에 뛰어 들어 헤엄을 치며 목욕을 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소가 물속에서 헤엄을 치며 목욕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
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운우 등은 크게 놀라고 어리둥절해
져서 바라 보다가 문득 금몽추를 향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 청우(靑牛)는 아까 정말 대단한 능력을 보여 주
었던 것 같소. 금공자! 실례지만 우리에게 저 소에 대해서 잠시 설
명해 주지 않겠소?"
금몽추는 저 궁구가라는 녀석이 일부러 자신이 그들의 화제에 오
르기를 바라며 그와 같은 짓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소
눈살을 찌푸리다가 대꾸했다.
"저 녀석은 나의 친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름은 궁구가(宮九佳)
요. 사실 말하자면, 저 녀석의 근본 능력은 당신들과 별 차이가 없
을 것이오."
궁구가는 어느 새 목욕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 보란 듯이 몸을
흔들고 기운(氣運)을 일으켜서 젖은 털을 말리고 있었다.
'제아무리 영물(靈物)이라고 해도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그것을
친구라고 하다니 약간 지나친 표현인 것 같군! 하지만 흐음, 이름
은 생각외로 괜찮은데? 최소한 그 금몽추라는 이름 보다는 훨씬 더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지......'
제운우는 속으로 그와 같이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돌려 백마 소상
자를 바라 보며 왕산산에게 말했다.
"그런데 왕소저의 그 백마 역시 대단히 훌륭한 것 같소. 비단 전
체적으로 근육이 고르게 잘 발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잡털이 섞
이지 않고 털빛에 윤기가 흐르니, 그야말로 천하(天下)에 보기 드
문 명마(名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오. 실례지만 어떤 이름
을 지었는지 가르쳐 주실 수 있겠소?"
왕산산은 의식적으로 금몽추를 돌아 보며 미소를 짓다가 제운우
를 향해 대답했다.
"저 암말은 제가 소상자(少想子)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약간의
몽상(夢想)이라는 뜻이지요. 하지만 사실은......, 저 소상자는 궁
구가가 야생의 상태에서 데려온 것이예요."
'이 왕소저는 대단한 부잣집의 아가씨이면서도 다른 소저들과는
달리 역시 상당한 학식(學識)을 갖추고 있고 현명(賢明)하며, 허술
하지 않은 가운데 나름대로의 멋과 풍류(風流)를 알고 있구나. 정
말 보기 드물게 아름답고 훌륭한 아가씨로군......!'
제운우는 내심 속으로 그렇게 감탄을 하며 말을 받았다.
"소상자라......? 정말로 아름다운 말에 걸맞는 멋들어지고 훌륭
한 이름이구려. 과연 안팎으로 왕소저와 잘 어울리는 말인 것 같소
이다."
왕산산은 그 말에 다시 한 번 금몽추를 은근히 돌아 보며 속으로
생각을 굴렸다.
'그 소상자라는 이름은 사실 내가 저 분 금공자를 그리워한 나머
지 그렇게 지은 것이다. 저 제대협은 나의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있구나.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한다면 별로 좋
아 하지는 않을 거야.'
금몽추는 그런 대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느릿하게 하품을
해 대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역시 말은 말이고 소는 소인 것이오. 아
니, 아니지...... 궁구가는 약간 다르다고 할 수가 있겠지. 궁구가
야, 너는 나의 이 말이 고맙지도 않느냐? 사실 이 거칠고 삭막한
세상에서 너를 가장 잘 위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밖에는 없
다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하! 하! 하! 자, 그런 얘기는 이제
그만 두고 우리 이런 좋은 자리에 모였으니 좀 더 풍류를 즐기도록
합시다. 시(詩)를...... 시를 읊어 보는 것이 좋겠소. 모두들 나의
이 아름다운 시를 들어 보도록 하시오. 으음...... 산천(山川)은
유구한데, 옛 사람들의 자취가 이 곳에도 묻어 있는 듯하구나. 오
호라,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두 마리의 짐승과 세 마리의 개똥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으니 이게 웬 말인가? 개똥벌레들은 돼지처
럼 먹고만 있는데 아직 이 훌륭한 사람 하나를 알아 보지 못하였구
나. 오호, 애재라! 개...... 이 개...... 똥벌레는 잠을 자고 있는
것인고? 그렇다면 어째서 아직 그 빛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오호라, 슬프도다! 여기에 한 아주 훌륭하고 대단하신 분이 천하
(天下)를 굽어 보며 산책을 하고 있거늘, 사람들은 그저 먹고 잠자
는 일에만 매달려서 그 참다운 가치를 알아 보지 못하고 있구
나...... 한...... 한바탕 시원하게 목욕을 하고 그 물을 퍼서 우
리 다정하게 둘러 앉아 마시도록 하세. 이 물은 정말 더럽구나. 그
럼 자네가 먼저 드세나. 우선 눈을 감고 깊이 음미하게. 미녀(美
女)에게 한 잔을 더 마시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다 자네가 들게.
나는 이미 배가 불렀으니 더 권하지는 말고, 자네의 그 좋아서 어
쩔 줄을 모르는 모습을 구경하세나. 으흐흐, 그 한 조각의 건량은
나에게...... 나에게 주고 자네는 좀 더......"
'이...... 이런 정말 미치겠군! 도대체 이것은 고문도 아니고 말
이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시를 지껄이고 있다니, 혹시 뭔가 크게
잘못된 인간(人間)이 아닐까......? 헌데 저 왕소저는 오히려 가만
히 웃으며 듣고 있다니 정말 알 수가 없는 노릇이로군. 우라질! 정
말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군!'
제운우는 속으로 그렇게 연신 중얼거리고 있다가 드디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몸을 일으키며, 그러나 겉으로는 여전히 만면의
미소를 잃지 않으며 말했다.
"자! 우리는 이 곳에서 이미 충분히 휴식을 취한 것 같으니 그만
떠나도록 합시다."
왕산산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지금 백리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예요. 헌데 두 분은
이제 어디로 가시는 길이죠?"
제운우는 짐짓 큰 소리로 대소(大笑)하며 대꾸했다.
"핫핫핫......, 이거 아주 공교로운 인연이구려. 우리도 사실은
그...... 하하하, 그 쪽으로 가려던 길이었소이다. 이렇게 우리가
인연이 깊으니 기왕이면 앞으로 함께 동행(同行)을 하는 것이 어떻
겠소이까?"
금몽추는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시낭송이 제지를 받게 되어 기분
이 좋지 않았는데, 거기에 다시 그와 같은 소리를 듣게 되자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으음, 좋지 않구나! 아무래도 저 덩치만 큰 녀석은 이미 왕소저
에게 흑심을 품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부러 그렇게
우리와 동행을 하려고 할 이유가 있겠는가? 이럴 경우 나로서
는......, 으음, 저 왕소저로 말하자면 별로 잘생긴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미 나와 정혼(定婚)이 되어 있는 여자이고, 따라서 나로
서는 지금 그녀를 책임져야 할 지 아닐 지를 고민해야 하는 입장이
다. 으으으, 알 수 없는 일이로군! 도대체 그녀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든다고 저 덩치만 커다란 녀석은 이미 흑심을 품기 시작한
것일까......?'
그 계곡을 벗어나서 다시 길로 접어 들자 금몽추는 일부러 궁구
가에게 재촉하여 빨리 내달리도록 했다.
하지만 오히려 소상자와 왕산산이 힘에 겨워 할 뿐, 제운우와 공
심은 장생비급(長生秘 ) 상의 무공인 과천풍(過天風)의 신법(身
法)을 펼쳐 여유있게 따라 오고 있으므로 금몽추는 그들을 따돌리
려는 그만 생각을 포기해야만 했다.
궁구가가 다시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으므로, 왕산산은 거칠어
진 호흡을 고르고 있다가 다시 공심을 향해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어 말했다.
"제가 아직 무공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잘못 본 것일 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아무래도 두 분은 조금 전에 보기에 서
로 비슷한 신법을 펼치시는 것 같아요. 혹시 스님께서도 이미 그
장생비급을 연마하신 것이 아닌가요?"
공심은 약간 어색한 표정이 되어 불호를 외우며 대답했다.
"실로...... 아미타불, 왕여시주께서 아주 잘 보신 것이외다. 본
사(本寺)의 입장으로 보면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그러나 소승도 한
번 그 비급을 본 다음에는 욕심을 떨쳐 버리지 못한 것을 시인하겠
소이다. 아미타불!...... 그만 들통이 나고 말았군요."
왕산산은 까르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스님은 아주 재미있으신 분이세요. 호호호, 만일 승복을 걸치고
계시지 않았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호호! 그렇다고 제가 감
히 승려가 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예요."
금몽추가 아주 좋지 않은 기색이 되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가
불쑥 다시 말했다.
"소화상, 당신은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제법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는 듯하지만,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훨씬 모자라는 것 같
소. 본래 소림사(少林寺)를 비롯한 소위 명문정파(名門正派)들의
무공이라는 것은 거의 다 그렇고 그런 것인데, 나쁜 뜻이 아니라
말하자면 제대로 배울 경우에는 어느 것이나 훌륭한 경지(境地)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오. 하지만 당신은 사문(師門)의 무학은 어
렵다고 해서 중도에 배우기를 포기하고 다른 무학을 훔쳐 배우게
되었으니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고, 또한 그 장생비급 상의 무공만
해도 그렇소. 그것으로 인해서 당신은 오히려 무학을 바르게 배우
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감히 욕심에 의한 것
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겠소? 흐흐흐, 당신은 아직도 멀었소. 그야
말로 근본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고 있으니 당연히 하는 말마다 실
수를 거듭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 모두가 다 어리석다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소?"
공심은 약간 안색이 변해서 합장을 했으나 이내 아미타불! 하고
불호만 외울 뿐 대꾸하지는 않았다.
왕산산은 자신이 공연히 그와 같은 말을 꺼내서 다시 일행의 분
위기가 어색해진 것을 알고, 그것을 다시 바꾸기 위해 웃으며 화제
를 돌려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아직 한 가지 얘기를 꺼내지 못한 것 같아요.
그것은 이를테면 두 분과 같은 무학의 명가(名家)들을 만났을 경우
에 의논하기 적당한 것인데, 호호......! 아까 우리는 흑사방(黑沙
幇)의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을 두고 이 금공자께
서는 어떤 무공이 대단한 사람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했죠. 그것에
대해서 아시는 바라도 있으신가요?"
제운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시종일관 웃고 있다가 그녀의 말을 받
아 입을 열었다.
"우리도 사실은 그런 광경을 보았었습니다. 하지만 혹시 왕소저
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계신 것이 아
닙니까?"
왕산산은 그의 시선이 따갑다고 느껴지자 다소 안색을 상기시키
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예요. 두 분은 이렇게 정인군자(正人君子)의 품성(品性)을
가지고 계신 대장부들이신데, 어찌 그와 같은 좋지 못한 일을 했을
리가 있겠어요? 게다가 설령 두 분이 정녕 그와 같은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정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며, 다
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와는 같지 않을 거예요."
"실로 왕소저께서 이렇게까지 우리 두 사람을 생각해 주시니 이
는 그야말로 영광스럽고, 또한 이렇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
소이다!"
제운우는 안색을 바로 하고 즉시 짐짓 정중히 포권하며 그렇게
말한 다음에,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사실 그것은 최근에 나타난 흑사방(黑沙幇)의 원수 봉황화(鳳凰
花) 남서오(藍棲梧)라는 여자가 그렇게 한 것이외다. 그녀는 아주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공이 상당히 높다고들 말하는데, 이번에
신강성(新疆省)으로 들어 와서 흑사방의 보물인 야생(野生)의 한혈
용마(汗血龍馬)를 강탈하는 바람에 흑사방에서는 여느 일들을 젖혀
놓고 그녀를 뒤쫓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얼마전에 우
연히도 이 부근에서 흑사방의 사람들이 그녀를 발견했는데, 오히려
결국에는 모두 죽음을 당하고 만 셈이지요."
왕산산은 안색이 가볍게 변해서 놀란 표정으로 혼잣말로 중얼거
렸다.
"젊은 여자라고......? 하지만 그토록 젊은 여자가 어떻게 그렇
게 무공이 대단하고 또한 마음이 모질 수가 있다는 말인가?"
금몽추는 이 때 심사가 다소 비틀어져 있었으므로 가볍게 코웃음
을 치며 그 말을 받았다.
"흥, 그래 여자가 마음이 모진 것이 대체 어쨌다는 말이오? 본래
이 여자라는 존재는 대개 오히려 남자들 보다도 더 마음이 모질고
또한 인색한 법이지. 그 사람들은 비록 겉으로는 선량한 것을 가장
하고 마음이 더없이 너그러운 것처럼 행세하지만, 그러나 실상은
도무지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일이 없고 받으려고만 하며, 간혹
더한 욕정(欲情)에 시달리고 질투를 일삼곤 하지. 으으으, 당신은
남자들보다도 오히려 여자들이 더 많이 지옥(地獄)으로 간다는 얘
기를 들어 보지도 못했소? 그러니 그 나이에 무공이 대단해진다고
해서 또 놀랄 것은 뭐가 있겠소?"
이어 금몽추는 속으로 하던 말을 계속했다.
'으음, 여자! 여자! 여자! 실로...... 실로 여자가 없는 세상(世
上)에서 살고 싶구나.'
제운우가 웃으며 소상자를 슬쩍 돌아 보더니 다시 말했다.
"그 한혈용마는 거의 전설적(傳說的)인 것으로 너무나도 기질이
강하여 흑사방에서도 최근까지 길들이지 못하고 있다가 도난을 당
했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것은 천하(天下)에서도 가장 우수한
천리마(千里馬)라고 합니다. 한혈용마를 훔친 그녀가 이 부근에 있
는 것 같으니 혹시 우리가 그녀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르겠군요."
왕산산은 금몽추의 비아냥거리는 말에 그만 안색이 홍시처럼 붉
어져 있다가, 그 말을 듣자 궁구가를 돌아 보면서 내심 생각을 굴
렸다.
'흑사방에서 그토록 집요하게 추적(追跡)을 하고 있다니 그렇다
면 필시 대단한 말이겠지. 하지만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저 궁구
가보다는 못할 거야. 호호, 금공자는 정말로 이상한 분이야. 어떻
게 저런 신기(神奇)하고 놀라운 소를 다 찾아냈을까?'
공심이 묵묵히 있다가 합장을 하고 입을 열어 말했다.
"아미타불, 소승이 보기에는 그것들은 모두 다 그릇된 욕심(慾
心)에서 비롯된 일이외다. 무릇 그와 같은 욕심을 떨쳐 버리고 나
면 그러한 일도 생기지 않는 법이지요."
왕산산은 일단 공심이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금몽추가
다시 이상한 말을 해서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하고 내
심 걱정이 들었는데, 그러나 뜻밖에도 무슨 일인 지 금몽추는 다소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으음...... 모두들, 이대로 그냥 가시오. 나는...... 나는 아무
래도 이 부근에 가서 볼일을 보고 와야 하겠소이다. 하지만 그렇다
고 해서 행여 나를 뒤따라 오거나 하지는 마시오. 나는...... 나는
즉 대변을 보려고 하는 것이외다. 그것은 냄새가 아주 심하니 자칫
십 리밖에라도 있게 되면 그 향기에 취하여 정신이 어지러워 지고
혼미(昏迷)하여 쓰러지게 될 것이외다."
제운우가 이에 크게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하, 그럼 어서 다녀 오시오. 사실 나는 귀하가 어떤 모습으
로 볼일을 보는 것인가 하고 궁금해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하하! 걱정 말고 다녀 오시오. 우리는 아무래도 잠시 그 냄새를
피하기 위해 좀 더 가야 하겠소이다."
금몽추는 다급하고도 어색한 몸짓으로 궁구가도 그 일행에게 남
겨 둔 채로 신법(身法)을 펼쳐 길 옆의 산속으로 나아갔다.
처음에는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움직임이었지만, 점차로
그 속도가 빨라져서 나중에는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가 되
었고, 이윽고 어느 다 쓰러져 가는 산신당(山神堂)에 이르렀다.
금몽추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마치 무엇인가를 찾는 듯했
는데, 이내 한 자리에 서서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으으, 나를 정말 귀찮게 하는 군! 대체 무슨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오? 나는 바야흐로 인생(人生)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그...... 으음, 그 얘기는 그만 합시다. 어쨌든 어서 나오
시오. 나는 지금 그대들과 장난을 할 시간이 없단 말이오."
갑자기 그의 앞에 유령(幽靈)처럼 나타난 사람들은 바로 다름아
닌 삼성요(三聖 )의 삼로(三老)였다.
이상하게도 오늘 그들의 태도는 눈에 띄게 온순하고 공손해 보였
는데, 천로(天老)가 먼저 입을 열어 말했다.
"죄송합니다. 바쁘신 줄은 알지만, 그러나 갑자기 긴히 상의드려
야 할 일이 생겨서 이렇게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시고, 천하의 창생(蒼生)들과 돌아가신 주인님을 생각하셔서
저희들의 말을 들어 주십시오."
금몽추는 일단 그들이 그와 같이 순순히 태도를 굽히고 나오는
것을 보자, 금새 표정이 달라져서 웃으며 두 손을 내저었다.
"하 하 하, 역시 내가 그대들을 가르친 보람이 있는 듯하오. 아
무래도 사람은 늘상 배워야 하는 것이지. 흐 흐 흐, 상관하지 마시
오! 상관하지 마시오! 나는 그야말로 천하의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그러한 약간의 번거로움 정도는 쉽게 잊어 버릴 수가 있는 사람이
니까. 하하하...... 그래, 대체 무슨 일인 지 말을 해 보시오."
의로(醫老)가 약간 무거운 표정을 하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소주인님도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들은 최근
에 벌어지는 그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여러가지의 일을 하면서도
면밀히 주시해 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들은 물론 돌아가
신 주인님의 은혜(恩惠)를 입어서 개과천선(改過遷善)하고 보람있
는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그러나 당시에도 거기에 반발을 하여 교
묘하게 주인님을 배격하고 은둔했던 오선(五仙)이 실로 아직까지
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감지된 바로는 그
러한 일련의 대혼란(大混亂)의 조짐이 아무래도 그들 오선의 움직
임과 연관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것은...... 이것은 아주 중
대한 일입니다. 저희들은 그저 할 일 없이 놀며 지냈지만, 그들 오
선은 그간에 절치부심하며 능력을 증대시켜 왔기 때문에 저희들의
현재의 능력(能力)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만일 정
말로 그들이 야욕(野慾)을 드러내어 노골적으로 나서게 된다면 그
것은 실로 위험하고도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
서 그 일을 미리 소주인님께 말씀드리고 지시를 받고자 하는 것입
니다."
'으응? 뭐라고, 오선이......? 으음...... 그럴 수도 있겠군! 알
고보니...... 당금의 강호(江湖)에 오선이 움직이고 있다는 말인
가? 하지만...... 하지만 그럴리가? 으으으, 이 세 명의 늙은이들
은 평소에는 말을 잘 듣지 않다가 갑자기 무슨 일이 터지기라도 하
면 이렇게 내게 울상을 하고 모든 것을 맡겨 버린다는 말이
야......? 지금 이 곤륜삼성이 건재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들
오선이 감히 그와 같은 짓들을 벌일 리가 없겠지만 말이야.'
금몽추는 자신도 모르게 약간 안색이 변해서 생각을 굴리다가,
이내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웃어 보이며 말했다.
"으음, 알겠소. 그것은 제법 중대한 일이로군! 그러나 하 하 하,
당신들은 과연 곤륜삼성(崑崙三聖)인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오? 만일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나 곤륜삼성은 혼자서라도 능히
그들 모두를 제압할 수가 있다는 말이오. 실로 당신들의 그 좁은
안목으로 모든 사람들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오. 하! 하!
하!......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아직 좀 더 노골적인 행동을 하
지는 않고 있소. 사실 그들이 그렇게 나서고 있다는 것조차 쉽게
믿기 어려운 노릇이지만, 무엇 보다도 그저 단순히 추측되는 것만
으로 그들을 징벌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말이오. 그러니...... 하
하, 무슨 말인 지 알겠소? 당신들은 좀 더 그들에 대해서 철저하게
조사해 보도록 하시오."
화로(花老)가 만면에 미소를 가득 떠올리고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러니까 소주인님께서는 능히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말
씀이로군요? 호호...... 그렇다면 저희들도 완전히 안심할 수가 있
겠어요. 알고보니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닌 것을, 공연히 저희들이
걱정을 하고 나서서 소주인님을 귀찮게 해 드린 것이 되어 버렸군
요? 죄송해요! 앞으로 저희들은 쓸데없이 그런 일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고, 아무래도 좀 더 소주인님의 주위에서 지내며 그 높으신
덕망(德望)을 배우도록 힘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
요?"
금몽추는 짐짓 다시 크게 웃어 보이며 약간 거만한 듯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하! 하! 하! 물론이오. 확실히 화로는 비단 대단히 아름다울 뿐
만 아니라 모든 좋은 일에 있어서도 앞서서 나가려고 하는 것 같
소. 그들은...... 하하하! 안심하시오. 걱정하지 마시오. 만일 정
말로 그들이 무슨 나쁜 짓을 벌이려고 하는 것이라면 내가 다 처리
할 수가 있으니까 말이오. 으음, 그 밖에 또 무슨 다른 일이라도
있소?"
화로가 문득 자신의 투명(透明)한 아름다운 신체(身體)를 다소
자극적으로 드러내 보이며, 교소(嬌笑)하며 다시 말했다.
"이미 그와 같이 모든 일에 문제가 없게 되었으니 달리 더 드릴
말씀은 없어요. 하지만 호호호! 소주인님을 다시 뵙게 되니 어쩐지
금방 헤어지기가 아쉬운 느낌이 드는 군요. 호호호......, 제가 어
느 사이에 그만 소주인님을 사모(思慕)하게 되었나 봐요. 제가 비
록 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는 해도 모든 면에 있어서 다른 여
자(女子)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소주인님도 이미 알고 계시
죠? 만일...... 호호호! 소주인님께서 저를 마다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지금이라도 소주인님의 잠자리 시중을 기꺼이 들어 드릴 수가
있어요. 아기는...... 아기는 가질 수가 없겠지만 말이예요. 설마
하니, 저의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들 지 않는다고 말씀하지는 않으시
겠죠?"
지금 다리를 약간 벌린 화로의 그러한 모습은 흡사 가장 아름다
운 백옥(白玉)으로 빚어 놓은 듯하고, 여자의 은밀(隱密)한 부위나
절묘한 젖가슴의 곡선(曲線)등이 그대로 고스란히 드러나 있기 때
문에 상상도 할 수 없이 자극적이고 현란하다고 아니할 수가 없었
다.
금몽추는 화로에게서 그와 같은 유혹(誘惑)을 받아 본 적이 없었
기 때문에, 그만 얼굴이 시뻘개 지고 크게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
르다가 두어 번 헛기침을 한 뒤에 말했다.
"그건...... 으험! 으으험! 그건...... 좋소! 대단히 좋소! 하지
만 나는 지금 대단히 바쁘오. 나중에...... 우리 나중에 봅시다.
지금 이 곳에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지 않소이까. 창피하오. 창피
한 일이니까 우리 나중에 보도록 합시다. 나중에 만일 그대가 나를
찾아 오면 하하하! 그 때는 내가 그대를 실망시키지 않겠소. 나도
사실은 그대를...... 하하하, 누가 뭐라고 해도 그대의 그러한 아
름다운 모습은 천하(天下)에서 거의 따라갈 여자가 없을 것이외다.
하하하, 나중에 봅시다......"
화로가 그에게 다가들어 거의 껴안을 듯하며 고혹적인 미소를 짓
고 말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소주인님이 다른 여자들과 사귀고 있다는 것
을 다 알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도 설마하니 나중에 저를 모른척하
고 귀찮다고 말하지는 않으시겠죠? 저는 비단 용모(容貌)에 있어서
도 그렇지만, 호호호! 그러한 기술(技術)에 있어서도 사실 세상의
어느 여자들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답니다. 소주인님을 행복(幸福)
하게 해 드릴 것이고,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금몽추는 더욱 얼굴이 벌개져서 허둥거리며 그녀의 몸을 더듬어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이젠, 이젠 질투까지...... 하하하! 좋소. 좋아. 그대의 몸은
정말로 훌륭하오. 하지만, 하하하...... 지금은 아무래도 안 되겠
소. 나중에...... 나중에 합시다."
천로가 공손히 읍하며 말했다.
"그럼 그 일은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소주인님께서 그
렇게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면 정말로 더 이상 걱정할 필요
가 없을 것입니다. 하하하, 지금 보니 화로가 모처럼 다시 여자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금몽추는 약간 무안해 지기도 하여 어색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
며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하하...... 그럼 나는 이만 돌아 가겠소. 그대들은 뭐
그리 수고스럽게 일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오. 편할 대로 하시오.
편할 대로 하시오. 자, 그럼 다음에 다시 봅시다. 화로! 나중에 다
시 만나도록 합시다......"
금몽추가 그렇게 다시 돌아 간 이후, 문득 의로가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화로를 향해 말했다.
"그래도 그는 우리에게 제법 도움을 주었던 주인님의 제자(弟子)
이오. 그런데도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소?"
천로가 정색(正色)을 하고 냉엄(冷嚴)한 시선으로 의로를 바라
보며 말했다.
"의선(醫仙)! 당신은 앞으로 좀 더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이 좋
을 것이오. 흐흐흐, 이 일에 당신도 이미 깊이 관여하여 손을 뗄
수 없는 상황이 되지 않았소? 그럴 바에는 굳이 그 죽은 곤륜노인
(崑崙老人)을 주인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오."
화로가 자신의 그 은밀한 부위들을 다시 안개와도 같은 기운(氣
運)으로 가리면서, 교소하며 말을 받았다.
"내가 보기에 그는 겉으로는 점잖은 듯해도 지나치게 여자를 밝
히는 것이 약점인 것 같아요. 우리는 비록 모든 일에 확신을 가지
고 있지만, 역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좀 더 그의 약점을
이용할 필요가 있을 거예요. 천선(天仙)의 말이 맞아요. 기왕에 대
사(大事)를 일으켰으니 보다 확실하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지요. 과
거의 어리석었던 전철을 다시 밟을 필요는 없어요. 그나저나......
호호호! 나의 그 모습이 약간 요염(妖艶)하기는 했나요?"
천로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선(花仙)의 그러한 연극은 가히 일품(一品)이었소. 내가 보기
에도 그는 이미 화선의 미모(美貌)에 완전히 반한 것 같았소. 하지
만 결코 그의 말대로 서둘러서 잠자리를 같이 해서는 안 될 것이
오. 좀 더 시간을 끌고, 뜸을 들이며, 그로 하여금 애가 타게 해야
그는 다른 일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항상 안절부절하지 못하게
될 것이오."
화로는 문득 음산(陰散)하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대개 남자들은 여자에게 반하고 나면 저절로
마치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그 아이는 제법 귀여
운 면모도 있는 것 같군요. 호호호......"
궁구가는 금몽추가 사라져서 부담이 없어 지자 더욱 기분이 좋아
진 듯, 빨리 걸어서 일행은 어느새 훨씬 멀리 가 있었다.
금몽추가 가까이 다가가며 보니, 일행은 이미 어느 황량(荒凉)한
산길을 돌아 가고 있었고 서로 간혹 웃음을 터뜨리며 이야기를 나
누고 있었다.
"아니 지금 혹시 모두들 내 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그렇다
면 이것은 아주 곤란한 일이오. 나 이 곤륜삼성(崑崙三聖)은 이미
안팎으로 대단한 인물(人物)일 뿐만 아니라, 마땅히 누구에게나 존
경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오. 흐흐흐, 모두들 지금 즉시
솔직히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왕산산이 고개를 돌려 궁구가의 등에 올라 타는 그를 바라 보다
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지금 제대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참이었어요. 그나
저나 왜 그렇게 늦으셨죠? 저는 혹시 당신이 멀리 가 버린 것이 아
닌가 하고 걱정했었어요."
금몽추는 이에 다소 미안한 듯 외면을 하고 짐짓 웃어 보이며 대
꾸했다.
"하 하 하, 그렇다면 나는 약간 이해하고 용서해줄 수가 있소.
사실 말이지...... 하하하! 조금 전에 내가 대변을 보는 일은 다소
잘 되지 않았소이다. 시간이 좀 더 걸린 것이오. 하지만 결국 다
잘 된 일이외다. 하하하......, 내 시를 들어 보지 않겠소? 최소한
저 밥을 많이 먹는 사람의 쓸데없는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을 것이오."
제운우가 그 말을 듣고 황급히 입을 열어 제지했다.
"금공자의 그 훌륭한 시(詩)는 나도 이미 크게 감탄하고 있는 바
이오.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그렇게 한가한 상황은 아닌 것 같
소. 저 안쪽에서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아무래도 그것이
우리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오."
하지만 금몽추는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이미 눈을 반쯤
내리감고 시를 읊어 대기 시작했다.
"좋구나! 여자...... 여자가 좋다. 그것은...... 그것은 신(神)
이 만들어낸 작품(作品)이...... 작품이 아니다. 하지만 더 좋다!
다리를...... 다리를 벌리는 것은 무슨...... 무슨 이유일까? 하지
만 그것은 나의 이 훌륭한 시에 비할 바는 아니로구나. 나의 이 시
는 너무나도 훌륭하여, 유감스럽게도......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오늘 낮에 만났네. 사랑하는 그대여! 우리는 밤을 기다리자. 휘영
청 떠오른 보름달처럼 그대의...... 그대의 엉덩이는...... 엉덩이
는...... 으으으, 부디 오늘 밤에 그대는 나를 찾아 와 주오. 말을
하지 말자. 말을 하지 말자. 말을 하기에는 나의 이 곤륜삼성이라
는 명성(名聲)이 너무나도 위대하구나. 이크!...... 사람들이 모두
들 나를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 보고 있구나. 나는 어째서 이다지도
온갖 능력(能力)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용모(容貌)마저 지극히 준수
(俊秀)한 것일까? 오호! 이는...... 이는 걱정이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다 내게 달려들면 나는 조금은...... 조금은 피곤해 지겠
구나.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모두가 다 내가 너무나도 잘
생긴 까닭이다. 으흐흐흐......! 나는 아무래도 여자를 약간 멀리
해야 하겠구나. 만일 오늘 밤에 그녀가 나를 찾아 오면, 나는 바쁜
척하고 그녀를 그냥 돌려 보내자. 나는 지금 시간이 없으니 안됐지
만 내일 다시 찾아와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