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수준의 노후자금 4억~5억원이면 충분
몇 해 전부터 ‘10억 만들기’ 열풍이 불고 있다.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하려면 10억원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10억원일까? 우리나라에서 노후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한 것은 2000년대 초의 초저금리, 즉 ‘마이너스 실질금리’ 국면에서다. 외환위기 전 예금 금리는 10~15%선이었다. 그때만 해도 은행에 1억원을 맡겨놓으면 다달이 이자가 100만원씩 나왔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금리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2001년 4월부터 2004년 2월까지 34개월 동안 예금 실질금리(명목금리-물가상승률)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사태가 빚어졌다.
평균수명은 빠르게 늘어나고 자녀 세대의 부모 봉양 의식은 날로 흐려지고 있는 가운데 금리가 불과 5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자 노후에 대한 위기감은 급속히 확산됐다.
노후자금 목표치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은 무엇보다 금융회사들의 마케팅 전략 때문. 그들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 흐름을 먼저 읽고 구매력 있는 상류층을 주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자연히 노후자금은 골프, 해외여행, 중형차, 파출부 등으로 상징되는 웰빙형 생활 패턴을 전제로 설계되었고, 흔히 알려진 7억~10억원의 노후자금 역시 바로 이런 웰빙형 생활을 위해 필요한 자금인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이철용 부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노후자금의 목표치가 갈수록 높아지는 이유 중에는 금융회사들이 노후자금 규모는 과대평가하는 반면 물가상승률은 높게 잡고 노후 대비 투자의 기대수익률은 낮게 잡음으로써 노후 대비의 어려움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노후자금은 ‘평균 7억원’이라는 얘기는 별 의미가 없어요. 나이가 다르면 물가, 금리 등 노후자금 산정에 필요한 변수의 크기도 달라집니다. 또한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하더라도 군 거주민과 대도시 주민의 생활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듯 기존의 추정방식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교정해 노후자금의 목표치를 중산 서민층의 현실 여건에 맞춰 새롭게 산정해봤을 때 4억~5억원만 있어도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4억~5억원이면 우리나라 30~50대가 큰 불편 없이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것.
이는 가구당 50만원의 국민연금을 수령한다고 가정한 것이다. 그리고 ‘연령별 기대수명’과 ‘고령 가구주 가구의 연평균 생활비’ 통계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현재 연령이 30세, 40세, 50세인 동갑내기 부부가 은퇴 후 서울에 거주하면서 평균적인 노후생활을 할 경우 60세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 노후생활비 총액은 각각 5억3109만원, 4억297만원, 3억1371만원으로 추정된다.
만약 부부가 군 지역에 살 경우 노후생활비 총액은 각각 2억4100만원, 1억8286만원, 1억4235만원 수준으로 낮아진다.
그러나 평균적인 생활이 아닌 정기적인 문화생활(영화 등 공연 관람), 종합건강검진, 해외여행 등에 한 달에 100만원 가량을 쓰는 ‘품위 있는’ 노후생활을 가정할 경우 현재 30세, 40세, 50세 부부는 60세까지 노후생활비를 각각 9억1731만원, 6억9601만원, 5억4184억원을 모아야 한다.
또 한 달에 150만원을 문화생활 등에 쓰는 ‘풍족한 노후’를 보내려면 60세 은퇴 시에 각각 11억7307만원, 8억9007만원, 6억9291만원을 보유해야 한다.
물론 이 금액은 연간 물가상승률이 3%라고 가정하고 산정한 것으로, 서울지역에 살면서 풍족한 노후를 보내려고 계획 중인 30대 부부에게 필요한 11억730만원은 30년 뒤에 필요한 금액. 따라서 지금의 11억730만원이라는 돈의 가치와는 또 다른 것이다.
언뜻 보면 나이가 적을수록 노후자금 목표에 도달하기가 힘들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30세인 사람은 30년의 여유가 있는 반면 50세는 투자기간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 나이가 많을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여유로운 노후를 기약할 수 있다.
◆ 눈을 낮추자 럭셔리, 웰빙 생활만 추구하지 말고 소박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면 돈은 기본만 있으면 된다. 대신 즐거운 소일거리, 친구 관리, 취미, 봉사활동 등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한다.
◆ 주거지 발상을 바꾼다 꼭 서울이나 대도시에 살 필요는 없다. 요즘은 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어 전국이 일일 수도권이고, 공기가 맑은 지방이 오히려 노후를 보내기엔 더 나을 수도 있다. 자식 가까이 살고 싶고 너무 낯선 곳이 싫다면 서울 근교도 좋다.
◆ 자식에 올인하지 않는다 자기 소유의 집 한 채만 있어도 역모기지론을 이용해 노후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다. 따라서 자식에게 집을 물려주지 않으면 집 한 채만 있어도 일단 마음은 든든하다.
◆ 특히 사교육에 올인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자녀 교육도 노후를 준비해가면서 해야 한다. 자녀에게 주택을 상속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주택 상속 등에 대한 선도 확실하게 긋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자식은 능력 있게 키우고, 노후에 의지하겠다는 기대도 갖지 않는 게 좋다.
◆ 외국에 나가 살 수도 있다 의사소통만 충분히 된다면 필리핀이나 동남아 쪽에서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단 물가가 싸기 때문에 같은 비용이라도 한국에서보다 훨씬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날씨도 1년 내내 따뜻하기 때문에 노인들이 생활하기에는 안성맞춤.
필리핀 이민의 경우 1억원이면 충분히 좋은 집을 구입할 수 있고 2억원의 예금만 예치해도 월 100만원 정도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이 돈이면 필리핀에서는 300만원 정도의 가치가 있어 생활하기에는 충분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