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하신 예수님의 부활
누가복음24:36-43
오늘은 부활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늘 말씀드립니다만 부활절은 부활주일 하루로 끝나지 않고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기 전까지 7주 동안 계속됩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신학생이 자신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하자 교수가 이렇게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학생 앞에 나타나면 자네는 기절해서 죽을 것이다. 그래서 안 보여주시는지 모른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바로 나타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순차대로 나타난 것도 제자들이 죽지 않도록 배려한 연유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빈 무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소문을 듣게 하셨습니다.
몇 차례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하시고 그래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하신 다음에 부활하신 자신의 모습을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십자가의 고통가운데 죽어가는 예수님을 경험하고
무덤에 장사되었던 분이 수십 시간 만에 살아있는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할 때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정말 믿기 힘든 기적적인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제자들과 다른 쪽에서 바라보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주도했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인데,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인정한다는 것은 예수가 하나님이시며 구세주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를 죽인 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든지 감추거나 오해한 것이라고 꾸며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나온 대표적인 것이 두 가지였는데,
①하나는, 예수의 부활은 제자들이 꾸며낸 거짓이라는 주장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이 무덤에서 되어 진 모든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보고합니다.
그 보고를 받은 대제사장들은 큰 일이 터졌다고 걱정하면서 군인들을 많은 돈으로 매수합니다.
‘예수가 살아난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 시체를 도둑질하여 갔다.’고 거짓말을 하도록 합니다.
군인들이 ‘그러다가 우리가 보초를 잘못 섰다고 다치면 어떻게 합니까?’ 걱정을 하자
대제사장들은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잘 말해서 경비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의 부활은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고 꾸며낸 거짓주장이라는 소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의 무덤은 경비병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고 빌라도의 인봉으로 함부로 열수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제자들은 죽음이 무서워 예수를 부인했고 예수가 잡혔을 때 도망갔던 겁쟁이들이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했다는 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거짓이라는 증거는, 이렇게 시체를 도둑질해서 숨겨놓고 예수가 부활했다고 죽음을 무릎 쓰고 예수부활을 증거 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거짓으로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증거 되었습니다.
②또 하나는 예수의 부활은 영적인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유대인들은 영적존재인 천사를 믿는 바리새인들이 있었고 영적인 존재를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영적인 존재를 믿었든 믿지 않았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 그들이 처음 생각한 것은 이것은 예수의 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부활을 믿지 못했던 제자들의 처음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 37절에 보면,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사람들은 예수의 부활을 영적인 부활로 생각했고 자기들에게 나타났던 주님은 영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면서 많은 곳에서 쉽게 받아들여졌던 부분입니다.
헬라인들은 심지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영으로 오셨다고까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부활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요 오해였습니다.
영으로 부활하셨다는 생각을 가졌을 때 인류는 부활을 학문적이고 정신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부활이라는 말이 다방면에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회복한 것을 부활했다고 하고 못된 인간으로 살다가 개과천선한 것도 부활했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부활의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하고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다른 것에 앞서서 죽은 육체가 살아있는 육체로 부활하였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는 내용인데요,
제자들을 찾으신 주님은 제일 먼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십니다.
이 말은 주님께서 제자들과 늘 나누시던 평소의 인사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듯이 유대인들은 만나면 ‘샬롬’이라고 인사를 합니다.
주님은 평소에 하시던 그 인사로 제자들을 만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평소의 사시던 모습, 제자들과 만나시고 함께 하셨던 그 모습으로 부활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며칠 전까지 함께 하셨던 평소의 예수님의 모습 그대로 부활하셨다는 말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인사에 당황한 것은 제자들이었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셨다는 기쁜 생각보다는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의심이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정말 ‘이분이 우리가 따르던 그 분이 맞을까?’
‘아니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죽었던 사람이 어떻게 살아서 우리에게 오실 수 있을까?’
‘우리가 예수님의 환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짧은 순간에 제자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은 정말 두려움 자체였으며 각종 의심으로 가득하였으리라고 봅니다.
이런 제자들을 안심시키고 믿게 하기 위하여 주님은
먼저, 내 손과 발을 보고 나 인 줄 알라고 하십니다.
영은 손과 발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손과 발을 그대로 갖고 계셨습니다.
그것도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그 자국 그대로 갖고 계셨습니다.
손과 발에 대못에 박히신 못 자국이 그대로 있었던 주님은 결코 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완전한 육체의 부활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주님은 나를 만져보라고 하십니다.
손과 발을 보여주실 뿐 아니라 직접 만져보라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육체적 부활이라는 사실을 더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의심 많은 도마에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오는데요,
그곳에서는 더욱 생생하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내밀어서 내 손바닥에 있는 구멍 난 곳을 만져보라는 것입니다.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는 것은 그만큼 옆구리의 창 자국이 크게 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신 후에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못자국난 손과 발을 보이십니다.
자신을 보고 영으로 생각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나는 영이 아니라고 주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런 말씀 앞에 제자들도 어느 정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확실하게 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세 번째로, 여기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면서 생선 한 토막을 잡수십니다.
생선을 잡수셨다, 음식을 잡수셨다는 말은 너무나 분명하게 예수님의 부활이 영적인 부활이 아닌 며칠 전에 모습 그대로의 육체적인 부활이심을 분명하게 증거 하신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 선조들은 조상신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시간은 자정을 넘어서는 시간이었는데 제사드릴 때는 아무리 추워도 문을 조금 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밥 위에, 국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조상신들이 들어오기 좋게 문을 열어놓은 것이고 식사를 하도록 숟가락과 젓가락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조상신도 들어와서 밥을 잡수시거나 음식을 잡수시지 않았습니다.
물론 조상신들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영은 결코 식사를 하지 못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주님이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잡수셨다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결코 영으로 부활하신 것이 아닌 육으로 부활하신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말씀의 핵심은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 분명한 역사적인 사건이며 그 부활은 영적인 부활이 아니라 육신의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처럼 우리도 부활해야 한다면서 마음의 부활, 기쁨의 부활, 평안의 부활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닐지라도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의 가장 기본적인 사실은 예수님이 죽기 전의 모습 그대로 온전한 육체적 부활을 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전제된 후에야 다른 부활도 이야기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세 명의 죽은 자를 살리신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죽은 지 나흘 만에 살리신 나사로와 나인 성 과부의 아들,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이들을 부활했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지만 결국은 다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살아남은 부활이 아니라 소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이후에 다시 죽지 않으시고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활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소생은 정말 부활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비슷하기는 하지만 부활은 아닙니다.
우리는 비슷한 부활을 믿지 않고 완전한 부활을 믿습니다.
거짓으로 꾸며진 부활도 믿지 않고 영적으로 부활했다는 주장도 믿지 않습니다.
죽은 지 사흘 만에 육체의 모습으로 부활하신 완전한 부활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육신의 부활이 왜 중요하겠습니까?
육신의 부활이 있어야 예수님의 부활이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완전해야 주님이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완전해야 죽음의 권세를 완전히 멸하시고 사망에서 승리하신 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완전해야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구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완전하지 못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완전한 부활을 하지 못하신 분이 어떻게 하나님이 되실 수 있겠습니까?
완전한 부활을 하지 못하신 분이 어떻게 인간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실 수 있겠습니까?
완전한 부활을 하지 못하신 분이 어떻게 사망의 권세를 멸하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완전한 부활이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이셨고 사망의 권세를 멸하신 분이셨고 유일한 인간의 구세주가 되실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예수님의 부활이 완전해야 우리의 부활도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불완전하다면 그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부활이 어떻게 완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불완전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우리의 부활이 어떻게 온전한 부활이 될 수 있겠습니까?
불완전한 부활로 예수님이 어떻게 구원자가 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완전한 부활이라는 사실입니다.
죽은 모습 그대로 부활하셨고 육체의 모습 그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렇게 완전하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예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켰고 믿을 수 없는 사실로 인식될 때가 많았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군인들의 매수설, 도둑질하여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설,
완전히 죽지 않은 예수님을 무덤에 넣었을 때 무덤의 찬 기운으로 인하여 깨어났다는 기절설,
여자들의 여린 마음으로 헛것을 보았다는 설, 육으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부활했다는 영적 부활설 등 많은 설들이 있지만
그러나 여러분, 기독교 역사가 2천년동안 지속되고 더욱 확장되어갔다는 것은 이런 모든 설들을 다 무너트리고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이며 온전한 육체의 부활이며 온전한 부활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완전하신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모든 인간의 진정한 구세주라는 사실을 증거 합니다.
죽음의 권세를 완전히 멸하신 분이심을 증거 합니다.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고 영원히 살아계셔서 인간의 생사화복과 역사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증거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영원한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확증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이 부활신앙으로 굳게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2024.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