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촨즈에게 IBM은 선망의 기업이었다. IBM의 컴퓨터 판매대행을 하던 1985년만 해도 류촨즈는 아버지가 주신 낡은 양복을 입고 판매처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후에 레노버가 '중국의 IBM'으로 불리게 되었을 때에도 그는 기쁨보다 당혹감을 느꼈을 정도다.
류촨즈뿐만 아니라 IT업계 종사자라면 모두 IBM이라는 높은 봉우리를 우러러보았을 것이다. IBM은 PC생산의 표준을 정한 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PC업계의 대부와도 같은 기업이 레노버에 인수되었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380p)
1990년대 처의 첫 노트북은 '씽크패드'였습니다. 자판 중앙에 빨간색의 마우스 포인터가 달린 IBM 노트북은 매력적이었지요. 이후 몇차례 노트북을 바꿀 때마다 항상 씽크패드를 고집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 그 씽크패드가 중국의 레노버라는 기업에 인수됐습니다. 많이 놀랐지요. 과연 생소한 이름의 중국회사가 씽크패드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 때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좋았던 델 노트북이 눈에 들어왔고, 이후 한동안 델을 사용했습니다. 몇해전 사용하던 델 노트북의 팬이 고장나 AS센터에 문의해보니 부품이 한국으로 들어오는데 2주일이 걸린다는 답변을 듣고 실망해 지금은 애플의 맥북을 쓰고 있지요.
2000년대 중반 세계 최초로 PC를 만든 IBM의 PC 사업부를 인수해 사람들을 놀라게했던 그 레노버는 지난해 세계 PC 업계 1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며칠전 세계 최초로 휴대전화를 만든 미국 휴대전화 제조업체 모토로라를 구글로부터 인수했습니다.
레노버를 창업한 류촨즈. 중국에서 IBM의 컴퓨터 판매대행을 하던 그에게 IBM은 선망의 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처음에는 IBM의 인수 제안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인수를 통한 '벼락성공'을 싫어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양위안칭의 인수 설득에 결국은 동의하게 됩니다.
"당시 나는 IBM의 인수 제안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간 고민해온대로 전문화, 국제화의 길을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업인수를 통해 단숨에 도약하는 식의 변화를 신뢰할 수는 없었다. 레노버도 상장기업인 탓에 주주들로부터 이윤성장의 압박을 받았다. 새로운 발전영역을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난 3년간 사업다각화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결국 레노버는 사업다각화 전략을 포기하고 전문화와 국제화 노선으로 돌아가기로 할 즈음 IBM으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당시 IBM은 PC사업부를 분리한다는 전략적 선택을 한 뒤 인수기업으로 델이나 HP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델과 HP가 IBM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중복되는 부분이 없는 레노버를 택했습니다.
모토로라 인수로 레노버는 단숨에 LG전자(4.8%)와 중국 화웨이(5.1%)를 제치고 세계 스마트폰 업계 3위(점유율 6%)로 부상했습니다. 지난번 씽크패드의 경우처럼, 레노버는 이번에도 '브랜드'를 확보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폴더형 휴대전화 '스타텍'과 얇은 '레이저'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지요.
레노버는 씽크패드의 경험을 살려 고급 제품은 모토로라 브랜드로 판매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LG전자의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등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씽크패드의 옛 팬으로서, 레노버가 스마트폰에서도 씽크패드의 성공 스토리를 또 만들어낼지 관심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