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仙境) 속 불로장생(不老長生)과 축수(祝壽)
일월오봉도와 해반도도의 상징적 연관성
문동수(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사)
1. 서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는 편안한 삶을 누리며 장수하기를 꿈꾸어왔다. 영생불사에 대한 바람은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치자에서부터 피치자에 이르기까지 공히 추구되어왔다.
유교이념을 지향한 조선 왕조에서는 기자(箕子) 홍범구주(洪範九疇)에 기반을 두어 장수를 오복 가운데 으뜸으로 여겼다(홍범구주는 세상을 다르리는 아홉가지 원칙을 규정한 것으로서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기자에게 ‘인륜(人倫)의 질서’에 관해 묻자, 기자는 하늘이 우(禹)임금에게 주었다는 (洪範九疇)가 곧 인륜의 질서라고 답하였다.『서경(書經)』). 즉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중에서 수명을 첫째로 여긴 것은 장수에 대한 기원이 얼마나 강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왕 중심의 통치체제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최고의 통치자인 왕이 장수해야 하는데 왕의 장수가 왕조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필요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의 불로장생을 위해서는 현실성을 추구한 유교보다는 불교나 도교 등으 신항체계가 원용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도교의 신선 신앙은 옛 선현들의 불로장생에 대한 염원과 관념체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신앙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일월성신에 대한 제례와 함께 수성노인도, 신선도 등 도교적 선계의 형상으로 표현화되었다.
삼국시대 이래 조정에서는 별의 운행과 출현을 상서롭거나 조짐으로 삼아 인간세계에 미칠 길흉을 예언하였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노인성(老人星)에 나라의 평안과 왕의 장수를 기원하고 동시에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대상으로서 권력을 부여하여 초재를 지냈다. 또한 군신과의 연회에서 기로회 갱시로서 왕의 수명을 송축하였다. 또한 왕에게 반도(蟠桃)를 올리면서 늙지 않는 봄을 경하하고, 성군의 수명을 선도 만송이 천 가지에 열리기를 바라며 거행한 진연의례 등도 이러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노인성이 나타나면 세상이 태평해지고 왕의 수명이 길어진다는 인식을 가지고 신하들은 왕의 장수를 기원하고 성덕이 별처럼 빛나고, 바다처럼 무젖기를 바라며 축원하였다.
『시경(詩經)』 천보장(天保章)에서는 신하들이 군주의 장수를 축원하며 아홉 번 같다(九如)는 말에 비유하였는데, 조선시대에도 태평성대가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신하들은 금척(金尺)과 반도로 노래하고 칭송하며 화답하였다.
왕의 장수가 곧 국가의 안위나 치적과 직결된 만큼 왕의 장수를 송축하는 수사적 시문들이 읊어졌고, 조선 후기로 갈수록 시문에 국한되지 않고 궁중무, 그리고 장수악 혹은 연수악 등 궁중음악에 이르기까지 장수를 축원하는 의식으로 확산되었다.
시문, 무용, 음악 외에도 왕실의 의례에 사용한 궁중장식화들은 왕실의 번영과 왕의 장수를 희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왕모와 주무왕, 그리고 신선들이 등장하는 《요지연도(瑤池宴圖)》, 《해반도도(海蟠桃圖)》, 《수성노인도(壽老人圖)》, 《벽해상전도(桑田變成海)》 등은 왕의 장수를 축수(祝壽)하는 그림들로서 대체로 생일 또는 이에 준하는 축일을 맞아 장수와 행복을 기원하였고, 군선축수, 팔선경수, 팔선앙수, 요지반도회, 동방삭, 삼성 등 초월적인 신선들을 재현의 대상으로 삼았다. 한편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심장생도(十長生圖)》, 《모란도(木蘭圖)》, 《해반도도(海蟠桃圖)》등은 궁중에서 진연이 열린 곳이라든지, 혼전, 빈전, 진전 등에 각각 배설되어 불로장생과 부귀영화의 선경으로 표현되면서 장식적인 효과를 배가시켰다.
각기 도상은 다르지만 궁중화원이 그린 화려한 진채화인 이 그림들은 당대의 궁중장식화의 형식과 양식적 특징을 파악하는데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 중에서도 금벽청록산수화인 일월오봉도의 배설 위치에 따른 기능과 의미에 대한 선행 연구는 최근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지만 《해반도도((海蟠桃圖)》와 유사한 해학반도병이 고종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최근 연구에서 제기된 바 있다.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와 《해반도도(海蟠桃圖)》는 군왕의 장수를 송축하고 불로장생을 바라는 그림으로서 도교의 선계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논지 아래 그림들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2.복록(福祿)과 축수(祝壽) : 일월오봉도
천보장(天保章) 구여(九如)와 그 의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월오봉도》는 여느 일월오봉도처럼 다섯 개의 봉우리 중에서 중앙에 솟은 봉우리가 가장 크고 빼어나다. 좌우에 나란히 솟은 봉우리들은 중앙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작아지는 형세를 띤다. 하늘의 동쪽에는 붉은 해가, 서쪽에는 하얀 달이 묘사되어 단순히 장식적인 모티브로 간주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의 필연성이 돋보인다.
협곡 사이에서는 폭포의 물줄기가 떨어져 포말을 일으키며 넓은 바다로 흘러 들어온다. 바닷물은 바람에 의해 널실거리다가 다시 포말을 일으키며 마치 폭풍이 몰려올 것처럼 요동치는 긴장감을 암시해 준다. 바다의 양쪽에는 작은 언덕(岡陵)에 무성하게 자란 “모든 나무의 으뜸”인 소나무 두 그루가 뿌리를 드러낸 채 짝을 이루며 군자처럼 서 있다.
이 그림은 궁중장식화인 만큼 좌우 대칭에 간결하고 평면적인 구성을 보이고 있으나, 그 기저에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조선 왕실을 표상하는 그림이다.
다섯 봉우리와 해와 달 등은 『시경(詩經)』의 「소아(小雅)」편 「천보(天保)」시 중 천보구여(天保九如)와 밀접한다. 「천보장(天保章)」은 군주가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니 신하들이 시로서 보답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여는 “산과 같고 언덕과 같으며, 산마루와 같고 구릉과 같으며 냇물이 한창 흘러오는 것과 같으며.... 항상 떠오르는 달과 같으며 변함없이 떠오르는 해와 같으며 장구한 남산처럼 이지러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네, 소나무와 잣나무가 무성하듯이 그대를 계승하지 않음이 조금도 없구나”라는 구절에서 아홉 번의 ‘여(如)’자를 사용하여 오랫동안 왕의 군림을 축원하고 해와 달처럼 남산처럼, 송백처럼 천세를 누리라는 축수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산과 같이 구릉과 같이, 만수무강하소서(如岡如陵 萬壽無疆)’로 압축할 수 있다. 아홉 가지의 사물은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도교사상과 무관하지 않다.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도교는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원리로 하는데, 일월오봉도의 구성 체계 역시 이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오행론은 하늘과 땅의 변화를 파악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따라서 오성(五星)의 변화에 응하여 지상에는 오시(五時)가 매년 순환된다는 감응사상이 성립된다. 왕조의 수명 역시 오행의 주재자인 하늘의 오정제(五精帝)가 내린 천명을 받아 성립된 것이므로 왕조으 오덕(五德)은 시대를 따라 순환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사유 방식이야말로 오행론에 입각한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사이의 감응(感應)사상이다.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에 나타난 소재는 오행(五行)으로부터 나온 팔괘(八卦)를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주역(周易)』에서 팔괘는 건곤(乾坤)과 그 여섯 아들 육자(六子)인 일월뇌풍산택(日月雷風山澤, 감리진손간태)을 지칭한다. 건곤은 하늘과 땅이며, 태(兌)는 물, 이(離)는 해, 진(震)은 천둥, 손(巽)은 바람ㆍ나무, 감(坎)은 땅, 간(艮)은 언덕이나 산이다. 무극의 태극과 음양오행이 오묘하게 합쳐져 응축되면 만물이 자라고 이를 다스리는 것은 천자(왕)라고 하였다.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에는 통치자가 천명(天命)을 받아 삼라만상을 조화롭게 통치하는 존재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를 뒤로 옥좌에 앉은 왕은 우주의 질서를 잡는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천지간에 가장 신령스러운 존재(人)가 되는 것이다.
해반도도(海蟠桃圖) / 국립중앙박물관
그림의 형식과 특징
이 그림은 각각 55cm에 해당하는 네 조각의 비단을 두 폭으로 연결한 곡병(曲屛) 형식을 띠지만 용도상 장지(障子)에 가깝다. 앞 화면에는 비단 위에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가 그려져 있으며, 뒷면에는 종이 바탕에 스물네 개의 천도가 그려진 《해반도도(海蟠桃圖)》가 있다. 각기 다른 소재의 그림이 앞뒤 양면에 그려져 있는 특이한 예로서 신선원전의 감실에 배설된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와 《모란도(木蘭圖)》 배설 형식과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의 회장(回粧)을 보면 연녹색 비단을 두른 다음 사면의 도토락(都多落)에는 총총히 금색의 운문단으로 금박(貼金)을 씌운 반면, 뒷면의 해반도도는 무늬 없는 비단만 두르고 마무리하여 대조를 보인다.
전체 색조는 청록을 위주로 하여 오채(五彩)로 오봉산, 적송, 수파를 정교한 공필로 묘사하였고, 전채와 배채(背彩)기법을 혼용함으로써 장식적인 효과를 높였다. 특히 바닷물은 청색으로 배채하여 푸른 바다의 물결을 은은하게 연출함으로써 채색의 농담을 적절하게 구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바닷물의 색이 바랜 것처럼 연하게 보이지만 궁중화원들은 색의 조화를 최대한 고려하여 물결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일월오봉도에 보이는 자연 속 경물은 하나의 상징체계처럼 도식적이고도 대칭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고졸성과 인습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바위와 산은 부드러운 토산과는 달리 상상체계의 괴체 덩어리와 같은 암산으로 묘사되어 있다. 청록색으로 산을 바림한 다음 첩첩히 쌓인 산 표면을 황색으로 포인트를 주듯 강조하여 금벽청록산수화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암산은 각이 진 형태로 중첩시킨 다음 금니 구륵선으로 마무리를 하여 신령스런 산으로 돋보이게 하였다. 전경에 배치된 바위 위에는 소나무의 뿌리가 좌우로 내외향(內外向)하게 하여 대칭을 이룬다. 더욱이 세 개 혹은 그 이상으로 무리를 이룬 규칙적이고 도식회된 포말은 과장성이 강조되고 물도 좌우 대칭을 띠며 오행감이 결여돼 있다. V자 형태의 소나무 줄기, 여러 겹의 물결과 규칙적으로 늘어선 포말, 화려한 진채(眞彩) 등은 궁중화원풍의 전통성을 강하게 띤다.
산보우리 사이에 떠 있는 해는 보통 붉은 채색가 금니를 섞어 용하고, 달에는 은니를 칠하는데, 이 그림에서는 은니으 흔적은 보이지 않고, 주로 해와 살에 금니를 사용하였다.
일월오봉도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폭포는 만물의 소생을 의미하듯 봉우리의 협곡에서 떨어져 바다에 굽이치는 물살에 파묻혀 요동함으로써 오행의 불변하는 교류를 상징하는 듯하다. 포마른 1901년 『영정모사도감의궤』 및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에 보이는 세 개 혹은 그 이상의 무리들이 일직선으로 늘어선 형태와는 달리 한 개의 포말이 화면 중심으로부터 7단,주우 5단, 4단씩 감소하면서 규칙적인 변화를 보인다.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국립고궁박물관
봉우리 양쪽에 배치된 고시적인 일자형의 소나무는 용비늘처럼 붉은 수간(樹幹)과 장송(長松)의 뿌리를 드러내고, 잎 속에는 보기 드물게 새싹이 돋아나는 형상이다. 《십장생도(十長生圖)》와《日月五峰圖》에서만 보이는 특이한 소나무 잎은 마치 목(木)의 성징이 따스하여 화(火)가 그속에 숨어 있다가 마찰하여 뚫고 나오는 송백(松柏)의 형상이다. 여기에는 음양의 조화로 나라의 복이 만년토록 이어지고 뿌리와 가지가 백세, 천세토록 뻗어 나가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는 쓰임새에 따라 삽병, 4폭, 6폭, 8폭, 10폭 병풍의 형태로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조선 초기 정도전(1337~1398)이 이를 창안하여 왕의 어좌에 배설하였다는 설이 있지만 『선조비인목후산릉도감의궤(宣祖妃仁穆后山陵都監儀軌)』에 의하면 1632년 혼전을 장식하였고, 1688년 『어진도감모사의궤(御眞都監模寫儀軌)』에 의하면 영희전(永禧殿)에 영정을 봉안할 때 그 양 옆에 오봉산병 1첩(貼)을 각 하나씩 놓고 비단 장막을 앞에 설치하였다고 한다. 이를 종합적으로 볼 때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는 편전의 어좌 뒤 , 어진을 봉안한 진전, 왕과 왕후의 혼전ㆍ빈전에 장식됨으로써 지엄한 통치자로서의 권위를 과시하거나, 영생불사를 기원하는 도가적 신선세계를 표현하였다.
3. 불로영생(不老永生)의 해반도도(海蟠桃圖)
해반도도(海蟠桃圖)는 반도, 영지, 대나무, 바위 등 장생의 소재들을 웅장한 바다를 배경으로 한 그림으로서 서왕모가 거처한다는 바다 위의 곤륜산, 즉 상상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반도는 서왕모(西王母)가 심은 복숭아로서 삼천 년에 한 번 꽃이 피고 삼천 년에 한 번 열매를 맺으며, 또 다시 삼천년에 열매가 익는 것을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 선도이다. 이 선도는 나무줄기가 반룡처럼 구불구불하여 반도(蟠桃)라 하는데, 실제로 그림 속의 형상을 보면 줄기와나뭇가지가 굽어져 있어 전설적 표현에 의거하여 충실하게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반도의 어원은 『산해경(山海經)』에서 “창해(滄海)”가운데 도삭산(度朔山)이 있는데 산 위에 구불구불 삼천리나 뻗은 큰 봉숭아나무가 있다. 이처럼 반도(蟠桃)는 신화 속 신선이 먹는다는 복숭아로서 해과(海果)를 의미한다.
『태평광기(太平廣記)』 권3 「한무제(漢武帝)」에 의하면 “7월 7일 서왕모(西王母)가 내려와 선도(仙桃) 네 개를 황제에게 바쳤는데, 황제가 그것을 다 먹고 나서 씨앗을 챙기려 하자 서왕모가 이유를 물었다. 황제가 ‘심으려고 한다.’라고 하자 서왕모는 ‘이 복숭아는 삼천년에 한 번 열리는 데 중국은 땅이 척박하여 심어도 나지 않습니다.’ 하니, 황제가 그만두었다.”하였다.
이처럼 반도가 지닌 불로장생에 대한 의미와 상징성이 컸기 때문에 조선시대문인들 사이에서는 장수에 대한 열망과 축수를 위한 시를 빈번하게 읊었음을 여러 문헌에서 확인된다.
곤륜산 위에서 나와 / 출자곤륜상(出自崑崙上)
지금 이 집 앞에 심겼구나 / 금래식원전(今來植院前)
요지에서 종자를 나누어 온 뒤로 / 요지분종후(瑤池分種後)
속세 온 지 몇 해나 니났는고 / 진세기경년(塵世幾經年)
고운 잎은 구름과 함께 익고 / 기엽화운열(綺葉和雲熱)
금빛 열매는 햇살에 비친 채 달렸다 / 金城映日縣
늙은이가 이 열매를 먹으면 / 衰翁能服食
오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어라 / 證得壽長延
영지와 대나무 등의 선계의 소재들과 함께 삼천 년에 한번 열매가 열린다는 바도를 시와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왕의 축수와 불로장생에 대한 염원을 담고자 하였다. 이에 대한 열망과 의미는 진연의궤 악장 중 선모의 창사에서 더욱 뚜렸해진다.
“옥돌섬 가에 신선 복숭아 열매 맺으니
삼천년 봄빛이 옥쟁반에 가득하네
삼천년 봄 우리 군왕의 수명이라
상서로운 해 빛나네.”
해반도도는 선대으 왕들이 머무는 성스러운 공간을 신선세계의 선경으로 형상화한 것으로서 왕의 상쟁불사와 왕실의 영원함을 기원하는 그림이다.
전술하였듯이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의 뒷면을 장식한 이 그림은 종이 위에 화려하게 그린 공필화(工筆畵)이다. 경물은 우측 하단에 치우친 듯 보이며, 단조로운 화면에 변화를 주기 위해 복숭아 가지를 사선구도로 향하게 하였다. 오른쪽에서 왼쪽 상단으로 뻗어 나와 또 사시 위와 아래로 분기하는 가지는 화면에 역동성을 불어넣어 준다.
바다 한 가운데 반도 나무줄기는 옹이 지고 구불구불하여 천년 이상 묵은 고목처럼 보이면서도 정성스레 그린 도홍색(桃紅色) 꽃과 농익은 열 네 개으 복숭아는 탐스럽게 익어 있다. 활짝 핀 복사꽃과 망울진 꽃이 자테를 뽐내듯 비단같이 곱고 화사하며, 나뭇잎은 담록과 초록을 번갈아 채색함으로써 단조롭기 쉬운 장식화에 변화를 주었다. 복숭아의 뾰족한 부분은 여인네의 젖가슴처럼 붉은 농채로 곱게 칠한 다음 주변에 이슬 듬뿍 맺힌 듯 붉은 연지를 찍은 듯 강조하였고, 토실토실한 아랫 부분은 고운 담록으로 바림하여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반도가 뻗어 나온 암석은 먹으 농담으로 입체적으로 나타내어 장중한 느낌을 준다. 얼룩얼룩 이끼 낀 암석 주변에는 푸른 대나무와 붉은 영지가 자라고 있는데, 이러한 소재들은 선계의 이미지임을 잘 보여준다.
푸른 이끼는 암석과 반도 줄기에도 피어 있고, 대나무는 사선으로 뻗어 올라가는 복숭아 줄기를 감싸 않듯이 푸르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바위 주변에는 포말이 일고, 바다의 파도는 상하 2단으로 나뉘어 푸른 색으로 배채한 다음 먹으로 물결선을 윤곽지어 잔잔한 바다의 느낌을 준다.
반도와 대나무, 영지, 바위 등에 낀 이끼 등은 청록진채화풍의《십장생도(十長生圖)》와 《요지연도(瑤池宴圖)》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이다. 이러한 복숭아, 영지, 대나무 등의 조형적 요소들은 김홍도필《三仙圖》부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서 신선이 지닌 지물에서도 보인다. 신선이 든 바구니 속에 영지와 대나무잎, 그리고 손에 든 천도는 불로장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바다의 삼신산(三神山)에 있다는 신초(神草)인 영지(靈芝)는 신선들이 먹는 것이다. 일찍이 서복(徐福)이 봉래산(蓬萊山)에서 캐어 왔다고 전해지는 것으로서 서지(瑞芝), 선지(仙芝), 신시(神芝), 불로초, 삼수초(三秀草)라고도 불린다. 반도 가지의 주변과 하늘에는 마치 신선이 흰 구름을 타고 오르는 것처럼 하얀 서운(瑞雲)이드리워져 있어 신성한 기운이 흐른다. 이는 신선세계의 구름으로서, 왕이 있는 장소나 행사가 벌어지는 곳이면 어김없이 등장하여 분위기 연출을 북돋는 역할을 한다.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와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그리고 《십장생도(十長生圖)》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으로서, 바다에 흰 포말이 일고, 하늘에 붉은 해와 달이, 수십 마리의 학과 십장생이 묘사됨으로써 선경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해반도도에 보이는 이와같은 특징들은 앞서 본 《해반도도》와 거의 동일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형식이다. 하나는 종이 바탕에 그려진 해반도도로서 귀갑 창살이 달린 형식과 그 뒷면에는 이것과 짝을 이룬 또 다른 해반도도가 있다.
하나는 창호가 달린 《해반도도》로서 종이 위에 그려져 있고 다른 하나는 비단에 그려져 있는데 비단 바탕의 《해반도도》는 폭 60.7cm의 비단 2폭을 완폭과 1/2폭의 좌우로 연결한 그림이다. 금색의 운문단으로 총총히 수놓아져 있어 그 화려함을 더해준다. 청옥 진채으 화원화풍, 원래 상태에서 본 첩금(貼金) 상태, 배채 등 회장(繪庄)의 흔적이나 구조 등으로 볼 때 궁중소용으로 제작된 것임에 틀림없다. 채석은 주로 화원들이 궁중 소용을 위한 작품을 제작할 때 제작할 때 사용한 천연 광물성 안료, 즉 석채가 사용되었다.
이 그림은 전체적인 배경과 소재의 포치, 묘사의 방식 등에서 《일월오봉도》와 짝인 《해반도도》와 유사하다. 단지 화면 오른쪽에서 반도 줄기가 직각으로 솟아 전 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구도라든지 반도 가지위에 구름이 드리워지지 않는 점에서 다른 《해반도도》와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바위 위에 자란 영지와 푸른 대나무가 묘사된 점, 바위 주변에 포말이 일고, 2단으로 파도가 일고 있는점 등은 대동소이하다. 열세 개가 달린 탐스러운 반도는 끝부분이 붉고, 표면에는 붉은 연지 찍은 것처럼 포인트를 준 점도 제작에 함께 함여한 화원들의 화품으로 보인다.
반면 종이에 그려진 《해반도도》의 크기는 196.0×149.0cm이다. 창호의 틀 크기는 107.5×95cm이며, 귀갑살(거북의 잔등 무늬처럼 살을 짠 것) 달린 것으로 보아 장지문임에 틀림없다.
화면 왼쪽에서 반도 줄기가 곡선으로 뻗어 창틀 위를 장식한 형상이라든지 푸른 대나무가 화면 오른쪽에 포치되어 있는 점 등은 한 쌍의 그림에 보이는 차이점이다. 그 외에 반도 가지 위에 구름 하얗게 드리워진 점이라든가 바위 주변에 포말이 일고, 대나무와 영지, 반도 등 선계의 소재들로 구성된 점 등은 《해반도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반도는 열한 개가 단려 있으며, 열매의 표현 또 끝부분이 붉고, 표면에는 붉은 연지 찍은 것처럼 포인트를 주었다. 비단 위에 첩금으로 마무리한 앞면의 《해반도도》와는 달리 무문주를 장황하였다.
이처럼 앞뒤 양면에 그려진 《해반도도》는 《일월오봉도》의 측면에 문지방과 문설주에 끼워 넣은 장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반도도》의 현전하는 예로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일월반도도》가 있다. 이것은 4첩 2좌 병풍으로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해반도도》와는 달리 해와 달, 산봉우리 외에 물결과 포말 등이 더욱 도식화되고, 채색은 양록, 양청 등이 사용되어 이보다 훨씬 후대에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시대가 내려올수록 《해반도도》의 소재는 십장생의 소재와 결합하면서 《해학반도도》로 도상의 변화를 가져온 게 아닐까 생각된다.
《해반도도》에 관한 기록은 『영정모사도감의궤(影幀模寫都監儀軌)』에 의하면 1900년 화재로 소실된 경운궁의 선원전을 1901년 고쳐 짓고, 그 내부를 장식하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기록만 보면 당시 제작된 해반도병은 역대 칠성조(七聖朝)의 어진을 봉안한 선원전에 배설되었음을 알려준다.
광무 5년(1901) 7월 9일 영정모사도감도제조(影幀模寫都監提調) 이하 명단에 해반도병을 기화한 화원은 9품이 네 명, 6품이 여섯 명으로 구성돼 있다. 1902년 영정도감의궤(影幀都監儀軌)와 진전중건도감의궤(眞殿重建都監儀軌)의 수용비 예산외 지출 청의서가 기록된 『각사등록』 근대편에는 해반도병 삼좌를 제작하였고, 채색과 금니를 사용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위 기록으로 볼 때 《해반도도》는 그 구성 형식 및 장황으로 볼 때 궁궐 내부를 장식한 현존하는 유일한 예라는 점에서 이 그림이 언제 어느 공간에 장식되었고, 그 기능은 무엇이었는지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4. 배설(排設) 장소 및 제작연대
장지는 사묘건축보다는 궁궐건축에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형식으로서 방의 칸막이에 끼우는 문이다. 방 중간의 벽과 천장에 문틀을 고정시킨 다음, 바닥의 문지방은 필요에 따라 끼우고 장지문을 달면 방을 두 개로 구획할 수 있고, 문지방과 문짝을 빼내 하나의 큰 방으로 사용한 칸막이 형식이다.
장지는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1801)나 『인정전영건도감의궤(仁政殿營建都監儀軌)』(1805) 등에 도화장자(桃花障子)라는 기록이 엿보이는데 여거서의 도화장지란 복숭아과 복사꽃이 그려진 장지문이 아니었을까 미루어 짐작된다. 문헌상에 보이는 도화장지, 도화삽병, 그리고 해반도병이라는 명칭은 결국 해반도도를 의미하는 것이아닐까?
《해반도도》가 제작되었을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1901년 『영정모사도감의궤』에서 처음 보이지만 도화장지라는 명칭은 이미 1805년 『창덕궁(昌德宮) 인정전영건도감의궤(仁政殿營建都監儀軌)』에서 확인되며 『창경궁영건도감의궤(昌慶宮營建都監儀軌)』(1834)에서는 기둥 한 칸 거리의 오봉장지가 창경궁 함인정에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 칸에 맹장지를 짜고 여기에 《일월오봉도》를 그려 붙박이 병품처럼 만든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좌 뒤에 배설되는 일월오봉병과 화폭의 수가 다르지만 유사한 형식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도교사면상(道敎四面像)
노자가 남긴 5천여 자의 가르침을 "도덕경" 이라 한다. 노자는 초기 도교에서 태상노군으로 불리며 최고의 신으로 신격화되었다. 수ㆍ당 대 이후 최고신의 자리는 원시천존과 옥황상제가 차례로 차지하였지만 태상노군의 인기는 여전히 높아 삼청의 하나로 모셔졌다. 우리 역사에서는 고구려 영류왕7년(624) 당 고조가 천존상을 보내온 기록이 있는데, 이와 비슷한 시기에 역시 중국에서 만들어진 노군상(노자상)등 3점의 도교 신상을 감상할 수 있다.-인용-
도교 삼존상(노군상)-기단 4면의 명문에 주군이 노군임을 밝히고 있고 제작연대도 정확해 남북조 시대 도교상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유물이다. 주군의 자리에는 노군이 위치하고, 그 주위에는 관복을 입고 손에는 홀을 들고 머리에는 관을 쓴 협시가 위치한다. 도교상 주존의 지물인 주미가 오른손에 들려 있고,t자형과 유사한 빙궤에 왼손을 얹고 있어 협시의 지물인 홀,머리에 쓰고 있는관과 함께 이 시대 도교상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인용-
도교 삼존상-노자로 추정되는 주존과 장인의 협시로 이루어진 도교 삼존상이다.수염을 기르고 보관을 쓴 주존은 소매가 긴 앞여임의 옷을 입고 허리띠를 매고 있으며,오른손에는 주미라 불리는 위의구를 쥐고있다.광배에는 주존의 두부를 덮고 있는 듯이 서로 얽힌 두 마리의 용과 괴수가 표현 되어 있다.아래쪽 기단부에는 정면에 공양자와 상의 발원자인 개씨의 이름이,측면에는 연창4년의 기년명이 새겨져 있다.-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