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에 아파트 리모델링이 화두로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지난 2001년 9월 공동주택 리모델링제도가 도입된 후 2002년 주택공사가 서울 마포구 마포용강아파트 5개동 가운데 2개동을 리모델링하면서 세간의 시선을 모은 것이 처음이다. 시공을 맡은 대림산업은 18평형에 앞 뒤 베란다를 신설하는 등 1년간의 공사를 통해 실내면적을 4.5평 늘이고 난방, 급수, 통신시설을 업그레이드했다. 당시 부동산 경기 상승에 힘입어 시세는 리모델링 전보다 3배가 뛰었다.
이후 아파트 리모델링이 재건축 대안으로 본격 논의되기 시작했다. 재건축에 비해 공사기간이 짧고 비용이 적게 들어가며 사업절차가 간소하다는 장점이 부각된 것이다. 무엇보다 용적률, 사업비 부담 등으로 재건축이 여의치 않은 노후 중층 단지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자원 재활용, 환경 보호 측면에서도 재건축보다 낫다는 공익적 요소가 대두되기도 했다.
그러나 입소문과 달리 알맹이는 제대로 영글지 못했다. 리모델링 관련 법안이 미비했던 데다 투자자 사이에서 ‘재건축 보다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마침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수직 상승을 거듭, 리모델링은 대세를 형성하지 못했다. 심지어 건축심의를 통과하고도 사업을 포기하는 곳까지 나왔다.
급기야 2004년 정부가 리모델링을 통한 증축 규모를 9평으로 제한한다고 발표하자 시장 분위기는 완전히 가라앉았다. 이 탓에 마포용강아파트 이후 지금까지 리모델링이 완료된 곳은 압구정동 대림아크로빌, 이촌동 로얄맨션, 방배동 래미안방배에버뉴 등 3개 단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올 들어 다시 바뀌고 있다. 꺼졌던 스포트라이트가 다시 켜지는 형국이다. 지난해 9월 리모델링을 통한 증축 규모를 ‘최대 9평, 전용면적 30%’에서 ‘전용면적 30%’로 바꾼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이 나온 게 가장 큰 동인이다. ‘최대 9평’으로 못 박았던 제한을 없애 큰 평수도 리모델링 효과를 제법 톡톡히 누릴 수 있게 했다. 기대감이 전에 비해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첩첩 둘러싸인 재건축 규제도 리모델링을 돋보이게 만든다. 개발부담금 부과, 안전진단 강화, 소형평형 의무비율, 임대아파트 의무건설, 후분양 등 쌓인 규제를 피하면서 재건축 효과를 누리려면 ‘리모델링이 최선’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에서 적잖은 폭의 시세 상승 기미가 나타나고 있어 재테크 효과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재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는 아파트는 서울에서만 30여개 단지 1만가구에 달한다. 특히 강남, 서초, 송파 등 서울 강남권과 동부이촌동에 단지가 몰려 있어 눈길을 끈다. 고급 아파트가 몰려 있고 전국 아파트 값을 선도하는 지역에서 리모델링을 주도하는 게 예사로운 현상은 아니라는 시각이다. 박윤섭 쌍용건설 리모델링사업부장은 “시장이 태동 직후 답보 상태에 빠졌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며 “리모델링 효과가 검증되고 1기 신도시 리모델링 등 수요가 일기 시작하면 놀라운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모델링 효과 ‘짭짤하네’
서울 서초구 방배동 궁전아파트는 단지형 아파트 전체를 리모델링하는 최초의 케이스다. 기존 리모델링 사업은 1개동 나홀로 아파트이거나 단지 일부에 국한됐지만 이 아파트는 216가구 3개동 전체를 주민 80% 이상의 동의를 거쳐 리모델링 중이다. 지난해 7월 쌍용건설이 착공, 올 12월 완공되면 이름도 ‘쌍용 예가 클래식’으로 바뀐다.
지난 78년 지어진 이 아파트는 지상 12층으로 기존 용적률이 220%에 달하는 데다 안전진단마저 통과하지 못해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선택했다. 당시로선 궁여지책이었던 셈이다. 가구별 1억~1억6,000만원의 부담금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1년 남짓한 사이 상황이 뒤바뀌었다. 28년 된 낡은 아파트는 화려한 외관의 새 아파트로 거듭나고 시세는 고공행진 중이다.
현재 리모델링 공사는 뼈대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바꾸는 식으로 진행 중이다. 우선 복도식 구조를 계단식으로 개조해 기존 복도 공간을 집안으로 끌어 들이게 된다. 이에 따라 가구당 실평수는 7~9평씩 늘어나 27평형은 35평형, 34평형은 43평형으로 바뀐다. 또 지하주차장을 새로 만들고 지상 연결 엘리베이터도 신설된다. 대신 지상에는 미니공원, 산책로, 피트니스센터, 골프연습장이 마련돼 주민편의를 한층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 아파트의 시세는 리모델링을 계기로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국민은행 시세 조사치에 따르면 2003년 6월 궁전아파트 53평형은 평당 1,196만원 선이었다. 하지만 3년여 지난 요즘 시세는 2,377만원으로 두 배가량 상승했다. 특히 착공을 앞둔 지난해 5월부터 가격이 솟구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인근에 위치한 다른 신축 아파트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2001년 9월 재건축 된 현대멤피스의 경우 2003년 6월 1,610만원 수준이다가 현재는 2,280만원 선에 도달해 있다. 처음엔 궁전아파트 가격 보다 현저하게 높았지만 리모델링 착공과 함께 비슷한 수준으로 따라잡히더니, 지난 연말부터는 뒤쳐지기 시작한 모양새다. 방배동 H부동산 관계자는 “신축 아파트와 거의 똑같이 취급해 가격이 산정되고 있다”고 밝히고 “새 아파트 프리미엄으로 가격 강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리모델링 아파트가 신축 아파트, 재건축 아파트에 진배없는 가격대를 형성하는 사례는 또 있다. 대림산업이 서울 압구정동 현대사원아파트를 리모델링해 일반에 분양한 압구정대림아크로빌의 경우 18억7,000만원이었던 81평형 분양가가 현재는 최고 35억원으로 올랐다. 이 아파트는 78년에 지어진 지상 14층 10평형 455가구의 독신자용 아파트였지만 리모델링을 통해 2004년 2월 81평형 4가구, 85평형 52가구의 최고급 아파트로 거듭났다.
역시 대림산업이 시공한 서울 동부이촌동 로얄맨션 역시 리모델링을 전후로 예사롭지 않은 가격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총 81가구 1개동으로 이뤄진 이 아파트는 지하 수영장을 주차장으로 바꿔 가구당 0.3대였던 주차대수를 1대로 늘이고 내외관, 평면 설계 등을 초현대식으로 바꿔 입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75평형의 경우 리모델링 전 5억원 수준이던 가격이 지난 12월 입주 후엔 15억원까지 올랐다.
삼성물산건설부문이 시공한 서울 방배동 삼호아파트 14동도 눈여겨 볼만하다. 삼성은 지상 12층 53평형 96가구를 리모델링해 ‘삼성래미안에버뉴’로 바꾸면서 앞 뒤 베란다를 10평정도 늘려 63평형으로 만들었다. 기존 3베이 골격은 유지하면서 욕실, 주방, 침실, 드레스룸 등의 위치와 크기를 재배치해 편의를 높였다. 이 아파트는 2004년 1월 평당 1,358만원 선이던 시세가 리모델링 완공을 몇 달 앞두고 오르기 시작, 지금은 평당 1,857만원으로 올랐다.
서울 30여개 단지 ‘추진 중’
리모델링 시장의 주인공은 서울 수도권의 노후 중층 아파트다. ‘지은 지 20년이 지난 10~12층 규모, 용적률 200% 이상인 단지는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이 효율적’이라는 게 건설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로 지은지 20년 안팎 된 중층 아파트들은 강화된 안전진단을 통과하기가 어렵고 용적률 확대도 쉽지 않아 현재 상태로는 재건축이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재건축 추진 단지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내부에서도 리모델링 논의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아파트 리모델링 시장은 앞으로 점차 확대 가속도를 붙일 전망이다. 증축 규제가 완화되면서 매력이 더해진데다 재건축에 뒤지지 않는 재산증식 효과가 속속 검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이 초기 진입단계를 지나고 있는 만큼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는 곳도 적지 않다. 특히 ‘리모델링 추진 중’이라고 밝히는 단지들 중에서도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두 손에 들고 저울질하는 곳이 적지 않다. 개중에는 단기간에 집값을 올릴 목적으로 리모델링 카드를 드는 경우도 꽤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는 단지는 서울에만 30여곳을 헤아린다.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이에서 ‘검토 중’인 곳까지 합하면 숫자가 훨씬 많아진다.
이 가운데 ‘뜨거운 감자’는 단연 고급아파트로 명성을 날렸던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아파트다. 1977년 지어진 이 아파트는 지상 12층 576가구 규모로 아파트 리모델링 사상 최대 금액인 2,500억원짜리 프로젝트다. 지난 2004년 GS건설과 삼성물산건설부문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2년 동안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최근에는 일부 주민을 중심으로 리모델링 반대 의견이 나오면서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광장동 A부동산중개 관계자는 “평형별 조합원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게 문제인데, 60평형대 이상 조합원들은 리모델링 후 10평정도 전용면적이 늘어나는 것에 별 흥미를 못느끼고 있다”고 배경을 밝혔다. 또 여의도 한양, 일원동 개포한신, 압구정 미성 등도 2004년 일제히 우선협상시공사를 선정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반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도 있다. 영등포구 당산동 평화아파트는 284가구에 대한 리모델링 행위허가(신축 아파트의 사업승인 단계)를 취득해 조만간 쌍용건설이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서초구 잠원한신13차 180가구도 지난해 9월 건축심의 통과에 이어 지난 7월 행위허가를 취득했다. 시공은 동부건설이 맡게 되며 앞으로 리모델링을 통해 가구당 6~9평을 늘일 계획이다. 강남구 도곡동 동신아파트 474가구도 10월 중 행위허가를 취득, 내년 쌍용건설이 공사에 돌입할 계획이다.
리모델링은 뼈대만 놔두고 모든 것을 뜯어고치는, 외형상으로는 새집을 짓는 것이나 다름없는 대규모 공사다. 이 때문에 건축비 수준도 높은 편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대개 평당 250만~350만원 수준이다. 마감재, 적용 공법 등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쌍용건설의 경우 당산동 평화 리모델링에 평당 259만원, 방배동 궁전 리모델링에 298만원을 책정했다.
물론 부담금은 조합원의 몫이다. 하지만 재건축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재건축의 경우 조합원 분양가에서 평가금액을 제외한 금액을 분양가로 납부해야 하고 기반시설부담금도 내야 하지만 리모델링은 그렇지 않다. 취득·등록세도 리모델링 분담금 대비 2.08%만 내면 돼 훨씬 가볍다. 재건축과 수평 비교한다면 전반적인 비용부담이 절반 이하 수준이다.
하지만 노후 중층 아파트라고 해서 리모델링이 모두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해당 지역의 용적률이 제한선에 가까울수록 리모델링 가능성은 낮아진다. 예를 들어 3종일반주거지역의 용적률이 최대 250%인데, 이 지역 아파트의 용적률이 230%라면 리모델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또 건설사 입장에서는 사업성을 감안, 지역에 따라 사업 추진 여부를 판단한다. 한 건설사 리모델링 관계자는 “평당 250만원 이상 투입되는 사업이라 시세가 평당 1,000만원 이상 돼야 수지타산이 맞는다”면서 “강북 노후 아파트들의 리모델링 상담신청이 많아도 이런 문제 때문에 연결이 안된다”고 밝혔다. 소형 평형으로 이뤄진 단지이거나 평당 1,000만원 이하의 시세가 낮은 단지는 건설업체가 꺼린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미래 위해 투자’
몇 년 전 LG경제연구원은 향후 리모델링 시장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적이 있다. 이 전망치에 따르면 2006~2010년 14조7,188억원, 2011~2015년 44조2,628억원으로 시장이 쑥쑥 큰다는 것이다.
건설업계는 이 수치가 선진국 리모델링 시장 성장 사이클을 기본으로 한 것이어서 국내 상황과 차이가 날 것이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미래 시장 확대 가능성에 대해서만큼은 하나같이 밝은 전망을 내놓았다. 즉 2010년 이후 1기 신도시의 리모델링 수요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재건축에 이은 황금어장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특히 건설업계가 공통적으로 공략하는 대상은 강남, 서초, 송파구의 재건축 대상 아파트 6만가구로 좁혀진다. 올 하반기부터 재건축 규제가 가시화되면 리모델링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이에 따라 시장 선점을 위한 활동에 한층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파트 리모델링 실적 3건을 보유한 대림산업과 해외 건설에서 쌓은 신공법 기술을 자랑하는 쌍용건설의 경쟁이 뜨겁다.
하지만 아파트 리모델링 시장이 확대 발전하기 위해선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제도적 보완이 대표적이다. 리모델링협회 한 관계자는 “재건축에 비해 리모델링 지원이 특혜 수준인 게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 재건축 대신 선택할 만한 메리트는 약하다”고 지적하고 “유럽 등 선진국이 리모델링을 장려할 때 공익적 요소를 우선시하는 것처럼 순기능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건설업계도 숙제를 안고 있다. 우선, 경험이 일천한 게 문제다. 대림산업, 쌍용건설, 삼성물산건설부문 등 몇 개 건설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형 건설사라 하더라도 아파트 리모델링 실적이 없는 상황이다. 노후 건축물을 다루는데다 적재적소에 신공법이 적용돼야 하는 만큼 기술력 검증이 중요하지만 현실은 다른 상황이다. 리모델링 전문 레노베르의 김호영 이사는 “수요자는 재건축에 길들여져 있어서, 건설사는 사업 수지가 안 맞아서 시장이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고 “특히 건설업체는 기술적 증명을 통해 시장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