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 내의 승호구역에 존재하던 수용소였다. 다른 수용소와는 달리 마을 형태 수용소가 아닌 감옥 형태의 수용소로, 수성 교화소와 유사하다. 1급 정치범 본인이 수용된 것 또한 수성 교화소와 유사한 점.
북한 주민들에게는 수성 교화소, 용평 완전통제구역과 함께 공포의 대상이었다. 정치범 수용소 중에서도 가장 처참한 인권유린과 혹독한 탄압으로 악명을 떨쳤으며, 정치범에 대한 무차별적인 고문 또한 다른 수용소에 비해 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옥 형태의 수용소였으며 감시도 이중 삼중으로 철저했기 때문에 김정일의 특별 사면 없이 살아서 나가거나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탈북자 중에서도 경험한 사람이 없는 데다가 이미 폐쇄된 수용소이기 때문에 그 참상이 구체적으로 전해진 바는 없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의 경우 이 수용소의 비참함을 간접적으로나마 증언하고 있는데, 탈북자 출신의 조선일보 기자 강철환과 납북되었다가 가까스로 탈북에 성공하여 한국으로 돌아온 신상옥 감독이 바로 그들이다.
강철환의 경우에는 그의 친구의 아버지인 리성흡에게서 승호 수용소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데, 그는 "자신이 요덕 수용소에서 겪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닐 정도의 끔찍한 이야기였다"라고 회고하고 있다. 강철환씨의 경험이 궁금한 사람들은 수용소의 노래 링크 참조. 신상옥 감독의 경우에는 탈북을 시도했다가 붙잡혀 이 수용소에 수감되었는데, 김정일의 지시로 인하여 특별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고생을 다 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강철환 씨의 <수용소의 노래>를 읽어보았는데, 그 책의 내용은 내가 있었던 곳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이런 승호 수용소도 1994년 폐쇄되었다. 평양과 지나치게 가까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1991년 국제 인권단체인 엠네스티에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의 실체에 대하여 최초로 폭로할 때 언급된 수용소였기 때문이다. 북한 정부는 폭로에 큰 충격을 받고 수용소의 정치범들을 재배치하였으며, 엠네스티로의 정보 유출 경로를 알아내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였으나, 끝끝내 알아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위에서 언급된 리성흡 또한 엠네스티에서 파악한 수감자 중 한명이었으며, 이후 그는 김정일의 특별 지시로 석방되었다. 그 외에도 납북된, 월북한 남한 사람들이 수감되어 있었으며 그 중에는 북한 정부가 자발적으로 월북하였다고 선전한(물론 남한 측에서는 북한에 의한 강제 납북으로 보고 있다) 전 수도여고 교사 고상문 씨도 포함되어 있어 당시 남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외에 북송교포와 일본인 처들도 수용되어 있었다고 한다.
2.수성 교화소
- 상위 항목 : 정치범수용소/북한
수성 교화소 | |
정식 명칭 | 25호 교화소 |
영문 명칭 | Chŏngjin Concentration Camp |
관할 국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면적 | 약 0.08㎢ (약 0.03제곱마일) |
위치 | 함경북도 청진시 수성동 소재[2] |
인근 교통편 | 남동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서 83번 국도와 만남 동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 함북선 수성역이 있음 |
수용 인원 | 3천 명 이상으로 추정 |
수성 교화소 |
淸津 收容所 / 淸津 第二十五號 敎化所
1960년대부터 운영되고 있으며 북한 주민에게는 용평 완전통제구역이라는 이름만큼이나 공포의 대상. 이곳과 쌍벽을 이룬다는 곳은 평양 시내에 있던 승호 수용소였지만 해당 수용소가 1994년에 국제사면위원회의 폭로 덕분에 폐쇄되면서 이 수용소가 1급 정치범들의 수용소가 되었다. 이때 승호 수용소가 작살나면서 여기에 수감된 사람들이 죄다 이 수용소로 옮겼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정확한 사실은 불명. 하지만 두 수용소 모두 교화소로 최고급 감옥이었으며 1991년 이전까지 교화소랍시고 있었던 곳은 이 청진 수용소와 승호 수용소 둘밖에 없었다는 사실로 미루어봤을 때 가능성은 매우 높다.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가로 약 500m, 세로 약 500m라고 서술되어 있지만 위성 사진상으로 보면 높은 벽이 확실한 경계선을 그어보면 오각형이 나오는데 이 오각형의 가로가 300m, 세로가 250m이다. 평수로 따지면 대략 2만 3천 평 정도 된다. 서대문형무소의 경우 부지가 대략 6만 평이었다고 하니 그 절반 수준. 그야말로 초미니 감옥인 셈이다. 헌데 서대문 형무소의 수감 가능 인원이 3천 명이었으니 얼마나 바글바글 몰려 있을지는... 범죄자의 가족들이 주로 수감되는 관리소와는 달리 이 청진 수용소는 정치범 본인이 수용되기 때문에 훨씬 크기가 작은 것. 이로 미루어보면 청진 수용소는 교화소가 확실한데 어쩐 일인지 대부분의 외국 기사에서는 관리소로 표기하고 있다.
때문에 아무래도 수용소 감시자는 수용소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사는 모양이며(실제로 수용소 벽 인근에 민가가 몇 채 있다.) 수용소가 협소한 관계로 큰 공장이라든지 화성 수용소처럼 핵 실험장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 여기에서는 다른 일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전거 공장이다. 북한에서 나온 자전거 중 '갈매기'라는 상표가 붙어 있다면 높은 확률로 청진 수용소에서 제작된 것.
요덕 수용소의 용평 완전통제구역만큼이나 무시무시한 곳인데 안명철에 의하면 자신이 근무하던 곳은 회령 수용소였는데 이 청진 수용소는 그야말로 가장 중요한(Top-level) 수용소라고 하니 알 만하다.
또한 면적이 적어서 관리하기가 쉽다는 요건 때문인지 이 수용소도 화성 수용소처럼 단 한 명의 탈출자도 허용하지 않았던 곳이다. 하긴 인근 교통편이 적당히 멀어야 추적도 어려울 텐데 이건 가깝다 못해 아예 붙어 있는 수준이라서...
다만 이 무시무시한 곳을 경험했던 사람은 있는데 그 주인공은 유태준. 놀랍게도 그는 1998년 함흥에서 살다가 탈북한 이후 2000년에 부인을 데려오겠다고 무단 입북했다가 그만 여기에 수감되었었는데 이게 국제 문제로 비화되면서 석방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재차 탈북해서 북한을 놀라게 만든 장본인이다.
제9회 국제 회의에서 나온 증언에 의하면 주 수감자는 1급 정치범,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특히 기독교도), 평양에서 쫓겨난 자와 그 가족, 의견을 달리하는(다시 말해서 주체 사상을 부정하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여기에 수감된다고 한다. 1987년 납북된 동진 27호의 선장 임국재가 세 번 탈북시도를 했으나 모두 실패, 끝내 여기에 수감되어서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기록도 있다.
생활은 말 그대로 비참한 수준. 새벽 5시에 일어나 정좌 상태로 앉아 있다가 6시 반에 아침 식사, 식사는 옥수수 주먹밥과 시래기국이 전부이다. 7시부터 밤 10시까지(규정은 6시 반) 강제 노동이 이어진다. 작업 후에는 움직이지 않고 같은 자세로 앉은 감방생활. 20명씩 한 방을 쓰며 무조건(화장실을 갈 때도) 2인 1조로 행동한다.
化城 收容所 / 化城 第十六號 管理所
3. 화성 수용소
화성 수용소 | |
정식 명칭 | 16호 관리소 |
영문 명칭 | Hwasŏng Concentration Camp |
관할 집단 | 북한 |
면적 | 549㎢ (212제곱마일) |
위치 | 북한 행정구역상 : 함경북도 명간군 부화리 소재 대한민국 행정구역상 : 함경북도 명천군 상우북면 대부분[1] (상우남면 북서쪽 일부[2], 함경북도 경성군 주남면 남평동 일대 포함) |
인근 교통편 | 남동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서 7번 국도와 만남 남동쪽으로 6.5km 떨어진 곳에 평라선 상룡전역이 있음 |
수용 인원 | 약 1만 명 |
化城 收容所 / 化城 第十六號 管理所
화성이라는 이름은 이 수용소가 있는 군인 명간군의 이전 이름인 화성군에서 따 왔다. 다시 말해서 명간군이라는 이름은 화성군에서 개칭한 것.
물론 이 화성 수용소 역시 완전통제구역으로 모든 수감자는 종신 수용되어 죽어서도 나가지 못한다. 그나마 노동력 착취 위주의 종신 노예 수용소인 다른 수용소와 달리 이 수용소에 수감된 이들은 주로 핵 시설 건설에 동원되며 따라서 다량의 방사능에 노출되기 때문에 더욱 끔찍한 삶을 살게 되고 그냥 삶을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한 곳이다. 핵 시설에 관한 이야기는 재덕역 문서를 참고할 것.
개천 수용소에서 탈출한 신동혁 씨, 요덕 수용소에서 석방된 강철환 씨 등등 여러 탈출한 사람들의 수기나 보도 자료에 의해서 수용소의 위치나 실상 등이 알려지고 있는데 이 화성 수용소는 그러한 자료, 즉 어디가 본부고 어디가 노동장이며 뭐 이런 자료가 없이 단지 위성 사진으로써 추측하는 자료 및 다른 사람에게 전해들었다, 소식을 접했다는 식의 '직접 체험하지 않은 이들의' 간접 증언만이 존재할 뿐이다. 왜냐고? 이 수용소에서 지금까지 탈출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형적으로는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교통편은 조그만 길이 남동쪽으로 이어져 있을 뿐. 특히나 북쪽으로는 감토산(甘吐山, 해발 1,584m), 서쪽으로는 만탑산(萬塔山, 해발 2,205m)이 가로막고 있어서 그쪽으로의 탈출은 거의 불가능하고 그나마 동쪽으로는 연대봉(煙臺峰, 해발 742m)과 등대산(登垈山, 해발 1,261m)이 가로막고 있으며 남쪽은 기운봉(氣雲峰, 해발 1,668m)과 무강덕(霧降德, 해발 616m)이 버티고 있어 빠져나오기가 극히 어려운 곳이고 게다가 정치범 수용소의 특성상 감시가 몇 겹으로 이뤄지고 있는 데다 이 수용소는 일반 노예 수용소인 다른 완전통제구역들과 달리 핵 시설과 관련되어 있어 더욱 감시가 철저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탈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자료는 화성 수용소의 대략적인 경계를 나타내고 있는 자료인데 보다시피 크기가 엄청나다(!). 별반 커 보이지 않지만 저 위성 사진은 상공 43km에서 내려본 사진으로 남북이 최장 20km, 서북-동남 사선이 최장 30여 km에 이르는 엄청난 넓이. 저 넓은 면적이 신뢰할 수 있는 자료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개천 수용소가 155㎢라고 대부분의 자료에 나와 있는데 그 3.7배에 달하는 이 수용소의 면적이 정확하다면 개천 수용소의 면적도... 아, 그리고 저 면적이 얼마인지 실감이 안 가시는가? 간단히 말하면 서울 전체 면적의 90%이다.
이 화성 수용소가 상룡전역과 상당히 가까운 관계로 해당 문서에서도 일부 설명이 되어 있지만 이 수용소 사람들은 지하 핵 실험 시설을 짓기 위한 강제 노동에 동원된다. 심지어는 다량의 방사능에 노출되어 가면서 강제 노동에 투입되는데 이 사람들에게 방사능 방호복이 제공될 것 같은가? 그야말로 처참한 인권 유린의 현장.
또한 관리소 중에는 특이하게 본인만 수용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청진 25호 교화소와 마찬가지로 정치범 본인만 가두고 그 가족은 14호 개천, 15호 요덕, 22호 회령 등에 수감한다고 한다. 실제로 국가안전보위부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최근에는 한국행을 기도한 탈북자들도 이곳에 수감되고 있으나 대부분은 김정일 세습에 반대했던 부주석 김동규나 6군단 사건의 관련자 등 수감자 대부분이 정치범. 그 중에서도 1급 정치범이다. 이 때문에 수용소 규모에 비해 수감자 수가 적은 게 아닌가 싶다.
앞서도 말했지만 탈출자가 한 명도 없었고 탈출하더라도 살아서 외부에 소식을 알리는 데 성공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정확한 사령부나 노동장 등의 위치를 알 수 없다. 이 링크(PDF 파일, 여는 데 주의할 것)에 있는 자료 뒷부분을 보면 개천 수용소, 북창 수용소, 회령 수용소, 개천 교화소, 신의주 교화소, 청진 교화소 등의 위성 사진을 제공하고 있는데 화성 수용소는 규모가 엄청나게 큰 주제에 쏙 빠져 있다.
그러나 이런 데서도 봉기가 일어난 전적이 있다. 2007년에 120명의 수감자들이 집단 탈출(Mass Escape)을 시도했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거의 즉시 잡혔다고 한다. 관련 기사 이후 화성 수용소에 대한 보도 자료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불행히도 일단 탈출에 성공했어도 이후 붙잡혀 처형당하는 등 결국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화성 수용소의 실상을 직접 본 경험자의 증언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2012년 5월 17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회령 수용소의 수용자들이 화성 수용소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유언비어가 돌고 있다고 한다. 회령 수용소의 인원들을 옮길 때 화성 수용소가 텅 비어 있었다는 것. 비밀군사기지 건설에 동원되었다가 죽음을 당했을 수도 있지만 어린아이나 노인들까지 없어진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화성 수용소가 텅 빈 이유가 생체 실험이나 화학 무기 실험이 벌어졌기 때문이라면 그야말로 충공깽.
일단 이런저런 관측과 정보중에 노역 작업대상에 방사능 관련이 포함되어 있고, 죄수들에게 방사능 관련 처치를 잘 했을리가 없으니 그들의 거주구를 위시한 행동반경에 포함되는 이 수용도 자체도 어느정돈 오염되어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방사능에 오염되었다면 통일된 이후에도 인간이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이 될 지도 모른다.
첫댓글 참고하고 갑니다
여기도 일베충이 있나?
일베여부를 떠나서, 북한정치범수용소에서 인권침해는 심각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