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면회
문 혜 란
거리는 바람에 쓸려 다니는 가로수의 낙엽들로 어수선하다. 기온이 내려갈수록 까맣게 눈을 뜨고 쳐다보는 편지 속 글자들에 등 떠밀려 집을 나섰으나 갈등은 여전하다. 내가 가는 이 걸음이 옳은가. 도움도 못 주면서 공연한 희망으로 들뜨게 하는 것은 아닌가. 내의 한 벌과 타올 몇 장, 몇 개의 빵을 담은 쇼핑백을 들여다보아도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바리케이드가 쳐진 정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자 잘 다듬어진 정원수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칙칙하고 무거울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바깥과 소통하는 건물 담장은 낮고 밝다. 그곳 사람들의 심성 순화를 위해 심었을까. 마당 귀퉁이엔 국화와 해바라기의 잔상이 남아 있고 담장에 걸린 몇 송이 장미는 핏빛이다. 꽃이 어디 담장 안과 담장 밖을 차별할까. 한순간의 실수로 세상과 등지고 사는 그들에게도 저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날 날이 왔으면 좋겠다.
처음 청년의 편지를 받았을 땐 많이 망설였다. 낯선 사람의 인연을 받아들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혹시 그 사람으로 인해 내가 해를 입지 않을까. 잃을까 조바심 내야 할 만큼 가진 것도 없으면서 겁이 났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 맺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한 듯싶다. 자꾸 사람을 저울질하는 자신이 마뜩잖아 답장을 보냈다.
“희망이 생겼어요.”
답장받은 청년이 보내온 편지의 첫 문구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편지 한 통에 희망을 본 청년의 시린 내면이 아프게 짚인다. 내가 그에게 무슨 희망을 줄 수 있겠나 싶어 겁도 난다. 어느 문예지에 실린 내 글을 읽었다며 보내온 편지가 인연의 시작이다. 청년은 지금 영어(囹圄)의 몸이다. 내 아이와 동갑이다. 무슨 일로 그곳에 갔는지, 그곳에 얼마나 있었는지, 언제쯤이면 사회로 돌아오는지, 그런 것은 알지 못한다.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청년에 대해 아는 건 태어나자마자 생모에게서 버려졌다는 것이 전부다. 가장 완전한 사랑의 공급자인 어머니한테서 버려졌다는 상처는 그의 생 전반을 좌우할지도 모른다. 사랑의 화수분으로 알고 있는 어머니도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는 사실을 청년은 아직 알지 못할 터이다. 어느 나이에 이르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가 있는 법이다. 좀 더 나이를 먹으면 자신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상처와 어려움을 안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자신의 포켓에 행복을 들이기 위해서는 호주머니를 자신에게 맞도록 줄이는 길밖에 없다는 것도 배우게 되리라.
접견을 신청하고 자리에 앉았으나 긴장은 가시지 않는다.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하나. 추운 겨울을 견뎌야 하는 청년에게 화롯불의 불씨만큼이라도 온기를 전해줄 수 있을까. 할 말이 없으면 그냥 손이라도 힘주어 잡아주자. 철커덕 육중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아 겁이 났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실루엣만 어른거리는 젖빛 유리창에 시선을 고정한 체 차례를 기다렸다. 문을 밀고 들어오는 청년의 어깨너머로 늦가을 오후의 햇살이 따라 들어온다. 미세한 분진이 난무하는 빛을 등에 업은 그와 마주 앉았다. 청년은 건장하고 건강해 보인다. 다행이다. 그래야 나중에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뜻밖의 방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자잘한 이야기도 곧잘 써 보내던 편지와는 달리 어색하다. 청년도 마찬가지다.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상황은 더더욱 아니다. 출소 후의 삶을 위해 열심히 기술을 익히고 있다며 미래에 대한 설계를 들려준다. 그곳이 죄에 대한 처벌만 받는 곳은 아닌 듯싶다.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새로운 출발을 설계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느낌을 준다. 시간은 금방 지나 가버렸다. 그래도 괜찮다. 청년에게서 희망을 보았으니까.
청년이 희망이라고 말한 것은 내가 보내는 작은 관심이다. 누군가 애정 어린 관심으로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어려움을 견뎌내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청년을 현실적으로 도울 만한 힘은 없다. 편견 없이 대하는 것과 이따금 책을 보내주는 것이 전부다. 치열하게 심리적 내전을 치르고 있을 청년에게 삶에 대한 긍정을 심어주는 일이다.
청년은 고맙다는 말과 은혜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은혜는 반드시 왔던 곳으로 되돌리지 않아도 괜찮다. 관심의 순환 고리는 에너지를 일으킨다. 행복과 기쁨의 파동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따스한 관심을 받으면 그 관심은 타인을 향한 신뢰와 사랑으로 순환한다. 내 작은 관심이 청년에게 세상에 대한 신뢰의 마중물이었으면 싶다.
(《수필문예》 제20집, 2021.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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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영남수필 신인상
시흥문학 은상. 가톨릭신문 독후감 대상. 평화방송 독후감 대상.
병자의 날 수기공모 최우수상
영남수필, 수필문예회,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대구수필문예대학 1기 수료.
수필집 《바람의 옷》
hdcoo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