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의류상가, 동대문 벤치마킹…위협세력으로 발전 기술·디자인 잡히면 ‘동북아 샘플실’로 전락 위기
중국 광저우에 밀집한 의류 상가가 우리나라의 동대문 상가를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의 동대문 의류상가가 중국의 그림자에 묻힐 날이 올 것이란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중국 광저우에는 ‘중국의 동대문거리’라고 할 만한 최대 의류 도매 거리인 잔시루가 있다. 이곳에는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1300여개 매장이 몰려 있는 후이메이쇼핑몰이 있는데 2007년 개업 이래 성업 중이다. 잔시루 상권에는 후이메이 이외에도 바이마, 톈마 등 15개가 넘는 대형 의류 도매상가가 들어서 있다.
주목할 것은 2007년 문을 연 후이메이가 아예 1개 층을 ‘한국부’로 만들어 동대문 출신들을 대거 영입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동대문 출신 상인들의 영업 노하우 유출이 일어났으며 후이메이가 성공하자 다른 상가들도 앞 다퉈 동대문 스타일을 베끼고 있다. 후이메이 바로 옆 진두의류상가가 1400평 규모의 지하 1층을 리모델링해 한국 상인들에게 분양 중인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후이메이에서 의류매장을 운영 중인 원용연 사장은 “"몇년전만 해도 디스플레이나 인테리어 개념이 없던 광저우 상인들이 동대문을 드나들면서 품질 수준을 크게 높였다”고 말했다. 디자인부터 의류 제조, 유통의 전 과정이 반경 5~10㎞ 이내로 최신 트렌드에 즉각 반응할 수 있는 동대문 방식을 모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 동대문에서 생산되는 의류는 즉각 중국에서 카피되고 있다. 광저우에서 비교적 크게 사업을 벌이고 있는 대부분의 의류상들은 서울에 조선족 직원을 따로 두고 동대문 쇼핑몰을 돌며 디자인을 사진 찍어 보내게 한 뒤 생산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동대문에서 디자인한 의류가 역으로 한국에 대량 유입되는 기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한 한국 상인은 “서울 동대문에서 팔리는 물건의 80%는 광저우에서 넘어온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업체들은 한국에서 방직 기계를 사들이면서 한국인 기술자도 같이 영입해 품질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광저우 의류상가도 동대문과 닮아가고 있다. 상품에 ‘한국산’임을 눈에 띄게 표시하고 디자인을 모방하지 못 하도록 마네킹에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나를 베끼지 마세요’ 같은 문구를 내걸고 있다. 매장 인테리어와 상품 구성도 흡사해 후이메이는 동대문 패션타운의 ‘유어스’나 ‘두타’에 온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이에 대해 칭다오 무역관 관계자는 “과거만 해도 중국산 옷은 값은 싸지만 품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에는 가격 경쟁력을 갖춘 데다 봉제기술도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다”면서 “원단 품질이나 디자인 능력까지 광저우 의류시장에 따라잡힌다면 동대문은 설 곳이 없는 것은 물론 자칫하면 ‘동북아의 샘플실’ 정도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동대문이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면 대량생산 인프라를 갖춘 광저우 의류시장은 인건비와 규모의 경제의 장점을 살려 머지않아 다품종 대량생산 시대를 실현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