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원화성성곽길 걷는 날! 영화도 보고 야경도 보는 날이다.
만남 장소 가는 길에 뒤풀이 장소에 찾아가본다. 수원에 와서 산지가 벌써 10여 년이 다 되었는데, 그 유명한 수원통닭거리를 지나만 가고 못 들어가 보았다. 하긴 술을 안 마시니까 거기 갈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신난다 회장님도 오신다 하니 꼭 가보리라.
수원남문통닭은 팔달문(남문)에서 화성행궁광장 가는 길 중간에 있다. 세븐일레븐 편의점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거의 끝부분에 있다.
"바로 여기군!"
눈을 맞추고 화성행궁광장으로 간다.
오후 3시 10분 도착이다. 수원화성행궁광장에서 자작님을 기다린다. 광장이 넓어 누구인가 찾아본다. 남자인가 여자인가? 닉만 보아서는 알 수가 없다.
화성행궁 정문까지 갔다가 자전거대여소 쪽으로 온다. 옆에는 의자가 많이 있고, 뒤쪽으로는 수원문화재단이 있다.
"여기가 좋겠군!"
늘 지나다니는 길인 데도 화성행궁광장을 자세히 살펴보기는 또 오늘이 처음이다.
자작님이 내 전화번호를 알 테니까 전화가 올 것이다. 그 사이 신난다 회장님한테 전화가 온다. 아직 약속시간은 남아 있지만 아는 이에게 물어서 자작님 전화번호를 알려주신단다.
곧 전화가 온다. 자작님 친구분이란다.
"네네."
자작님한테 전화가 온다. 만나서 서로 반갑게 인사한다.
실은 영화 보는 장소는 수원미디어센터라 그곳 로비에서 만날까 하다가 조금 걸어가더라도 찾기 쉬운 곳에서 만나기로 한 것인데 잘한 것 같다. 자작님이 글쎄, 용인에서 오셨단다. 지하철 타고 한 번 환승해서 버스를 타고 화성행궁에 내렸단다.
"길이 처음이라 혼자서는 찾아가기 어렵겠는 데요."
수원미디어센터까지 10여 분 정도 걸어간다. 수원화성 분위기에 맞게 지난 해에 새로 지은 고풍스런 수원미디어센터는 어느 시중영화관 못지 않은 상영관을 가지고 있다. 매주 수, 금에 정기상영을 해주는데 예약하면 무료관람이 가능하다. 영화는 개봉작은 아니고, 2~3년 지난 것들이지만, 잘 선별해서 매달 특색있게 구성해서 보여준다. 나는 자주 애용하는 편이다.
맨 뒷자리 좌석번호를 받아 상영관으로 들어간다. 4명 예약했는데, 2명만 볼 거라서 2명은 취소를 했다.
영화는 4시에 상영이다. 시간이 10여 분 남아 있어서 수원미디어센터 홍보 영상이 한참 지나간다. 드디어 영화 <그녀> 상영이 시작된다. 나는 영화를 볼 때 감독도 배우도 안 보고 줄거리 중심으로 보는 편이라 이번에도 그렇게 본다.
손 편지 대행을 하는 손편지닷컴에서 대필작가로 일하는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는 아내와 이혼소송 중이지만 몇 달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감성적인 그는 그 누구의 편지를 대행하든 감동을 주게 편지를 쓴다.
테오도르는 OS 운영체제인 AI 사만다와 매일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서 점점 가까워진다. 자신의 속내를 거의 다 털어놓으면서 사만다도 그에게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다 하게 된다. 사만다는 매일 모닝 인사를 하고 이메일을 확인해주고 신문을 읽어주고 노래도 들려주고 취침인사도 하는 개인비서역할을 톡톡히 한다. 결국 테오도르는 캐서린과 이혼을 하고 사만다에게 점점 깊이 빠져들어간다. '사랑'이라는 이름이 가능하다면 둘은 사랑에 빠진다. 깊은 관계도 가진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온다. 사만다는 새로운 OS 운영체제로 바뀐다. 동시에 여러 사람과 관계한다. 테오도르는 수천 명의 사람과 동시에 이야기를 나누고, 수백 명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사만다의 말에 상처를 입는다.
"내게 하듯이 똑같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도 사랑을 한다?"
사랑은 하나이기에 용납할 수가 없다.
테오도르는 헤어진 아내 캐서린에게 손 편지를 쓴다. 자기 방식대로 짜맞추려고 해서 힘들었겠다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영화가 끝나고 감상을 가슴속에 담은 채 바로 뒤에 있는 화성성곽길로 올라간다.
시간은 이제 오후 6시를 조금 넘긴 시점이다. 야행을 기획했으나 해가 지려면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아까 신난다 회장님이 사당역에서 지금쯤 버스를 탄다 했으니 7시는 넘어야 수원에 도착하실 듯하다. 수원화성성곽길은 반만 걷기로 한다. 시간을 맞추려면 창룡문~동북공심돈~연무대~방화수류정~용연~화홍문 이렇게 걸으면 되겠다. 성곽길에서 가장 예쁜 방화수류정과 용연(왕의 연못)은 빼놓을 수가 없다.
나는 초록 양산을 쓰고 자작님은 베지지색 모자를 쓰고 걷는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주어 시원하다.
수원화성성곽길의 특징은 수원시내 집들과 차가 다니는 도로 사이로 성곽길이 나 있고 길 주변으로 나무가 없다는 점이다. 여름이 아닌 계절에는 모자만 쓰고 걸어도 좋은데, 한여름에는 양산이 필수이다. 길은 잘 닦여 있어서 구두, 샌들, 운동화 등 어느 신발을 신어도 괜찮다.
자작님과 둘이서 걷노라니 살방살방이 저절로 된다. 주거니 받거니 사진을 찍으면서 걷는다. 성곽길은 풍경 자체가 예쁜 포토존이라 그 어디에서 찍어도 예쁘다.
한 30여 분 걸으니 방화수류정이 나온다. 정자에 올라가면 아래쪽으로 용연(왕의 연못)이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데 올라갈 수 없다는 안내문이 붙어있고 금지줄이 쳐져 있다.
아쉽지만 북암문을 통과해서 용연으로 간다. 정조대왕이 왕가의 아픔을 견디며 걸었을 장소에 사람들이 꽤 많이 나와서 쉬고 있다. 군데군데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는 이들도 있다.
방화수류정이 우뚝 솟아 위용을 자랑하고, 수양버들이 흐드러지게 가지를 드리우고, 연꽃이 풍성하게 잎을 펼친 용연을 바라본다. 나무의자 벤치에 앉아서 간단하게 싸간 모찌떡과 참외를 꺼내 한두 개씩 먹는다. 물도 한 모금씩 마신다. 곧 통닭집에서 뒤풀이를 할 예정이어서 배가 부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신난다 회장님이 수원역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온다. 택시를 타고 오시겠단다.
"아뇨, 그럴 거 없어요. 버스를 타고 오시면 시간이 얼추 맞겠어요. 팔달문에서 뵈어요."
드디어 셋이 만난다. 수원남문통닭집 2층으로 올라간다. 멀리서 오셔서 내가 대접해드릴랬더니 한사코 격려차 오신 거라며 뒤풀비를 쏘신다. 키오스크로 그때그때 주문해서 먹어야 하는데 동작이 빠른 사람이 돈을 낼 수밖에 없다. 내가 배낭에서 지갑을 꺼내고 카드를 빼내는 동안, 신난다 회장님은 듵고 있던 카드를 키오스크에 잽싸게 꽂으신다.
이야기는 무르 익는다. 알파 이야기, 개인사 이야기, 이사 이야기 등등 뒤풀이 자리는 언제나 화기애애하다.
누구는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뒤풀이를 하기 위해서 산에 온다."
수원화성성곽길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뒤풀이가 고픈 이들은 수원화성으로 오세요. 한 달에 한 번은 공지를 할 예정이예요."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멘트가 있다.
"함께 걸어준 자작님 담에 또 뵈어요. 신난다 회장님 격려와 관심에 감사드려요. 또 오세요. 그때는 제가 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