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타이거즈 최희섭이 은퇴를 했군요.
선 감독과 궁합이 맞지 않아 선수생활 마지막을
잘 보내지 못했는데, 지난시즌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한 것을 보면
내심 선수생활 마감을 고려하고 있었던 듯도 합니다.
1979년생으로 40 가까운 나이니 은퇴할 때도 되었네요.
어제 <운동화>에 나온 최희섭을 보고 몇가지 후기를 적어봅니다.
1. 시카고 컵스의 기대, 희맨(HeeMan)
최희섭은 아시아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주전 1루수로 뛴 선수입니다.
컵스에 갈 때 대우도 좋았고, 구단에서도 큰 기대를 갖고 있었던 듯합니다.
메이저리그에 일찍 승격했고(2002년), 팀에서 주전 기회를 계속 주었습니다.
2003년 뜬공 처리 뇌진탕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타율도 0.270근처로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초반에 잘 나갈 땐 미국만화의 괴력 영웅 '희맨'이란 애칭을 주려고 했던 적도 있습니다.
미국인 입장에선 동양인에게 쉽게 줄 수 없는 닉네임이죠.
하지만 뇌진탕 부상 후로는 평이한 성적을 내다가 플로리다로 트레이드됩니다.
그래서 대중들이 기억하는 최희섭 닉네임은 '빅초이'로만 남습니다.
2. 플로리다에서의 전성기
최희섭의 메이저리그 전성기는 반시즌 정도 활약했던 플로리다 마린스 시절이라고 봅니다.
신생팀이니 선수들과 어려움이 없었고, 팀과 여러가지 궁합이 잘 맞았습니다.
최희섭이 플로리다로 가게 된 계기는 전년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플로리다가
데릭 리라는 좋은 선수를 컵스에 내주고, 희섭을 데려왔기 때문입니다.
(그 트레이드의 배경에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에서 컵스의 뜬공 처리 관중개입 우여곡절이 있었죠.
컵스로서는 염소의 저주를 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이후로 케리 우드, 마크 프라이어 다 망가져 기회 아웃됩니다.)
컵스로 팀을 옮긴 데릭 리도 내셔널리그 수위타자에 오르는 등 서로 윈윈한 트레이드였습니다.
2004년 시즌중 LA다저스가 플로리다에서 뛰는 최희섭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다시 영입하는데, 때문에 선수로서의 성장 가능성이 일찍 꺾입니다.
플로리다에 계속 남았으면 주전기회도 있고, 희섭에게 더 좋았을 텐데요.
메이저리거 3년차 한참 커나갈 무렵에 썩 좋은 트레이드가 아니었다 싶습니다.
3. LA다저스 시절
2004년 쯤의 다저스는 좋은 멤버 구성이 아니었고,
희섭 개인에게도 선수로선 충분한 기회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단 자리가 있으니까 다저스에서 데려왔고 출전기회도 어느 정도 보장받았습니다.
하지만 턱돌이 감독과 궁합이 좋지 않았고,
턱돌이는 최희섭의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죠.
어퍼 스윙, 몸쪽공 약점 같은 면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나봅니다.
턱돌이는 다저스에서 올해의 감독상을 받은 명감독격입니다.
잘하는 선수를 팽하는 식의 리더는 아니었지만,
빅초이는 다저스에서, 턱돌이감독 밑에서 선수로서 성장 한계를 맞습니다.
이후 보스턴, 템파베이로 팔렸다가, 2007년 기아 타이거즈로 옵니다.
4. 후요그룹 회장 딸과 만남
빅초이 다저스 시절에 기억나는 건 3연타석 홈런과,
일본 후요그룹 회장 딸과 결혼하려다 파혼한 일입니다.
LA다저스에 리포터로 온 그녀와 만났다는데
그녀는 MBA 다니는 인재였다고 합니다.
다저스에서 성적이 더 좋았으면 그녀와 결혼했겠고,
한국인 메이저리거 중 장가를 가장 잘 간 선수로 남았을 듯합니다.
후요그룹은 일본 10대 기업의 하나라고 하네요.
5. 형저메 사건
최희섭이 이승엽한테 "형, 저 메이저리거예요."라고 말한 사건을 두고
이후 희섭의 별명은 '형저메'로 불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승엽이 최희섭 그런 적 없다고 여러번 밝혔듯
최희섭도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어제<운동화>에서 분명히 밝혔습니다.
6. 국내선수로서의 아쉬움
기아로 돌아온 최희섭은 2009시즌 3할,30홈런,100타점으로
최고 1루수가 할 수 있는 모든 기량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이후 잦은 부상과 선감독과의 마찰로 선수생활이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최희섭은 김용달 타격코치를 만나 타격에 제2의 눈을 뜹니다.
은퇴 몇년 전까지 경기에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최희섭 무서워하지 않은 투수 없었을 겁니다.
KT 조범현 감독이 "나는 최희섭을 어떻게 해야 경기를 잘하는지 비결을 안다"며
트레이드를 적극 요청했는데, 이뤄지지 않았죠.
선수생활 말년 몇 시즌 KT로 옮겨 죽기살기로 한번 뛰어봤으면
우리 기억에 다른 최희섭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다저스에서 타격에 좀 더 일찍 눈을 떴어도 메이저리거 '희맨'으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국내복귀 후 선수로서 잦은 부상은 한국에서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이 있었고,
등산을 많이 한 것도 후유증 극복 차원에서였다고 <운동화>에서 밝혔습니다.
은퇴 이후는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게 꿈이고,
그를 위해 미국으로 코치연수 간다고 합니다.
이상, 메이저리그 최초 아시아인 주전1루수 빅초이 15여년 야구사 후기였습니다.
첫댓글 어제봤는데 맘고생했을듯. 형저메는 어디서 나온얘긴지...
선동렬이 문제네..
이렇게 은퇴하게 될 타자는 아니라 생각했는데 마무리가 참 안타까운 선수 중 하나였네요
조범현의 김상현 최희섭 사용설명서가 참 궁금하네요
컵스에서 대성할 선수로 봤는데 생각만큼 못큰게 아쉬움.....당시 전문가들 사이에서 마이너 최고 유망주로 앞다퉈 꼽던 선수가 푸홀스 하고 최희섭이었음
선동렬감독으로서는 진짜별로네
양신, 종범신.... 타자들 은퇴시키는데 일가견 있는 선뚱........ 감독으로서는 최악
아 몰랐던 이야기들이 많네요. 여러모로 애증의 최희섭...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