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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지기와 함께 가는 牛步萬里, 평화누리길
우리부부는 대한민국 일주 도보여행을 결심하고 작년 3월 3일 평택에서 출발하여 서해안, 남해안을
돌아 동해안 고성 통일전망대에 12월 5일에 도착하였다. 그 동안 15회에 걸쳐 53일이 소요되었다.
올해 도보여행은 회사일 등으로 출발이 늦어져 4월 28일 되어서야
평택에서 휴전선을 따라가는 도보여행을 시작하였다.
휴전선 지역은 민간인 통제 지역이 많아 고민하던 차에 평화누리길을 알게 되어 걱정 없이 출발할 수 있었다.
아래의 글은 그 동안의 평화누리길 도보여행 기행문입니다.
5월 1일(화) 흐림 17℃,22℃
대명포구 → 덕포진 → 문수산성 → 애기봉 입구
우보만리 북쪽 휴전선 가는 길은 경기도 관광공사가 개발하고 관리하는 평화 누리길를 따라 철원까지 걷기로 하였다.
평화 누리길의 DMZ 지역은 전 세계의 유일한 분단지역이며, 오랜 시간 동안 엄격한 통제와 자연의
치유능력으로 세계적인 생태지역으로 평가되는 곳이다.
평화누리길은 통일을 맞이하는 전진기지로서
DMZ의 가치와 통일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을 생각하는 취지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경기도 지역만 조성되었고. 강원도 지역도 곧 개발 될 것이라고 한다.
오늘은 평화누리길 1코스(염하강 철책길)와 2코스(조강철책길)을 따라서 애기능 입구까지 가기로 하였다.
염하강 철책길은 건너편 강화도와 김포 사이를 강화해협 또는 염하강이라고 부르는
수로에 설치된 철책길을 따라 걷는 길이다.
인천 앞 바다에서 서울 마포나루까지 올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서 한강으로 진입하는 중요한 길목이라고 한다.
때마침 강화해협으로 밀물이 들어오면서 힘찬 물결 소리와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수풀이 울창한길을 걷고 있으니 오감 모두가 즐겁다.
얼마 가지 않아 강화해협 건너편 덕진진과 광성보를 마주하고 있는 덕포진이 있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에는 프랑스군, 미국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렸던 군사요충지라고 한다.
나지막한 능선에 위치한 덕포진은 1980년에 발굴 조사하여 포대와 돈대터, 파수청 건물터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덕포진은 바다를 보며 산책하기 좋은 공원으로 단장되었으며
유물전시관은 당시의 전투 상황을 재현되어 있어 청소년들의 산 교육장으로 매우 좋았다.
당시 포대라고 하였지만 조선시대 포는 사거리가 30m 정도이며 철덩어리 포탄이라고 한다.
프랑스 해군의 화포는 사거리가 최대 8Km이고 땅에 떨어진 후 다시 폭발하는 작약폭탄 이였다고 한다.
싸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조상들이 분전 했다는 생각을 하였다.
암리 전망대 쉼터에서 평화누리길을 여러 번 여행을 하였다는 반가운 도보여행 매니아 한분을 만났다.
산타전이라는 닉네임을 쓰신다며 자신을 소개하셨다.
평화누리길에 대한 소개와 도보여행에 필요한 정보 등을 주고 받은 좋은 기회였다.
다음에 또다시 뵐 수 있는 바램을 가져본다.
화강 철책길을 걷다가 철책 지지대에 익살스러운 얼굴 그린 타일 벽화와 점토를 구워서 만든 작고
동그란 덩어리를 벽에 부착하여 도보 여행자와 자전거 타는 사람을 표현한 모자이크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도보여행을 중에 벽에 그린 벽화는 많이 보았지만 타일과 점토 덩어리를 구워서 만든 모자이크는 처음 이였다.
시간이 흐르면 퇴색하는 벽화보다는 반영구적인 타일과 모자이크는 매우 좋은 작품이라 생각되었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벽화 대신 타일과 모자이크 벽화를 벤치마킹을 하면 좋을 것 같아 추천한다.
1코스를 끝내고 식사를 한 후 2코스 (조강철책길)가 시작되는 문수산성 입구로 갔다.
문수산성은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새라 한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격전을 별이면서 해안성벽과 성문이 파괴되고 성안도 크게 유린되었다고 한다.
해안쪽 성벽은 없어지고 문수산 능선을 연결한 성곽만 남아있었으나 남문과 북문을 복원하고
총 6Km에 이르는 산성 중 현재 4Km가 보수되었다고 한다.
조강철책길은 문수산성 남문에서 시작된다.
처음부터 가파른 돌밭이다. 그것도 역암으로 이루어진 길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빠져 나온 자갈들이 널려있어 미끄럽다.
자갈들을 피해서 조심스럽게 30여분을 올라 선 전망대에서 강화도와 염화강이 시원스럽게 한눈에 들어왔다.
아찔한 성벽구간 피하여 조금 더 올라 8부 능선에 위치한 홍예문에서
애기봉으로 가라는 평화누리길 표지를 따라 문수산에서 하산하였다.
애기봉으로 향하는 도로 주위에는 공기 좋은 곳에서 조용한 전원생활을 위한 주택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조강저수지를 지나 철책 넘어 북한 땅이 보이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모내기를 앞두고 찰랑찰랑하게 물을 가두어 놓은 논을 지나서 봄에 새로 나온 반짝 반짝 윤이 나는
나무 잎으로 가득한 숲 속의 조그마한 언덕을 넘었다.
평화누리길 3코스를 알리는 안내게시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보여행을 끝내고 김포로 가기 위해 도로를 따라 걷다가 큰 사당이 있어 안내게시판을 읽어보았다.
한재당이다. 조선중기 문신으로 무오사화 때 28세 나이로 화를 입은 이목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라 한다.
무슨 일을 했기에 참으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큰길까지 걸어 나왔다.
버스운행 시간은 알 수가 없고 김포에서 평택 가는 16시 20분 시외버스를 놓칠 것 같은 조바심에 콜택시를 불러 타고 김포 시외버스 정거장에 늦지 않게 도착하여 평택으로 돌아왔다.
5월 19일(토) 맑음 10℃,25℃
애기봉 입구 → 전류리 포구→ 일산대교 → 대화역→ 화정
새벽 4시 50분 집을 출발하여 9시 20분 평화누리길 3코스 (한강철책길) 출발지점에 도착하였다.
집에서 택시를 타고 평택역에서 전철을 이용하여 송정역에 도착하였다.
다시 88변 버스를 타고 김포시 하성면에 도착하여 24번 마을버스로 갈아 타고 4시간 30분만에 도착하였다.
송정역에서 버스 타는 곳을 찾지 못해 주위의 버스 정거장을 찾아 다니면서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알 수가 없어 헤매이다 멀리 정거장에 정차되어 있는 버스를 발견하고 뛰어가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지난 20여 일만에 다시 찾아간 애기봉 입구는 더 짙은 녹음으로 우리를 반겨 주는 듯 하였다.
애기봉은 평양감사와 애기의 슬픈 전설이 있는 곳이다.
병자호란 때 한양으로 피난을 하던 중 애기는 조강을 건넜으나 평양감사는 강을 건너지 못하고 청나라 군사에게 잡혀가 이별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애기는 산등성마루에서 평양감사를 기다리다 죽고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154m 고지인 이곳을 애기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애기봉 앞으로는 한탄강과 함께 흘러온 임진강이 한강과 합류한 조강이 흐른다.
애기봉은 조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개성시 판문군과 1.8Km 떨어져 있는 접경지역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성탄을 축하하기 위한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이 열리는 애기봉에서는
북한의 선전마을과 농사 짓는 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고 한다.
현재 애기봉은 남북교류와 평화를 상징하는 생태공원으로 조성 중이며
2019년 12월 이후에나 출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애기봉 입구를 조금 지나자 고려 말 조선초기의 문신 박신의 묘가 있다.
묘 입구에는 박신 선생이 심었다고 하는 수령 600여 년이 되는 멋진 향나무가 있었다.
깨우침을 주는 나무라는 뜻으로 학목(學木) 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마을 안으로 흐르는 냇가에는 요즈음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빨래터가 있었다.
빨래를 하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씨끌 씨끌한 수다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그리고 이곳은 북한과 가까운 지역이라 마을회관 지하에는 주민대피소가 설치되어있는 것이 특이했다.
강 따라 설치된 철책 너머가 북한 지역이라 나도 모르게 한강변으로 갈려고 하는 생각에 삼거리 길에서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2번씩이나 갔던 길을 되돌아 가기도 했다.
옆지기에게 자랑 삼아 말했다. “저기 보이는 산이 개성 송악산 이야”
“ 어제 내린 비로 오늘 시야가 너무 좋다 ”
“ 그런데 앞에 있는 아파트는 뭐야 ? “
“ 응 그거 선전마을이야 “
“ 어 ~잉 ? “ 아차 싶었다.
아파트가 너무 높았다.
20층 이상 되어 보이는 고층아파트였던 것이다.
동쪽으로 걷고 있으면서 북쪽 방향으로 걷는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다시 살펴보니 북한산과 일산2지구 고층 아파트들 이였다.
오늘은 이상하게 걷는 도중 자주 지도를 들여다 보며 길을 찾았다.
그럴 때 마다 옆지기는 “ 김지도 ! 저기가 송악산이야 ! “ 하며 약을 올린다.
한강변 철책과 함께 가는 자전거도로를 따라 전류리 포구에 도착했다.
한강에서 포구의 명맥을 유지하는 유일한 포구라는 전류리 포구는 바닷물과 강물이 하루에
두번씩 방향을 바꾸며 물이 뒤집혀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서해에서 마포나루로 가는 배들이 밀물을 기다리 던 곳이며
마포나루와 파주 서패리로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지금은 4척 만 남아 있다는 새우잡이 배는 어제 내린 비로 강물이 불어 포구에 매어져 있었다.
서해에서 자라다가 한강 하구와 임진강으로 올라오는 황복과 농어, 웅어, 장어, 참게, 새우 등이 많이 잡힌다고 하며,
포구 입구에 있는 수산물 어판장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평화누리길 3코스는 전류리 포구에서 끝을 맺고 4코스는 행주산성에서 시작한다.
옆지기와 나는 대한민국 종주를 계속 하기 위하여 자전거 길을 따라 고양시 대화역까지 이어 걸었다.
멀리 김포한강 신도시와 고양시 아파트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김포시와
고양시의 아파트들이 서로의 키 높이를 자랑하는 것 같다.
제방도로와 함께 조성된 한강변 습지는 대규모의 김포 한강 야생조류 생태공원으로 개발되어 있었다.
공원의 3층 김포에코센터에는 다양한 자연 생태환경을 체험 할 수 있는 시설과
물고기와 곤충 표본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단위의 나들이 객이 많았다.
특히 토끼와 공작새 우리에 모여 앉아 풀을 뜯어 먹이 주며 토끼와 대화를 하고 있는 아이들 모습이 귀여웠다.
고양시는 옆지기와 내가 일산신도시 건설이 한창이던 1994년부터 2007년까지 14년간을 살았던 친숙한 곳이다.
아이들은 초, 중, 고를 일산에서 보냈으니 고향이라 할 만하고, 나 또한 30 , 40대 중반을 보내 곳이다.
옆지기는 일산에 도착하자 일산 친구들에게 전화하기에 분주했다.
킨텍스 전시장을 걷던 중 뒤에 따라 오던 옆지기가 60대로 보이는 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걸어 오고 있었다.
누구인가 하는 호기심에 옆지기를 기다려 함께 걸었다.
자신도 도보여행을 좋아해 친구와 함께 평화 누리길를 수 차례 걸었다고 하시는 도보여행 매니아다..
자신도 걷고 싶었다며 다음 버스 정거장까지 함께 걸어 주셨다
대화역 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시며 쉬는 동안, 길 건너에 있던 “쫄병” 이라는 회집이 생각났다.
2006년 백두대간 종주을 함께 했던 각 일병팀 형님들과 수시로 “쫄병”에서 모여 회포를 풀곤 했던 곳 이였다.
“쫄병” 집을 운영하시던 일식조리사 준섭 형님과 대한민국 종주 도보여행을 하시던 이용섭 교수님이 생각난다.
모두들 건강하시죠.
저렴한 비용에 맛 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신 준섭 형님 덕분에 1인당 소주 1병씩만 마신다는
각 일병팀은 개인별로 3병씩은 마셨다. 형수님들과도 재미있게 지냈는데 …..
지금하고 있는 도보여행도 이용섭교수님의 영향으로 그때부터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일산에서 멀어지고 시간도 흘러가 지금은 추억만 남았다.
대화역에서 전철을 타고 화정역으로 갔다. 마을버스를 타고 평화누리길 4코스가 시작되는 행주산성에 도착했다.
오늘 묵을 모텔을 찾아 보았으나 행주산성 주위에는 모텔이 없다고 하여 할 수 없이 화정역으로 되돌아 왔다.
토요일 오후 화정역 광장에는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쳐났다.
페루인으로 보이는 건장한 청년 4명이 전통복장을 하고 피리를 불며 춤을 추는 민속공연도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는 우선 모텔을 정한 후 구경하기로 하고 고충건물에 위치하고 있는 모텔에 들어가 숙박을 문의했다.
숙박은 10시 이후에나 오라고 한다. 다른 곳도 9시 이후에 오라고 한다. 지금은 대실 손님만 받는다고 한다.
기분은 불쾌했지만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번화가를 조금 벗어난 덕양구청 뒤로 가보았다.
호텔이 있었다.
시설이 별로인 것 같은데 OOO호텔이라 한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역시 이름만 호텔이고 시설은 모텔 급이다. 다행히 요금은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오늘도 흘린 땀이 많아 맥주 생각이 간절했다.
“오늘 치맥 어때 ? 콜 ? “ “ 콜 ! “
오늘 저녁도 걸작 떡볶이와 치킨 그리고 맥주로 해결하였다.
5월 20(일) 흐림 11℃,23℃
행주산성 → 호수공원 → 킨텍스 → 심학산 둘레길 → 성동사거리
7시 50분 우리는 행주산성에 다시 돌아왔다.
어제는 늦어서, 오늘은 일러서 행주산성 입구 대첩문은 굳게 닫혀 안으로 들어 갈 수 없었다.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은 권율장군이 이끄는 관군, 승병, 의병 그리고 부녀자 등
3000여 명이 3만명의 왜군을 물리친 곳으로 특히, 부녀자들이 앞치마로 돌을 날라 싸움으로서
“행주치마”라는 말이 탄생된 곳 이다.
평화누리길 4코스(행주나루길)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행주나루 공원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 시간, 산책하는 한 두명 만이 오고 갈 뿐 공원은 한적하며 고요하다.
공원 한적한 곳에는 어제 밤새워 낚시를 한 부부가 잠자리로 사용했던 트럭의 화물칸을 정리하고 있었다.
릴낚시 7대를 펼쳐놓은 부부는 지렁이로 뱀장어를 잡는다고 하였다.
눈치를 보니 조황은 별로 인 것 같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잡은 물고기를 구경하는 쏠쏠한 재미를 포기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행주대교 밑을 지나다 가는 방향을 확인하기 위해 지도를 보려는 순간 내 손에 들려 있어야 할 지도가 없는 것 이었다.
깜짝 놀라 다시 확인 해보아도 지도는 내게 없었다.
가만히 생각 해 보았다. 평화누리길 4코스 입구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옆 난간에 내려 놓은 것 같았다.
배낭을 옆지기에게 벗어 주고 걸어 왔던 길을 되돌아 뛰기 시작했다.
2Km 되는 길을 단숨에 뛰어 갔으나 그곳에는 지도가 없었다.
힘이 빠져 터벅터벅 걸어 오면서 생각하여 보니 오늘 아침에 호텔 화장실에서 지도를 보고 그냥 두고 나온 것 같았다.
나는 아침에 화장실에서 지도를 보면서 오늘 가야 할 길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오늘은 옆지기가 도보여행 중 처음으로 나보다 먼저 준비를 마치고 호텔 방을 나선 것이었다.
나는 놀래서 “ 오늘은 왠 일이래” 했더니 “ 이런 날 도 있어요 “ 하며 먼저 나간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오면서 두고 나오는 물건 없는지를 확인해야 했었는데 실수를 한 것 이었다.
물건을 잘 잃어 버리지 않는다고 자랑해 왔던 나는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 꼴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다. 그렇다고 지도를 찾기 위해 호텔로 되돌아 갈 수는 없었다.
평화누리길 리본과 방향 안내표시를 잘 보면서 따라가기로 하였다.
비닐하우스가 밀집되어 있는 전원지대를 지나서 호수공원이 멀지 않은 휴게시설 나무그늘에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우리를 유심히 보고 계시던 한 분이 “지금 여행 중 이세요”하며 말을 걸어 오셨다.
도보여행 중이라 말씀 드렸다. “나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18년 동안 장사하느라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서 우리부부를 무척이나 부러워하신다.
자신은 장항동에서 한마루 감자탕, 추어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복영 사장이라 하신다.
일요일에는 식당이 더 바빠서 알바 할 사람을 Pick UP하기 위해 나와있는 중이라고 한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자신의 한마루 감자탕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군 복무중인 아들이 돌아오면 함께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프랜차이즈점으로 키우는 것이 꿈이라고 하셨다.
다음에 일산에 다시 오면 한번 찾아 뵙겠다고 헤어진지 5분도 안되어 걷고 있는 우리를 다시 찾아 오셨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가 가스 일을 한다고 하여 생각난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야기 하겠다며 오신 것 이었다.
이야기는 식당에서 부탄가스 캔을 사용하면 잔량 가스가 남게 되는데,
이 잔량가스를 회수하는 장치를 개발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면서 꼭 연구해보라는 것 이었다.
매사에 꼼꼼하게 관찰하고 연구하시는 분이라 생각되었다.
우리 부부에게 친숙한 30만평에 이르는 동양 최대의 인공호수인 고양시 호수 공원에 도착했다.
잠실 수중보 상류의 물을 끌어와 만든 호수 공원은 4.7Km에 달하는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 전시관 그리고 여러 광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은 일요일, 산책로에서 많은 사람들이 걷고, 뛰고 하며 5월 싱그러운 실록을 즐기고 있었다.
일산 떠난 이후 들어선 낯선 시설이 여기 저기 눈에 띄었다.
공원은 옛날보다 더 세련되고 멋 있게 꾸며져 있었다.
특히 메타세콰이어 길의 나무들은 훤칠하게 커버린 자신을 뽐내고 있었다.
옛날보다 더 멋있어진 호수공원과 세련된 고양시민들을 보니 다시 이사 오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평화누리길 5코스(킨텍스길) 입구을 지나 그 동안 증축을 계속 하여 국내 최대 규모답게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킨텍스 무역 전시장을 지났다. 내가 떠나기 전에는 허허 벌판이던 곳에 한류월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관광시설인지 업무 시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호텔, 테마파크, 백화점 그리고 방송미디어 시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한류월드 육교를 건너 가다가 코리아트레일 표식 부착작업을 하고 계시는
도보여행 전문가 손성일씨와 자원봉사자 2분을 만났다.
오늘로써 코리아트레일 표식 부착작업을 끝냈다고 하신다.
코리아트레일 이라고 명명된 도보여행길은 땅끝에서 임진각까지 52개 코스 700Km로 이루어 져 있다고 한다.
손성일씨가 코리아트레일을 개발하신 분이다.
코리아트레일 표식은 사람 “人(인)” 자가 교차하여 사람이 걷는 모습과 Trail의 ” i “를 표현했다고 하며
머리방향이 진행 방향이라 한다.
코리아트레일은 내가 사는 아파트를 지나 대동법 시행 기념비 옆을 지나가므로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내가 걷는 도보 여행길을 직접 개발하신 분을 만났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
이였다. 그리고 코리아트레일이 북한 신의주를 지나 유럽까지 이어지길 바라며, 다음에 다시 만나 함께 걷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양시 종합 운동장을 지나면서 주경기장 2층을 쳐다 보며,
비 오는 날 주경기장 2층 복도에 있는 인라인 트랙에서 달리던 추억이 떠올랐다.
10여 년 전에는 논과 밭만 있던 지역들 곳곳에 아파트 촌이 조성되면서 반듯하게 새로 뚫린 길을 따라 걸었다.
동패 지하차도 위에 공중전화 박스 모양을 한 스탬프 찍는 곳 이 있었다.
이곳에서 평화누리길 6코스(출판도시길)가 시작된다.
평화누리길 6코스는 처음부터 가파른 산길로 심학산 둘레길을 따라 간다.
시원한 그늘은 좋았으나 오르고 내림이 많은 길은 우리를 서서히 지치게 하였다.
일요일 오후, 가족단위로 많은 사람들이 심학산 둘레길을 걷고 있었다.
심학산을 내려가니 문화 산업 단지답게 예술적 디자인으로 멋을 낸 건물들이 모여있는 파주 출판단지가 있었다.
도서의 출판 기획, 편집에서부터 인쇄, 유통 등에 이르기까지 출판물을 만드는 회사들이 모여
출판물을 종합 유통하는 체제가 갖추어진 문화정보 산업단지이다.
출판단지 외곽에 위치한 조류관망대 공원에는 젊은 청춘과 많은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평화누리길은 조류관망대를 지나 자전거 길로 이어진다.
지루하게 자전거 길을 걷던 중 성동사거리을 조금 앞두고 평화누리길 리본이 검단사 입구에서
우리를 불러 “살래길”로 인도한다.
“ 살래 “, “ 죽을래 ” 에서 온 살래길인가 ?
힘 들어도 걸으면 살고, 아니면 편하게 누우면 죽는다는 뜻인가 ?
침엽수로 우거진 호젓한 산길로 부담 없이 걷을 수 있는 길이라 생각되었지만, 지친 우리에게
마지막 힘까지 짜내고 있었다.
살래길 건너 산등성이에는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통일을 염원하는 오두산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앞에서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며, 강 건너 2Km 떨어진 황해북도와 마주보고 있다.
또 살래길에서 파주 축구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아마 월드컵 대표팀이 지금 합숙 훈련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살래길 위 산비탈에는 거대한 한옥 건물이 있다. 파주 고려통일대전이라 한다.
지금은 인기척이 없고 출입문도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이곳은 고려의 왕들과 충신, 공신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능선과 능선으로 이어지던 살래길은 통일동산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그토록 찾던 편의점이 있었고 음식점, 모텔도 있었다.
편의점에서 갈증을 해소하고 모텔을 찾아 가던 중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는 입간판이 있었다.
“숙박 35,000원”
모텔 주인이 소개하여 준 오두산 막국수 집에서 막국수와 녹두빈대떡 그리고 메밀 막걸리를 맛있게 먹었다.
실향민들이 많이 찾는 통일동산에 북한음식인 메밀요리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통일동산 맛 집으로 소문난 식당에는 많은 손님들로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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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평택에서
평화누리길을 오가며 옆지기와 함께 걸으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완주까지 응원합니다
저희부부도 이제 시작할 예정이라 많이 참고하겠습니다.
이제 시작하려는 벨로스 부부님!
화이팅입니다.
평화누리길은 안내와 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애쓰신분들의 고마움을 많이 느끼며 즐겁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즐거운 여행! 안전하게 완주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잘 걸어 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힘찬 박수로 응원합니다.
복돼지님, 청제님!
힘찬 박수와 응원 감사합니다.
힘이 불끈! ^^*ㄴ
남은 일정도 무사히 잘 소화하겠습니다.
항상 건강생각하시며 무리하지마시고 무사히 완주하시길 바랍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화이팅!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일산에 살았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저도 평화누리길을 걸어보고 싶네요. 옆지기와 함께하는 우보만리 평화누리길 완주 화이팅입니다.
그렇군요!
일산!
고향 같은곳이죠!
평화누리길 도전해보세요!
굿입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