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마지막 날에 우리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보내며
‘가정 성화 주간’을 시작합니다. 마침 주교님의 사목교서 방향이
[새로운 가정 복음화]입니다. 따라서 교구의 모든 본당과 기관에서
지난 대림시기부터 앞으로 3년(2024~2026년) 동안 이 주제를 가지고
가정을 새롭게 성화시키고, 복음화 시키기 위한 노력을 시작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사랑의 기쁨」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자렛 성가정에서 실천된 사랑과 신의의 계약은 모든 가정을 형성하는 원칙을 밝혀
주며, 삶과 역사 안에서 겪는 우여곡절에 더욱 잘 대처할 수 있게 해 줍니다.”(66항)
나자렛 성가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모두 알다시피 매우 드라마틱합니다.
우선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의 예수님 잉태 소식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인간적으로
배신감을 느끼며 원망과 절망 속에서 모든 것을 깨뜨릴 이유가 충분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중심으로 살아왔던 요셉과 마리아는 서로를 깊이 신뢰하며
이 소식을 믿고 받아들입니다.
이후에도 요셉과 마리아가
‘하느님 안에서 서로를 신뢰하며 맺은 사랑과 신의의 계약’은 그 어떤 인간적인
위험 속에서도, 불신이 일어나고, 상처와 비참함과 억울함이 밀려오는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반석위에 집을 짓는 튼튼한 성가정을 만들게 됩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주변에서 겪고 있듯이 나자렛의 마리아와 요셉의 성가정이
깨질 만한 위기는 늘 찾아왔고, 두 사람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에 대해서 시험에 들게 하는 순간들은
두 사람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만삭인 마리아가 아기를 낳는 순간, 방 하나 구하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 안에서도,
어린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헤로데의 칼날을 피해서 이집트로 피난 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영혼이 칼에 꿰찔린다는 두려운 예언을 듣는 순간,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3일 동안 어린 예수님을 찾아 헤매던
그 가슴 졸이던 순간에도 요셉과 마리아는 서로를 원망하고, 질책하기보다는 신뢰하고,
믿고 따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런 훌륭한 부부의 삶을 사시는 마리아와 요셉을
부모님으로 모시고 ‘순종하며 하느님의 총애 속에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집니다.
‘성화되고, 복음화된 성가정’은 문제나 위기, 어려움이나, 가슴 아픈 일들이 없는
가정이 아니라 “삶과 역사 안에서 겪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하느님을 중심에 놓고
부부가 기도하며 어려움을 이겨내고, 서로를 배려하고 신뢰하며, 자녀들은
부모님께 순종하며 손잡고 가는 가정이 ‘성화되고, 새롭게 복음화된 성가정’입니다.
교황님들은 한결같이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가정을 ‘작은 교회’라고
표현합니다. 주교님은 이러한 교황님들의 강조점을 이어가며
[새로운 가정 복음화]를 이루는 ‘가정교회’를 만들어가자고 촉구하시고 초대하십니다.
이 촉구와 초대에 비켜서 있는 신앙인은 누구도 없습니다.
[새로운 가정 복음화]는 지금, 나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시대에 신앙인의 소명(召命)이고, 사명(使命)입니다
글 : 이금재 마르코 신부 – 전주교구
가정이라는 성소(聖所)
신학교에 합격한 뒤, 신학원 생활을 준비하려면 챙겨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검은색 양복, 와이셔츠, 검은색 넥타이, 성경, 성무일도, 각종 옷가지 등 챙겨야 할
것들이 한 짐입니다. 그중에 가장 신기하고 어려운 준비물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라이프 스토리’라고 부르는 신입생의 삶과 신앙의 기록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신입생 때 한 번,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면서 한 번,
부제품을 앞두고 한 번, 총 3번 ‘라이프 스토리’를 학교에 제출합니다.
‘라이프 스토리’는 ‘나’라는 존재가 어떤 가정과 성장 환경 속에서 자라났고, 특별히
그 안에 내 신앙은 어떻게 싹틔우고 자라나며 성장했는지가 주된 내용입니다.
제가 신학생 시절에 ‘라이프 스토리’를 작성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은,
‘가정’이라는 환경이 내 신앙 여정에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가였습니다.
제게 있어서 ‘가정’이라는 토양은 신앙을 싹 틔우고 자라나게 했으며,
지금도 살게 하고 있으니 참으로 ‘비옥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교회는 ‘예수, 마리아, 요셉 성가정’을 축일로써 기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탄생의 의미가 모든 이에게 빛날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의 하나는 ‘나자렛 성가정’의 역할에 있었습니다.
‘나자렛 성가정’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두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성소(聖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모든 가정이 ‘나자렛 성가정’의 모습을 닮아서, 성소(聖所)가 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가정의 상황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나자렛 성가정’의 모습을 닮으라는 것은, 가정의 외적인 모습을 잘 가꾸라는 뜻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정의 중심에 두고 하느님의 뜻을 알고 믿고
살아내라는 초대입니다. 신앙은 나만 움켜쥐고, 숨겨야 하는 보물이 아닙니다.
신앙은 세세대대로 이어지는 유산입니다. 제 경험처럼 가정이 귀하디귀한 성소(聖所)
임을 확인한다면, 분명히 그 보물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이라는 비옥한 토양을 통해 피워낸 신앙의 유산을 세상을 향해서
꽃 피우는 것이,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를 잘 살아내는 방법일 것입니다.
어느덧 2023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우리 교우님들께서도 각자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뜻을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정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롭게 시작될 2024년은
그분의 은총 속에 더 충만한 한 해가 되시길 응원합니다!
글 : 이재혁 요한사도 신부 – 수원교구